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272)정도전 삼봉집 제4권 / 기(記) /청석동 연음기(靑石洞宴飮記)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24. 06:50

청석동 연음기(靑石洞宴飮記)

 

6월 갑신일에 명나라 사신 황공(黃公 황영기(黃永奇)) 등이 경사(京師)로 돌아가는데, 시중(侍中) 평양백(平壤伯 조준(趙浚))과, 시중 상락백(上洛伯 김사형(金士衡))이 제공들과 함께 그를 전송하기 위해 금교역(金郊驛)까지 왔다가 정오에 되돌아갔다.

이때는 한더위여서 불기운같이 맹렬했는데 아전들이 청석동 시냇가에 막을 쳤으니, 이는 피서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공이 호상(胡床)에 걸터앉자, 물은 그 아래로 흐르고 바람은 사방에서 불어와서 몸이 편하고 정신이 상쾌하여 마치 오랜 병이 몸에서 떠날 것 같았다. 높은 음악이 울리고 구본에는 격(激)으로 되어 있음. 흐르는 술잔이 겹으로 이르니 제공들이 흐뭇하게 즐겼다. 얼마 안되어 평양백이 문득 말하기를, ‘즐겁기는 즐거우나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했다.

도전이, ‘재상의 직책은 수고로운 것이며, 온갖 책임이 한몸에 모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혀 어떤 본에는 영(縈)자가 영(營)자로 되어 있음. 기운이 답답하고 뜻이 정체(停滯)되니, 아무리 총명하고 지혜로운 이라도 혹 잘못 실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비심(裨諶)이 정(鄭)나라의 정사를 계획할 때에는 반드시 들에 나가서 하였으니, 이것은 대개 한가롭고 조용한 중에서 생각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자리도 막혀 답답한 기운을 풀고, 그 정지되고 멈춘 뜻을 인도하는 데에 반드시 도움이 있을 것이다.’고 말하니, 제공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옳다.’고 하였다. 그러나 평양백은 우연히 손님을 전송하는 일로 여기까지 왔다가, 제공들의 즐거워함을 보고 문득 그 과한 것을 경계시켰으니 이것도 알아 두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그래서 여기에 쓴다.

 

[주]비심(裨諶)이 …… 들에 나가서 : 비심은 춘추시대 정(鄭)나라 대부(大夫)인데 계획을 잘 세웠다. 그런데 그는 들에 나가서 생각하면 좋은 계책을 얻고, 도시에서 생각하면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자산(鄭子産)은 외국과의 문제가 있으면 그에게 수레를 타고 들에 가서 가부를 결정짓게 하여, 정나라는 실패하는 일이 적었다는 것이다. 《左傳 襄公 31年》

 

 

靑石洞宴飮記

 

六月甲申。天使黃公等還京師。侍中平壤伯,侍中上洛伯與諸公。送至于金郊驛。日中而返。時當炎暑。火雲甚熾。堂吏張幕于靑石洞溪邊。爲避暑也。諸公據胡床坐。水流其下。風自四至。身夷神曠。脫然若沈痾去體。高管噭 舊本作激 噪。流觴再匝。諸公相與熙然而樂。未幾平壤伯遽曰。樂則樂矣。無已過乎。道傳曰。宰相之職勞矣。衆責萃其身。百慮縈 一本作營 其心。以致氣鬱志滯。雖明且智。未免或有所遺失也。故裨諶謀鄭國之政。必至於野。蓋於閒靜之中而得之也。然則宣其堙鬱之氣。道其滯塞之志。其必有助之者乎。諸公曰。子之言是也。然平壤伯偶因送客至此。一見諸公之樂。遽戒其過。是又不可不識也。於是乎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