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276)정도전 삼봉집 제4권 / 설(說)/농부에 답함[答田夫]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24. 06:57

농부에 답함[答田夫]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낮고 기울고, 좁고 더러워서 마음이 답답했다. 하루는 들에 나가 노닐다가 농부 한 사람을 보았는데, 눈썹이 기다랗고 머리가 희고 진흙이 등에 묻었으며, 손에는 호미를 들고 김을 매고 있었다.

내가 그 옆에 다가서서 말하기를,

 

“노인장 수고하십니다.”

했다. 농부는 한참 후 나를 보더니 호미를 밭이랑에 두고는 언덕으로 걸어 올라와 두 손을 무릎에 얹고 앉으며 턱을 끄덕이어 나를 오라고 했다. 나는 그가 늙었기 때문에 추창해 가서 팔짱을 끼고 섰더니 농부가 묻기를,

 

“그대는 어떠한 사람인가? 그대의 의복이 비록 해지기는 하였으나 옷자락이 길고 소매가 넓으며, 행동거지가 의젓한 것을 보니 혹 선비가 아닌가? 또 수족이 갈라지지 아니하고 뺨이 풍요하고 배가 나온 것을 보니 조정의 벼슬아치가 아닌가?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는가? 나는 노인이며 여기서 나서 여기에서 늙었기 때문에, 거친 들과 장기(瘴氣)가 가득찬 궁벽한 시골에서 도깨비와 더불어 살고 물고기와 더불어 사는 처지가 되었지만, 조정의 벼슬아치라면 죄를 짓고 추방된 사람이 아니면 여기에 오지 않는데, 그대는 죄를 지은 사람인가?”

했다. 나는 답하기를,

 

“그러합니다.”

하니, 그는,

 

“무슨 죄인가? 아니 구복(口腹)의 봉양과 처자의 양육과 거마(車馬)ㆍ궁실(宮室)의 일로써 불의(不義)를 돌아보지 않고서 한없이 욕심을 채우려다가 죄를 얻은 것인가? 아니면 벼슬을 꼭 해야겠는데 스스로 이를 능력이 없어서 권신을 가까이하고, 세도에 붙어 거진 마족(車塵馬足)의 사이에 분주하면서 찌꺼기 술이나 먹고, 남은 고기 같은 것을 얻어 먹으려고 어깨를 움츠리고 아첨을 떨며 구차하게 즐거움을 취하는 데에 애를 썼기 때문에 어쩌다가 한 자급(資級)을 얻으니, 여러 사람이 모두 성을 내어 하루 아침에 형세가 가버려서 결국 이렇게 죄를 얻게 된 것인가?”

라고 물었다. 나는,

 

“그런 게 아닙니다.”

하자, 그는,

 

“그러면 말을 단정하게 하고 얼굴 빛을 바르게 하여, 겉으로 겸손한 체하여 어떤 본에는 겸(謙)이 염(廉)으로 되었음. 헛된 이름을 훔치고, 어두운 밤에는 분주하게 돌아다니면서 새가 사람에게 의지하는 태도를 지어 애걸하고, 가엾게 보여 굽게 결탁하고 횡으로 맺아 녹위(祿位)를 낚아서 혹 관수(官守)에 있거나 혹 언책(言責)을 맡거나 녹만을 먹고 그 직책은 돌아보지 않으며, 국가의 안위와 생민(生民)의 휴척(休戚)과 시정(時政)의 득실과 풍속의 미악(美惡)에 있어서는 막연히 뜻을 두지 않아 진(秦)나라 사람이 월(越)나라 사람의 살찌고 여윈 것 보듯이 하며, 자기 몸만 온전히 하고 처자를 보호하는 계책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만일 충의지사(忠義之士)가 있어서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국가의 급한 일에 나아가 직분을 지키고 바른말을 하거나 곧은 도를 행하다가, 화를 당하게 된 것을 보면, 안으로는 그 이름을 꺼리고 밖으로는 그 패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 비방하고 비웃으며 스스로 계책을 얻은 듯하다가 공론이 비등하고 천도가 무심하지 않아 그만 간사한 것이 드러나고 죄가 발각되어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인가?”

하였다. 나는,

 

“그것도 아닙니다.”

하였더니 그는 또,

 

“그렇다면, 장수가 되어서 널리 당파를 만들어 앞에서 몰고 뒤에서 옹위하며, 아무 일도 없을 때에는 큰 소리로 공갈을 쳐서, 왕의 은총을 받아 관록(官祿)과 작상(爵賞)을 뜻대로 이루어 자만심이 가득차고 기운이 성하여 조사(朝士)들을 경멸하다가, 적군을 만나게 되면, 범 가죽은 비록 아름답지만 본질이 양이라 겁을 잘 내어, 교전을 하지 않고 적의 풍진(風塵)만 보아도 먼저 달아나 생령(生靈)을 적의 칼날에 버리고 국가의 대사를 그르치기라도 하였는가?

아니면, 경상(卿相)이 되어서 제 마음대로 고집을 세우고 남의 말은 듣지 않으며 자기에게 아첨하는 이는 즐거워하고 자기에게 붙는 이는 들어 쓰며, 곧은 선비가 말을 거스르면 성을 내고, 바른 선비가 도를 지키면 배격하며 임금의 작록(爵祿)을 훔쳐 자기의 사사 은혜로 만들고, 국가의 형전(刑典)을 희롱하여 자기의 사용으로 삼다가 악행이 많아 화가 이르러 이러한 죄에 걸린 것인가?”

고 하였다. 나는,

 

“그것도 아닙니다.”

고 하니 그는,

 

“그렇다면 그대의 죄목을 나는 알겠도다. 그 힘의 부족한 것을 헤아리지 않고 큰소리를 좋아하고, 그 시기의 불가함을 알지 못하고 바른말을 좋아하며, 지금 세상에 나서 옛사람을 사모하고 아래에 처하여 위를 거스른 것이 죄를 얻은 원인이로다. 옛날 가의(賈誼)가 큰소리를 좋아하고, 굴원(屈原)이 곧은 말을 좋아하고, 한유(韓愈)가 옛 것을 좋아하고, 관용방(關龍逄)이 윗사람에게 거스르기를 좋아했다. 이 네 사람은 다 도(道)가 있는 선비였는데도 혹은 폄직(貶職)되고 혹은 죽어서 스스로 자기 몸을 보전하지 못하였거늘, 그대는 한 몸으로서 몇 가지 금기(禁忌)를 범하였는데 겨우 귀양만 보내고 목숨은 보전하게 하였으니, 나 같은 촌사람이라도 국가의 은전이 너그러움을 알 수가 있도다. 그대는 지금부터라도 조심하면 화를 면하게 될 것이오.”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 그가 도가 있는 선비임을 알았다. 그리하여 청하기를,

 

 

“노인장께서는 은군자(隱君子)이십니다. 객관(客館)에 모시고 글을 배우고자 합니다.”

하니, 노인은 말하기를,

 

“나는 대대로 농사짓는 사람이오. 밭을 갈아서 국가에 세금을 내고 나머지로 처자를 양육하니, 이 밖의 것은 나의 알 바가 아니오. 그대는 물러가서 나를 어지럽히지 마오.”

하고 다시 말하지 않았다. 나는 물러나와 ‘저 노인은 장저(長沮)ㆍ걸익(桀溺) 같은 사람이라.’고 탄식하였다.

 

[주]장저(長沮)ㆍ걸익(桀溺) : 공자 시대의 두 은자로 공자의 주류 천하(周流天下)하는 것을 기롱하였음.

 

 

 

答田父

寓舍卑側隘陋。心志鬱陶。一日出遊於野。見一田父。厖眉皓首。泥塗霑背。手鋤而耘。予立其側曰。父勞矣。田父久而後視之。置鋤田中。行原以上。兩手據膝而坐。頤予而進之。予以其老也。趨進拱立。田父問曰。子何如人也。子之服雖敝。長裾博袖。行止徐徐。其儒者歟。手足不胼胝。豐頰皤腹。其朝士歟。何故至於斯。吾老人。生於此老於此。荒絶之野。窮僻瘴癘之鄕。魑魅之與處。魚鰕之與居。朝士非得罪放逐者不至。子其負罪者歟。曰然。曰何罪也。豈以口腹之奉。妻子之養。車馬宮室之故。不顧不義。貪欲無厭以得罪歟。抑銳意仕進。無由自致。近權附勢。奔走於車塵馬足之間。仰哺於殘杯冷炙之餘。聳肩諂笑。苟容取悅。一資或得。衆皆含怒。一朝勢去。竟以此得罪歟。曰否。然則豈端言正色。外示謙 一本作廉 退。盜竊虛名。昏夜奔走。作飛鳥依人之態。乞哀求憐。曲邀橫結。釣取祿位。或有官守。或居言責。徒食其祿。不思其職。視國家之安危。生民之休戚。時政之得失。風俗之美惡。漠然不以爲意。如秦人視越人之肥瘠。以全軀保妻子之計。偸延歲月。如見忠義之士不顧身慮。以赴公家之急。守職敢言。直道取禍。則內忌其名。外幸其敗。誹謗侮笑。自以爲得計。然公論諠騰。天道顯明。詐窮罪覺以至此乎。曰否。然則豈爲將爲帥。廣樹黨與。前驅後擁。在平居無事之時。大言恐喝。希望寵錫。官祿爵賞。惟意所恣。志滿氣盛。輕侮朝士。及至見敵。虎皮雖蔚。羊質易慄。不待交兵。望風先走。棄生靈於鋒刃。誤國家之大事。否則豈爲卿爲相。狼愎自用。不恤人言。佞己者悅之。附己者進之。直士抗言則怒。正士守道則排。竊君上之爵祿爲己私惠。弄國家之刑典爲己私用。惡稔而禍至。坐此得罪歟。曰否。然則吾子之罪。我知之矣。不量其力之不足而好大言。不知其時之不可而好直言。生乎今而慕乎古。處乎下而拂乎上。此豈得罪之由歟。昔賈誼好大。屈原好直。韓愈好古。關龍逢好拂上。此四子皆有道之士。或貶或死。不能自保。今子以一身犯數忌。僅得竄逐。以全首領。吾雖野人。可知國家之典寬也。子自今其戒之。庶乎免矣。予聞其言。知其爲有道之士。請曰。父隱君子也。願館而受業焉。父曰。予世農也。耕田輸公家之租。餘以養妻子。過此以往。非予之所知也。子去矣。毋亂我。遂不復言。予退而歎之。若父者。其沮溺之流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