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280)정도전 삼봉집 제4권 / 제발(題跋) /동정의 도시 후서를 읽음[讀東亭陶詩後序] 금남잡제(錦南雜題)임.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24. 07:01

동정의 도시 후서를 읽음[讀東亭陶詩後序] 금남잡제(錦南雜題)임.

 

진(晋)나라로부터 지금까지 1천여 년이 지났으나 세상에서 도연명(陶淵明)의 사람됨을 즐겨 일컫는다. 나는 그 시대를 논하고 그 시를 외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남ㆍ북으로 분열되었던 시기이다. 난리가 서로 계속되어 백성은 편안할 날이 없었으며, 내란(內亂)이 일어나서 국가가 장차 기울어지게 되었으니 그때야말로 의사(義士)ㆍ지사(志士)들이 일을 할 때인데 도연명은 전원(田園)으로 돌아갔다. 그 시를 보아도 걸식(乞食)ㆍ빈사(貧士)ㆍ원시(怨詩)ㆍ음주(飮酒) 등의 편(篇)으로 다만 시달리고 무료함을 이겨내지 못하여 짐짓 술에 의탁해서 세월을 보냈을 뿐인데, 후세에 이처럼 칭찬을 받는 것은 무엇 때문에 그렇단 말인가?

두자미(杜子美)는 그의 시에서,

 

도잠은 세상을 피한 늙은이지 / 陶潛避世翁

도에 통달하지는 못하였네 / 未必能達道

그가 지은 시집을 읽어 보니 / 觀其著詩集

너무 건조함이 한이네 / 頗亦恨枯槁

 

라고 했으며, 한퇴지(韓退之)는 취향기(醉鄕記)를 읽고서, ‘완적(阮籍)과 도잠(陶潛)은 그 마음을 화평하게 갖지 못하여 혹은 사물(事物)과 시비(是非)가 서로 감동되어 발하자 이에 의탁하고 세상을 도피한 것이다.’고 하였다.

 

이 두 분은 세상에서 이름 있는 선비이니 응당 인물을 잘 논할 것인데, 그 말이 이러하니 나의 의혹이 더욱 심했다. 그런데 지금 동정(東亭) 선생의 도시 후서(陶詩後序)를 얻어 읽으니, 거기에, ‘춥고 배고픈 고통에 시달리건만 유연(悠然)한 즐거움이 있었으며, 술에 만취되어 세상을 몰랐지만 초연(超然)한 절조가 있다.’고 하였다. 이 대문을 읽고 나도 모르게 탄식하기를, ‘이것이 곧 도연명이 된 까닭이다. 그와 1천 년이 떨어져 있는데도 그 말소리를 듣는 듯하며 그 얼굴을 보는 듯하였다. 그 춥고 배고픈 고통에 시달리고 술에 만취되어 세상을 모르는 것은 형적이며 외적인 것이고, 유연한 즐거움과 초연한 절개는 마음이며 내적인 것이니, 외적인 것은 보기 쉬우나 내적인 것은 알기가 어려워 후학(後學)들이 그 울타리 안을 엿볼 수 없는 것이다. 앞에서 두자미와 한퇴지가 말한 것은 특히 가탁해서 말했을 뿐이다.’라고 하니, 선생은 이르기를, ‘그렇지 않다. 도연명은 아주 말세에 태어나서 그 세대의 어찌할 수 없음을 알고서 높게 걷고 멀리 보며 형문(衡門)ㆍ모옥(茅屋)에서 참[眞]을 길렀다. 그래서 벼슬을 티끌처럼 보고 만종(萬鍾)의 녹(祿)도 푼돈으로 보았으며, 비록 의식이 넉넉하지 못하더라도 유연하게 즐기어 그 근심을 잊었던 것이다. 그 후 종국(宗國)이 멸망하고 세대가 바뀌자 온 세상 사람이 서로 초빙되어 벼슬길에 나갔지만 우리 연명 선생만은 그렇지 않았다. 본조(本朝)를 그리는 마음이 청천의 백일 같아서 두 성(姓)을 섬기지 않고 시와 술 가운데에 숨어 있었으니, 그 높은 풍도와 훌륭한 절개는 늠름한 추상(秋霜)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시대에 있어서도 근심에 당하면 근심의 시를 짓고, 기쁨에 당하면 기쁨의 시를 짓고, 술마시는 데 당하면 술마시는 시를 지었다. 그의 시에,

 

긴긴 여름날 배고픔 안고 있고 / 夏日長抱飢

싸늘한 겨울 밤 이불 없이 잠을 자네 / 寒夜無被眠

 

라고 하였으니 춥고 배고픔의 고통이 어떠하였겠는가? 그리고,

 

동쪽 마루 아래에서 마음껏 떠들어 보니 / 嘯傲東軒下

애오라지 다시금 삶을 알았구나 / 聊復得此生

 

라고 하였으니 그 유연한 즐거움이 또 어떠하였는가? 또,

 

수수방아 찧어서 좋은 술 빚고 / 舂秫作美酒

술 익으면 나혼자 따라 마시네 / 酒熟吾自斟

 

 

라고 한 것이나,

 

아침에 인의로 살면 / 朝與仁義生

저녁에 죽어도 다시 무엇 구하리 / 夕死復何求

 

라고 하였으니, 이 어찌 술에 취한 가운데서도 초연한 절개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개 도연명의 즐거움은 춥고 배고픔 밖에 있지 않으며 그 절개 역시 술 취한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도연명이 만종의 녹을 의롭지 않다 하고 전원(田園)을 달게 여긴 것은, 춥고 배고픔을 즐거움으로 삼았기 때문이며 술에 의탁해서 끝내 그 지조를 지켰으니 취한 것이 곧 절개가 되었다. 그러니 내외로 나눠 달리 볼 수는 없다 하겠다.’ 했다. 도전은 ‘알겠습니다.’ 하고 물러나와 이 글을 쓴다.

 

 

讀東亭陶詩後序 錦南雜題

 

自晉至今千有餘年。世喜稱淵明爲人。予以爲論其世誦其詩。則其人可知。當南北分裂之際。干戈相尋。民無寧日。內亂將作。王室將傾。此義人志士有爲之時。而淵明則歸去田園而已。及觀其詩乞食,貧士怨詩飮酒等篇。但不勝其憔悴無聊。姑託酒以遣耳。得稱於後世者如此。何歟。杜子美曰。陶潛避世翁。未必能達道。觀其著詩集。頗赤恨枯槁。韓退之讀醉鄕記。以爲阮籍,陶潛。猶未能平其心。或爲事物是非相感發。於是有所託而逃焉者也。二子爲世名儒。善論人物。而其言如彼。則予之惑滋甚。今得東亭先生陶詩後序。曰憔悴於飢寒之苦。而有悠然之樂。沈冥於麴糱之昏。而有超然之節。伏以讀之。不覺歎息曰。噫。此所以爲淵明也。雖去千載之遠。如聞其謦欬而接見其容儀也。且其憔悴於飢寒之苦。沈冥於麴糱之昏者。迹也外也。有悠然之樂。超然之節者。心也內也。在外者易見。在內者難知。宜後學未能窺其藩籬也。向者韓,杜之言。特託而言之耳。先生曰。不然也。淵明生於衰叔之世。知其時之不可爲。高蹈遠引。養眞衡茅之下。塵視軒冕。銖看萬鍾。雖衣食不給。而悠然樂以忘其憂。及乎宗國旣滅。世代遷易。一時之輩相招仕進。若吾淵明則不然。拳拳本朝之心。如靑天白日。不事二姓。隱於詩酒之中。其高風峻節。凜乎秋霜之烈。不足此也。至於其詩。當憂則憂。當喜則喜。當飮酒則飮酒。其曰。夏日長抱飢。寒夜無被眠。則其飢寒之苦。爲如何哉。笑傲東軒下。聊復得此生。則其悠然之樂。又如何也。其曰。舂秫作美酒。酒熟吾自斟。又曰。朝與仁義生。夕死復何求。豈非於沈冥之中而有超然之節乎。蓋淵明之樂。不出飢寒之外。而其節亦在沈冥之中也。何也。知淵明不義萬鍾之祿。甘於畎畝之中。則飢寒乃所以爲樂也。託於麴糱。終守其志。則沈冥乃所以爲節也。不可以內外異觀也。道傳曰。命之矣。退而書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