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漫遊의漢詩紀行

두보의 여름

이름없는풀뿌리 2015. 8. 13. 10:25

江村(강촌)                       강촌                   杜甫(두보)



淸江一曲抱村流(청강일곡포촌류)        맑은 강 한 구비 마을을 안고 흐르고,

長夏江村事事幽(장하강촌사사유)        한 여름 강촌 만사가 한가롭다.

自去自來梁上燕(자거자래양상연)        스스로 갔다 스스로 오는 것이 대들보위의 제비요,

相親相近水中鷗(상친상근수중구)        서로 친하고 가까이 하는 것은 물위의 갈매기로다.

老妻畵紙爲棋局(노처화지위기국)        늙은 아내는 종이에 줄그어 바둑판 만들고,

稚子敲針作釣鉤(치자고침작조구)        어린 아들은 바늘 두들겨 낚시 바늘 만든다.

多病所須唯藥物(다병소수유약물)        다병한 이 몸 필요한거라고는 오직 약물뿐,

微軀此外更何求(미구차외경하구)        하찮은 이 내몸 이밖에 또 무엇을 구 하리오.



두보(712~770): 자는 자미(子美),양양(襄陽:호북성 양번)사람이다. 두말이 필요 없는 당대 최고시인이고 그를 일러 중국의 4대시인(전국시대 초나라의 굴원. 위진 남북조시대의 동진의 도연명. 성당시 이백두보)중 일인이라 한다.

하지만 그의 일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 그 자체라 할 밖에 표현 할 수없으며 일시 실세인 지인의 후원으로 안락한 생활도 했으나 그것도 잠시, 말년에는 장강일대를 유랑하다 59세를 일기로 병사했다.

그는 당대 사회시의 개척자로 그의 시를 시사(詩史)라 한기도 한다.

그는 유가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사상의 소유자로서 시에도 그의 사상이 그대로 반영되며, 특히 안록산의 난으로 도탄에 빠진 동포의 참상이 그의 시 정신을 격발시켜 시를 통해 현실의 비참한 실상과 그에 맞물린 참담한 개인사를 반영하는데 최대의 노력을 경주했으며, 그로인해 시풍도 자연 침울, 비장해 졌다.

해서인지 시율의 구속을 싫어했던 이백과는 달리 그는 한자 한자를 심사숙고하여 엄격한 규칙 하에 시를 썼다.

하여 그의 시는 고전시의 전범이라 할 수 있고 작품집으로 “杜工部集”이 있다.



여름에 읽는 두보의 시중 가장 유명한 시이다. -아마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시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시는 시인의 생애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인 성도(成都) 완화계(浣花溪)에서 옛 친구인 성도윤(成都尹:성도시장) 엄무(嚴武)의 후원으로 초당을 짓고 실로 두보 생애를 걸쳐 가장 여유 만만한 전원생활을 구가 하던 때인지라 시도 자연스레 유유자적한 전원생활을 구가하고 있다.

이때에 즈음한 두보는 안록산의 난으로 인한 숱한 피난 생활로 정신과 육체는 피폐해질 때로 피폐해 있다가 맞이하게 된 안락한 전원생활과 더구나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이 평온하고도 안온한 심경을 이 시를 통해 마음껏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잠깐 그 후 엄무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하여 그의 평안했던 성도생활은 종지부를 찍고 다시 장강을 오르내리며 동가식서가숙하는 고난의 시간을 그가 생을 마감 할 때까지 지속했으니…….

한때나마 행복했던 평온한 시절을 마음껏 노래한 두보의 흔치않은 전원자연시 한수를 접해본 오늘 여러분께서도 두보의 마음과 같이 하셨는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