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sr]산행,여행

충북알프스 3구간우중산행기(속리교-상황암-천황봉-문장대-시어동)

이름없는풀뿌리 2015. 9. 15. 13:57
충북알프스 3구간 산행한 지도
樂山樂水  (Homepage) 2007-09-04 22:32:10, 조회 : 751, 추천 : 0

 

충북알프스 3구간 속리교-상환암-천황봉-문장대-시어동 산행 위성도(구글어스 사진)   

 

사    진 : 본 인.대나무님.한국의 산하(우중에 중간에 카메라가 습기로 젖어 작동하지 않아 사진이 적음) 

날    짜 : 2 0 0 7월 8월 12일    날 씨 : 비. 강풍. 안개로 시계 좋지 않음

행 선 지 : (천황봉(天皇峰 1,058m)-문장대(문장대.1,034m)

산행취지 : 충북알프스 3구간 종주 산행

참가인원:대나무(임중권)님,영시미(노영순)님,천수(이인석)님,김정옥,미광(고달성)님,혁이아빠(최달영)님,비비츄(백정숙)님.설탕창고(강윤모)님,센돌이(김광수)님,김경순,김영아,샤론(라향미)님,이학일,창바우(황병용)님,유진수,커피향기(박정혜)님,코스모스(구자숙)님,김종길,더기(황병덕),윤익희,장헌,차득현,요산요수(23명)

글 쓴 이 : 요산요수 (류 인 호)

산행시점, 종점 :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속리교)->경북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시어동)

전체코스:서원리-구병산-장고개-721봉-형제봉-천왕봉-신선대-문장대-관음봉-묘봉-상학봉-신정리

산행한코스:사내리-세심정휴게소-상환암-천황봉-천황석문-신선대-청법대-문장대매점-쉴바위-시어동

산의 특성 : 속리산의 주능선으로 엄청난 아름다운 곳이지만 폭우로 전망이 전혀 없었던 산행 


 

지점별 통과시간 및 특징 : 

-09 : 07    속리교(레이크힐스호텔앞 차단시설을 지나자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진행.)

-09 : 14~17 매표소(실강이를 하다 결국은 매표를 하고 강도를 당한 기분으로 일주문을 통과한다.)

-09 : 26    법주사입구(Y자 삼거리에에서 우측으로 찻길을 따라 올라가며 상수원 못을 지나간다.)

-09 : 46    탈골암입구(태평휴게소를 지나 탈골암입구 삼거리에서 우측 길로 목욕소를 지나간다.)  

-09 : 58    세심정휴게소(우측길로 절구 옆을 지나 산길로 들어서서 개울을 따라 올라간다.)

-10 : 04    상환암갈림길(우측으로 다리를 건너 계단길을 비속에 올라가며 Y길에서 우측 진행)

-10 : 27~52 상환암(바위밑에 자리잡은 상환암 맑은 석간수를 맛보고 갈 길을 몰라 우왕좌왕.)

-10 : 57    신은폭동(절벽계단길을 올라 계곡으로 들어가 신은폭동을 보고 계곡을 따라 오른다.)

-11 : 29    옛절터(어느 때 절터인지 부도와 절터를 지나 희미한 길을 따라 힘들여 오른다.)

-12 : 32    길만남(동쪽으로 탈출하여 한남금북정맥길을 만나 15분간 수월하게 오르자 정상도착.)

-12 : 56~58 천황봉 (이번 역시 세찬 비바람과 안개로 잠시를 서 있다가 서둘러 북쪽으로 진행) 

-13 : 07    헬기장(산죽밭 속 진창길을 내려가다 우측에 헬기장을 지나 상고암갈림길을 지난다.)

-13 : 48    천황석문(점심을 먹고 비속에 천황석문을 통과, 비로봉,입석대 위치도 모르고 지남)

-14 : 36    경업대갈림길(좌측으로 경업대를 내려가는 삼거리를 지나가 신선대에 도착한다.)

-14 : 43    신선대(매점과 화장실이 있는 신선대에서 일행들을 만나서 문장대로 진행한다.)

-15 : 16~23 문장대매점(안개로 문장대는 오르지 않고 휴식 후 바로 오른쪽으로 하산 한다.)

-16 : 00    쉴바위 (백일기도장을 지나 개울을 좌우로 건너길 반복한 후 쉴바우에 잠시 들른다.)

-16 : 33    오송폭포입구 (우측은 오송폭포와 성불사로 올라가지만 좌측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16 : 42   시어동주차장(산행종료) (관리공단 앞 주차장에서 비를 피해 버스를 기다린다.)


 

참 고 지 도 : 속리(俗離)(50,000/1국립지리원발행),렌덤우스중앙(5만/1).월간산지도 

예 상 시  간 : 6시간  

실제등산시간 : 09 : 07~ 16 : 42 (7시간 33분)(산행시간, 휴식시간 포함)

실제산행거리 : 약 12.088km(GPS 측정거리)

구간거리: 제2속리교(0.92km)-법주사입구(2.4km)-세심정휴게소(0.775km)-상환암(1.66km)-천황봉(0.812km)-천황석문(2.356km)-문장대매점(1.2km)-쉴바위(1.239km)-오송폭포입구(0.726km)-주차장(시어동)

 

산행한 동기와 개요


 

옛말에 好事多魔(호사다마 : 좋은 일은 훼방꾼이 많다는 뜻)말이 있고 속담에 소문난 잔치에 먹을것 없다는 말이 실제로 실감나게 하는 산행이었다. 속리산의 주능선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여유를 가지고 멋있는 조망을 끝없이 즐겨 보리란 기대가 여지없이 부서진 산행이었다. 더구나 처음으로 우리 산행에 참석한 코스모스(구자숙)님도 있었는데 더욱 면목이 없게 되었다. 전날 저녁 고향에서 있는 동창회에 참석할 때는 날씨가 좋아 내일 산행을 무사히 하겠구나! 기대 했었는데 산행당일에 산행시작 때부터 내리던 비는 상환암을 올라서자 소낙비에 가깝게 쏟아지더니 희미한 길을 따라 개척산행을 한 후에 어렵게 올라선 천황봉은 세찬 비바람에 잠시도 서있기가 힘들 정도였고 자욱한 안개로 전망은 10미터 앞도 보이질 않으니 질척대는 등산화속의 빗물로 무거운 발거름으로 하산을 서둘러야 한 산행이었다. 언제 한번 다시 이 능선을 밟아서 원을 풀 날이 있을지...  나야 수차례 왔으니 괜찮지만 동행한 여러 산님들께 송구스러울 뿐이다. 상환암에서 천황봉으로 바로 오르는 길은 옛날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기에 시도를 했고 지난 2월 달에도 올랐다는 산님의 카페글을 보고 시도했는데 역시 길은 희미하고 없어 애를 먹었던 산행으로 기억된다.

 

 

충북알프스 소개

충북 보은군이 구병산과 속리산, 관음봉, 상학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1999년 5월 17일 당시 보은군 부군수이시고 등산애호가인 정중환 씨가 '충북알프스'로 지정, 특허청에 업무표장까지 등록한 곳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두대간이나 각종 정맥 및 기맥, 영남알프스 등은 옛 문헌(山經表 등)이나 일반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하나의 고유명사로 굳은 것이지만. '충북알프스'는 이와는 성격이 다르다. 속리산 남쪽의 구병산은 이미 등산인 들에게는 잘 알려진 산행대상지로 화려한 산세와 원시림에 가까운 짙은 숲, 뛰어난 조망 등 어디에 내놓아도 뒤질 것이 없다. 그러나 구병산 하나로는 특별한 산행상품이 되기가 어렵다고 판단, 속리산 주능선과 북서릉을 연계해 총43.9km의 능선길을 '충북알프스'로 지정했다. 기존에 존재하는 산군을 엮고 등산로를 개설해 하나의 특정한 상품으로 만든 것이다. 충북 알프스는 비록 지리산 주능선이나 설악산 서북릉에 비해 높지는 않지만 그 장쾌함만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리산처럼 가슴 푸근한 육산의 면모와 현란한 설악산의 아기자기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색다른 곳이다. 그러나 속리산 구간을 빼놓고는 전체구간은 아직 넓이 알려지지 않아 복잡하지 않고 찾는 이가 거의 없어 더욱 신선함을 맛 볼 수 있기에 강력 추천하고 찾아 갑니다.


 

충북알프스 3구간인 속리산(천황봉-문장대)구간 소개

 

▲ 제2속리교를 건너 오리숲 입구에 섰는 속리산국립공원안내도

속리산(속리산 1,058m) : ‘道不遠人 人遠道  山非離俗 俗離山’(도불원인 인원도, 산비이속 속리산:도가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 산이 세속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속이 산을 떠나는 구나!)라는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님 글 뜻을 따라 이름을 속리산으로 불리워진 속리산은 한반도의 등을 이룬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남한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소백산맥의 가운데 우뚝 솟은 봉우리가 한국 팔경의 하나인 속리산이다.(100대명 산중 15위)  백두대간 주능선 상에 있는 속리산은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시 경계에 있는 산으로 우리나라 8경 중의 하나로 명승고적이 보은군에 몰려 있어 보은 속리산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지금은 동쪽인 경북 상주군 쪽이 신선미와 원시림이 있어 인기가 날로 상승하고 있다. 최고봉인 천황봉(天皇峰·1,058m)을 중심으로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관음봉, 묘봉, 상학봉, 수정봉 등 8개 봉우리와 문장대, 입석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신선대, 봉황대, 산호대 등 8개 대가 있으며, 속리산이라는 이름 외에도 광명산, 지명산, 미지산, 구봉산, 형제산, 소금강산, 자하산 등의 이름으로 불려왔다. 산속에는 내석문, 외석문, 상환석문, 상고내석문, 상고외석문, 비로석문, 금강성문, 추래석문 등 8개 석문이 있고, 수정교, 태정교 등 8개 다리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3개만 남아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본래 9개 봉우리가 있어 구봉산(九峰山)이라 했으나 신라 혜공왕(惠恭王) 때부터 속리산이라고 불려다 한다. <문헌비고>에는 ‘산세가 웅대하며 기묘한 석봉(石峯)들이 구름 위로 솟아 마치 옥부용(玉芙蓉) 같이 보이므로 속칭 소금강산이라 하게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심산유곡과 울창한 수림을 이루어 정이품송(正二品松·천연기념물 제103호), 망개나무(천연기념물 제207호), 서원리 소나무(일명 정부인 소나무·천연기념물 제352호) 등 672종의 식물과 큰잣새, 붉은가슴잣새, 딱다구리, 사향노루 등 344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산속에는 복천암, 상환암 등 대소 암자가 8개나 산재되어 있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된 법주사와 경내에는 국보 3점, 보물 2점 외 많은 유적 유물과 지방문화재가 있어 1966년 6월 사적 및 명승지 제4호로, 1970년 3월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 경업대쪽에서 바라본 비로봉과 천황봉(뽀족한 육산이 천황봉) -한국의 산하 사진-

천황봉(天皇峰 1,058m) : 천황봉이란 이름을 가진 곳은 수도 없이 많지만(월출산,괘관산,계룡산,천황산,만행산,욕지도에 있는 산 등등...) 이번 우리가 밟게 되는 천황봉은 속리산의 주봉이며 한남금북정맥의 시발점이다. 속리산 주능선 9개봉우리 중 가장 남쪽 끝머리에 위치한 천황봉은 멀리서 보면 육산으로 보이지만 실제 올라보면 바위가 엉겨있어 전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길목이며 3강(낙동강(장각동,화북지역),금강(만수동.삼가저수지지역),남한강(상환암.법주사지역))의 발원지이며 법주사에서 동쪽으로 5.7km 떨어져 있다.

 

▲ 비로봉 일대의 모습 -한국의 산하 사진-

비로봉(毘盧峰 해발 973m) : 비로봉은 법주사에서 5.77km떨어짐, 입석대에서 천황봉 방향으로 250m지점에 위치하며 비로(毘盧)란 비로자나불을 줄인말로써 인도말로 '모든 곳을 두루 비친다'라는 뜻이며, 광명을 말합니다.  진표율사가 속리산 법주사에 온 이튿날 아침 새벽 방안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데 별안간 밝은 빛이 방문 가득히 비쳤습니다. 대사가 깜짝 놀라 방문을 열었더니 맞은편 산봉우리에서 눈부신 햇빛이 오색 무지개를 띠고 사방팔방을 비추고 있었고 대사가 황급히 합장배례를 하고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비로자나불이 암석에 앉아 있다가 서쪽 하늘을 향하여 구름을 타고 떠났다합니다. 대사는 비로자나불을 직접 배알할 수 있었던 산봉우리를 비로자나불의 이름을 붙여 비로봉이라 이름 붙였다 합니다.

 

▲ 경업대에서 본 입석대일대 장관(입석대는 무슨 모습인지 상상하길?) -한국의 산하 사진-

입석대(立石臺) :문장대에서 천황봉을 향하다보면 신선대를 지나 만나게 되는 바위로 법주사 동북방 5.5km떨어짐, 관음암에서 1km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조선 인조 때 (1623~1634)에 임경업장군이 이 곳에 이르러 6년 동안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장군의 기상을 닦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의 단련이 그의 체력한계가 되는지를 알 길이 없었다. 그는 그것을 시험해 보고자 했으나 기준조차 알 길이 없어 매우 당혹하게 여겨오고 있었는데 하루는 석굴에 않아 정신을 통일하고 있는데 그 뇌리에 홀연히 형체는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임경업이 정신을 모아 그 말을 들으니「마주 바라다 보이는 석벽에 올라가 그 옆에 누워있는 돌을 비석처럼 세워놓으면 그 힘을 측정할 수 있으리라」하는 내용이었다. 임경업은 곧 경업대에서 마주보이는 곳에 올라가 커다란 돌을 일으켜 세우는데 아직도 힘이 부족했다. 이에 임경업이 그 힘이 모자람을 깨닫고 다시 열심히 체력을 단련하기를 1년 마침내 7년째 되던 해 반석(盤石)위에 돌을 세우는 데 성공을 했다. 그 후부터「돌을 세웠다」고해서 입석대(立石臺)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경업대에서 올려다 본 신선대 일대 -한국의 산하 사진-

신선대(神仙臺 해발1,026m) : 신선대 법주사에서 5.7km지점, 경업대 바로 위, 입석대와 청법대 중간지점에 있는 봉우리로 옛날 한 고승이 청법대에서 불경 외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건너편 산봉우리에 있는 바위에서 백학이 춤추는 가운데 백발이 성성한 신선들이 앉아 놀고 있는 것이었다. 고승이 황급히 청법대를 내려와 신선을 만나보고자 달려갔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으며 크게 실망하고 다른 봉우리를 찾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보니 여전히 10여명의 신선들이 담소를 하고 있었다. 이것을 본 고승은 그이 눈이 아직도 가까운 곳에서 신선과 대적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 달려갈 마음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이곳을 신선이 놀았다는 뜻에서 신선대라고 부르고 있으며, 현재 신선대 정상에 휴게소(매점)가 하나 위치해 있다.

 

▲ 청법대의 모습 -한국의 산하 사진-

청법대(聽法臺) : 문장대 왼쪽으로 신선대와 사이에 있는 봉우리로 문장대에서 신선대쪽으로 향하다 문수봉을 지나 뒤를 돌아 바라다보면 잘 볼 수 있습니다. 속리산 기암 중 최고로 꼽히는 암석으로 부처님상을 하고 있으며, 주변에 일곱개의 봉우리가 있으며 각기 개성이 있습니다. 제1봉은 장수같이 생겼고 제2봉은 불상모양, 제3봉은 대호상, 제4봉은 산성이 보이며 제 5,6,7 봉은 성불사쪽에서 잘 드러납니다. 청법대를 보기 위해선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오르막 언덕끝에 왼쪽으로 난 샛길을 돌아서면 우뚝 솟은 바위위에 올라서야 청법대와 봉우리들의 장관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옛날 어느 고승이 속리산 절경에 영혼을 잃고 방황하던 중 이 봉우리에서 불경 외우는 소리를 듣고 제 정신을 차렸다 하여 청법대라고 부릅니다.

 

▲ 장엄하고 위용이 있는 문장대 전경 -한국의 산하 사진-

문장대(文臧臺 해발 1,054m) : 문장대는 속리산의 봉우리중 하나로, 법주사에서 동쪽으로 약6km지점에 있으며,  큰 암석이 하늘높이 치솟아 절경을 이루고 있다. 봉우리 위에는 50여명이 앉아 놀 수 있는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걸쳐 있다. 문장대의 전설은 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을 하고 있을 때 하루는 월광태자라 칭하는 귀공자가 꿈에 나타나 동쪽으로 시오리 올라가는 곳에 영봉이 있으니 그곳에 올라가 기도를 올리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세조가 신하들을 데리고 온종일 올라가 보니 하늘 위에 오른것 처럼 사방이 구름과 안개 속에 가린 영롱한 봉우리가 보였다. 그러나 위태로운 바위라 올라갈 수 없어 철못을 박고 밧줄을 늘어 정상에 올라보니 널따란 박석위에 책 한권이 놓여 있었다. 세조가 집어보니 오륜과 삼강을 명시한 것이라 세조가 크게 감동하고 하루종일 그 자리에서 글을 읽으며 신하들과 강론을 하였다. 뒤부터 이 봉을 문장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또 한편으로는 정상이 언제나 구름속에 가려 있는 봉이라 해서 운장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문장대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가히 일품이라 할 수 있다. 사방에 가로막혀 있는 것이 없이 남쪽으로는 천황봉, 비로봉, 신선대, 문수봉이 보이고, 북서쪽으로는 관음봉, 묘봉이 이어져 있다. 북동쪽으로는 밤티재를 건너 백악산,청화산,대야산,장성봉,희양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도명산, 낙영산, 칠보산, 군자산의 봉우리들을 볼 수 있는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찾아간 길: 성서나들목-서대구요금소-경부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상주나들목 보은쪽 우회전-상주우회국도 따라 보은쪽으로 25번국도-지명골삼거리(상곡삼거리) 직진 화서면소재지 우회-마로면소재지 우회 - 장재리삼거리에서 우회전-말티고개를 넘어 내속리면 사내리-속리교 앞에서 하차


 

산행을 하기전

05:00~08:58 산행지로 이동 상주나들목에 도착, 오는 버스를 기다려 동승하고 산행지로 이동한다.

산행일이 우리 초등학교 동창들의 모임인 일구회 다음날이므로 산행준비를 해가지고 모임에 참석했다가 먼동이 트자 차를 몰고 상주시내로 향한다. 시내에 도착하여 버스터미널 앞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점심용 김밥을 사가지고 고속도로 나들목 삼거리에 도착하여 주차를 시키고 나자 7시가 조금 넘었다. 전화로 확인하니 이제 선산휴게소에서 아침식사중이란다. 한참을 기다려 도착한 버스에 동승하니(07:42) 여러분이 반긴다. 더욱 오늘 우리산행에 동참해 주신 코스모스님이 반기고 학생인 차득현군도 반갑다. 승차하자마자 상주,보은쪽으로 우회전하여 상주시가 우회로를 이용하여 통과하고 보은 쪽으로 25번국도를 달리면서 건설 중인 상주-당진간 고속도로를 몇 번이나 교차하면서 밤원휴게소를 지나 지명골삼거리(일명 상곡삼거리)길에서 ‘보은,청주’이정표를 보고 직진하여 고갯길(화령재)을 넘어서면서 백두대간의 이어지는 지점을 설명하며 화서면 소재지 외곽도로를 달려 밋밋한 고개를 넘어가더니 다시 나오는 화남면 평온리 소재지에서 직진하여 좌측에 있는 경북바위 ,충북바위를 쳐다보면서 구병산들머리인 적암휴게소를 지나자 삼거리길에서 왼쪽으로 마로면 소재지를 우회하고 서원리 입구인 장재리갈림길을 지나자 나오는 삼거리에서 속리산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여 들녘길을 달리다 나오는 T자삼거리서 속리산쪽인 우측으로 접어들어 장재리저수지를 지나 유명한 말티고개를 힘들여 넘어서서 내려가자 상가지역에 들어서자 술에 취한 주차장 관리인이 통과를 막는다. 우리는 주차를 여기에 하지 않고 사람만 내리고 바로 출발하게 통과 시켜달라고 해 보지만 산악회용차량은 안된다고 한다. 아니 주차장 관리인면 주차장내나 관리하지 길가의 통행차량까지 일일이 감시하는 권한이 있는지 궁금하다. 통행량이 많아서 통과를 안시키면 몰라도 내리는 비로 통행차량도 별로 없는데 통과가 안된다니 정말 한심한 처사다. 할 수 없이 통행료가 아닌 주차료(6,000원)을 주고 통과하여 옛날 속리산관광호텔(현재 레이크힐스호텔)앞에서 정차를 하고 기사님에게 도착지로 가는 길을 설명한 후 하차를 한다.

 

▲ 우리가 산행을 하기 위해 하차한 곳이 옛날 속리산관광호텔이었던 레이크힐스호텔로 바뀌었다. 

 

▲ 우리가 들어온 길(비가 많이 내리고 있다.)

 

▲ 하차한 호텔앞 길건너에 멋진 잔디밭

08:58~09:07 산행준비(제2속리교) 고개 마루에 하차하여 준비운동을 마친 후 산행준비를 서두른다. 

도착한 레이크힐스호텔(옛날은 속리산관광호텔)앞에는 넓은 잔디밭이 너무 좋지만 지금은 내리는 부슬비로 몸풀기 준비운동 대신 배낭커버를 씌우고 비옷을 입고 산행준비를 하기가 분주하다. 서둘러 산행준비를 마치고 출발을 하니 비는 점점 더 내리지만 아무도 싫어하는 기색 없이 하나씩 출발한다. 


 

산행을 하면서

 

▲ 차는 더 이상 들어갈수 없다는 차단기기 산행시점(차만 잘 올라 갔더라...)

 

▲ 길을 나서자 오른쪽으로 제2속리교를 건너가야 한다.

 

▲ 다리를 건너자 자연경관인 오리숲을 설명하는 비석

09 : 07    속리교 속리산관광호텔앞 차단시설을 지나자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진행.

출발지에서 길은 양갈래인데 직진하여 개울 끼고 올라가면 수정암을 거쳐 법주사로 가는 길이므로 2시 방향에 있는 제2속리교를 건너서서 속리산국립공원에 대한 안내문과 오리숲(여기서 법주사까지 2km(五里)정도 된다고 붙여진 이름) 황톳길에 대한 비문을 살펴보고 큰길을 따라 10분정도 올라가니 매표소 앞에 다다른다.  

 

▲ 자연적으로 형성된 산봉우리도 문화재라며 억지부리는 매표소(어느나라 법인지?) 

 

▲ 엉터리 근거인 알림표지판(염불보다 잿밥이...)

 

▲ 비내리는 오리숲길 한적하기만 하다.

 

▲ 명물인 일부문도 별로 반갑지 않다. 호서제일가람이라는 글씨만 유적인 듯  

09 : 14~17 매표소 실강이를 하다 결국은 매표를 하고 강도를 당한 기분으로 일주문을 통과한다.

매표소에 도착하여서도 또한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금년 1월 달로 폐지된 것으로 알았던 국립공원입장료가 여기서 문화재관람료도 아닌 입장료란 요상한 이름으로 대폭 인상되어 1인당 3,000원씩을 내라고 한다. 그것도 문화재관리법 제39조를 들먹여 가면서 말도 안되는 황당한 이유(천황봉,관음봉,입석대,문장대)가 사적및 명승 4호라고 억지를 부려가면서 돈을 거두어 드리고 있는 법주사의 행태가 사회를 정신적으로 이끌어갈 선각자이며 수도자의 행실로 보기엔 너무나 기막히다. 시간에 쫓기여 더 이상 시비를 하기 싫어  마치 강도를 당한 기분으로 70,000원을 지불하고 통과하지만 정말 기분이 좋지 않다. 법주사의 1년 입장료 수입이 154억이나 된다고 하고 아마 또 국가에서 보조하는 문화재관리 및 보수비는 또 다로 받아서 어디다 쓰는지? 정말 사정당국의 무관심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다른 사람의 경우 

매표소를 지나 비 내리는 포장도로를 따라 5분정도 걷자 나오는 일주문을 통과하고 다시 13분 만에 법주사입구 삼거리에 다다른다.   

 

▲ 법주사 입구인 양갈래길 우리는 우측으로 올라간다.

 

▲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

 

▲ 상수원지인 저수지(대나무님 사진)

 

▲ 상수원 저수지 끝머리에 있는 다리

 

▲ 다리를 건너자 왼쪽에 있는 태평휴게소(옛날엔 없었던것 같은데...)

09 : 26    법주사입구 Y자 삼거리에에서 우측으로 찻길을 따라 올라가며 상수원 못을 지나간다.

이정표(←법주사,수정암,동암 0.5km/문장대5.9km→,경업대4.7km→,천황봉5.8km→,복천암3.2km→)가 섰는 Y자 삼거리인 법주사 입구에서 왼쪽은 법주사 길이므로 우리는 오른쪽으로 진행하여 잰걸음으로 가는 선두를 따라 가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왼쪽에 철망울타리로 둘러쳐진 상수원저수지를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서자(09:38) 왼쪽에 옛날에는 없던 태평휴게소가 생겨 있다. 언 듯 쳐다보고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8분정도 올라가자 다시 Y자 갈림길이 나온다.

 

▲ 탈골암 입구 갈림길

 

▲ 세조가 목욕을 하고 피부병을 고쳤다는 목용소

 

▲ 목욕소의 또 다른 사진(대나무님 사진)

09 : 46    탈골암입구 태평휴게소를 지나 탈골암 입구 삼거리에서 우측 길로 목욕소를 지나간다.

이정표를 보니 좌측은 탈골암 우측은 우리가 가는 길인다. 예전에는 탈골암쪽은 산죽으로 우거진 오솔길 이였는데 지금은 훤히 뚫린 포장도로가 나 있으니 정말 격세지감을 느낀다. 개울을 따라 잠시 올라가며 선두에게 천천히 가도록 부탁하지만 따라잡기가 쉽질 않다. 잠시 후 목욕소를 지나 삼거리에 도착하지만 비가 더욱 세차게 퍼 붓는다.

沐浴所(목욕소) : 조선조 7대왕 세조가 국운 번창을 기원하기 위해 인근 법주사에서 대법회를 연 후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약사여래(약사여래)의 명을 받고 온 월광태자라는 미소년이 나타나 세조의 피부병이 곧 완쾌될 것 이라고 하고 사라졌다. 세조가 목욕을 마치고 보니 신기하게도 몸의 종기가 깨끗이 없어졌다고 하여 목욕소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안내문 전문- 

 

▲ 세심정휴게소 Y자 삼거리길(오른쪽으로 올라간다.

 

▲ 세심정삼거리에 있는 복잡한 이정표

 

▲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세심정휴게소

 

▲ 세심정휴게소 옆 다리를 거너면 우측에 있는 디딜방아용 돌절구

 

▲ 계곡은 폭포를 이루워 보기 좋다.

 

▲ 시작된 산길은 바위틈을 돌고돌아 간다.

09 : 58    세심정휴게소  우측 길로 절구 옆을 지나 산길로 들어서서 개울을 따라 올라간다.

복잡한 이정표(←문장대3.2km,중사자암2.9km,복천암0.5km/천황봉3.1km,신선대2.7km,상고암2.4km,비로산장0.6km,상환암0.8km→)가 섰는 Y자사거리에서 상환암으로 가기 위해 오른쪽으로 진행하며 사람들이 웅성대는 휴게소를 쳐다보면서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서자 오른쪽에 세심정절구(돌절구)가 안내문과 함께 놓여져 있지만 내리는 비로 곁눈질하여 보기만 하고 그냥 지나친다. 몇 일 전부터 많이 내린 비로 수량이 풍부해진 계곡에는 곳곳이 폭포를 이루어 보기가 매우 좋은데 빗방울이 키가 큰 소나무에 맺혔다가 후두둑 머리위로 떨어지곤 한다. 여기서부터 산길이 시작되는데 바위사이 길을 3분정도 돌고 돌아가자 ㅏ자 삼거리에 다다른다.

 

▲ 시원한 물줄기가 보기도 좋다.

 

▲ 우측 상환암을 올라가는 다리가 있는 삼거리


▲ 삼거리길의 이정표

▲ 오르막을 올라가다 좌측 비로산장으로 가는 길이 있는 삼거리.

 

▲ 비로산장길을 알리는 이정표

 

▲ 상환암 바로 아래 돌틈길

10 : 04    상환암갈림길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 계단길을 비속에 올라가며 Y길에서 우측 진행

이정표가 서있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서자 계단길로 이어지는 산길은 경사가 조금씩 더해지더니 왼쪽으로 비로산장을 가는 Y자 삼거리(←비로산장 0.7km/상환암0.4km)를 지나서 은폭동 입구를 찾으면서 올라가지만 다시 Y자 삼거리가 나오도록 은폭동 들어가는 곳은 찾질 못했다. 이번 삼거리(↖상고암/상환암0.1km↗)엔 기도객 이외엔 올라오지 말라는 팻말을 무시하고 커다란 바위틈새를 돌고 돌아 올라가니 훤한 절 마당으로 올라선다.      

 

▲ 멋진 상환암의 모습(대나무님 사진)

▲ 상환암 법당과 삼층석탑

 

▲ 산환암 왼쪽에 있는 학소대 절벽

 

▲ 상환암의 뒷산 모습

 

▲ 산환암에서 전방을 조망한 모습(우중에도 시원하다.)

 

▲ 상환암 요사뒤 신은폭동으로 가는 길

10 : 27~52 상환암 바위밑에 자리 잡은 상환암 맑은 석간수를 맛보고 갈 길을 몰라 우왕좌왕.

상환암에 대하여 잠시 소개하면

상환암(上歡庵):은 속리산 법주사입구를 지나 세심정휴게소를 지나 오른쪽 산길을 따라 비로봉을 오르는 길에 위치하고 있다. 좁고 급한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면 상환암에 도착하게 된다. 상환암까지 오르는 길은 거대한 바위와 무성한 숲으로 둘러싸여 환한 햇빛이 미처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어둡게 만들어져 있다. 이런 길이 연속되다가 상환암에 이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앞에 환한 세상이 펼쳐지게 된다. 산중턱에 기이하게도 넓은 공간이 만들어져 있고 이곳에 상환암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분의 안목으로 이 깊은 산중에서 이런 곳을 찾게 되었을까? 가히 천안이라 할 수 있다. 그 넓은 여러 땅들을 모두 마다하고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친 이곳에 넘치지 않는 넉넉함으로 사찰이 만들어져 있다니 기이할 뿐이다. 대부분 산에 위치한 암자들의 경우 높은 곳에 위치하여 멀리 산들이 꿈틀꿈틀 발 아래로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암자들의 경우 멀리 경승을 감상할 수는 있으나 사찰의 아늑함을 느끼기는 어렵다. 온 세상에 홀로 내던져 있는 듯 쓸쓸하고 허전하다. 그러나 상환암 전면에는 거대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학소대라고 불리는 곳이다. 원래 이곳에는 학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기 때문에 학소대라고 했다고 한다. 이 학소대는 상환암을 포근하게 안아주고 있다. 포근하게 안아주면서도 전면을 완전히 가로막지는 않아 멀리 절경을 감상할 수 있게도 만들어졌다. 상환암은 속리산에 위치한 다른 사찰들에 비해 너무 높은 위치에 위치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속리산의 절경을 감상할 수도 있는 포근한 안식처다. 

내리는 비만 아니라면 주위경치를 구경하고 그 유명한 석간수(우리나라 3대 석간수중 하나)를 한없이 마시련만...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 없어서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법당과 요사채 중간에 있는 석간수를 한바가지 맛을 보니 빗물과 샘물이 섞여 별다른 맛을 모르겠다. 고개를 돌려 동쪽으로 쳐다보니 멋진 투구같은 바위에 모자챙처럼 튀어 나온 ‘학소대’ 절벽이 너무나 아름다운 경관이 고색창연하게 우뚝 서 있다. 남서쪽을 바라보니 멀리 첩첩이 쌓인 산줄기기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준다. 잠시 주변경치에 빠져 있는 동안 선두가 요사채 뒤 절벽하단에 파 놓은 계단을 올라가더니 더 올라갈 길이 없다며 머뭇거린다. 따라 올라가보니 계단이 있는 바위를 올라서자 Y자 길이 있는데 왼쪽길은 산신각으로 올라가는 길이므로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것 같아 일행들에게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고는 오른쪽 길로 풀섶을 헤치고 들어가자 길은 이어지고 쇠파이프로 만든 문틀을 지나자 철판계단 아래에 폭포소리가 들린다.    

 

▲ 바위를 올라서자 Y자 길에서 우측기로 들어서야 한다.

 

▲ 쇠파이프 대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철계단 밑이 신은폭동

 

▲ 바위 아래에 흐르는 폭포수(규모는 크지 않다.)

 

▲ 계단이래의 어둠속의 모습

 

▲ 상수원보 인듯한 넷물을 건넌다.(뒤돌아 보고 촬영) 

10 : 57    신은폭동 절벽계단길을 올라 계곡으로 들어가 신은폭동을 보고 계곡을 따라 오른다.

철계단 아래로 흐르는 새로 발견된 은폭동을 자세히 살펴보지만 생각보다는 규모나 신기함도 적다고 생각하며 이 길이 확실하므로 길을 찾았다고 무전기로 연락을 하니 어! 벌써 다른 길로 올라가고 있다면서 빨리 그쪽으로 오라고 한다. 이럴 수가 있나? 하지만 할 수 없어 다시 상환암으로 내려가 연락을 취해보니 상고암쪽으로 바로 올라갔다. 할 수 없이 나도 상환암 법당앞 삼층석탑 옆을 통과 서쪽으로 길을 찾아 100미터정도 올라갔을 때 다시 또 일부 일행들이 내려오면서 계획했던 길로 가자고 하면서 일부 선두는 아예 멀리 가버려 연락이 되질 않는다고 한다. 두 패로 갈라지게 되었고 다시 상환암 앞을 지나올 때 스님이 우리가 가는 것을 보고 그쪽으로 길이 없다며 염려스러워 하신다고 한다. 다시 조금 전 신은폭동에 들어가 눈요기를 하고 지나 올라가 개울을 건너 산길로 들어서서 희미한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양갈래 길에서 우측으로 진행하여 경사길을 한동안 올라서자 깊은 산속에서 상단부분만 남은 부도(사리탑) 한 개를 발견한다.  

 

▲ 깊은 산중턱에 있는 부도의 윗부분 코스모스님이 지킨다?(우중에 컴컴하여 사진이 흐리다.)

 

▲ 절터로 보이는 공터

 

▲ 길이 없는곳을 뚫고 올라간다.

 

▲ 숲속에 예전에 길이었던 표시인 표시기

 

▲ 골짜기의 계곡도 제대로 모습을 갖추웠다.

 

▲ 덩굴 속이지만 홀대모참소리님의 표시기가 달려 있다.

11 : 29    옛절터 어느 때 절터인지 부도와 절터를 지나 희미한 길을 따라 힘들여 오른다.

어두워서 잘 알아볼 수도 없지만 내린비로 사진도 재대로 찍히질 않는다. 부도가 있는 곳에서 지형을 따라 약간 동쪽에 집터가 하나 있는 것을 보아 예전에 이곳에 절이 있던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부터는 길도 보이지 않는 곳을 짐작을 하고 덩굴을 뚫고 진행하자 어느 옛날의 ‘광주염주산악회’표시기가 하나 달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길이 맞지만 다니는 사람이 없어 길은 없어지고 수풀이 짙어서 앞을 짐작할 수가 없다. 한동안 대충 방향만 잡고치고 올라가다 ‘홀대모’ 표시기가 달려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돌아가 능선에 난 길을 만난다.

 

▲ 우측으로 나서 능선의 길(한남금북정맥길)을 만났다.

 

▲ 능선을 올라가다 우측으로 내려서는 길

 

▲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는 지점에 대나무님이 회원들을 끌어 올리고 있다.

 

▲ 길은 다시 우측 노란 표시기가 있는 곳으로 내려서야 쉽다.

 

▲ 백두대간길을 만나는 지점      

12 : 32    길만남 동쪽으로 탈출하여 한남금북정맥길을 만나 15분간 수월하게 오르자 정상도착.

산 능선을 따라 난 확실한 등산로는 한남금북정맥 길이였다. 등로를 따라 거리낌 없이 올라가다가 우측으로 산허리를 돌아가 다시 능선길로 회복했다가 바위지대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대목리사거리 안부에서 올라오는 백두대간 길을 만난 후에 왼쪽으로 산죽숲길을 따라 70여미터를 올라가자 천황봉정상에 올라 설 수 있었다.

 

▲ 비가 오지만 천황봉정상에서 단체사진을 찍는다.

 

▲ 오늘의 첫 동행인 코스모스님도 빠질수 없지요~~~

12 : 56~58 천황봉 이번 역시 세찬 비바람과 안개로 잠시를 서 있다가 서둘러 북쪽으로 진행

속리산의 최고봉인 천황봉에 올라서자 몇몇 산객들이 이미 올라 있지만 세찬 비바람과 낮게 나르는 안개 때문에 조망은 커녕, 잠시 서 있기조차 힘들기 때문에 서둘러 북쪽으로 능선을 따라 가면서 지난번에 보았던 전망바위는 그냥 지나치고 나자 나오는 헬기장에 도착한다.

 

▲ 상고암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는 삼거리 이정표

 

▲ 이정표 삼거리는 비바람 안개가 심하여 희미하다.

 

▲ 비를 맞으며 식사를 하니 입에들어가는 것이 콧물인지 빗물인지?

13 : 07    헬기장  산죽밭 속 진창길을 내려가다 우측에 헬기장을 지나 상고암갈림길을 지난다.

길가 우측에 있는 헬기장에는 비바람 속에도 텐트가 몇 채가 있는걸 보면 아마 이곳에서 숙박을 한 사람들도 있는 듯 하지만 이정표도 살펴보지 못하고 지나쳐서 산죽이 우거진 능선길 진창을 진행하자니 바지가랭이를 타고 흘러내린 빗물이 등산화속에 들어가 쿨렁쿨렁 소리가 박자를 맞추고 머릿속까지 젓다 못해 넘쳐 모자챙을 따라 흘러내리는 빗물이 코끝을 따라 입으로 흘러들어 찝질하다. 헬기장을 지난지 20분정도에 왼쪽에 상고암을 거쳐 배석대를 지나 올라오는 삼거리길(←상고암 0.7k,법주사 5.1k/↓천황봉 0.6k/경업대 1.9k↑)을 지나(13:26) 돌무더기가 있는 곳에서 우중에 점심식사를 한다. 잠심이라야 달랑 김밥 2줄이지만 길가 바위 밑에서 빗줄기를 피해서 먹고 나자(13:29~40) 추위가 몰려오므로 서둘러 배낭을 메고 출발한다.     

 

▲ 천황석문도 희미하다.

 

▲ 비로봉 부근 우측으로 보니 입석대 모양의 바위가 안개속에 보인다. 

13 : 48    천황석문 점심을 먹고 비속에 천황석문을 통과, 비로봉,입석대 위치도 모르고 지남

능선을 따라 8분정도 지나자 커다란 바위에 하단부 중간에 삼각형으로 형성된 자연석문인 천황석문을 통과하여 미끄러운 산길을 하염없이 걷는다. 짙은 안개로 길 옆도 잘 보이지 않고 내리는 비로 만사가 귀챦아 앞만 보고 걷다 보니 비로봉입구와 입석대가 어디쯤인지도 모르고 나무계단길만 오르내리다 보니 벌써 삼거리 길에 도착한다. 

 

▲ 경업대 갈림길 이정표가 안개속에 흐릿하다.

14 : 36    경업대갈림길 좌측으로 경업대를 내려가는 삼거리를 지나가 신선대에 도착한다.

좌측으로 경업대를 거쳐 법주사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삼거리로 등산안내판과 이정표(←경업대 0.4k,법주사 5.2k/↓천황봉 2.1k/문장대 1.3k ↑)가 서 있는 곳에서 직진하여 능선을 몇 구비 돌아가니 매점이 있는 신선대에 도착한다.

 

▲ 신선대 매점 앞마당에 정상석만 또렸하다.

14 : 43~50 신선대 매점과 화장실이 있는 신선대에서 일행들을 만나서 문장대로 진행한다.

상환암에서 서로 갈라졌던 우리 일행들이 여기 매점에서 기다리고 있다. 무전기도 휴대폰도 총화가 되지를 않더니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선대 앞마당에 신선대 정상표지석이 있고 전망바위도 있지만 그냥 지나쳐서 계단길을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면서 예전에 두 번이나 갔던 산수유릿지 입구를 지나고 안개 속에 쌓인 청법대,문수봉을 스쳐서 신선대를 떠난지 26분을 걸려서야 문장대입구에 있는 매점앞에 도착한다.

 

15 : 16~23 문장대매점 안개로 문장대는 오르지 않고 휴식 후 바로 오른쪽으로 하산 한다.

우리 일행들도 매점 앞에 모여 있고 일부는 문장대까지 올랐다 왔다지만 안개로 전망이 없을것이므로 포기하고 잠시 쉬었다가 바로 하산을 하기로 한다. 여기서는 카메라도 습기에 젖어서인지 이젠 작동을 하지 않는다. 매점 앞 이정표(←법주사5.8k→/천왕봉 3.4k↓/문장대 0.1k↑/화북 3.3k→)에서 화북쪽인 우측으로 내려가자 평탄한 길로 이어지다니 새로 가설한 다리를 몇군데 지나 내려가 백일기도장(안내판 없음)을 디나 다리를 건너 산능선을 하나 넘어서서 골짜기를 내려가며 다시 개울을 좌로 건너 내려가다 쉴바위에 도착한다.   

 

▲ 문장대에서 내려가다 중간쯤에 있는 쉴바위(대나무님 사진)

16 : 00    쉴바위 백일기도장을 지나 개울을 좌우로 건너길 반복한 후 쉴바우에 잠시 들른다.

다른 때 같으면 모두 여기서 쉬면서 조망을 즐기고 내려가겠지만 오늘은 그냥 내랴간다. 나도 잠시 들르기만 했다가 다시 내리막 돌 계단길을 다리에 피곤을 느끼면서 샘터에서 물 한모금 마시고 길을 재촉하여 한동안 내려가 다리를 두 군데나 건너서니 삼거리에 다다른다. 

 

16 : 33    오송폭포입구 우측은 오송폭포와 성불사로 올라가지만 좌측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오송폭포 입구로 오른쪽은 오송폭포를 거쳐 성불사로 올라가는 길이지만 우리는 왼쪽으로 다리(제2오송교)를 건너 화장실 앞을 지나 다시 오송교를 건너자 바로 오직 한집의 민박겸 음식점인 나에게 형님뻘 되는 김석준씨 집을 지나자 주차장에 도착한다.

 

16 : 42   시어동주차장(산행종료) 관리공단 앞 주차장에서 비를 피해 버스를 기다려 출발한다.

속리산국립공원 동부관리소가 있는 시어동 주차장은 나의 어린 시절 꿈을 키운 우리집터로 지금은 주차장에 입구에는 그때 내가 싶은 은행나무가 혼자서 지키고 있다. 마침 내리는 비속에 주차관리실에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려 여벌옷을 가지고 냇가로 가서 갈아입고 돌아와 출발하여 먼저 내려온 일행들을 중간에서 태운 후 대구로 출발한다. 다음달 9월 9일 마지막구간 산행을 약속하면서 오늘의 용두사미가 된 산행을 상기한다. 


 

산행을 하고나서

멋진 조망을 기대 했던 이번 산행이 비바람과 안개로 여지없이 무너져 용두사미가 된 이번 코스를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하고 싶다. 그리고 옛날 지도만 믿고 상환암-천황봉구간을 무리하게 진행하여 일행들게 죄송하고 우중으로 은폭동을 모르고 지나쳐서 더욱 아쉬운 산행이었다.  제일 아쉽고 괘씸한 건 수도에 전념하여 중생제도에 힘써야 할 스님들이 너무 재물착취에만 열을 올려 입장료 집착하니 염불보다 잿밥에만 눈독을 드리는듯하여 한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산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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