12漫遊의漢詩紀行

栗谷의 "浴沂辭"

이름없는풀뿌리 2015. 8. 13. 10:09

浴沂辭(욕기사)                 기수에서 몸을 씻다          李珥(이이)



봄바람 솔솔 불고,

봄날은 길고 길다.

봄옷 이미 마련되었으니,

내 사랑하는 친구와 같이 저 기수(沂水)로 유람 가려니,

내 옷 벗어버리고 맑은 물에 목욕하리라.

나의 갓 벗어 맑은 바람에 털어 쓰리라.

무우(舞雩)에서 만물의 변화 관찰한 다음,

하나 된 근본이치를 깨닫고, 노래하며 집으로 돌아오리라.

하늘을 우러르니 만 갈래의 분수가 하나로 통하고

땅을 굽어보니, 물고기는 힘차게 튀어 오르고,

솔개는 하늘을 날고 있고, 요,순은 이미 가고 아니 계시니,

나는 누구와 함께 저 행단의 즐거움으로 돌아가야 하나.

이것을, 나는 스승으로 하리라!


春風兮.(춘풍혜)

習習春日兮.(습습춘일혜)

遲遲我服旣成兮.(지지아복기성혜)

我友同遊瞻彼沂水兮.(아우동유첨피기수혜)

浴乎淸의振余衣兮.(욕호청의진여의혜)

彈余冠風一陳兮.(탄여관풍일진혜)

舞雩觀物化兮.(어무우관물화혜)

詠而歸達一本兮.(영이귀달일본혜)

通萬殊仰天兮.(통만수앙천혜)

俯地魚躍兮.(부지어약혜)

鳶飛勳華已逝兮.(연비훈화이서혜)

吾誰與歸樂彼杏壇兮.(오수여귀락피행단혜)

爰得我師!(원득아사!)


주1)기수(沂水) : 노(魯)나라 남쪽에 위치한 강 이름.

2)무우(舞雩) : 산 위의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는 곳.

3)훈화(勳華) : 요(堯)와 순(舜)을 말함.

            *훈(勳)은 요(堯)임금의 별칭인 방훈(放勳).

            *화(華)는 순(舜)임금의 별칭인 중화(重華)를 가리킨다.

4)행단(杏壇) :공자가 강학(講學)하던 곳이니, 여기서는 곧, 공자의 유훈(遺訓)등을 가리킨다.

*의:몰놀이 의(水+犬+奇)


이 욕기사(浴沂辭)는 율곡전서 권1의 제일 첫머리를 장식하는 가사(歌辭)로  율곡의 사상과 그의 철학 그리고 그의 학문에 임하는 자세를 총 망라하는 다시 말해 율곡 사상의 총 집약사이다.

가사내용은 한 글자, 한마디 단어에도 온전히 그의 사상과 철학을 집약시켜 놓았기에 단 한자도 중복되거나 헛되이 사용한자가 없다.

다만 가사로서의 구실을 충실하기위해 매장에 접미사 혜(兮)를 반복 사용한 것을 제외 하곤 단 한자도 그 의미의 집약과 농축의 결정체가 아닌 자가없다.

이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1.춘풍혜.(春風兮)

춘은 봄을 뜻 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그리고 바람……. 맑다, 깨끗하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 봄의 깨끗한 바람은 율곡학의 기본을 말하는 것이다.

즉, 나는 유학을 전공 한다. 유학은 불가나 도가에 비해 현실에 충실하며 현재를 다루는 실학이다. 하니 이를 봄의 생동감과 맑고 깨끗한 바람으로 표현하여 나 자신의 전공학의 자부심을 제일 첫 머리에 드러낸 것이다.


2.습습 춘풍혜.(習習春風兮)

논어 첫머리를 기억하는가? 學而時習之 바로 이 습(習)이다.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백번 날개 짓을 하여야 그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자이다.

하니 그동안 나는 위와 같은 나의 전공인 유학을 익히고 또 익혀 왔다는 스스로는 수기(修己)의 길을 충실히 걸어 왔다는 의미인 것이다.


3.지지아복기성혜.(遲遲我服旣成兮)

비록 선인들에 비해 조금 늦은 감은 없지 않지만 그동안 수신에 온힘 기울인 덕택으로 이제 어느 정도 성복(成服),  즉 옷은 갖추어 입었다는 뜻이다.

성복(成服)이란 예(禮)의 기초를 의미 한다. 성복(成服) 하였다함은 지례(知禮), 즉 공자께서 말씀하신 이립(而立)의 단계는 거쳤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4.아우동유첨피기수혜.(我友同遊瞻彼沂水兮)

나와  뜻을 같이하는 벗과 저 기수로 유람을 간다.

나와 같은 뜻의 벗이 있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이미 치인(治人)의 학에 임하매, 일정 경지에 이르렀음에 강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말이다.

하니, 그 기수! 기수는 공자님이 태어난 노나라에 있는 강 이름이다. 그 기수로 벗들과 유람을 간다함은 이미 형이하학적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의 경지는 마스터했고 보다 상위의 형이상학적 학문의 철학적 본질에의 접근을 위해 새로운 경지로 들어섰다는 말이다.

유(遊)는 락(樂)을, 다시 말해 지락(知樂)인 것이다. 이미 율곡의 경지는 지락(知樂)의 경지임을 말하는 것이다.


5.욕호청의진여의혜.(浴乎淸의振余衣兮)

저 기수의 맑고 깨끗한 물에 지금껏 이 몸을 감싸왔던 옷. 즉, 때 묻고 왜곡되어진 지금의 모든 제도와 관습을 훌훌 벗어버리고 본래의 저 맑고 깨끗한 아름다운 제도로의 복귀를 강하게 말하는 대목이다.

이는 율곡이 사회의 전반적 일대쇄신의 이론인 경장론(更張論)과도 바로 직결됨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 경장론(更張論)이 넓게는 조선후기 영, 정조시대의 조선실학과 무관치 않음은 알만한 이는 다 알고 있는 사항이다.


6.탄여관풍일진혜.(彈余冠風一陳兮)

위에서 제도와 관습을 옷에 비유했다면 여기에서는 관(冠).즉 머리, 바로 정신(精紳)을 말함이란 것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음이다.

유학은 실제를 전제한 현실, 현재를 다루는 학문이다. 제도와 관습의 토대는 정신적, 철학적인 굳건한 바탕 없이 구축할 수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에 정신의 상징물인 관(冠)을 새로운 정신자세로 맑은 바람에 훌훌 털고서 다시 고쳐 씀이라 표현한 것이다.


7.어무우관물화혜.(於舞雩觀物化兮)

이젠 상당히 고차원적이다. 지금껏 자신과 벗(修己治人). 그리고 치국(治國)을 말했다면 여기서는 하늘을 뜻을 만물의 본질(仁=誠)에 대한 고찰이다.

무우(舞雩)는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다. 즉 하늘과 대화를 하는 곳이란 뜻이다.

그곳에서 우주만물을 굽어보며 그 신묘한 변화의 이치를 궁구함이면, 이는 우주 본질에 대한 즉, 하늘의 뜻 천리(天理), 천성(天性),천명(天命)을 궁구함이란 뜻인 것이다.


8.영이귀달일본혜.(詠而歸達一本兮)

하늘의 뜻은 하나로 도달하니 그것이 무엇일가? 바로 성(誠)이다.

이 성(誠)의 본질을 깨닫게 되니 즉, 도(道)를 통했으니 그 즐거움이 지극하여 노래하며 나의 집으로 즉, 내가 존재하고 있고 발붙이고 사는 이 땅으로 이 세상 속으로 돌아옴이란 뜻이다. 이는 처음에도 말했듯 유학은 현실을 현재를 궁구하는 학문이다.

도(道)를 깨친다면 그것은 홀로 산속에서 신선놀음 하는 바가 아니라는 뜻이다.


9.통만수앙천혜.(通萬殊仰天兮)

이 땅에서 하늘의 이치를 펼쳐보려니 하늘의 근본 되는 이치는 하나에서 만 갈래로 펼쳐지는데, 그 이치를 궁구하면 끝내는 하나로 통한다는 말은 곧, 율곡의 기본 철학인 이기일분수론(理氣一分殊論)임을 알아차렸다면 이 욕기사(浴沂辭)를 제대로 이해했음이라 생각합니다.


10.부지어약혜.(俯地魚躍兮)

11.연비훈화이서혜.(鳶飛勳華已逝兮)

이런 천지의 오묘한 이치 즉, 연못에서는 물고기가 튀어 오르고, 하늘에는 솔개가 높이 나는 즉, 음(陰)을 상징하는 물고기와 양(陽)을 상징하는 솔개, 다시 말해 음(陰)과 양(陽)의 오묘한 합산(合散)의 이치로 이 세상 만물이 생성 소멸되니, 이런 이치를 처음으로 궁구한 이가 바로 요(堯),순(舜)이니 그 이치를 요,순에게 묻자하나 이미 그들은 가고 없으니…….


12.오수여귀락피행단혜.(吾誰與歸樂彼杏壇兮)

나는 누구와 같이 유학의 본질에로 접근을 함께하고 즐길 것인가?

율곡에게는 그의 학문의 뚜렷한 사승관계(師承關系)가 없음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의 학문의 독창성을 나타내는 강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엿 볼 수 있다.

퇴계는 율곡을 한번 만나고서 후생이가외(後生而可畏)라 하였다. 율곡의 천재성을 단번에 알아본 것에 다름 아니다.

타고난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인 율곡 이였다.

 

13.원득아사!(爰得我師!)

이 마지막 결구에서 율곡은 더욱 자신만의 강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드러낸다.

즉 자신의 학문의 스승은 요,순이 처음 하늘의 이치를 깨달았을 시, 그 누구의 도움이 있었겠느냐는 뜻과 함께 물고기가 연못에서 튀어 오르고 솔개가 하늘을 높이 나는 이치로 내 스승으로 삼겠다는 말인 것이다.

실로 대단한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하기는 공자께서도 그의 학문을 집대성 하시면서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지학을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 하였으니,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인 율곡께서도 그와 똑같은 강도의 강한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이런 말씀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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