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291)정도전 삼봉집 제4권 /제문(祭文) /도깨비에게 사과하는 글[謝魑魅文] 서문도 아울러 있음.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24. 07:52

도깨비에게 사과하는 글[謝魑魅文] 서문도 아울러 있음.

 

회진(會津)은 큰 산과 우거진 숲이 많고 바다에 가까우며 사람이 사는 동네는 거의 없다. 그래서 이내[嵐]가 떠오르고 장기(瘴氣)가 스며들어 자주 흐리고 비가 많이 온다. 그 산해(山海)의 음허(陰虛)한 기운과 초목(草木)ㆍ토석(土石)의 정(精)이 스미고 엉켜서 그것이 화하여 이매 망량(魑魅魍魎)이 되는데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며 유(幽)한 물건도 아니고 밝은 물건도 아닌데, 역시 하나의 물(物)이었다.

 

정 선생(鄭先生)이 홀로 방에 앉았는데, 낮은 길고 사람은 없어서 때로는 책을 던지고 문에 나가 뒷짐을 지고 먼 데를 바라본다. 그러면 산천이 얽히고 초목은 서로 접했으며 하늘은 흐리고 들은 어두워서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쓸쓸하였다. 그래서 음기(陰氣)가 사람을 엄습하여 사지가 느릿하다.

이에 집으로 돌아오면 울적한 생각이 들어 마음이 혼란하다. 피곤에 지쳐서 잠자리에 나아가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으면 잠이 든 듯도 하고 들지 않은 듯도 한데, 앞에서 말한 온갖 도깨비들이 서로 빈정거리고 야유(揶揄)가 어떤 본에는 유야(揄揶)로 됨. 탄식하며 홀연히 왔다갔다 하며, 기쁜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하며 웃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는 뛰기도 하고, 부딪치기도 하고 벌떡 눕기도 하고 비스듬히 의지하기도 한다.

선생이 떠드는 것을 싫어하고 또 상서롭지 못함을 미워하여 손을 들어 몰아내면 갔다가 다시 온다. 성이 몹시 나서 큰소리로 외쳤더니 문득 잠이 깼다. 그러자 어떤 본에는 인(因)이 고(固)로 됨. 그 형적이 사라지고 깨끗하게 아무 물건도 없었다. 선생은 신기(神氣)가 떨리고 두려워서 정신이 나간 것같이 여겨지더니, 오래 된 후에 안정되어 정신을 가다듬고 기운을 차려 앉아서 졸았다. 그랬더니 그 물건들이 같은 떼거리를 많이 데리고 와서 앞서 하던 짓과 똑같이 했다.

선생이 말하기를, ‘너는 음물(陰物)이므로 나와 동류(同類)가 아닌데 왜 오는 것이냐? 그리고 왜 슬퍼하며 어째서 기뻐하고 웃는 것이냐?’ 하니, 말이 끝나자, 앞으로 나와 이야기하는 것이 아래와 같았다. ‘큰 도회지나 읍에는 저택들이 서로 바라보고 관개(冠蓋)가 날마다 노니는데 이곳이 사람들이 사는 곳이며, 유음(幽陰)한 곳이나 광막한 들판은 도깨비가 사는 곳입니다. 그러고 보면 당신이 우리에게 온 것이지 우리가 당신에게 간 것이 아니거늘 어찌해서 우리더러 가라 합니까? 뿐만 아니라 당신은 자기의 힘을 헤아리지도 않고 기휘(忌諱)를 범하여 태평 성세에 쫓겨났으니 가소롭지 않습니까? 그대는 또 힘써 배우고 뜻을 두터이하며 바르게 행하고 곧게 나가다가, 끝내는 화를 당하여 귀양을 왔는데도 스스로 밝혀야 할 길이 없으니 또한 슬프지 아니합니까? 우리는 유음(幽陰)한 곳에 엎드려 살고 있어 세상이 알지 못하는데, 당신과 같은 학문이 깊고 넓어서 자질구레한 것까지 모두 궁구한 자를 이렇게 거칠고 먼 지방에서 상종하게 되었으니 이는 기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당신은 평인(平人) 축에도 들지 못하고 멀리 쫓겨나 있으므로 사람들이 당신을 만나면 놀라고 당신과 말하려면 마음이 떨립니다. 그리하여 모두 손을 저으며 돌아서고 팔을 흔들면서 되돌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당신이 오는 것을 좋아하여 같이 놀아주거늘, 지금 동류가 아니라고 배척하니 우리를 버리고서 그 누구와 벗을 한단 말입니까?’

선생이 이에 그 말을 부끄럽게 여기고 그 후의에 감사하여 글로써 사과를 하였는데, 그 글은 아래와 같다.

 

 

산 언덕 바다 모퉁이에 / 山之阿兮海之陬

천기가 음음하고 초목이 우거졌네 / 天氣霪陰兮草木以幽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사는 내가 / 曠無人以獨居兮

너를 버리면 누구와 같이 놀랴 / 舍爾吾誰與遊

아침에 나가 놀고 저녁에 같이 있으며 / 朝出從兮夕共處

노래 부르고 화답도 하고 세월을 보내네 / 或歌以和兮春復秋

이미 시대와 어그러져서 세상을 버렸는데 / 旣違時而棄世兮

또 다시 무엇을 구하랴 / 曷又何求

풀밭에서 춤추며 / 躚躚草莽兮

애오라지 너와 같이 놀리라 / 聊與爾優遊

 

 

謝魑魅文 幷序

 

會津多大山茂林。僻近於海。曠無人居。嵐蒸瘴池。易陰以雨。其山海陰虛之氣。草木土石之精。薰染融結。化而爲魑魅魍魎。非人非鬼。非幽非明。亦一物也。鄭先生獨坐一室。晝永無人。或時投策出門。負手遐觀。則山川糾紛。草木相接。天陰野暝。滿目蕭然。陰氣中人。支體沈困。於是還入其室。煩鬱憒眊。倦極就睡。低頭暝目。若寐非寐。向之所謂魑魅魍魎之屬。相與捓揄 捓揄。一本作揄捓。 嚘嚶。往來欻翕。有若喜者。有若悲者。有若笑者。以跳踉衝冒。偃仆蕩倚。先生厭其煩聒。又惡不祥。擧手驅去。去而復來。不勝其怒。高聲大叫。則忽然而覺。因 一本作固 以形消迹滅。廓爾無物。先生神悸氣恐。如有所喪。久而後定。凝神靜慮。肅氣細息。假寐而坐。復有其物。援明引類。累累而至。若前所爲。先生曰。爾陰物。與我不同類。曷爲而來。且爾曷爲而悲。曷爲而喜笑乎。語訖。若有進而言者曰。通都顯邑。第宅相望。冠蓋日遊。人之所居也。幽陰之墟。荒絶之野。魑魅之所滋也。子來卽我耳。非我卽子也。何以去我。子不量力。觸諱犯忌。見黜明時。玆非可笑歟。力學篤志。徑行直遂。終罹禍謫。無路自明。亦可悲已。伏陰處幽。世莫我知。而子之學。鉤深探賾。無微不窮。而得相從於荒陬裔壤之中。是則可喜也。且子不得齒於平人。見放在遠。遇子者目動。語子者心怵。皆搖手却立。掉臂背行。惟我等喜子之來。與之從遊。今以非類斥之。舍我其誰與爲友哉。先生於是愧其言。且厚其意。謝以文辭曰。

山之阿兮海之陬。天氣霪陰兮草木以幽。曠無人以獨居兮。舍爾吾誰與遊。朝出從兮夕共處。或歌以和兮春復秋。旣違時而棄世兮。曷又何求。躚躚草莽兮。聊與爾優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