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287)정도전 삼봉집 제4권 / 제발(題跋) /정침전(鄭沈傳) 이는 금남잡제(錦南雜題)임.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24. 07:08

정침전(鄭沈傳) 이는 금남잡제(錦南雜題)임.

 

정침(鄭沈)은 나주(羅州) 사람이다. 그 고을에서 벼슬하여 호장(戶長)을 지냈는데 말달리기와 활쏘기를 잘하고 집안 살림살이는 일삼지 않았다.

홍무(洪武) 4년(1371, 공민왕20) 봄에 전라도 안렴사(按廉使)의 명으로 제주(濟州)의 산천에 제사지내는 축문(祝文)과 폐백을 받들고 바다를 건너가다가 왜적(倭賊)과 서로 만났다.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배 안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서 의논하여 그들에게 항복하려 하는데 정침만은 불가하다고 여겨 그들과 싸우기를 결심하고 적을 쏘아대니, 적은 활시위 소리에 따라 거꾸러지고 감히 다가오지를 못했다. 그러나 화살이 떨어져서 일이 모면되지 못할 것을 알고 관복과 홀(笏)을 갖추고서 바르게 앉아 있었다. 그러자 적은 놀라며 말하기를, ‘저 사람은 벼슬아치다.’ 하고는 서로 경계하여 감히 해치지 못하였는데, 정침은 스스로 물에 빠져 죽었다. 배 안의 사람은 모두 적에게 항복하고 죽은 사람은 정침뿐이었다. 그 동리 사람들은 모두 그 불행하게 죽은 것을 애석하게 생각했으나 그가 스스로 죽은 데 대해서는 어리석게 여겼다.

정 선생(鄭先生 정도전 자신을 이름)이 이를 듣고서 슬프게 여겨 전(傳)을 짓고, 또 말하기를, ‘아! 죽고 사는 것은 진실로 큰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이따금 죽음 보기를 돌아가는 것처럼 여기는 자가 있는데 이는 의리와 이름을 위해서이다. 저 자중하는 선비들이 그 의리가 죽을 만한 곳을 당하면 아무리 끓는 가만솥이 앞에 있고 칼과 톱이 뒤에 설치되었으며, 화살과 돌이 위에서 쏟아지고 흰 칼날이 아래에 서리고 있을지라도 거기에 부딪치기를 사양하지 아니하고 내딛기를 피하려 하지 않는 것은 어찌 의를 중하게 여기고 죽음을 가볍게 여김이 아니겠는가? 과연 글 잘하는 사람이 뒤에 이것을 서술하여 서책에 나타난다면, 그 영웅스러운 명성과 의열(義烈)이 사람들의 이목에 밝게 비치고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것이니, 그 사람은 비록 죽었으나 죽지 않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 번 죽는 것을 달게 여기고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 정침의 죽음에 있어서는 국가에서 알지도 못하고 글 잘하는 사람이 그를 위하여 기록해서 후세에 전하지도 않으니, 정침의 충의는 물결과 같이 흘러가고 말 것이다. 아! 슬픈 일이다.

그리고 자로(子路) 같은 어진 사람으로서도 갓끈을 바로 매고 죽은 것[結纓]에 대하여 사람들이 어려운 일이라고 했는데, 정침은 한낱 시골의 아전 신분으로, 적에게 항복하는 것이 의가 아님을 알았으며, 아무리 다급한 가운데서라도 그 바른 자세를 잃지 않고 정장을 갖추고 죽음을 기다려서 적이 무서워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으니, 그 충성되고 씩씩한 기백이 흉악한 그들의 마음을 감복시켜서였다. 적이 이미 해치지 못하자 자살을 결단하여 헤아릴 수 없는 깊은 물에 몸을 던져 털끝만큼의 더럽힘도 없이 조용하게 의열을 이루었으니, 강개롭게 몸을 희생한 것은 옛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는 모두가 천품의 아름다움에서 나온 것이므로, 이름을 좋아하는 선비가 목적한 바가 있어서 한 것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그 충의의 열렬함이 이러한데도 세상에 아는 자가 없어서, 같은 고향 사람까지도 그 어리석게 죽었다고 애석해할 뿐이다. 아! 사람이 정말 죽음이 없다면 사람의 도리는 벌써 없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적이 항복하기를 협박할 때에 충신이 죽음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 충의를 보전하겠으며, 강포한 자가 핍박할 적에 열녀가 죽음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의 정조를 보전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난처한 사태를 당하여 그 바른 길을 잃지 않는 것은 다행히도 한 번 죽는다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을 말한다면, 왜구의 걱정이 30년이 가까워서, 양반집의 자녀들도 많이 그들에게 포로가 되면 노예와 첩(妾) 노릇을 달갑게 여기고 사양하지 아니하며, 심지어는 그들을 위해 첩자가 되어 길을 인도하기까지 한다. 그들의 소위는 개돼지만 못한데도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정침의 죽음과 비교해 보면 과연 어떻다고 하겠는가?

그리고, 평소에는 다른 사람의 의로운 처사를 들으면 스스로 흥분하고 격려되어서 만분의 일이라도 본받기를 생각하다가도, 하루 아침에 그러한 변괴를 직접 당하게 되면 겁을 내고 두려워하여 이해관계에 뜻을 빼앗기고 살기 위해서 의리를 저버리는 자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그의 죽음이 의롭다는 것을 모르고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의롭게 죽은 것이 민멸되고 전하지 않는 일들은 기가 막힌다. 아! 하기 어려운 조행이 있는데도 성명이 알려지지 않으며, 또 세속 사람들의 조소를 받는 것이 어찌 다만 정침뿐이겠는가? 그래서 이 전(傳)을 쓴다.

 

 

鄭沈傳 錦南雜題

 

鄭沈。羅州人也。仕州爲戶長。善騎射。不事家人生產。洪武四年春。以全羅道按廉使命。奉濟州山川祝幣。航海而去。與倭賊相遇。衆寡不敵。舟中皆懼。議將迎降。沈獨以爲不可。決意與戰。射賊應弦而斃。賊不能逼。及矢竭。沈知事不濟。具袍笏正坐。賊驚謂曰。官人也。相戒莫敢害。沈自投水以死。而舟中人皆降賊。死者唯沈而巳。其鄕人皆惜其死之不幸。而愚其果於自死也。鄭先生聞而悲之。爲之作傳。且曰。嗟乎。死生固大矣。然人往往有視死如歸者。爲義與名也。彼自重之士。當其義之可以死也。雖湯鑊在前。刀鋸在後。矢石注於上。白刃交於下。觸之而不辭。蹈之而不避。豈非義爲重死爲輕歟。果有能言之士述之於後。著在簡編。其英聲義烈。照耀人耳目。聳動人心志。其人雖死。有不死者存焉。故好名之士。甘心一死而不以爲悔。今夫沈之死也。國家不得知。又無能言之士爲之記述以垂於後。則沈之忠義。與水波而俱逝矣。吁可悲也。且以子路之賢。結纓之事。人以爲難。沈一鄕曲吏耳。而知降賊之不義。雖在急迫之時。能不失其正。具盛服待死。賊人見之。凜然莫敢犯。則其忠壯之氣。有以折服頑兇之心矣。賊旣不能害。勇於自裁。投之不測之淵。無一毫汙染。從容就義。慷慨殺身。雖古人不及也。此皆出於天質之美。又非好名之士有所爲而爲者比也。忠義之烈如此。而世無知者。雖在鄕黨。不過惜其死之愚耳。嗚呼。誠使人無死。則人道滅久矣。當寇敵脅降之時。忠臣非死。何以全其義。當彊暴侵逼之時。烈女非死。何以保其節。人遭難處之事。能不失其正者。幸有一死焉耳。以今言之。倭寇作患將三十年于玆。族姓士女。多被虜掠。甘爲僕妾而不辭。甚者爲之行諜指道。視其所爲。曾狗彘之不若。而不以爲愧。無他。畏死故也。其視沈之死。爲如何哉。且在平居之時。聞人行義。常自激昂策勵。思效其萬一。至於一朝親履其變。畏怯恐懼。奪於利害。偸生負義者皆是。況不知其死之爲義而以爲愚乎。況其死泯滅而不傳乎。嗚呼。操行之難而名姓翳然。又爲時俗所侮笑者。豈獨沈哉。此傳所以作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