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292)정도전 삼봉집 제4권 /제문(祭文) /문희공에게 올리는 제문 을축 [祭文僖公文] 남을 대신해서 지음.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24. 07:54

문희공에게 올리는 제문 을축 [祭文僖公文] 남을 대신해서 지음.

 

【안】 문희공은 곧 유숙(柳淑)으로 공의 좌주(座主)임. 유숙의 아들 밀직부사(密直府使) 유실(柳實)을 대신하여 이 글을 지었음.

아아! 아버님은 하늘 같은 덕이 있었건만 보답받지 못하고, 하늘에 사무치는 한이 있었건만 풀지를 못하였으니

 

【안】 공민왕 무신년(1368)에 유숙이 신돈(辛旽)의 죄를 논하다가 장류(杖流)되었는데, 영광군(寧光郡)에서 교살됨.

 

 

불초한 이 자식이 마음 아파 피눈물을 흘립니다. 또 아버님은 행실이 한 세상에 높이 뛰어났건만 기록되지 못하고 공로가 왕실(王室)에 있건만 밝힐 수가 없으니, 불초한 이 자식이 더욱 명교(名敎 인륜(人倫)의 명분을 밝히는 교훈)에 죄를 얻었습니다. 우리 아버님께서는 공민왕[玄陵]이 잠저(潛邸)에 계실 적에 험난한 만리길을 몸소 말고삐를 잡고 갔으며, 공민왕이 정위(定位)되어 동으로 돌아온 뒤에는 조정에 들어가 추기(樞機)의 직무를 장악했으며 유악(帷幄)을 가까이 모셔 조용히 도와서 유익하게 한 바가 많았으며, 변고가 서로 잇다르고 화란이 여러 번 일어났을 적에 위험을 무릅쓰고 마음과 힘을 다하여 어려움을 구제하였으니 이것이 왕실에 공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간질하는 말이 한 번 들어가자 몸을 빼어나와 벼슬을 진흙처럼 보고 봉록을 헌신짝처럼 버리면서 흔연하게 그대로 일생을 마칠 양으로 조금도 말이나 얼굴빛에 나타내지 않았으며, 심지어 죽고 사는 즈음에 이르러서도 확고하여 빼앗을 수 없는 절개가 있었으니 그 행실이 한 세상에 높이 뛰어났다고 할 만한 것입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세월이 훌훌히 지나가서 벌써 18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산소에 지석(誌石)을 새겨 묻게 되었습니다. 불초한 이 자식의 더디고 늦춘 죄가 이것으로써 모면될 수는 없습니다만, 아버님의 행실과 공로가 거의 민몰(泯沒)할 뻔하다가 다시 존재하게 되었으니 어찌 만의 하나 다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좋은 날을 가리어 이 비석을 묻으오니 아버님이시여 앎이 있으시거든 저의 술잔을 흠향하옵소서.

 

祭文僖公文 代人作○按文僖公。卽柳淑。公之座主。代淑之子密直副使實作此文 。○乙丑

 

嗚呼。有昊天之德而不能報。有窮天之憾而不能釋。按恭愍戊申。柳淑論辛旽杖流。旽縊殺于靈光郡。 不肖孤所以痛心而泣血也。而又行高於一世而不能紀。功在於王室而不能白。則不肖孤尤得罪於名敎也。惟我先考。當玄陵潛邸之日。間關萬里。身負羈絏。及王定位。東還于國。入掌樞機。昵侍帷幄。從容參贊。多所裨益。變故相仍。禍亂屢作。不避危險。苦心焦力。以濟艱難。此功在王室者也。間言一入。抽身而出。泥塗其軒冕。弊屣其爵祿。欣然若將終身。無纖芥之形於辭色。至於死生之際。確乎有不可奪之節。其行可謂高於一世矣。自先考之逝。日月倏忽。至十有八年之久。而誌墓之石始刻。不肖孤稽緩之罪。不以是而免也。而先考之行之功。幾泯而復存。豈非幸之萬一哉。卜于吉日。埋此碑石。先考有知。歆我明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