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293)정도전 삼봉집 제4권 /책제(策題) /회시책(會試策)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24. 07:54

회시책(會試策)

 

묻는다. 예부터 선치(善治)의 방법을 말하는 자는 반드시 성법(成法)이 있어서 지수(持守)의 도구를 삼는다고 한다. 국맥(國脈)을 기르고 인심을 착하게 하며 나라의 복조(福祚)를 누대에 전하는 까닭이 모두 여기에서 말미암으니 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상고하건대, 유우(有虞)는 질종(秩宗)이 예(禮)를 맡고 사사(士師)가 형(刑)을 밝혔으며, 주 나라[成周]는 종백(宗伯)이 예를 맡고 사구(司寇)가 형을 맡아서 화락하고 태평한 정치를 이루었는데, 그에 대해 상세히 말할 것이며, 그 관직을 임명한 것이 같고 그 직책을 배열한 것도 같으니 예와 형이 과연 경중이 없는 것일까?

한(漢)에 이르러 숙손통(叔孫通)이 예를 제정하고 소하(蕭何)는 율(律)을 제정하였는데, 그들은 무엇을 근본으로 하였는가? 면체(緜蕞)1)의 의식을 식자들은 기롱하고 획일(畫一)의 법은 청정 영일(淸淨寧一)2)의 효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당태종(唐太宗)은 《정관예서(貞觀禮書)》를 지어 중외(中外)에 반포하고, 또 다스림을 ‘덕으로 하고 형으로 하지 않는다.’라는 설(說)을 하여 정관(貞觀 당태종(唐太宗)의 연호)의 태평 성치를 이루었으니 이로 보면 한(漢)의 정치는 형법(刑法)에 근본하였고, 당(唐)의 정치는 덕과 예에 근본하였거늘, 선유(先儒)들이 ‘한의 대강(大綱)은 바르고 당(唐)의 대강은 바르지 않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덕과 예가 대강이 아니란 말인가?

삼가 생각하건대, 주상 전하는 총명한 덕과 용감하고 지혜로운 자질로써 하늘과 사람에게 순응하여, 일찍이 큰 터전을 만들어서 세력과 지위가 높다고 여기지 아니하고 언제나 온화하고 엄숙한 인품이며 인자하고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지니고 있으므로 예를 삼가고 형벌을 불쌍히 여기는 근본이 여기에서 선 것이다.

그리하여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고금의 예전(禮典)을 상고하여 그를 손익(損益)하고, 조정에서 반포하는 법률을 번역하여 백성들을 깨우치니 예가 정해졌다 하겠고 형벌이 밝다고 할 만하다.

그런데도 그 상제(喪祭)의 제도가 과연 선왕의 옛 제도에 합치되어, 음사(淫祀)3)ㆍ부도(浮屠 중)의 영향이 섞이지 않았는가? 그 군례(軍禮)를 제정함에 있어서도 과연 장수를 기르고 군사를 가르치는 법에 합당하여 무비(武備)가 해이한 데에 이르지나 않았는가? 또 연향(宴享)에 있어서는 녹명(鹿鳴)의 화락한 뜻4)을 얻었으며, 혼인에 있어서는 부원 후별(附遠厚別)5)의 의의를 얻어서 습속(習俗)의 더러움이 없는가? 탐욕을 그치게 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폭란(暴亂)을 금하지 않는 것이 아니건만 간사한 짓을 해서 법을 범하는 자가 간혹 있으니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이는 유사가 우리 임금의 뜻을 본받지 못하여, 예와 형법을 문구(文具)로만 다루고 받들어 봉행하기를 철저히 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전조(前朝 고려조)에 문란했던 폐습을 이어받아 그 폐습이 이미 심해져서 쉽사리 고치지 못해서인가?

저 예(禮)로써는 문(文)을 질서 있게 하고 전(典)을 조리 있게 하여, 위로 종묘와 조정에서부터 아래로 여항(閭巷)과 향정(鄕井)에 이르기까지 문(文)으로써 서로 대하고 은혜로써 서로 사랑해야 할 것이며, 저 형으로는 그 분별을 똑바르게 하고 행하는 것을 조리 있게 하되 위로 권세 있는 자도 회피하지 않고 아래로 유약한 자라도 업신여기지 아니하여, 형벌을 쓰지 않는 지경까지 가서 지극히 잘 다스려진 세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방법이 어디에 있는가? 제생들은 체(體)에 밝고 용(用)에 맞는 학문으로써 유사(有司)의 물음을 기다린 지 오래일 것이니 그 모두를 글로 나타내게 하라.

 

[주1]면체(緜蕞) : 야외(野外)에서 예(禮)를 익힐 때, 새끼를 둘러 조정(朝廷)의 표시를 하고 띠[芳]를 묶어 열지어서 관작(官爵)의 고하를 표시하던 일로, 한고조(漢高祖) 때 숙손통(叔孫通)이 제자 1백여 인과 야외에서 실시하였음. 《史記 叔孫通傳》

[주2]획일(畫一)의 법은 청정 영일(淸淨寧一) : 한혜제(漢惠帝) 때 상국(相國)조참(曹參)이 소 하(蕭何)를 이어 정치를 잘하니 백성들이 노래하기를, “소하가 법을 만들되 바르기가 일자(一字)를 그린 듯하더니[畫一] 조참이 이어서 실수 없이 지켜 맑게 행하므로[淸淨] 백성들이 편안하고 한결같다[寧一].”라고 했다. 《史記 曹相國世家》

[주3]음사(淫祀) : 제사를 지낼 만한 곳이 아닌데 참람하게 지내는 제사. 《禮記 曲禮下》

[주4]녹명의 화락한 뜻 : 녹명(鹿鳴)은 《시경》 편명으로, 임금이 여러 빈객들을 연향(宴享)하는 시임. 본래 군신의 사이란 엄경(嚴敬)으로 대하는 것이지만, 엄경만 가지고는 상하의 정이 통하지 못하여 서로 충고할 수가 없으므로 화락하게 연회를 열어 즐긴다는 것이다. 《詩經 小雅 鹿鳴》

[주5]부원후별(附遠厚別) : 혼인에 있어서 타성(他姓)을 택하여 결혼하는 것은 소원(疎遠)한 사람과 결합하여야 혈연 관계의 구분이 엄격하게 된다는 것임. 《禮記》《小學 敬身》

 

會試策

 

問。自古言善治之道者。必有成法以爲持守之具。其所以養國脈淑人心。傳祚累世者。皆由於此。不可不愼也。若稽有虞。秩宗典禮。士師明刑。成周宗伯掌禮。司寇掌刑。以致雍熙隆平之治。其詳可得而言歟。其命官也同。其列職也等。禮與刑果無輕重歟。至漢叔孫通制禮。蕭何定律。亦何所本歟。緜蕞之儀。識者譏之。畫一之法。得淸靜寧壹之效。唐太宗制貞觀禮書。布之中外。又廳任德不任刑之說。有貞觀太平之盛。是漢之治。由於刑法。而唐之治。本於德禮也。先儒曰。漢之大綱正。唐之大綱不正者。何歟。所謂德禮者。非大綱乎。恭惟主上殿下以聰明之德。勇智之資。應天順人。肇造丕基。不以勢位爲高。而常懷雍雍肅肅之敬。慈祥惻怛之念。謹禮恤刑之本。於是乎立矣。爰命攸司。考古今禮典之文而損益之。譯朝廷頒降之律而開曉之。禮可謂定而刑可謂明矣。然其喪祭之制。果合於先王之舊。而無淫祀浮屠之雜歟。其制軍也。果得蓄將敎兵之法。而武備不至於弛歟。謂宴享得鹿鳴和樂之意。婚姻得附遠厚別之義。而無習俗之陋可乎。貪墨非不戢也。暴亂非不禁也。而作姦犯科者或有之。其故何歟。豈有司不體吾君之意。視禮刑爲文具。而奉行之未至歟。抑承前朝紊亂之餘。弊習已甚而未易革歟。伊欲俾斯禮秩秩乎其文。繩繩乎其典。上自宗廟朝廷。下至閭巷鄕井。粲然有文以相接。懽然有恩以相愛。俾斯刑井井乎其可辨也。鑿鑿乎其可行也。上不避乎貴勢。下不陵乎柔弱。期至於無刑。同歸于至治。其道何繇。諸生以明體適用之學。待有司之問久矣。其悉著于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