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247)정도전 삼봉집 제3권/서(序) /하 상국 춘정 시의 서[河相國春亭詩序]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23. 18:54

하 상국 춘정 시의 서[河相國春亭詩序]

 

【안】 하 상국의 이름은 을지(乙沚)인데 신우(辛禑) 을묘년(1375)에 전라도 원수(全羅道元帥)가 되었다.

 

상국(相國) 하공(河公)이 전라도 원수가 되어 부임하자, 곧 영을 내리기를, ‘우리 백성을 괴롭혀 국가에 근심을 끼치는 것은 왜적이 가장 심하다. 그들은 물길에 익숙하여 빨리 왔다가는 빨리 도망쳐 가므로, 방어하는 자가 그 요령을 잡지 못하는데 나는 그 요령을 알았다.’ 하고, 곧 말 위에서 군사들과 맹세한 뒤에 그들을 인솔하고 길을 떠났다. 종과 북을 울리고 깃발을 들고서 바다를 따라 오르내리며 병력을 시위하니, 왜적들은 헤아리지 못하고 차차 물러갔다.

그러나 공은 감히 일이 없다고 해서 게을리하지 않고 늘 군사를 야외(野外)에 머물러 두고, 요새지에 임하여 뜻하지 않은 변란에 대비하게 하였다. 그 때는 마침 6월이요 지역이 남쪽 변방이어서, 바다안개가 무더운 김을 내뿜고 하늘의 구름이 열을 쏟아, 위는 찌는 듯하고 아래는 습기가 찼다. 그래서 공은 빈종(賓從)과 관교(官校)들이 더위로 병이 들까 염려했다. 하루는 높은 곳에 올라가 바라보니, 긴 강이 그 아래로 흐르고 뭇 산이 그 밖을 감싼 데가 있는데, 봉우리가 빙 두르고 섬이 간간이 보이며 구름도 걷히고 안개도 흩어져 전망이 탁 트였다. 그래서 더운 기운이 서늘해지고 습한 기운이 상쾌하여 시원하기가 마치 더운 몸을 냉수에 씻는 듯하고, 황홀하기가 긴 바람을 타고 맑은 공기를 몰아 공중으로 오르는 것 같았다.

빈종과 관교들이 서로 즐기며 공에게 그곳에 정자 짓기를 권했다. 공은 여러 사람의 뜻을 어기기 어려워서 일을 하지 않는 수졸(戍卒)을 부려서 재목을 가져오고 띠[茅]를 베게 하니 몇 날이 안 되어 낙성을 고하였다. 손님이 정자의 이름을 청하자, 공은 답하기를, ‘내가 일찍이 춘정(春亭)이라 자호(自號)하였고 이 정자는 내가 지은 것이니 춘정이라고 이름하라.’ 하였다. 손님이 옆 사람에게 이르기를, ‘공이 정자의 이름을 짓는 것은 이상도 하다. 이 정자가 낙성된 것이 마침 여름철이라, 맑은 바람을 하늘가에서 끌어다가 상쾌한 기운을 옷깃 속에 넣어 주니, 피부가 경쾌하고 심신이 평온하여, 때가 더운 때인지 땅이 더운 변방인지를 모르게 되며, 장차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하얀 달이 휘영청 밝으면, 날아가는 기러기는 장주(長洲)에서 울고, 외로운 돛단배는 먼 포구에 머물며, 음산한 구름은 덮이지 않고 강천(江天)은 가이 없을 때, 도롱이 쓴 어부가 눈을 헤칠 것이니, 이 또한 이 정자의 가경(佳景)일 것이다. 저 산과 들에 꽃이 피고 새들이 우짖는 것은 겨우 한철의 가경일 뿐인데, 정자는 사철을 통해 이처럼 아름답거늘, 공이 봄 한 계절만을 취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였다.

그를 해명하는 자가 아래와 같이 말했다. ‘하늘이 사시(四時)를 두어 한해를 이루고, 사람은 사단(四端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이 있어 성(性)을 통할한다. 사시가 각기 한철을 차지하고 있지만 봄은 어느 철이고 끼여 있으니, 마치 사단이 각기 하나의 덕을 차지하고 있지만 인(仁)이 내포되지 않은 것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봄이란 봄의 출생이며, 여름이란 봄의 성장이며, 가을이란 봄의 성숙이며, 겨울이란 봄의 수장(收藏)이라는 것이다. 인(仁)이란 인(仁)의 사랑이요 의(義)란 인의 제단(制斷)이요, 예(禮)란 인의 공경이요 지(智)란 인의 지식이라는 것이니, 때에는 봄이 되고 성(性)에는 인(仁)이 되는 것이 한 이치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어서는 충만하고 유행하여 잠시의 간단도 없는 것이다. 갈라 놓으면 사시가 되고 섞어 놓으면 만물이 되어 변화가 무궁하게 생기고 또 생겨 쉬지 아니하는, 이것이 봄이 천지의 인(仁)이 되는 것이며, 사람에 있어서는 공평하고 화락하여, 털끝만큼도 사의(私意)나 분질(忿疾)의 누(累)가 없어, 그 쌓임은 화순(和順)하고 그 발(發)함은 영화롭다. 그래서 몸에 체득하면 몸이 편안하고, 가정에서 행하면 부자(父子)가 친해지며, 일을 처리하고 물(物)에 응하는 데 있어서 하나도 마땅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것이 인(仁)이 한 몸의 봄이 되는 것이다.

옛날 주광정(朱光庭)이 정명도(程明道)를 보고서 봄바람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이 거짓이 아닌 것이다. 봄과 인은, 진정 그 덕이 깊고 지극한 것이다. 도를 아는 자가 아니면 누가 여기에 참여되겠는가? 그래서 공이 뜻으로 하는 바는 이 정자에 오르는 자는 한갓 유람의 즐거움만을 취하지 말고 마땅히 군자의 체인(體仁)의 뜻을 구하여야 하는 것이니 더욱 천지의 물(物)을 낳는 뜻을 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 뒤에야 정자의 이름이 춘정이 된 까닭을 알게 될 것이며, 공의 즐거움을 즐기게 될 것이다.’ 손님이 그 말을 옳다고 하므로 모두 시를 지어 읊었다.

 

절서는 돌고돌아 사시가 바뀌는데 / 節序相推自四時

춘정의 맑은 흥취 아는 이가 적구나 / 一亭佳趣少人知

유연히 묘한 천기 혼자서 알았으니 / 悠然獨得天機妙

강산을 대하여 좋은 시를 짓누나 / 坐對江山賦好詩

 

河相國春亭詩序 按河相國名乙沚。辛禑乙卯。爲全羅道元帥。

 

相國河公以節帥全羅。旣至。令曰。爲患吾民。以遺國家憂。惟倭最急。便習水道。輕進易退。故制禦者難得其要。我知之矣。卽馬上誓師旅。引行鳴鐘鼓。樹旗幟。沿海上下。張皇兵威。賊人不測。稍自引去。然不敢以無事自暇。常野次于外。以臨衝要。以備不虞。時維六月。地極南邊。海霧吹炎。天雲爍熱。上蒸下濕。公慮賓校之病于暑也。一日。登高以望。長江注其下。群山包其外。繚以峯巒。錯以洲嶼。雲收霧散。瞻眺攸遠。炎熱以涼。蒸濕以爽。灑然若執熱而濯淸泠也。怳然如乘長風御灝氣。以超乎寥廓也。賓校胥樂。勸公構亭其地。公重違衆。乃役戍卒之無事事者。取材誅茅。不終日告成。客有請亭名者。公曰。吾嘗自號春亭。亭吾構也。其以是命之。客語人曰。異哉。公之名亭也。亭之成適當夏月。引淸風於天末。納爽氣於襟袖。肌膚輕快。神心夷曠。不知時之爲暑而地之爲炎荒也。至若金風啓候。素月揚輝。叫征鴻於長洲。倚孤帆於極浦。陰雲不開。江天無際。漁蓑披雪。亦此亭之勝槩也。若其野芳山榮。鳥哢禽嚶。僅足於一時耳。四時於亭。其景如此。而公獨取其一。有以也夫。解之者曰。天有四時以成歲。人有四端以統性。四時之各偏其一。而春無所不在。猶四端各一其德。而仁無所不包也。故曰。春者春之生。夏者春之長。秋者春之成。冬者春之藏。仁者仁之愛。義者仁之制。禮者仁之敬。智者仁之知。於時爲春。於性爲仁。一理也。故其在天。則充塞流行。無一息之間斷。播之爲四時。糅之爲萬物。變化無窮而生生不息。此春爲天地之仁也。其在人則公平樂易。無一毫私意忿疾之累。其積也和順。其發也英華。體之身而身安。推之家而父子親。以至處事應物。無一而不得其宜。此仁爲一身之春也。昔朱光庭謂明道爲春風。其言不可誣也。春哉仁哉。淵乎其爲德之至也。非知道者。孰能與於斯。公之所以有意也。登是亭者。毋徒取遊觀之樂。當求君子體仁之意。尤當求天地生物之心。然後知亭之所以爲春。而能樂公之樂也。客曰。唯唯。於是咸係詩以詠。

節序相推自四時。一亭佳興少人知。悠然獨得天機妙。坐對江山賦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