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03)정도전 삼봉집/ 후서(後序)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17. 06:20

후서(後序)   -신숙주

 

일찍이 보건대, 옛날 영웅ㆍ호걸로 세상에 공을 세운 자는 그 끝을 보전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혹시 가득하면 덜리고 차면 이지러지는 이치로서 화를 스스로 불러들이기도 했고, 또한 운수 소관으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한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큰 공을 세운 자는 반드시 큰 복을 누리게 마련이다. 만약 그 자신에게 미치지 못했다면 그 후손에게 돌아가게 된다. 베푼 것이 있으면 반드시 소득이 있는 것은 진실로 천도(天道)이기 때문이다.

삼봉 선생은 천자(天資)가 뇌락(磊落 마음이 활달하여 구애되지 않는 모습) 괴위(魁偉 얼굴이 위대하게 생김)하여 실로 왕좌(王佐)의 재주를 지녔던 분이었다.

고려 말엽에 나라의 운수가 종말로 치달려 전국이 물 끓듯 하니 백성은 도탄에 빠져 허덕이므로 우리 태조(太祖)께서 시국의 간란(艱難)을 민망히 여기어, 동으로 정벌하고 서로 토죄하여 큰 어려움을 물리쳤는데 선생은 손수 일곡(日轂)을 이끌어 온 누리를 밝혀 우리 동방의 억조 창생을 건지셨던 것이다.

개국 초기를 당하여 무릇 큰 정책에 있어서는 다 선생이 찬정(贊定)한 것으로서 당시 영웅ㆍ호걸이 일시에 일어나 구름이 용을 따르듯 하였으나 선생과 더불어 견줄 자가 없었다. 비록 종말의 차질은 있었다 할지라도 공에 견주어 허물이 족히 덮혀질 수 있었겠지만 역시 운수 소관으로서 옛날 호걸들이 벗어나지 못한 것과 같은 이치일까?

나의 동년(同年 과거(科擧)에 함께 급제한 사람) 경상도 관찰사 정군(鄭君)은 선생의 증손이 되는데, 일찍이 선생이 끝까지 복을 누리지 못한 것을 원통히 여겨 무릇 선업(先業)을 계술(繼述)하고 조상의 허물을 덮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 힘을 다하지 않은 바가 없었으며, 또 지금 선생의 시문(詩文)ㆍ잡저(雜著)를 찬집(撰集)하여 장차 판각에 붙일 양으로 서간을 보내어 나에게 서문을 명한 것이다.

선생이 시문에 있어서는 진실로 여사(餘事)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시의 고담(高澹)ㆍ웅위(雄偉)함과 문의 통창(通暢)ㆍ변박(辯博)함은 또한 그 학문과 포부의 만에 하나나마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선유(先儒)로서 목은(牧隱)ㆍ포은(圃隱)ㆍ양촌(陽村) 같은 제공들이 모두 추앙하고 탄복하여 마지못함에 있어서랴.

정군은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여 운로(雲路 벼슬길)에 드날렸고 지금은 간의(諫議)의 직으로 경상도 안렴(按廉)으로 나갔으니, 간의는 낮은 계급이요 경상은 큰 도(道)라 그대는 아직 귀밑이 청청한데 금대(金帶)를 허리에 띠고 남비(攬轡)를 쥐게 되었으니 영광이 역시 지극하다 하겠다.

이야말로 선생의 남긴 복을 장차 군으로 하여금 누리게 하자는 것이 아니겠는가. 천도는 베푼 자에게 준다는 이치를 징험할 수 있거니와, 국가의 공로에 대한 보답도 여기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른바 선업을 계승하고 조상의 허물을 덮는 일이 어찌 이에 그칠 따름이겠는가? 군은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선생의 휘(諱)는 도전(道傳)이요 자(字)는 종지(宗之)이다. 군(君)의 이름은 문형(文炯)이고 자는 야수(野臾)이다.

 

성화(成化) 원년(元年) 을유(乙酉) 7월 어느 날.

 

수충협책정난동덕좌익공신(輸忠協策靖難同德佐翼功臣)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영의정부사 영예문춘추관사 세자사(領議政府事領藝文春秋館事世子師) 고령부원군(高靈府院君) 신숙주(申叔舟)는 삼가 씀.

 

三峯集後序[申叔舟]

 

嘗觀古之英雄豪傑有建功於世者。多不能保其終。是或滿損盈虧。有以自招。亦或關於運數。有不能自脫者。然建大功者必享大福。苟不及其身。必於其後。有施必獲。固天道也。三峯先生天資磊落魁偉。實王佐之才。前朝之季。國祚將終。東方糜沸。民墜塗炭。我太祖悶時之艱。東征西討。芟夷大難。先生手搏日轂。廓淸區宇。以拯我東方億兆蒼生。及開國之初。凡大規模。皆先生所贊定。當時英雄豪傑。竝起雲從。而無與先生比者。雖終有蹉跌。功過亦足相掩矣。其亦關於運數如古豪傑之不能脫者歟。吾同年慶尙觀察使鄭君。於先生曾孫也。嘗痛先生不得終享。凡所以繼先業而蓋前愆。無所不用其極。今又撰集先生詩文雜著。將繡諸梓。馳書命序。先生之於詩文。固緖餘耳。然其詩之高澹雄偉。文之通暢辯博。亦可因以窺其學問胸次之萬一矣。況先儒如牧隱圃隱陽村諸公皆所推服乎。鄭君早捷科第。歷敭雲路。今自諫議出按慶尙。諫議卑階。慶尙大道。君尙鬢靑而腰金攬轡。榮亦至矣。豈非先生之餘慶將享于君耶。天道施獲之理可驗。而國家報勳之意於是可見矣。然所謂繼業蓋愆者。將止是而已乎。君益勉之。先生諱道傳。字宗之。君諱文炯。字野叟。成化元年乙酉孟秋有日。輸忠協策靖難同德佐翼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領議政府事。領藝文,春秋館事。世子師高靈府院君申叔舟。謹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