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299)정도전 삼봉집 제5권 / 불씨잡변(佛氏雜辨) /불씨 인과의 변[佛氏因果之辨]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24. 08:00

불씨 인과의 변[佛氏因果之辨]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자네의 불씨의 윤회설에 대한 변증(辨證)은 지극하다마는, 자네의 말에, ‘사람과 만물이 모두 음양오행의 기(氣)를 얻어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 어리석은 사람, 어진 사람, 불초(不肖)한 사람,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 귀한 사람, 천한 사람, 장수(長壽)하는 사람, 요절(夭絶)하는 사람 등이 같지 않으며, 동물의 경우에는, 어떤 것은 사람에게 길들여져 실컷 부림을 받고 드디어는 죽음을 감수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그물이나 낚시나 주살[弋]의 해(害)를 면치 못하기도 하고, 크고 작고 강하고 약한 것들이 저희끼리 서로 잡아먹기도 하니, 하늘이 만물을 냄에 있어 하나 하나 부여해 준 것이 어찌 이렇게도 치우쳐 고르지 못하단 말인가? 이렇게 보면 석씨(釋氏)의 이른바 ‘살아 있을 때 착한 일을 하였거나 악한 일을 한 것에 모두 보응(報應)이 있다.’는 것이 과연 그렇지 아니한가? 또 살아 있을 때 착한 일을 하거나 악한 일을 하는 것을 인(因)이라 하고, 다른 날에 보응을 받는 것을 과(果)라고 하였으니, 이 말 또한 근거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면, 나는 이에 대답하기를,

 

“사람과 만물의 생생(生生)하는 이치를 앞에서 자세히 논(論)하였으니, 이를 이해한다면 윤회설은 저절로 변명(辨明)될 것이요, 윤회설이 변명되면 인과설(因果說)은 변명하지 않아도 자명(自明)해진다. 그러나 이미 질문이 나왔으니 내 어찌 근본적으로 다시 말하지 않으랴? ‘저 이른바 음양오행이라고 하는 것은 엇바뀌어 운행되며, 서로 드나들어 가지런하지 않다[參差不齊]. 그러므로 그 기(氣)의 통(通)함과 막힘[塞], 치우침[偏]과 바름[正], 맑음[淸]과 흐림[濁], 두꺼움[厚]과 얇음[薄], 높고 낮음, 길고 짧음의 차이가 있다. 그리하여 사람과 만물이 생겨날 때에 마침 그때를 만나 바름과 통함을 얻은 것은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힘을 얻은 것은 물(物)이 된다. 사람과 물의 귀하고 천함이 여기에서 나눠지는 것이다.

또 사람에게 있어서도 그 기(氣)의 맑은 것을 얻은 사람은 지혜롭고 어질며, 흐린 것을 얻은 사람은 어리석고 불초하며, 두꺼운 것을 얻은 사람은 부자가 되고, 엷은 것을 얻은 사람은 가난하고, 높은 것을 얻은 사람은 귀하게 되고, 낮은 것을 얻은 사람은 천하게 되고, 긴 것을 얻은 사람은 장수(長壽)하게 되고, 짧은 것을 얻은 사람은 요절(夭折)하게 되는 법이니, 이것이 대략이다. 물(物)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기린ㆍ용ㆍ봉(鳳)의 신령함이나, 호랑(虎狼)ㆍ독사의 독(毒)함이나, 춘(椿)ㆍ계(桂)ㆍ지(芝)ㆍ난(蘭)의 상서로움이나, 오훼(烏喙 맛이 쓴 독약의 일종)ㆍ씀바귀의 씀과 같은 것은 모두 치우치고 막힌 가운데에서도 선악(善惡)의 다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가 어떤 의식[意]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주역(周易)》(건괘(乾卦)에 보임)에 이르기를 ‘건(乾)의 도가 변화하여 각각 성명(性命)을 정(定)한다.’ 하였으며, 선유(先儒)가 말한 ‘천도(天道)가 무심(無心)히 만물을 두루[普] 덮는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오늘날의 의술(醫術)이나 점술(占術)은 조그마한 술수[數]이지만, 점치는 사람은 사람의 복(福)이나 화(禍)를 정하는 데 반드시 오행(五行)의 쇠퇴하고 왕성함을 근본으로 추구한다.

‘이 사람은 목명(木命)이니 봄을 맞아서는 왕성하지만 가을을 맞으면 쇠퇴하며 그 용모는 푸르고 길며 그 마음씨는 자비롭고 어질다.’ 하고 ‘이 사람은 금명(金命)이므로 가을에는 길(吉)하나 여름에는 흉(凶)하며 그 용모는 희고 네모나며, 그 마음씨는 강(剛)하고 밝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때로는 수명(水命)을 때로는 화명(火命)을 말하여 해당시키지 않는 것이 없으니, 용모의 추(醜)함이나, 마음의 어리석고 사나움이 모두 오행의 품부(禀賦)가 치우침에 근거[本]한다고 한다.

또 의사가 사람의 병을 진찰할 때에도 반드시 오행이 서로 감응(感應)함에 근본을 추구(推究)한다. ‘아무개의 병은 한증[寒]이니 신수(腎水)의 증세’라 하고 ‘아무개의 병은 온증[溫]이니 심화(心火)의 증세’라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런 유(類)의 것이다. 따라서 약(藥)을 쓸 때에도 그 약 성질의 온(溫)ㆍ양(凉)ㆍ한(寒)ㆍ열(熱)과 그 맛의 산(酸)ㆍ함(醎)ㆍ감(甘)ㆍ고(苦)를 음양오행에 나누어 붙여서 조제(調劑)하면 부합되지 않는 것이 없다. 이는 우리 유가(儒家)의 설에 ‘사람과 만물은 음양오행의 기를 얻어서 태어났다.’는 것이 명백히 증험되는 것이니 의심할 여지도 없는 것이다.

과연 불씨(佛氏)의 설과 같다면 사람의 화복과 질병이 음양오행과는 관계없이 모두 인과(因果)의 보응(報應)에서 나오는 것이 되는데, 어찌하여 우리 유가의 음양오행을 버리고 불씨(佛氏)의 인과보응설을 가지고서 사람의 화복을 정하고 사람의 질병을 진료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느냐? 불씨의 설이 황당하고 오류(誤謬)에 가득차 족히 믿을 수 없음이 이와 같거늘, 그대는 아직도 그 설에 미혹되려는가?”

할 것이다.

이제 지극히 절실하고도 보기 쉬운 예를 들어 비유해 보자.

술이라 하는 것은 국(麴 누룩)과 얼(蘖 엿기름을 넣어 만든 죽)의 많고 적음과, 항아리[甕]의 덜 구워지고 잘 구워짐과, 날씨의 차고 더움과 기간의 오래됨과 가까움이 서로 적당히 어울리면 그 맛이 매우 좋게 된다. 그러나 만일 얼(蘖)이 많으면 맛이 달고, 국(麴)이 많으면 맛이 쓰고, 물이 많으면 맛이 싱겁다. 물과 국(麴)과 얼(蘖)이 모두 적당하게 들어갔다 할지라도 항아리의 덜 구워짐ㆍ잘 구워짐에나, 또는 날씨의 차고 더움이나 기간의 오래됨과 가까움에 서로 어긋나 합해지지 않으면 술맛이 변하게 된다. 그리고 그 맛의 좋고 나쁨에 따라 그 용도도 상(上)ㆍ하(下)로 다르게 되며, 지게미[糟粕] 같은 것은 더러운 땅에 버려져 발길에 채이고 밟히게도 된다. 그런즉, 술의 그 맛있게 되고 맛없게 되는 것과, 상품도 되고 하품도 되는 것과, 쓰이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하는 것, 이 모두가 다 일시적으로 마침 그렇게 되어서 그럴 뿐이니 술을 만드는 데에도 역시 인과의 보응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겠는가? 이 비유는 비록 비근(鄙近)한 것이기는 하지만 극히 명백하여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른바 음양오행의 기는 서로 밀고 엇바뀌어 운행되어서 서로 드나들어 가지런하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과 만물도 만 번 변하여 태어나는 것이니, 그 이치가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성인(聖人)은 가르침을 베풀어, 배우는 사람에게 기질(氣質)을 변화하여 성현(聖賢)에 이르게 하는가 하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에게 쇠망[衰]을 바꾸어 치안(治安)으로 나아가게도 하나니, 이는 성인이 음양의 기(氣)를 들이켜 천지가 만물을 생성(生成)하는 공(功)에 참여하여 돕는 까닭이다. 어찌 불씨(佛氏)의 인과설이 그 가운데에 용납될 수 있을 것인가?

 

 

佛氏因果之辨

或曰。吾子辨佛氏輪廻之說。至矣。子言人物皆得陰陽五行之氣以生。今夫人則有智愚賢不肖。貧富貴賤壽夭之不同。物則有爲人所畜役。勞苦至死而不辭者。有未免網羅釣弋之害。大小強弱之自相食者。天之生物。一賦一與。何其僞而不均如是耶。以此而言釋氏所謂生時所作善惡。皆有報應者。不其然乎。且生時所作善惡。是之謂因。他日報應。是之謂果。此其說。不亦有所據歟。曰。予於上論人物生生之理悉矣。知此則輪廻之說自辨矣。輪廻之說辨。則因果之說。不辨而自明矣。然子旣有問焉。予敢不推本而重言之。夫所謂陰陽五行者。交運迭行。參差不齊。故其氣也有通塞偏正淸濁厚薄高下長短之異焉。而人物之生。適當其時。得其正且通者爲人。得其偏且塞者爲物。人與物之貴賤。於此焉分。又在於人。得其淸者智且賢。得其濁者愚不肖。厚者富而薄者貧。高者貴而下者賤。長者壽而短者夭。此其大略也。雖物亦然。若麒麟龍鳳之爲靈。虎狼蛇虺之爲毒。椿桂芝蘭之爲瑞。烏喙堇茶之爲苦。是皆就於偏塞之中而又有善惡之不同。然皆非有意而爲之。易曰。乾道變化。各定性命。先儒曰。天道無心而普萬物。是也。今夫醫卜。小數也。卜者定人之禍福。必推本於五行之衰旺。至曰。某人以木爲命。當春而旺。當秋而衰。其象貌靑而長。其心慈而仁。某人以金爲命。吉於秋而凶於夏。其象貌白而方。其心剛而明。曰水曰火。莫不皆然。而象貌之醜陋。心識之愚暴。亦皆本於五行稟賦之偏。醫者診人之疾病。又必推本於五行之相感。乃曰。某之病寒。乃腎水之證。某之病溫。乃心火之證之類是也。其命藥也。以其性之溫涼寒熱。味之酸鹹甘苦。分屬陰陽五行而劑之。無不符合。此吾儒之說。以人物之生。爲得於陰陽五行之氣者。明有左驗。無可疑矣。信如佛氏之說。則人之禍福疾病。無與於陰陽五行。而皆出於因果之報應。何無一人捨吾儒所謂陰陽五行。而以佛氏所說因果報應。定人禍福。診人疾病歟。其說荒唐謬誤無足取信如此。子尙惑其說歟。

 

今以至切而易見者比之。酒之爲物也。麴糱之多寡。瓷甕之生熟。日時之寒熱久近適相當。則其味爲甚旨。若糱多則味甘。麴多則味苦。水多則味淡。水與麴糱適相當。而瓷甕之生熟。日時之寒熱久近。相違而不相合。則酒之味有變焉。而隨其味之厚薄。其用亦有上下之異。若其糟粕則委之汚下之地。或有蹴踏之者矣。然則酒之或旨或不旨或上或下或用或棄者。此固適然而爲之耳。亦有所作因果之報應歟。此喩雖淺近鄙俚。亦可謂明且盡矣。所謂陰陽五行之氣。相推迭運。參差不齊。而人物之萬變生焉。其理亦猶是也。聖人設敎。使學者變化氣質。至於聖賢。治國者。轉衰亡而進治安。此聖人所以廻陰陽之氣。以致參贊之功者。佛氏因果之說。豈能行於其間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