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가(遠遊歌)
이때 공민왕(恭愍王)이 노국공주(魯國公主)를 위하여 영전(影殿)을 짓는데 토목의 역사(役事)가 자주 일어나므로 공은 주ㆍ진(周秦)의 잘잘못을 칭탁하여 풍자한 것이다.
술잔치 벌여 빈객이 가득한데 / 置酒賓滿堂
일어나 춤을 추며 원유를 노래하네 / 起舞歌遠遊
멀리 노닌다면 어느 곳에 갈 건가 / 遠遊亦何方
구주를 돌고 또 구주를 돌자꾸나 / 九州復九州
동정호에서 아침에 배를 띄워 / 朝枻洞庭波
저물녘 역수에 닻을 내리네 / 暮泊易水流
사방을 돌아보며 아스라이 눈을 들어 / 四顧騁遐曯
지난날 태평시대 되새기노라 / 想像雍熙秋
넓고 넓은 요순의 도읍터나 / 翼翼唐虞都
높고 높은 하은의 언덕일레라 / 崇崇夏殷丘
세월이 어느덧 얼마나 흘렀는지 / 歲月曾幾何
아득해서 찾을 길 없네 / 邈矣不可求
수레에 올라 또다시 길을 떠나 / 登車復行邁
나는 듯이 주 나라로 머리 돌린다 / 翩翩逝宗周
천추에 우뚝하다 높은 저 영대1) / 峨峨靈臺高
뭉게뭉게 오색구름 중천에 떴네 / 靄靄祥雲浮
봉황새는 고강에서 울음 울고2) / 鳳凰鳴高岡
관저는 하수의 물가에 있네3) / 關雎在河洲
면면히 이어라 몇 천 년 지난 뒤에도 / 綿綿千載後
그지없는 아름다움 지녔더니라 / 綽有無疆休
어찌타 뒷임금 계술이 없어 / 繼世何莫述
왕도 정치 나날이 사라졌느냐 / 王風日以渝
악독한 조룡(祖龍)4) 입을 벌리어 / 祖龍呀其口
한꺼번에 여섯 나라 제후 삼켰네 / 一擧呑諸侯
아방궁은 하늘과 가지런하여 / 阿房與天齊
촉산의 꼭대기를 내리눌렀네5) / 兀盡蜀山頭
어호의 사이에 화가 일어나 / 禍在魚狐間
하루 아침 항우와 유방에게 바치었다오 )/ 一朝輸項劉
백성의 힘을 빼긴 뉘나 같지만 / 孰非出民力
잘되고 잘못된 건 훈유7) 같은 걸 / 得失如薰蕕
【안】 뒷사람의 평에 이는 영대와 아방궁이 다같이 백성의 힘을 이용했건만 흥망이 서로 다름을 말한 것이라 하였다.
이제와 옛날을 느끼며 서성대다가 / 徘徊感今昔
해가 늦어 내 수레를 돌이켰다오 / 日晏旋我輈
만당한 빈객은 상기도 아니 흩어져 / 滿堂賓未散
술을 들어 서로 주거니 받거니 / 擧酒相獻酬
부르는 노랫가락 멎기도 전에 / 高歌未終曲
두 가닥 눈물이 그대 위해 줄줄 흘러라 / 雙涕爲君流
【안】 뒷사람의 평에 종말에는 눈물을 흘려 가며 일러주니 풍자가 깊고 간절하다 하였다.
[주1]영대(靈臺) : 주문왕(周文王)의 대(臺) 이름.
[주2]봉황새는 …… 울고 : 《시경(詩經)》 대아(大雅)권아(卷阿)에 “봉황은 저 고강에서 울고[鳳凰鳴矣于彼高岡]”이라 하였다. 이는 주성왕(周成王)을 경계한 시다.
[주3]관저는 …… 있네 : 관저는 《시경(詩經)》 주남(周南)의 편명. 이는 문왕(文王)후비(后妃)의 덕을 상징한 것이다.
[주4]조룡(祖龍) : 조(祖)는 시(始)의 뜻이요 용은 임금의 상징이니, 시황(始皇)의 은어(隱語)이다. 《사기(史記)》에 “금년에 시황이 죽었다[今年祖龍死].” 하였다.
[주5]촉산의 …… 눌렀네 : 당(唐)나라 시인(詩人)두목(杜牧)의 아방궁부(阿房宮賦)에 “촉산 높고, 아방궁 우뚝 솟았네[蜀山兀 阿房出].” 하였다.
[주6]하루 아침 …… 바치었다오 : 진시황이 죽게 되자 조고(趙高) 등이 공자(公子)인 부소(扶蘇)를 죽이고 호해(胡亥)를 2세(世)로 세웠으나 곧 천하가 어지러워져 반란이 일어났으며,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다투다가 결국 유방이 통일하여 한(漢)을 세웠다.
[주7]훈유(薰蕕) : 훈(薰)은 향초(香草)이고 유(蕕)는 악취 나는 풀인데, 이 두 가지를 섞어 놓으면 10년이 지나도 오히려 악취가 남는다고 하였다. 즉 선(善)은 소멸되기 쉽고 악은 제거하기 어려움을 비유한 말. “일훈(一薰) 일유(一蕕)는 10년이 가도 오히려 남은 냄새가 있다[一薰一蕕十年尙有餘臭].”라 하였다. 《左傳 僖公4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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