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열산인 극복루기 후설(無說山人克復樓記後說) 이하 다섯 수는 금남잡제(錦南雜題)임.
여황(艅艎) 【안】 여황은 나주(羅州)의 속현인데 지금은 혁파되었음. 에 사는 조생박(趙生璞)이 극복루(克復樓) 기문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이며 말하기를, ‘이 기문은 무열산인(無說山人)이 지은 것이며, 이 누는 용진사(湧珍寺)에 있습니다. 대개 사람들이 누관(樓觀)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높은 데 올라 먼 데를 바라보고 마음과 눈을 휴식시키며, 산천과 풍월로써 유관(遊觀)의 즐거움을 돕는 데 있을 뿐이요 학문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거늘, 이제 이 누각을 극복(克復)이라고 이름한 것은 누에서 무엇을 취한 것입니까?’ 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아니다. 그렇지 않다. 사람의 근심과 즐거움은 마음에 달려 있어서 그 만나는 경우에 따라서 발하는 것이 다르다. 그 마음이 근심에 매여 있으면, 아무리 좋은 산천과 아름다운 풍월을 만나더라도 슬픈 느낌을 도울 뿐이다. 영릉(靈陵)의 산은 남방에서 가장 수려하지만 귀양 가는 신하[逐臣] 어떤 본에는 자(者)로 됨. 들은 감옥이라 생각하고, 악양루(岳陽樓)는 천하의 장관인데도 좌천된 사람은 슬프게 생각했다. 그래서 진실로 그 본심을 잃는다면 어디를 가나 슬프지 않은 데가 없는 것이니, 비록 누관이 있더라도 어찌 즐거울 수 있겠느냐?
만일 자기의 사욕을 이겨 없애고 천리를 회복한다면, 그 마음이 활연(豁然)하여 천지와 더불어 그 큰 것을 함께 하고 만물과 더불어 화함을 같이하여, 넓고도 커서 만나는 것마다 모두 즐거울 것이다. 그러므로 도시락 밥과 표주박 물을 마시며 궁벽한 시골에 있어도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은 이가 있으니, 안자(顔子)의 극복(克復)이 바로 그것이다. 요컨대 오직 인(仁)한 뒤에야 그 즐거움을 즐길 수 있는 것이고 보면, 극복으로 누의 이름을 한 것은 그 근본을 얻었다 할 것이다.’ 하였다.
無說山人克復樓記後說 以下五首錦南雜題
艅艎 按艅艎。羅州廢屬縣。 趙生璞。袖克復樓記來示予曰。此記乃無說山人所作。樓在湧珍寺。夫人之所貴乎樓觀者。以其登高望遠。遊心騁目。窮山川引風月。以資遊觀之樂而已。於學也無與焉。今玆樓以克復名。何取於樓哉。予曰否。不然也。人之憂樂。係之心而發之於所遇之境。彼其心有係於憂者。雖遇山川之勝。風月之美。適足以爲之傷感也。零陵之山。南方之最秀者也。而逐臣 一本作者 以爲囚。岳陽之樓。天下之壯觀也。而遷客以爲悲。苟失其本心則無往而不慼慼也。雖有樓觀。豈得而樂哉。若夫克去己私。以復天理。則其心豁然。與天地同其大。萬物同其和。浩浩蕩蕩。隨所遇而皆樂。故有以簞瓢陋巷而不改其樂者。顏子之克復也。要之。惟其仁而後能樂其樂也。其以克復名樓。得其本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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