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279)정도전 삼봉집 제4권 / 제발(題跋) /이목은이 자허를 전송한 시서의 권후제[李牧隱送子虛詩序卷後題]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24. 07:00

이목은이 자허를 전송한 시서의 권후제[李牧隱送子虛詩序卷後題]

 

【안】자허(子虛)는 박의중(朴宜中)의 자, 호는 정재(貞齋)임.

 

도전(道傳)이 목은(牧隱) 선생께서 자허(子虛)를 전송한 시서(詩序)를 받들어 보았는데, 거기에 자허를 일컫기를 면밀하고 정절(精切)하여 털끝만큼도 미진함이 있으면 빠뜨리고 얻지 못하는 것같이 하였다. 그리고 그는 일찍이 세 번씩 ‘하늘의 명(命)은 아! 심원(深遠)하여 그치지 않는다.’라고 반복했다 하였다.

이것은 도체(道體)의 미묘함이다. 천지에 충만하고 고금에 관철되어 그 유행(流行)과 발현(發見)이 한 번 숨쉬는 사이도 끊어짐이 없는 것인데, 사람에게 있어서는 마음속이 허령불매(虛靈不昧)하여 이 도의 체(體)가 아닌 것이 없어서 천지와 더불어 주류(周流)하여 쉬는 일이 없다. 오직 이 기질(氣質)이 편벽함이 있고 물욕에 가린 바가 되어서 이 심령(心靈)이 조사(操捨)하고 수방(收放)할 때가 없을 수 없다. 그리하여 내 마음에 근본하고 있는 도가 일상 행사에 나타나는 것이 때에 따라 어둡고 밝고 끊어지고 이어지는 기미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마음은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털끝만큼이라도 미진함이 있어 천명(天命)의 유행이 막힐까 하여 한 가지 행동이라도 감히 만홀하게 하지 않는다. 이것이 천명의 유행함[天行]에 화협하는 바이며, 한 번 숨쉬는 사이라도 감히 게을리하지 않는데 이는 천시(天時)에 순응하는 것이다. 학자가 여기에 이르려면 어찌 딴 것이 있겠는가? 또한 털끝만큼이라도 다하지 못함이 있으면 무엇을 빠뜨리고 마음에 얻지 못하는 것같이 할 뿐이다. 이 마음을 채워서 넓히면 보고 듣기에 앞서서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은미한 곳이나 홀로 처해 있을 때에 근신하기를 스스로 그만둘 수가 없어서 일상 생활을 하는 사이에 참으로 천리(天理)가 유행하여 과연 한 털끝만큼의 미진함도 없음을 볼 것이요, 마음도 역시 허전한 바가 없고 광대 관평(廣大寬平)하여 스스로 형용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또 일찍이 이 도(道)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비록 깊고 어둡고 황홀한 물건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 미묘한 것이므로 범범(泛泛)하게 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이 도가 비록 평상시 일상 생활 사이에 있다고는 하지만 역시 원대한 것이므로 비근(卑近)한 데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오직 고명하고 탁월한 선비로서 깊이 탐구하고 독실히 행하는 자품이 있어야만 이룰 수가 있을 것이며 또한 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 도의 흥하고 쇠하는 것이 인재(人才)에 달려 있고 천하의 인재는 옛부터 얻기가 어렵다 하니 역시 하늘의 하는 바이며 사람이 능히 할 바가 아닌 것이다.

목은 선생께서 우리 도의 맹주(盟主)가 되어 유학(儒學) 흥기시킴을 자기의 임무로 삼아 이에 대해 근심을 한 지가 오래이다. 이제 달가(達可 정몽주(鄭夢周)의 자)를 일컬어 말하기를, ‘호상(豪爽)하고 탁월하다.’ 하였고 자허(子虛)를 일컬어 ‘면밀하고 정절하다.’ 하였으니 이것은 대개 영재(英才) 얻은 것을 즐거워하여 몹시 기뻐한 말이다. 옛사람이 이 유학의 흥하고 쇠하는 것을 일찍이 하늘에 미루지 않을 수 없었는데 사람 얻기가 어려워서이다. 이제 두 사람이 목은 선생을 만난 것도 하늘의 뜻이며 선생이 두 사람을 얻은 것 또한 하늘의 뜻이다.

선생이 말하기를, ‘유학의 진흥에 자허(子虛)가 이미 그 처음에 참여하였으니 마땅히 자허와 더불어 끝마칠 것이다. 이것도 하늘이 시킨 것이니 우리 몇 사람은 하늘의 명을 들을 뿐이다.’ 하였으니, 이것은 그 기뻐하는 바가 심히 지극한 것이며 기대하는 것 또한 원대한 것이다. 그대 두 사람은 힘쓸지어다.

 

 

李牧隱送子虛詩序卷後題 按子虛。朴宜中字。號貞齋。

 

道傳奉閱牧隱先生送子虛詩序。至其稱子虛曰。縝密精切。一毫不盡。欿然如不得。未嘗不一日三復曰。維天之命。於穆不已。是其道體之妙。充塞天地。貫徹古今。其所以流行發見者。無一息之間斷。而在於人。則方寸之間。虛靈不昧。莫非此道之體。與天地周流而無間。惟是氣質有偏。物欲爲蔽。此心之靈。不能無操捨收放之時。而道之本於吾心。見諸日用之間者。於是乎有晦明絶續之幾也。是以。君子之心。兢兢業業。惟恐一毫之未盡。而窒天命之流行。無一動之敢慢。所以協天行也。無一息之敢怠。所以順天時也。學者而求至於此。豈有他哉。亦存一毫不盡。欿然如不得之心耳。充是心而廣之。則其戒懼乎不覩不聞之前。致謹乎隱微幽獨之際者。自不容已。日用之間。眞有以見天理之流行果無一毫之不盡。而心亦無所欿然。廣大寬平。自有不可形容之樂矣。抑嘗竊念是道也。雖非窈冥怳惚之物。而其所以爲微妙者。不可以泛濫求也。雖在平常日用之間。而其所以遠大者。亦不可以卑近得也。唯其高明卓絶之士。潛深篤至之資。然後可與有爲而亦有所達矣。是吾道之興喪。在於人才。而天下之才。自古以爲難。天也。非人之所能爲也。牧隱先生主盟吾道。以興起斯文爲己任。有憂於此。其亦久矣。今稱達可則曰豪爽卓越。子虛則曰縝密精切。蓋赤樂得英才。深喜之之辭也。古人於斯文之興喪。未嘗不推之於天。而以得人爲難。今二子之遇先生。天也。先生之得二子。亦天也。先生曰。斯文之興。子虛旣與其始。當與子虛終之。是天也。吾數人者。聽命於天而已。此其所喜者甚至。而所期者赤遠矣。二子勉矣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