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273)정도전 삼봉집 제4권 / 설(說)/이호연의 명자 후설[李浩然名字後說]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24. 06:53

이호연의 명자 후설[李浩然名字後說]

 

【안】 이원령(李原齡)이 신돈(辛旽)의 난리 때 그 아버지 당(唐)을 등에 업고, 낮에는 숨고 밤에는 걸어서 영천(永川)에 은신하고 있다가 신돈이 제거된 후에 돌아왔다. 그리고 이름과 자를 고쳤는데 이숭인(李崇仁)이 명자설(名字說)을 지었다.

 

손이 묻기를, ‘이군 원령(李君原齡)이 이름을 집(集)이라 고치고 자(字)를 호연(浩然)이라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군이 일찍이 우환으로 고생하더니 그 평소에 지니던 것을 고친 것이 아닌가?’ 하기에 나는 답하기를,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군은 의리 있는 선비다. 무슨 일이거나 밖에서 이르는 것은 모두가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는데 하물며 그 평소에 지닌 것을 고치겠는가? 이군의 우환을 나는 안다. 역적 신돈이 용사할 적에, 이군의 고향 사람이 신 돈의 문하(門下)구본에는 하(下)자가 없음. 에 있던 자가 있었는데, 이군이 그 하는 짓을 의롭지 못하다고 여기다가 크게 그 뜻을 거슬려서 장차 해치려 했다.

그래서 이군이 남쪽으로 피하는데 늙은이를 이끌고 어린이는 붙들어, 들에서 자고 풀잎을 먹었다. 비바람 눈서리가 치고 도둑ㆍ호랑이ㆍ뱀 등의 근심이며, 배고프고 춥고 고단하고 궁한 것들은 모두가 사람들이 괴롭다고 하는 것이거늘, 이것이 한 몸에 집중되어 있어도 이군의 뜻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으니 이는 그 마음에 반드시 기른 바가 있어서이다. 그러므로 우환이 닥쳐올 때, 의리로써 편안히 하는 것이 태산(泰山)같이 무거워서 사람이 그 움직이고 전전하는 것을 보지 못하며, 그 용기 있게 떠나기를 기러기 털이 요원(燎原)의 불길에 타듯 하여 전연 자취가 없는 것처럼 하였다.

그래서 곤궁할수록 그 뜻을 굳게 하기를 마치 정한 금(金), 훌륭한 옥(玉)과 같아서, 아무리 홍로(烘爐)의 녹임과 사석(砂石)의 다스림이 있을지라도 그 정하고 강하고, 온화하고 윤택한 바탕은 더욱더 나타났으니, 속에 소양(所養)이 있는 자가 아니면 능히 그러하겠는가?

이것으로 말한다면 이군이 이름과 자를 고친 것은 대개 앞으로 평소에 기른 바를 굳게 지키고 이를 더욱 힘쓰자는 것인데, 그를 말하여 우환에 고생하더니 평소에 지니고 있는 것을 고친다 운운하는 것은 이군을 아는 자가 아니다.’고 하였다.

그러자 손이 묻기를, ‘그 말은 잘 알았지만, 그 기른 것과 기르는 방법은 어떠한가?’ 하였다. 나는 답하기를, ‘지금 이군이 집(集)으로 이름을 하고 호연(浩然)으로 자를 하였는데, 이것은 맹자(孟子)의 말에 근본한 것이다. 요사이 성산 이씨(星山李氏 이숭인(李崇仁))가 이군의 명자서(名字序)를 지었는데 심히 자세하고 분명하게 하였으니 덧붙일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물은 성의를 저버릴 수 없어 억지로 한 마디 하기를,

‘저 이른바 호연(浩然)이라는 것은 곧 천지의 정기(正氣)이다. 천지 사이에 가득히 있는 모든 물건들이 모두가 이 기운을 얻어 체(體)를 삼기 때문에, 귀신(鬼神)에 있어서는 유(幽)와 현(顯)이 되고, 일월성신(日月星辰)에 있어서는 비치는 것이 되며, 부딪치면 뇌정(雷霆)이 되고, 젖으면 우로(雨露)가 되고, 산악과 하해(河海)가 흐르고 솟으며, 조수와 초목이 번식하게 된다.

그 체(體)가 된 것이 지극히 크고 강하여 우주(宇宙)를 포괄하여 밖이 없으며, 털끝[毫芒]까지 들어가서 안[內]이 없다. 그리고 그 행하는 것이 쉼이 없고 그 쓰임이 두루 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런데 사람은 그 가장 정한 것을 얻어서 태어나기 때문에, 사람에게 있어서 귀와 눈의 총명과 입과 코의 호흡과, 손으로 잡고 발로 달리는 것이 모두가 이 기운이 하는 바이다. 이는 본디 호연(浩然)한 것이어서 부족하거나 이지러진 것이 없으며, 천지와 더불어 서로 유통한다. 이것이 바로 이군이 기른 바이며, 그 기름에 있어서도 또 사의(私意)로 구차히 되는 것이 아니다. 버려 두어도 안 되고 도와도 안 된다. 반드시 일삼아서 의(義)를 모을 뿐이다.

아! 이 기운의 유행하는 것이 성하여서 쇠와 돌이라도 막지 못하며,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불에 들어가도 뜨겁지 않으며, 부딪치는 자는 부서지고, 가로막는 자는 진동되고 찢어져서 능히 당하지 못한다. 더구나 우리는 이미 가장 정한 것을 얻어서 태어났고, 또 그 가장 정한 것을 내 몸 가운데에 길러서 주(主)를 삼았으니, 앞에서 말한 사람이 괴로워한다는 것은 모두 바깥 물건으로 이 기운의 나머지에서 생긴 것들이니, 어찌 능히 나의 가장 정한 것을 도리어 해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내가, 단연 이군이 마음에 기른 바가 있어서 우환으로 평소의 지닌 것을 고치지 않으리라고 믿어 마지않는 바이다.’고 했다. 손이 ‘예 예’ 하고 물러가므로 이를 써서 이군에게 주어 명자(名字)의 후서(後序) 어떤 본에는 서(序)자가 설(說)로 되어 있음. 를 삼게 한다.

 

 

李浩然名字後說

按李原齡避辛旽之禍。竊負其父唐。晝伏夜行。隱于永川。旽誅始還。改名與字。李崇仁作名字說。

 

客問曰。李君原齡更名集。字浩然。何也。李君蓋嘗困於憂患。豈徵其平日而有所改歟。予曰。否。不然也。李君義士也。凡事苟自外至者。擧不能動其中。況改平日哉。李君憂患。我知之。當逆旽用事時。君之鄕人。有爲旽門下 舊本脫下字 者。君不義其所爲。大忤其意。將害之。君避之南方。携老扶幼。野處草食。風霜雨雪之所侵。盜賊虎狼蟲蛇之患。飢寒凍餓。憂勞窮厄。凡所謂人所苦者。方叢于一身。而君之志不小衰。是其中必有所養者存。故於憂患之來。其安之以義也若泰山之重。人不見其動轉。其去之以勇也若鴻毛之於燎原之火。泯然無迹。其愈困而愈堅其志也如精金良玉。雖有烘爐之鑠。沙石之攻。而其精剛溫潤之質。愈益見也。非中有所養者。能然乎。由是言之。李君之更名字。蓋將識其養之素。而守之固以加勉之也。謂是爲困於憂患。徵其平日而改之云者。非知李君者也。客曰。聞命矣。其所養者與養之之方何如。今李君集其名。字浩然。是本於孟子之言也。近星山李氏爲李君名字序甚詳且明。奚容贅焉。然不可孤問意。強一言之。夫所謂浩然者。乃天地之正氣也。凡物之盈於兩間者。皆得是氣以爲之體。故在鬼神爲幽顯。在日月星辰爲照臨。軋之爲雷霆。潤之爲雨露。爲山岳河海之流峙。爲鳥獸草木之所以蕃。其爲體也至大而至剛。包宇宙而無外。入毫芒而無內。其行也無息。其用也無所不周。而人則又得其最精者以生。故其在人。耳目之聰明。口鼻之呼吸。手之執足之奔。皆是氣之所爲。本自浩然。無所欠缺。與天地相流通。此則李君之所養者。而其養之也又非私意苟且而爲也。舍之不可也。助之不可也。必有事焉。集義而已矣。噫。是氣流行之盛。雖金石不可遏。入水而水不濡。入火而火不熱。觸之者碎。當之者震裂而莫能禦。況吾旣得最精者以生。而又養其最精者於吾身之中。以爲之主。則向所謂人所苦者。皆外物之生於是氣之餘者。又安能反害於吾之最精者哉。此吾斷然以爲李君中有所養。而無所改於憂患而無疑者也。客唯唯而退。書以贈李君。爲名字後序。一本作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