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265)정도전 삼봉집 제4권 / 기(記) /경복궁(景福宮)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24. 06:42

경복궁(景福宮)

 

신은 상고하건대, 궁궐이란 임금이 정사를 다스리는 곳이요, 사방이 우러러보는 곳이요, 신민들이 다 나아가는 곳이므로, 제도를 장엄하게 해서 위엄을 보이고 이름을 아름답게 지어 보고 듣는 자를 감동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한ㆍ당(漢唐) 이래로 궁전(宮殿)의 호칭이 혹은 전에 있던 이름을 따기도 하고 혹은 고쳐 부르기도 하였으나, 그 존엄성을 보이고 감동을 일으키게 한 바는 그 의의가 동일한 것입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지 3년이 되던 해, 한양(漢陽)에 도읍을 정하시고 먼저 종묘(宗廟)를 세운 다음 궁전을 건립했습니다. 그 이듬해 10월 을미일에 상께서는 친히 곤룡포와 면류관을 갖추고 선왕(先王)ㆍ선후(先后)에게 새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고, 이어 군신들에게 새 궁전에서 잔치를 여셨습니다. 이것은 대개 신(神)의 은혜에 감사하며 미래의 복을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술이 세 순배가 돌자 신 도전(道傳)에게 명하시기를, ‘지금 도읍을 정하여 종묘에 제사 지내고 새로운 궁전이 낙성되어 여러 군신들과 잔치를 열게 되었으니, 그대는 마땅히 궁전의 이름을 지어서 나라와 더불어 길이 빛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신은 삼가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주아(周雅 《시경》 대아(大雅)와 소아(小雅))에서, ‘술대접 받아 실컷 취하고 또 많은 은덕을 입었으니, 비옵니다 군자께서 만년 장수하시고 큰 복[景福] 받으시기를’이라는 시구를 인용하여, 새 궁전의 이름을 경복궁(景福宮)이라고 짓기를 청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전하께서는 자손들과 더불어 만년이나 태평한 왕업을 누리게 될 것이며 사방의 백성들도 길이 보고 느끼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춘추》에서 백성에게 부역시키는 것이나 토목 공사를 일으키는 일들을 몹시 삼가고 중난하게 여겼으니, 임금이 된 이가 백성만을 부려 스스로를 받들게 하는 것으로 능사를 삼아서는 안되오니, 한가로이 넓은 집에 있을 때는 한사(寒士 가난한 선비)를 비호할 것을 생각하고, 서늘한 양생(凉生)이 구본에는 생량(生凉)으로 되었음. 전각(殿閣)에 어떤 본에는 전합(殿閤)으로 되어 있음. 있으면 그 맑은 그늘을 나누어 줄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만민(萬民)이 받듦에 저버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아울러 언급합니다.

 

景福宮

 

臣按宮闕。人君所以聽政之地。四方之所瞻視。臣民之所咸造。故壯其制度。示之尊嚴。美其名稱。使之觀感。漢唐以來。宮殿之號。或沿或革。然其所以示尊嚴而興觀感則。其義一也。殿下卽位之三年。定都于漢陽。先建宗廟。次營宮室。越明年十月乙未。親服衮冕。享先王先后于新廟。宴群臣于新宮。蓋廣神惠而綏後祿也。酒三行。命臣道傳曰。今定都享廟。而新宮告成。嘉與群臣宴享于此。汝宜早建宮殿之名。與國匹休於無疆。臣受命。謹拜手稽首。誦周雅旣醉以酒。旣飽以德。君子萬年。介爾景福。請名新宮曰景福。庶見殿下及與子孫享萬年太平之業。而四方臣民亦永有所觀感焉。然春秋。重民力謹土功。豈可使爲人君者。徒勤民以自奉哉。燕居廣廈。則思所以庇寒士。涼生 涼生舊本作生涼 殿閣。一本作閤 則思所以分淸陰。然後庶無負於萬民之奉矣。故倂及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