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281)정도전 삼봉집 제4권 / 제발(題跋) /난파의 사영축 끝에 씀[題蘭坡四詠軸末]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24. 07:02

난파의 사영축 끝에 씀[題蘭坡四詠軸末]

 

【안】 난파(蘭坡)는 청천백(淸川伯) 이거인(李居仁)의 자호(自號)임.

 

내가 송경(松京)에 있을 적에 날마다 선생의 집에 갔는데 좌우에 다른 물건은 없었고 오직 거문고와 책상만이 있었으며, 옆에는 작은 화분이 있어 송(松)ㆍ죽(竹)ㆍ매(梅)ㆍ난(蘭)을 그 속에 심고 그를 완상하며 즐겼다.

나는 생각하기를, 세속의 사람들은 송죽과 매란에 있어서 다만 그 푸르름만 볼 뿐이며 곱고 아름다운 것만을 볼 뿐이다. 또한 그 묘함이 마음에 합하는 것을 아는 이가 있겠는가? 바야흐로 서리와 눈[雪]이 하늘을 가리고 한여름 불구름이 공중에서 이글거릴 때에 울창한 저 송죽이 정연(挺然 빼어난 모양)히 홀로 빼어난 것은 양덕(陽德)이 모인 바요, 얼음이 깔린 언덕에 돌은 갈라지고 모든 화초는 씻은 듯이 없어졌는데, 매화가 그때에 비로소 피어나 망울져 향기로움은 봄 뜻이 넘치는 것이요, 이슬 내린 새벽과 달 뜬 저녁에 그 향기가 향긋하게 코끝을 찌르니, 이것은 난초의 됨됨이 많은 양기(陽氣)를 타고 났기 때문인데 그 꽃다웁고 향긋한 덕은 군자에게 비할 만한 것이다.

대개 양(陽)이란 원(原 원(元)자와 통함)의 통(通)으로서 천지의 생장하는 뜻이다. 그리하여 초목과 같은 미세한 물건이라도 그 생(生)의 의사와 발육에 대해서는 이 마음의 생생(生生 물건이 끊임없이 생기는 모양)하는 이치와 더불어 두루 유행하며 간단이 없으니, 선생의 즐기는 것도 여기에서 얻은 것이리라. 선생이 초목에 대해서 이처럼 독실히 사랑하고 부지런히 기르는데 더구나 사람은 동류(同類)로 지극히 귀한 존재임에랴? 그리고 뜻이 같고 기(氣)가 합하기를 구름이 용을 좇는 것과 같은 자임에랴?

지금 선생이 경상도에 관찰사로 나가는데, 이 마음을 미루어 넓혀서 장차 백성들로 하여금 그 생(生)의 즐거움을 이루게 하여 백성들이 즐기기를 마치 초목이 철에 맞는 비를 얻어 무성한 것과 같을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題蘭坡四詠軸末 按蘭坡。淸川伯李居仁自號。

 

予在松京。日詣先生之室。左右無他物。惟琴書在床。傍置小盆。植松竹梅蘭於其中。翫而樂之。予惟世俗之於松竹於梅蘭。但見其蒼蒼而已。粲粲猗猗而已。亦知其妙有會於此心者乎。方其霜雪霾天。火雲爍空。鬱彼松竹。挺然獨秀。陽德所鍾也。氷崖石裂。衆卉掃地。梅萼始敷。盈盈馥馥。春意之盎然也。至若露曉月夕。有香泠然。觸于鼻端。是則蘭之爲物。稟陽氣之多。而其馨香之德。可比於君子者也。蓋陽者原之通。天地之生意也。草木雖微。生意發育。與此心生生之理。周流無間。先生之樂。其有得於此乎。先生之於草木。愛之篤而養之勤如此。況人與我同類而至貴者乎。況志同氣合。如雲之從龍者乎。今玆觀察于慶尙也。推是心而廣之。將使斯民遂其有生之樂。煕煕然如草木之得時雨也無疑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