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정치·시담록

4대강과 풍수, 그리고 세종시 / 김지하

이름없는풀뿌리 2015. 9. 30. 11:36

 

[ESSAY] 4대강과 풍수, 그리고 세종시

  • 김지하·시인 입력 : 2009.11.09 22:18 / 수정 : 2009.11.09 23:26
김지하·시인

나도 더는 그 따위 몰상식한 정책을
옳다 그르다 왈가왈부하지않겠다.
다만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참으로 하기 싫은 말 한마디를 한다.
도대체 이 나라에 대한 國土觀이란 것을 가지고나 있는가?

몇번이나 몇번이나 똑같은 말을 해야 되는 것인가?

대운하니 사대강이니 사강나래니 말만 바꾸면서 끝없이 지치지도 않고 산천을 파헤치고 때려부수겠다고 나서는 그 까닭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옛날 같으면 오역(五逆)이니 오사(五事)니, 한 술 더 떠 황극(黃極)이니 하며 온 나라가 시끄럽게 떠들고 일어나 그 정책 책임자를 최소 보름에서 한 달 보름 동안 단식하고 무릎 꿇어 하늘에 빌고 또 빌게 하고야 말았을 일들이다.

모르겠는가? 하늘이 무엇인지 모르겠는가? 산과 강물과 숲과 모래밭이 하늘에 속하는 하늘의 영지, 즉 천지(天地)임을 아직도 모르겠는가? 당신들 소유물이던가?

내 알기론 대통령은 하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사실이 아닌가? 유럽의 기독교도들은 그 성스러운 하늘의 영지를 그 따위로 때려부수는 사람들의 이름이던가?

이 이상 나도 더는 그 따위 몰상식한 정책을 옳다 그르다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다만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그리고 하늘과 생명을 위해 참으로 하기 싫은 말 한마디를 아니 할 수 없어 한다.

도대체 이 나라에 대한 국토관(國土觀)이란 것을 가지고나 있는가? 한국의 자생풍수(自生風水)에 대해 단 한 페이지의 지식이라도 섭취한 적이 있는가?

우리의 국토, 우리의 산천은 애당초부터 간방(艮方)이라고 하여 그따위 제멋대로의 산천파괴를 못하게끔 돼 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신경준(申景濬)의 산경표(山經表)를 읽은 적이 있는가? 산경표는 김정호(金正浩)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속갈피'라 불리는, 지리서(地理書)가 아닌 지질서(地質書)다. 읽은 적이 없는가?

일본인 대지질학자 마치무라 세이요(重村世勳)는 산경표를 '신의 지표'라고 칭송했고, 저 유명한 스코필드 박사는 이를 두고 "예루살렘의 나침판 같다"고 여러 번 혀를 내둘렀다. 무엇을 뜻하는가?

단순한 과학서가 아니란 뜻이겠다.

산경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골짜기의 높낮이는 천 가지 만 가지로 서로 다르고, 물굽이의 복잡하기와 그 물속 사정의 서로 다르기가 그야말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다. 그만큼 복잡한 삼천대천 세계라는 말이다. 그래서도 고려 말 나옹화상(懶翁和尙)은 우리 국토는 문자 그대로 작은 화엄세계라 당나라 해충국사의 표현에 따르면 '무봉탑(無縫塔)'이 적절하다고 말한 바 있다.

'무봉탑'이 무엇인가?

누덕누덕 바느질할 수 없는 타고난 유리궁전(琉璃宮殿)이라는 뜻이다. 하늘만이 바꿀 수 있는 땅인 것이다. 그것을 지금 어떻게 하겠다고?

19세기 말 서세동점 시대 같으면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처럼 산천개조의 필요성에 약간 솔깃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금은 21세기. 생태계 혼돈이 극에 달하고 입만 열면 녹색을 떠들며 문명의 대세가 동아시아로 중심이동하고 있는 중에 이곳 전통 중의 우주생명사상으로부터 새 시대의 녹색당, 인격-비인격, 생명-무생명 등 일체 존재를 다같이 거룩한 우주공동 주체로 들어올리는 모심의 문화, 모심의 생활양식으로 현대 인류의 삶 전체를 변혁하지 않으면 지금의 대혼돈은 극복할 길이 전혀 없다는 전문 유럽 생태학자들의 새로운 동아시아 녹색당 요구가 머리를 쳐드는 이 즈음에 뭘 어찌하겠다고? 운하? 보? 댐? 준설?

준설이 녹색인가?

모래통 나를 백수는 요즘 한국엔 없다. 방글라데시 노동자를 데려와 쓸 건가? 그게 뉴딜인가? 정부의 환경평가기관이 세 차례나 수질오염 가능성을 경고했는데도 뭐라고? 예산을 많이 투입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지금 장난을 하는 건가?

신종플루는 분명 수질오염으로 시작된 것이고, 그 진원지인 멕시코 '라 글로리아'에는 또 다른 진녹색의 독성 수질이 쉬쉬하는 속에서도 대유행이다. 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 앞바다에 '타발타바라풀'이라는 죽지 않는 해조류에 의한 수질오염 가능성, 페르시아만 일대의 '악마의 향기'라는 이름의 썩은 어패류에 의한 수질오염 가능성, 러시아 극지 사모아 발란까 지역의 극도의 뜨거운 독성 액체의 분출, 중국 여러 곳에 지금 막 퍼지고 있는 시뻘건 짐승꽃 '가홍(可弘)'이란 이름의 기괴한 수질오염 식물에 대해 듣지도 못했는가?

도대체
환경부·국토부의 그 잘난 체하는 전문가들은 전문 관계 지식은 고사하고 수질오염으로 인한 피해가능성에 대해 눈도 귀도 감각도 일절 닫은 것인가?

어쩔 작정이란 말인가? 오늘의 글로벌 세계에서 그것이 모두 남의 일인가? 마치 죽지 않는 해파리들처럼 4대강에 그것들이 어느 날 한꺼번에 몰려온다면?

나는
정운찬 총리의 세종시 견해를 지지한다. 계룡산은 철저한 남향의 피난 풍수다. 우리는 지금 북으로 대륙으로, 그리고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 한 전문 풍수인의 말처럼 수도를 열린 교하(경기도 파주시)로 밀고 나가도 모자랄 이때 뭐가 어째?

그래서 최소한의 국토관은 당연히 가지고 있을 줄 알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아직도 모르겠는가?

정 총리가 앞에 직접 나서서 다시금 장기적이고 전국민적인 공청회와 토론, 수많은 전문가들의 여러 가지 의견 청취를 통해 '물'과 '물길'에 대한 새로운 사고가 도출된다면 그때는 내 견해를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순 무식쟁이들 깡통 두들기는 차원이라면 나는 아예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