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정궁 경복궁(景福宮)
경복궁(景福宮)은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7호로 지정된 조선의 법궁(法宮)이다. 1392년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조선을 세운 이성계(李成桂)는 이듬해 1393년 10월 고려의 서울인 개경(開京)으로부터 한양성(漢陽城)으로 천도하면서 맨 먼저 경복궁과 종묘, 사직을 건설하였다. 경복궁은 1395년 9월에 낙성을 보게 되고, 이어(移御)는 태조 4년 1395년 12월이었다.
경복궁이라는 명칭은 삼봉 정도전이 시경(詩經)의 ‘군자만년 개이경복(君子萬年 介爾景福)’이란 글귀에서 따온 것으로 궁궐 전각의 이름 대부분을 그가 지었다고 한다. 당시 궁내에 준성 된 전각은 총 390여 칸이었다. 경복궁은 한양에 위치한 5대 궁궐인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경운궁) 중에 으뜸 궁궐이며, 도성의 북쪽에 있어서 북궐이라 불리기도 한다.
경복궁 건립은 태조가 정종에게 왕위를 양위하면서 잠시 중단되기도 하였으나 정종은 곧 궁성(宮城) 쌓는 일을 끝냈다. 태종 12년(1412)에는 박자청으로 하여금 경회루(慶會樓)를 크게 다시 짓고 세종 8년(1426)에는 근정전을 고치고, 11년 4월에는 사정전(思政殿)을, 13년에는 광화문(光化門)을 고쳐짓고, 16년에는 광화문에 종을 달았다고 한다.
그 밖에 세종 15년엔 신무문의 중건과 강령전을 다시 짓고, 20년에는 흠경각을 준공하고, 25년에는 계조당을 신축했다. 그러니까 경복궁은 세종대왕(1397~1450)에 의해서 법궁 체제가 완비된 것이다. 그러다가 중종 38년(1543)에 동궁이 불타고 명종 8년(1553)에는 사정전과 흠경각, 왕의 침전인 강령전 일곽이 소신되었다.
명종 9년에는 불탄 건물들이 다시 제 모습을 찾았지만,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전각들이 모두 불에 타버리고 말았다. 그 후 영조 48년(1772)에 문소전 자리에 비와 비각을 세웠을 뿐, 고종에 이르기까지 273년간 빈터로 남아있게 된다. 참으로 슬프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다행히 고종 2년(1865년) 흥선 대원군의 주도하에 경복궁 중창이 시작되어 4년 만에 정궁(正宮)의 위용을 갖추었다. 이때 중창된 건물이 330여 동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이 다시 나 사라진 교태전과 자경전을 고종 13년에 복구했으나 또다시 불이나 이번에는 내전 830여 칸을 일시에 잃었다. 고종 25년 불타 없어진 건물을 다시 지으니 전각은 5,792간반, 궁성의 길이가 1,762간 이었다.
경복궁은 불에만 화를 당한 것이 아니다. 일제강점하 때에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손에 의하여 헐리고 뜯겨 대부분의 전각이 사라지는 등 만신창이가 되었다. 1915년에는 조선물산공진회를 경복궁 안에서 개최하면서 궁궐은 헐어 내기 시작하였고, 1917년 창덕궁 침전이 불타자 일본인들은 복구한다는 명분으로
1920년에 경복궁의 강녕전과 교태전 등을 헐어다가 창덕궁의 대조전과 희정당을 지었다. 게다가 연생전, 연길당, 경성전, 응지당, 원길헌, 함흥각, 건순각, 함원전, 홍복전, 광원당, 다경각 등 부속 행각들까지 200여 칸을 더 헐어내었다. 또 그것도 모자라 동문인 건춘문에서 서문인 영추문까지 궁성을 헐어내었고, 1926년에는 대한제국 국권의 상징적 건물인 근정전 앞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웠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프고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1990년부터는 경복궁 복원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왕과 왕비의 침전인 강녕전과 교태전이 복원 되었다. 1996년에는 조선총독부를 철거하고 2001년에는 홍례문 일원을 복원하였으며 세자궁인 비현각을 비롯하여 건청궁, 태원전 일원이 옛 모습을 되찾았다.
경복궁!
정부중앙청사 14층에서 늘 바라보는 궁궐이다. 꽃이 피던, 비바람이 불던, 단풍이 들던, 눈이 내리던 왜 그 모습은 그리도 쓸쓸해 보이는 것일까? 한동안 근정전 보수 공사로 인하여 천막에 가려진 근정전을 또 몇 년이나 쓸쓸히 바라보았던가!
화요일이면 관람객이 없다(휴관). 그때도 쓸쓸하다. 사람 사는 곳에는 사람들이 찾아들고 북적거려야 집이고 궁궐이다. 궁궐은 박제된 건물이 아니다. 근정전의 뜰과 월랑을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 담긴 선조의 이야기를 듣고, 건물 속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문화의 맥(脈)을 확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는 나라를 외세에 내어 주거나 궁궐을 불태우고 헐어버리는 불행한 역사를 우리 손으로 다시 써서는 안 되겠기에.
사진은 경복궁 안내서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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