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漫遊의漢詩紀行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

이름없는풀뿌리 2015. 8. 13. 10:06

吾日三省吾身하노니


논어 학이편 제4장에 증자가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자신을 돌아보니(吾日三省吾身),

남에게 일을 꾀하매 진실 되지 아니하였는가?(爲人謀而不忠乎)

벗과의 사귐에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 하였는가?(與朋友交而不信乎)

익히지 아니 한 것을 전하였는가?(傳不習乎)”라 하였다.


증자! 그는 누구인가?

수많은 공자의 제자 중에 가장 독실하고 신중하며-해서 공자께서는 그를 일러 노둔하다고 까지 하였다- 효성이 지극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하여, 공자의 가르침을 가장 신실하고 독실하게 받아들이고 전수한 이가 바로 증자이다.


저의 앞 글에서 계속하여 강조하여 왔듯, 유학은 수기치인(修己治人)과 인(仁)의 학(學) 입니다.

하여, 이 장도 그 예를 벗어날 수 없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음을 조금만 신경을 기울이면 금방 알아 챌 수 있음입니다.


제일 먼저, 늦은 저녁 잠자리 들기 전 오늘 하루의 자신을 조용히 돌아봄에 먼저 자신이 남에게 대하는 마음가짐에 진실 됨이 결여 되어 있지는 아니 하였는지를 되돌아봅니다.

즉,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올바르고 신실하였는지를 조용히 반성해 봅니다.


두 번째 벗과의 더 나아가 모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믿음이 결여 되는 행위는 없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벗이란 태어날 때부터 관계를 맺는 어쩔 수 없는 인연이 아님이다. 

살아가면서 서로가 필요에 의해 돈독하게도 혹은, 그저 알고 지내는 사이로도 관계지울 수 있듯이 또,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는 헤어질 수도 있음입니다.

해서, 벗과의 관계, 제 삼자와의 그 어떤 관계, 심지어 군신의 관계, 부부의 관계 까지도 총 망라하여 상호간의 믿음이 전제되지 않는 한 그 관계의 지속은 보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상당히 고차원적인 지금까지가 형이하학적 경우(修己治人)였다면 세 번째의 경우는 형이상학적 경지 인(仁)의 실천과 전수를 말함입니다.

즉, 이글의 주인공인 증자의 입장으로 살펴본다면 공자님으로부터 전수받은 그 높고 깊은 학을 진실로 제대로 익히고 실천했으며 또한, 이 아름다운 학을 후세에 전달함에 있어 올바르게 제대로 전달했는지를 반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매일,아니 일 평생을 하루같이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경계 삼았으니,

진실로 노둔하기까지 하다고 핀잔까지 들은 증자가 아니면 실천에 옮기지 못할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철저한 자기성찰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속담에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증자의 경우가 꼭 그렇다고 말한다면 성현에 대한 무례가 될까요?

오늘날의 우리자신을 되돌아 보매, 셋은 고사하고 그 첫째만이라도 제대로 성찰함이면 세상이 이리도 혼탁해 지지는 아니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문득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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