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家難)
내가 죄를 지어 남쪽 변방으로 귀양간 후부터 비방이 벌떼처럼 일어나고 구설이 터무니없이 퍼져서 화가 측량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아내는 두려워서 사람을 보내 나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평일에 글을 부지런히 읽으시느라 아침에 밥이 끓든 저녁에 죽이 끓든 간섭치 않아 집안 형편은 경쇠를 걸어 놓은 것처럼 한 섬의 곡식도 없는데, 아이들은 방에 가득해서 춥고 배고프다고 울었습니다. 제가 끼니를 맡아 그때그때 어떻게 꾸려나가면서도 당신이 독실하게 공부하시니 뒷날에 입신 양명(立身揚名)하여 처자들이 우러러 의뢰하고 문호에는 영광을 가져오리라고 기대했는데, 끝내는 국법에 저촉되어서 이름이 욕되고 행적이 깎이며, 몸은 남쪽 변방에 귀양을 가서 독한 장기(瘴氣)나 마시고 형제들은 나가 쓰러져서 가문이 여지없이 탕산하여, 세상 사람의 웃음거리가 된 것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현인 군자도 진실로 이러한 것입니까?”
하므로, 나는 답장을 아래와 같이 썼다.
“그대의 말이 참으로 온당하오. 나에게 친구가 있어 정이 형제보다 나았는데 내가 패한 것을 보더니 뜬 구름같이 흩어지니, 그들이 나를 근심하지 않는 것은 본래 세력으로 맺어지고 은혜로써 맺어지지 않은 까닭이오. 부부의 관계는 한번 결혼을 하면 종신토록 고치지 않는 것이니 그대가 나를 책망하는 것은 사랑해서이지 미워서가 아닐 것이오. 또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것은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과 같으니, 이 이치는 허망하지 않으며 다 같이 하늘에서 얻은 것이오. 그대는 집을 근심하고 나는 나라를 근심하는 것 외에 어찌 다른 것이 있겠소? 각각 그 직분만 다할 뿐이며 그 성패와 이둔(利鈍)과 영욕과 득실에 있어서는 하늘이 정한 것이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닌데 그 무엇을 근심하겠소?”
家難
自予得罪。竄逐南荒。毀謗蜂起。口舌譸張。禍且不測。室家慞惶。使謂予曰。卿於平日。讀書孜孜。朝饔暮飧。卿不得知。室如懸磬。甔石無資。幼稚盈堂。呼寒啼飢。予主中饋。取具隨時。謂卿篤學。立身揚名。爲妻子之仰賴。作門戶之光榮。竟觸憲網。名辱迹削。身竄炎方。呼吸瘴毒。兄弟顚踣。家門蕩柝。爲世戮笑。至於此極。賢人君子。固如是乎。予以書復。子言誠然。我有朋友。情逾弟昆。見我之敗。散如浮雲。彼不我憂。以勢非恩。夫婦之道。一醮終身。子之責我。愛非惡焉。且婦事夫。猶臣事君。此理無妄。同得乎天。子憂其家。我憂其國。豈有他哉。各盡其職而已矣。若夫成敗利鈍。榮辱得失。天也。非人也。其何恤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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