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sr]산행,여행

캉첸중가 조망대 다질링과 은둔의 나라 부탄 트레킹

이름없는풀뿌리 2015. 9. 14. 11:04
캉첸중가 조망대 다질링과 은둔의 나라 부탄 트레킹

도 히말라야를 등반하며 늘 마음 한구석엔 등반 이 아닌 여행을 하고 싶었다. 학창시절 처음 찾았던 산은 분명 여행의 개념이었지 등반의 개념은 아니었다. 이제 그 시절 꿈으로의 회귀랄까?

▲ 타이거힐에서 바라본 세계 제3위 고봉 캉첸중가.
설악 준령에서 하얗게 흩날리는 눈과 함께 했던 ‘라라의 테마’의 선율은 분명 그 시절 내게 새로운 세상을 눈뜨게 해주었다. 또한 그 시절 접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 속에 주인공 비비안 리(Vivien Leigh)의 고향이며, 시킴 히말라야의 관문 역할을 하고, 세계 최고의 홍차 생산지로 잘 알려진 다질링(Darjeeling)을 찾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흥분을 감추기 어려웠다.

나에게 광활한 히말라야 대지와 유구한 시간의 연속을 만난다는 것은 등반세계를 떠나 새로운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분명 그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고, 두 번 가지기 어려운 기회였다.

타이거힐에서 환상적인 새벽 맞아

서울시련 구조대 원정대에 참가, 브리구판스(6,772m) 등반을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질링, 부탄, 시킴 등지의 새로움을 찾아 떠나보기로 했다. 인도 히말라야 등반 때마다 우리 팀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다질링의 히말라야등산학교(Himalaya Mountaineering Institute) 강사인 쿵가(Kunga)에게 가이드를 부탁하고, 귀국 항공편 상 여유가 있어 대원 모두 다질링을 방문하기로 했다.

▲ 다질링의 차밭. 산등성이마다 차밭이 들어서 있다. 차잎을 저울에 달아 값을 매기는 현지인들.
히말라야등산학교 교정에 있는 텐징 노르게이 동상. 힐라리와 함께 에베레스트를 초등한 셰르파다.
새로움을 향한 마음은 나와 대원이나 모두 한마음인가 보다. 뉴델리역으로 향하는 대원들은 기대에서 비롯된 흥분인지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뉴델리를 출발하여 약 30시간만에 도착한 다질링은 인도 안의 전혀 다른 인도였다. 처음 방문한 여행객들의 눈과 귀를 모두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또한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은 히말라야 고원 구릉들을 가득 메운 차밭은 상상의 한계를 뛰어 넘었다.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들로 이어지는 고원지대 다질링 계곡에서 올라오는 짙은 안개와 겨울에도 영하 10℃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환경 속에서 생산되는 다질링 티는 마스카트와 같은 우아한 향을 내어 ‘홍차의 샴페인’이라고도 불리며 세계 최고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 히말라야등산학교의 인공암벽.
많은 네팔인들이 하루에 1달러를 벌기 위해 다질링에 넘어와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차 잎을 딴다고 한다. 달라이라마를 따라 이주해온 티벳인들에 의해 형성된 다질링은 그래서인지 전혀 인도다운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때 이곳을 지배한 영국인들이 휴양지로 애용하며 가꾸어 놓아서일까? 서양의 어느 산간 마을처럼 깨끗하고 창문과 정원에는 꽃나무 몇 그루 심어 꾸며놓은 가옥들, 정돈된 거리와 상점들, 깨끗한 식당, 그리고 우리 민족과 같은 계통의 얼굴들, 어느 것 하나 내가 이제껏 보아왔던 인도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라를 잃고 쫓겨온 이들이 갈 수 있던 땅은 그 누구도 살지 않을 해발 2,000m 이상의 산골짜기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인도의 다른 어느 지역이 부럽지 않을 만큼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아침 일찍부터 일터를 찾아 살아 움직이는 이곳 사람들의 얼굴과 눈빛에서 역경을 헤쳐온 과거의 강인함을 읽을 수 있고, 이들의 환한 미소에서 희망찬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타이거 힐(Tiger Hill)이란 언덕에서 보는 장엄한 일출과 히말라야에서 세번째로 높은 캉첸중가(Kang-chenjunga·8,586m)를 중심으로 커플스돔(7,350m)과 탈룽, 그리고 뒤로 마칼루와 에베레스트까지 구름을 뚫고 솟구쳐 오른 모습이 우리의 선조들이 중국의 광활한 대지를 말 타고 달리며 호령하던 위엄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 인도-부탄 국경도시인 푼촐링에서 비자 발급업무 담당자와 함께. 맨 오른쪽이 필자, 맨왼쪽은 구은수씨.
구름에 가려 어스름이 보이던 거봉들이 떠오르는 햇살에 서서히 드러나면서 숨이 막혀온다. 해발 2,6000m의 타이거 힐에서 바라보는 8,586m의 칸첸중가 연봉은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고, 이것을 영원히 붙잡아 두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 새벽의 찬란한 10~20분을 보기 위해 다질링을 찾는다는 얘기가 이해될 정도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강한 인상을 남겨 주었다.

히말라야등산학교 시설과 역사에 놀라

그 지역의 삶을 자세히 알고 이해하려면 시장에 나가보라고들 한다. 뉴델리나 인도의 여느 관광지에서 흔히 대할 수 있는 거지들의 모습도 이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비록 가진 것 많지 않고 잘 입지 못하고 잘 먹지 못한다 해도 어느 누구를 대하든 이들이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순박한 미소는 세상을 쉼 없이 달리며 살아온 나에게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신선한 청량제였다.

▲ 푼출링의 국경 관문.
검은 연기와 흰 연기를 내뿜으며 칙칙폭폭 달리는 협궤열차(Toy Train)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했다. 한없이 펼쳐진 구릉의 차밭을 내려다볼 때 가벼운 현기증마저 느끼게 하는 케이블카, 영국 풍의 많은 학교들, 고지대에 건설된 폴로 경기장 등은 영국인들의 철저한 계산과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영국인도 인도인도 아닌 티벳인에 의해 또 다듬어지고 있다.

또한 일찍이 영국인들의 영향력으로 등산이 발전되어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히말라야등산학교(H.M.I)의 시설은 한국등산학교에서 강사를 맡고 있는 내게는 경이로움의 대상이었다. 에베레스트 초등 당시 힐러리와 같이 정상에 오른 텐징 노르게이는 사후에도 이곳에선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고 있으며, 등산학교 내에 그의 업적을 기리는 박물관과 텐징 노르게이 거리에 위치한 그의 생가는 지금도 그대로 보전되어 있었다.

H.M.I에는 맨몸으로 입교해서 한 달 간 지내면서 등산교육을 마치고 나갈 수 있도록 모든 시설과 장비가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으며, 50년대부터 시작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장비, 사진, 책자, 영상 등의 자료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었다.

캉첸중가 탈룽빙하에 위치한 H.M.I 베이스캠프가 해발 5,000m이니 이들이 히말라야 등반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새벽 운동에서 만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면 이들의 꿈은 H.M.I의 강사라고 한다. 강사는 인도 정부의 공무원으로 신분보장을 받고, 1년 중 6개월은 자기 등반을 하고 6개월은 산악 지도자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한다.

▲ 부탄 수도 팀부의 관공서 건물. 라마사원 같은 분위기다.
내일이면 생사를 함께 했던 대원들이 떠난다. 이제 구은수와 단 둘이 남아야 한다. 배낭을 싸고 풀고 떠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하는 반복된 일상이 이제는 제법 익숙해질 법도 한데 매번 이 일을 할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포크칠리, 모모와 함께 뚱바를 마시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랜다. 모모는 우리의 만두이고, 뚱바는 기장을 발효시켜 만든 것으로, 둥그런 대나무통에 나무 빨대를 꽂아 더운 물을 부어 빨아먹게 되어 있다. 보통 서너 번까지 부어 마시는데 그 맛은 우리의 동동주와 비슷하다.

우리의 현지 친구는 뉴델리행 라즈타니 급행열차 좌석이 나오지 않는지 아침부터 이리저리 전화를 거느라 바쁘다. 많은 인원이 이곳에 올 때는 왕복표를 구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우리 나라와 같이 어느 역에서나 비어 있는 좌석표를 구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대도시를 제외하면 각 역에는 할당된 수량이 있어서 현지에서 7~8명의 표를 한꺼번에 구하는 게 어렵다. 결국 40여 시간이 걸리는 완행열차 표로 대신한다. 멈추지 않는 시간 앞에서 짐을 싸고 있는 대원들을 보며 왠지 같이 떠나고픈 생각이 들었다.

통사정해서 비자피 반으로 깎고 입국

다질링에서 차를 타고 시리구리(Siri-guri)로 내려와 방글라데시 접경을 지나 8시간만에 도착한 인도와 부탄의 국경도시 푼촐링(Pheuntsholing)은 또 다른 느낌을 던져준다. 이곳은 비자가 없더라도 푼촐링 지역만 벗어나지 않으면 저녁 10시까지는 인도와 부탄의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그러나 잠은 인도의 자이공(Jaigon) 에서 자야 한다.

전형적인 인도 풍의 자이공과 게이트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푼촐링은 다질링과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막연히 호기심만으로 찾아온 우리에게 부탄은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게이트를 지키는 젊은 군인들의 무표정과 무관심을 뒤로하고 방문한 비자발급 사무실의 예쁜 여직원 모습에 안도의 숨을 내쉬는데,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황당했다. 동행한 인도인 친구는 무료지만, 우리는 하루 체제비용이 한 명당 250달러씩이나 됐다. 물론 부탄에서 지내는 동안의 호텔, 식사, 차량, 기사, 가이드, 포터 등 모든 요금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런 거금을 내고 갈 만한 가치가 있을까 싶어졌다. 그렇지만 여기서 돌아서기에는 이곳까지 온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 팀부의 라마사원. 부탄에서 세번째로 큰 규모다.
함께 방문한 독일과 네덜란드 여행객은 너무 비싸다며 기가 질리는지 되돌아선다. 산악인 특유의 뚝심으로 밀어붙여 보기로 하고 그녀에게 사정해 보기로 했다. “우리는 일반 여행객이 아니고 인도 히말라야 지역의 등반을 마치고 부탄 히말라야 지역의 초몰하리(Chomolhari·7,750m) 산군을 정찰하러 왔다. 다음에 이쪽으로 등반하려고 하는데 도와달라”며 “No Money, Help Me~”를 열심히 외쳐 보았다.

하지만 부탄의 입국 규정을 내세우며 그녀는 요지부동이다. 여행사와 계약을 하지 않고서는 비자도 내줄 수 없으며, 설사 비자가 있다해도 개별적인 입국은 안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나라도 있을까? 분통이 터지지만 그녀를 탓할 수만도 없다.

다음날 다시 찾은 사무실에서 안타까운 듯 그녀는 몇 번의 전화 통화를 거치더니 사정이 딱하니 우리에게만 특별히 130달러에 제공해 준단다. 규정을 들어 완강했던 그녀가 이럴 수도 있구나 싶어지기도 하고 순수성에 의문이 가기도 했다.

국경으로 마중 나온 일제 도요타 승용차와 가이드를 보며 순간적이나마 가졌던 그들의 순수에 대한 부정을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했다. 문화에 대한 위협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탄 정부는 엄한 규칙을 세워놓고 있었다. 때문에 여행자는 미리 계획된 일정에 맞추어 여행해야 하며 모든 책임은 여행사에서 지는 것이다.

좁은 골짜기에 들어앉은 수도 팀부

▲ 부탄의 파로에 있는 문화회관.
부탄의 수도 팀부(Thimbhu)로 가는 길은 강원도 어느 산골의 풍경과 너무나 흡사해 잠시 설악산으로 향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 경이로운 풍경과 건축물들, 친절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만의 독특하고 순수한 문화는 부탄의 매력들이다. 자연과 자원, 옛 문화의 보전계승,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불교 생활양식 등에서 느껴지는 삶의 질은 히말라야 주변국들보다 잘 살지는 못하더라도 결코 가난하지는 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히말라야 깊은 골짜기에 형성된 팀부는 서구문화의 힘 앞에 어쩔 수 없었는지 치부를 하나씩 드러내고 있어 안타깝게 한다. 어느 곳이나 개방되면 제일 먼저 상륙하는 게 술집 문화라 하지 않던가. 가이드를 앞세워 찾아나선 술집들은 나이트클럽을 위시해 룸살롱, 선술집 등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이용자들 또한 여행객도 있지만 대부분이 부탄의 젊은이들이라는 데 대해 부탄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 같다. 또한 그 좁은 산골짜기 시내 중심부 정부청사 앞에 들어선 골프장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흘 뒤 팀부에서 열리는 대규모의 전통문화 축제를 준비하느라 시내가 떠들썩하지만 우리의 지갑은 이를 지켜볼 여력이 없다. 지금 이 순간을 제외하곤 여태껏 얄팍한 지갑을 원망한 적은 없다. 호텔은 새로 지은 건물은 아니지만 부탄 특유의 고전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며 지켜온 향기가 가득 배어 있는 곳으로, 도시에 묻혀 있으면서도 전혀 도시의 느낌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깨끗했다. 서비스도 오랜 여정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할 수 있도록 편안하게 해주었다.

팀부에서 2시간 달려 파로(Paro)에 당도했다. 방콕, 뉴델리, 카트만두 등을 통해 비행기로 들어오는 부탄의 관문 도시답게 파로 계곡에 둘러싸인 가운데 풍경이 수려하고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다. 그들의 고전문화와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립박물관 등에 놀라기도 했지만, 중국의 어느 도시를 옮겨 놓은 듯 완연한 중국풍이었다.

찾는 곳의 멋은 가는 길의 고생에 달려 있다고 했던가. 언제나 찾는 길은 지루하고 힘든 시간의 연속이지만, 그 길은 새로움에 대한 설렘과 꿈에 대한 실현이 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한다. 배낭은 풀기 마련이고 배낭을 푸는 순간 또 다른 준비를 해야 한다. 서울에 두고 온 가족들이 그리워지고, 먼저 떠난 대원들이 그리워지고, 내가 일하고 누웠던 자리들이 그리워졌다.

내 나라 문화들이 그리워질 때, 그 동안 내가 살아온 땅과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 되살펴보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명확한 길을 찾으면 된다. 등반만을 좇으면서 살아왔다면 전혀 알 수도 느낄 수도 없었을 것들을 느끼고 깨닫는다. 다질링과 부탄에는 그런 것들을 상쇄시켜줄 만큼 충분한 매력들이 분명 있었다.


◈ 트레킹 정보


다질링은 라즈다니 급행열차로 접근

부탄 여행은 청명한 9월~11월이 적기


뉴델리에서 다질링은 약 1,500km 거리로 비행기로는 약 3시간, 급행열차(Rajdhani Express)를 타고 다질링 관문인 시리구리(Siriguri)의 뉴잘파이구리(New Jalpaiguri)역까지 26~28시간이 걸린다. 뉴잘파이구리에서는 택시나 로컬버스를 타고 해발 2,100m까지 3시간 쯤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야 다질링에 닿는다.

라즈다니 급행열차는 1~3등석의 침대차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이용한 3등석 값은 1,700루피(약 35달러)로 침구와 3끼 식사, 3번의 간식 등이 제공되며, 3층 구조로 되어 있어 약간 비좁다. 1등석 요금은 4,800루피(100달러)나 된다. 3등석 정도면 캠프생활에 익숙한 등산객에게는 호텔이나 마찬가지다. 열차표는 출발전 왕복권을 끊는 것이 좋다. 시리구리에서 다질링까지 택시요금은 600루피 정도 한다.

부탄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뉼트럼(Ngultrum·NU)이며, 인도 루피는 별도의 환전이 필요없이 1대 1로 사용이 가능하다. 여행경비는 달러로 지불하는 게 관례이나 환전한 금액이 많다면 경비의 일부는 뉼트럼이나 루피로 지불해도 된다.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9월에서 11월 사이이며 기후 또한 이 시기가 가장 좋아서 하늘은 청명하며 부탄 히말라야의 최고봉인 초모라리(7,314m) 정상도 볼 수 있다. 부탄 히말라야 트레킹뿐 아니라 부탄 전지역을 여행하기에도 가장 좋은 시기다.

여행사들은 3일, 15일 등의 트레킹 여행 상품을 준비해놓고 있는데 ,초모라리 베이스캠프(4,300m)와 팀부, 파로 등의 도심지를 둘러보는 상품이 적당하다.

(김남일 서울시련 구조대장·한국등산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