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루기(求仁樓記)
세상에서 유람의 즐거움을 다하는 자는 반드시 그윽하고 깊은 산수를 찾거나 아니면 광막한 원야를 걷는다. 그래서 정신을 피로하게 하고 근육을 수고롭게 한 뒤에야 즐거움을 얻는다. 그러나 이는 눈앞의 경치를 기뻐하여 일시의 감상에 취한 것뿐이지, 즐거움이 극하면 식어서 잠깐 사이에 까마득한 옛 자취가 되어 마치 지난밤 꿈이 하나도 남지 않는 것처럼 되고 만다.
어떤 이는 혹 서울 근교에서 배진공(裵晉公)의 녹야당(綠野堂)과 사 태부(謝太傅)의 별장 같은 것을 얻기도 하지만, 이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며, 혹은 만년에 은퇴한 뒤에, 혹은 나라의 운명이 위급할 때에야 그러한 재미가 있으니, 뒷날 호사자(好事者)가 크게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오직 우리 윤공(尹公)만은 국가가 한가한 때를 당하여 젊은 나이에 중추부(中樞府)에 들어가 국가의 기밀에 참여하였고, 도성의 동남 모퉁이에 땅을 얻어 초옥을 짓고 살았다. 산은 울창하여 그 집 밖을 둘러싸고, 샘물은 맑게 그 가운데로부터 흘러 나왔다. 또 새 누각을 집 동쪽에 짓고, 날마다 손님을 맞아 그 누각 위에서 마시고 읊었다. 그러니 장상(將相)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도 유인(幽人)이 속세를 떠난 생각을 가지게 되고, 문밖을 나서지 않고도 유연(悠然)히 산수간에 유람하는 즐거움을 얻었으며, 이른바 ‘인(仁)이 먼 곳에 있겠는가? 내가 인을 하려 하면 인이 이에 이른다.’고 한 것이 어찌 미덥지 않으랴?
공자는 또 말하기를, ‘어진[仁]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하였으니, 구인(求仁)으로써 이 누각을 이름하기 청한다. 저, 인의 도가 크지만 결국 구하는 방법은 스스로 힘쓰는 데 있으므로, 뒷날 그대를 대하면 반드시 괄목(刮目)하게 될 것이다.
[주]녹야당(綠野堂) : 당(唐)나라 배도(裵度)가 지은 별장. 그 옛터가 중국 하남성(河南省)낙양현(洛陽縣) 남쪽에 있다. 《구당서(舊唐書)》 배도전(裵度傳)에 “배도가 오교(午橋)에 별장을 건립했는데, 화목(花木) 1만 주를 심고 중간에 양대서관(凉臺署館)을 짓고는 녹야당이라고 이름했다.” 하였음.
[주]사태부(謝太傅)의 별장 : 사태부(謝太傅)는 진(晋)의 사안(謝安)을 이름. 그가 젊어 동산(東
求仁樓記
世之極遊觀之榮者。必窮山水之幽深。涉原野之曠漠。疲精神勞筋骨。然後得之。亦不過快目前之景。恣一時之玩而已。樂極而罷。俯仰之間。惘然成陳迹。猶如昨夢之無有。其或得之畿甸之間。如裴晉公之綠野堂。謝太傅之別墅。誠亦難矣。或在晚年懸車之後。或在國步危急之秋。後之好事者。不能不爲之浩歎也。惟吾尹公。逢國家閒暇之時。以妙年入中樞。參機密。卜地得城東南隅。構草屋以居。有山蓊然包乎其外。有泉泠然出乎其中。又起新樓于屋之東。日邀賓客。觴詠樓上。蓋不離將相之位。而翛然有幽人出塵之想。不出戶庭之間。而悠然得山水遊觀之樂。所謂仁遠乎哉。我欲仁。斯仁至矣者。寧不信歟。孔子又曰仁者樂山。請以求仁名是樓。若夫仁道之大。與其求之之方。當在自勉焉。他日對子。必刮目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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