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sr]역사,종교

연변 최대의 고구려 옛 성터

이름없는풀뿌리 2015. 8. 20. 14:59

8월 26일 연우산악회에 동참하여 병풍산산등을 타고 작은 평봉산정상에까지 갔다가 두만강님의 평봉산 옛 성터에 돌담아래로 샘물이 흐르는 소리까지 들린다는 소리에 직접가서 제눈으로 확인하지않고서는 도무지 안심할수가 없었다. 그리고 전번 22일 평봉산에 홀로 올랐다가  드넓은 벌판 한 가운데 꽤나 높은 돌담을 발견하였는데 산에서 내려와서 방향을 잃어 돌담을 찾지못한게 못내 한스러워 이번 기회에 기어코찾아보려고 다짐했다. 그래서 승풍무사님과 둘이서 옛 성터를 답사하기로 하였다.

전번 22일에 평봉산정상에올라 우연히 발견한 아래로 보이는 큰 돌담(실은 돌담이아니라 돌밭이였다)

산벼랑을 따라 내려오다가 목장에서 발견한 돌담흔적

서쪽으로 조금 더가서 찾은 돌무덤

다시 남쪽으로 보이는 돌담

돌담높이가 허리를 넘었다. 왜서 이런 돌담이 생겼는지 호기심이 풀리지 않았다.

근년에 쌓은 돌담이려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돌담을 쌓을 이유가 없었다.

 

 

돌담 아래끝쪽에서 샘물터를 발견! 시원한 샘물이였다.

조금 아래로 더 가니 눈앞에 펼쳐진 전경에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넓은데는 50메터도 넘었고 저 아래쪽으로 끝이 보이지 않았다. 200메터는 쉽게 될수있는 돌밭!

그래 이 돌밭이 자연적으로 생길이유가 없었다. 돌밭구성을 보아서는 밑은 잔돌이고 위는 큰 돌들이였다.

돌밭변두리를 보아도 정교하고... 그제야 두만강님이 알려준 수원지임을 깨달았다. 이제보니 전번에 내가 정상에서 발견한 돌담이 결국은 두만강님이 말씀하신 수원지와 일치했다.마지막끝에 가서 움푹패인곳에서 혹시나 귀를 대고 숨을 죽이니  이게 뭐야 정말 시내물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입에서는 연신 찬탄소리가 튕겨나왔다.

 

이건 정말 방대한 건축이였다. 현대 건축기술로도 이 돌밭을 깐다는건 상상도 하기 어려웠다.

돌밭은 수림을 지나 아래 목장옆으로 계속 뻗어나갔다.

목장옆 움푹패인곳에서 그대로 드러난 물흐름을 볼수있었다.  이건 정말 옛사람들의 지혜가 깔린 인공적인 수원지보호였다. 돌을 깔아 물을 정화시켜 물을 수시로 취할수가 있는 가장 최고의 방법이였다.

새끼소한마리가 호기심에였을가 아니면 물마이러 오려다가 우리를 보고 주춤하였다.

조금 더 내려가니 또 하나의 샘터-- 이렇게 일정한 간격으로 몇십개의 샘터가 있었다.

조금 더 내려가 유유이 풀을 뜯고 있는 말.

목장이 있는곳엔  무조건 물이 있어야 소와말들이 잘 자라는 법이다. 이제야 이 목장들이 여기에 생긴이유를 알수있었다.

그리고 수원지 돌담줄과 가로 옆으로도 돌담흔적이 쭉 뻗었다.

자세히 보니 돌담흔적은 두줄, 그 사이에는 돌들이 널려있었다.

그리고 수십개의 이러한 돌무덤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널려있었다. 이 돌 무덤들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가?

 

돌담샘터줄기는 계속 아래로 이어졌다. 20여분 걸었는데도 계속 되였다.

수풀을 지나기도 목장을 지나기도 하면서...

저 평봉산이 아득히 보이는데 도 여기서 흐르는 샘물은 맑고 맑다

아래에 내려와서 돌담은 두줄로 갈라진듯하다 하나는 왼쪽 골짜기로 흐르고 오른켠은 마을을 향하고 있었다.

 

아래에 내려와서 혹시나 귀를 땅에대고 들었지만은 물소리는 없다

평봉산에서 마을에 가까워졌을때 물이 고인 연못을 발견! 이러한 못이 다섯개나 되였다. 물량을 보아서는 정말 작지않은 수원지였다. 이 많은 물량과 또 병풍산,평봉산, 기산아래의 벌판 크기로 보아서는 몇만명인구가 쉽게 살수있는 거대한 성터이다.

큰평봉산에서 내려다본 목장벌판

작은 평봉산에서 내려다본 림해와 벌판

조금 오른켠으로

큰 평봉산에서 내려다본 벌판 중심-- 옅은 부분이 소목장임, 이러한 목장이 세개나 있었다.

기산아래 벌판의 목장

큰 평봉산에서 모아산쪽으로

 

마을 가까이는 진펄이 생기기도 잡초가 무성하기도 하였다.

마을에 내려왔을때 농가집마당에는 우물까지 파놓고 물을 긷고 있었다.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