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277)정도전 삼봉집 제4권 / 설(說)/금남 야인(錦南野人)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24. 06:58

금남 야인(錦南野人)

 

유가(儒家)의 유(流)인 담은 선생(談隱先生)이 금남(錦南)에 살았다. 하루는 금남에 사는 야인(野人)으로 유(儒)란 이름을 듣지 못한 자가 선생을 보려고 와서 선생의 종자(從者)에게 하는 말이,

 

“나는 야인이라 비루하여 원대한 식견이 없으나, 들으니 ‘위에 거하여 나라의 정사를 다스리는 이를 경대부(卿大夫)라 하고, 아래에 거하여 밭을 가는 이를 농부라 하고, 기계를 만드는 이를 공인(工人)이라 하고, 화물을 사서 파는 이를 상인[商賈]이라 한다.’ 하는데, 이른바 유(儒)라는 것이 있는 줄은 몰랐더니, 어느 날 우리 고을 사람이 떠들썩하게 ‘유자(儒者)가 왔다, 유자가 왔다.’ 하기에 보니 바로 선생이었습니다. 선생은 무슨 업을 하고 계시기에 사람들이 유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종자는 답하기를,

 

“선생의 하시는 것은 광범합니다. 그 학문의 범위가 천지를 포괄해서 음양(陰陽)의 변화와 오행(五行)의 분포와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조림(照臨)으로부터 산악(山嶽)ㆍ하해(河海)의 흐르고 솟음과 초목의 크고 시듦이며 귀신의 정(情)과 유명(幽明)의 이치까지 통달하며, 그 윤리(倫理)를 밝힘에 있어서는 군신간에 의(義)가 있는 것, 부자간에 은(恩)이 있는 것, 부부간에 분별이 있는 것, 장유(長幼)는 차례가 있고 친구간에는 믿음이 있어야 함을 알아서, 그를 공경하고 친애하고 분별하고 차례를 지키고 믿음을 갖게 합니다.

또 고금(古今)을 통달함에 있어서는 처음 문자가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르도록 세도(世道)의 승강(升降)과 풍속의 미악(美惡)과 그리고 밝은 임금과 어두운 임금, 간신과 충신들의 언어ㆍ행사의 잘잘못이며 예악형정(禮樂刑政)의 연혁과 득실이며, 현인군자(賢人君子)의 출처와 거취(去就) 등이 관통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 추향(趨向)의 바른 것에 있어서는 성(性)이 천명(天命)에서 근본하여 사단(四端)ㆍ오전(五典) 그리고 만사(萬事) 만물의 이치가 그 성 가운데에 통합되어 있지 않음이 없음을 알고 있으니 이것은 불가(佛家)에서 이른 공(空)도 아니며, 또 도(道)가 인생 일상생활의 떳떳한 것에 갖추어 있고 천지의 모든 형체를 포괄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니 도가(道家)에서 일컫는 무(無)도 아닙니다.

그래서 불ㆍ노(佛老)의 사특한 해를 분변하여 백 대의 무지한 의혹을 열어 주었으며, 시속의 공리설(功利說)을 꺾어 도의(道誼)의 올바른 데로 돌아가게 했으니, 임금이 그를 쓰면 위가 편안하고 아래가 안온하며, 자제가 그를 따르면 덕이 높아지고 업이 진취될 것이요, 궁하여 때를 만나지 못하면 글로 써서 후세에 전할 것이며, 또 그 자신을 독실히 하는 데 있어서는 차라리 세속에서 비방을 당할지언정 성인의 가르친 뜻은 저버리지 못하며, 차라리 그 몸이 주려서 아주 곤경에 빠질지언정 불의를 범하여 이 마음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 것이 이 유자의 업이며 선생님이 하고자 하시는 바입니다.”

하니, 야인은 말하기를,

 

“그 말은 사치스럽습니다. 너무 과장한 것이 아닙니까? 내가 우리 동네 어른에게 들으니, 그 실상이 없으면서 그 이름만 있으면 귀신도 미워하고, 비록 그 실상이 있더라도 스스로 밖에 폭로하는 것은 남들이 성내는 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어질다 자처하고 남을 대하면 남이 허여하지 않고, 자신이 지혜롭다 자처하면서 남을 대하면 남이 도와 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를 삼가는데 그대는 선생을 좇아 노닐며 그 말이 이러하니 그 선생을 알 만합니다. 그는 귀신이 미워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반드시 타인의 노여움을 살 것입니다. 아아! 선생은 위태하겠으니 나는 화가 미칠까 두려워 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고는 소매를 뿌리치고 가버렸다.

 

 

 

錦南野人

儒家者流談隱先生居錦南。一日。錦南野人有不聞儒名者求見先生。謂從者曰。吾儕野人。鄙不遠識。然吾聞居乎上。治國政曰卿大夫。居乎下。治田曰農。治器械曰工。治貨賄曰商賈。獨不知有所謂儒者。一日。吾鄕人讙然相傳儒者至。儒者至。乃夫子也。不知夫子治何業而人謂之儒歟。從者曰。抑所治廣矣。其學之際天地也。觀陰陽之變五行之布。日月星辰之照臨。察山嶽河海之流峙。草木之榮悴。以達鬼神之情。幽明之故。其明倫理也。知君臣之有義。父子之有恩。夫婦之有別。長幼朋友之有序有信。以敬之親之經之序之信之。其達於古今也。自始有文字之初。以至今日世道之升降。俗尙之美惡。明君汙辟。邪臣忠輔。言語行事之否臧。禮樂刑政之沿革得失。賢人君子之出處去就。無不貫。其趨向之正也。知性之本乎天命。四端五典萬事萬物之理。無不統其中而非空之謂也。知道之具於人生日用之常。包乎天地有形之大而非無之謂也。於是。辨佛老邪遁之害。以開百世聾瞽之惑。折時俗功利之說。以歸夫道誼之正。其君用之則上安而下庇。其子弟從之則德崇而業進。其窮而不遇於時。則修辭以傳諸後。其自信之篤也。寧見非於世俗。而不負聖人垂敎之意。寧窮餓其身。顚躓困厄。而不犯不義。以爲是心之羞愧。此儒者之業。而夫子之所欲治也。野人曰。侈哉言也。其無乃誇乎。吾聞諸吾鄕之老。曰無其實而有其名。鬼神惡之。雖有其實。自暴於外則爲人所怒。故以賢臨人則人不與。以智矜人則人不助。是以。君子愼之。子從夫子遊。而其言若是。夫子可知已。其不有鬼惡。必有人怒乎。嗚呼。而夫子殆矣。吾不願見。懼及也。奮袖而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