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을 물리치는 데 관한 변[闢異端之辨]
요순(堯舜)이 사흉(四凶 요순 때에 죄를 지은 4명의 악한 즉 공공(共工)ㆍ환도(驩兜)ㆍ삼묘(三苗)ㆍ곤(鯀))을 벤 것은 그들이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은 좋게 꾸미면서 명령을 거스르고 종족을 무너뜨리기 때문이었다. 우(禹)도 또한 말하기를,
“……말을 교묘하게 하며 얼굴빛을 좋게 꾸미는 자를 어찌 두려워하랴?”
하였으니, 대개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꾸미는 것은 사람의 본심을 잃게 하며, 명령을 어기고 종족을 무너뜨리는 것은 사람의 일을 망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제거하여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탕(湯 은(殷)왕조의 시조(始祖)다)과 무왕(武王 은(殷)왕조를 무너뜨리고 주(周)왕조를 세운 임금)이 걸(桀 하(夏)왕조 최후의 임금 폭군)ㆍ주(紂 은(殷)왕조의 최후의 임금ㆍ폭군)를 쳐부술 때 탕(湯)은 말하기를,
“나는 상제(上帝)가 두려워 감히 치지 않을 수 없다.”
하고, 무왕(武王)은 말하기를,
“내가 하늘에 순종치 않으면 그 죄가 주(紂)와 같다.”
고 하였으니, 하늘의 명령과 하늘의 토벌은 자기가 사양할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공자도 말씀하기를,
“이단을 깊이 파고들면 해로울 뿐이다.”
라고 하였으니, 해롭다는 한 글자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싹하게 한다.
맹자(孟子)가 호변(好辯)으로 양묵(楊墨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막은 까닭은 양묵의 도(道)를 막지 않으면 성인(聖人)의 도를 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맹자는 양묵을 물리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삼았다. 그의 말에 이르기를,
“능히 양묵을 막을 것을 말하는 사람은 성인의 무리이다.”
고 하면서까지, 그는 사람들이 동조해 주기를 바란 것이 지극하였다. 묵씨(墨氏)는 똑같이 사랑한다[兼愛] 하니, 인(仁)인가 의심되고, 양씨(楊氏)는 자기만을 위한다[爲我] 하니, 의(義)인가 의심되어 그의 해(害)가 아버지도 없고 임금도 없는 데까지 이르므로 맹자가 이를 물리치고자 힘썼던 것이다.
그런데 불씨(佛氏)의 경우는 그 말이 고상하고 미묘하여 성명(性命)ㆍ도덕(道德) 가운데에 출입함으로써 사람을 미혹(迷惑)시킴이 양묵보다 더 심하였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불씨(佛氏)의 말이 더욱 이치[理]에 가까워서 진(眞)을 크게 어지럽힌다.”
고 하였으니, 이것을 이른 것이다.
내 어둡고 용렬하면서도 힘이 부족함을 알지 못하고, 이단을 물리치는 것으로 나의 임무로 삼은 것은 앞서 열거한 여섯 성인과 한 현인의 마음을 계승하고자 함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이단의 설에 미혹되어 모두 빠져 버려 사람의 도가 없어지는 데 이를까 두려워하는 까닭이다.
아아! 난신(亂臣) 적자(賊子)는 사람마다 잡아 죽일 수 있으니, 반드시 사사(士師 형벌을 다스리는 관리)를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며, 사특한 말이 횡류(橫流)하여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리면 사람마다 물리칠 수 있으니 반드시 성현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여러 사람에게 바라는 바이며 아울러 내 스스로 힘쓰는 것이다.
지(識)
도전(道傳)이 틈을 내어 《불씨잡변(佛氏雜辨)》 15편과 《전대사실(前代事實)》 4편을 지었는데 이미 이루어짐에 객(客)이 읽고 말하기를,
“자네가 불씨(佛氏)의 윤회설을 변정(辨正)하는 데 있어 만물이 생생(生生)하는 이치를 인용하여 밝혔는데 그 말이 근사하긴 하나, 불씨의 설에 이르기를,
‘만물 중에 무정물(無情物)은 법계성(法界性)으로부터 왔고, 유정물(有情物)은 여래장(如來藏 진여(眞如)에 섭수(攝受; 마음을 관대히 먹어 받아들임)된다는 것)으로부터 왔다.’
【안】 무정물이란 바위돌이나, 풀ㆍ나무와 같은 것이고, 법계란 무변(無邊)이라는 말과 같으며, 유정물이란 본각(本覺)인 중생심(衆生心)과 모든 불성(佛性)이 본래 여래와 같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대개 혈기(血氣)가 있는 물(物)은 다같이 지각(知覺)이 있고 지각이 있는 물(物)은 다같이 불성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제 자네는 물(物)의 정(情)이 있고 없음을 논하지 않고, 같은 격으로 동일하게 말하니, 헛되이 말만 소비하고 천착(穿鑿)하고 부회(附會)하는 병을 면할 수 없지 않은가?”
하였다. 이에 대답하여,
“아아! 이것이 바로 맹자의 말처럼, 근본(根本)이 두 개이기 때문이다. 또 여기에 기(氣)가 천지 사이에 있는 것은 본시 하나일 뿐인데, 동(動)과 정(靜)이 있어서 음(陰)과 양(陽)이 나누어지고, 변(變)과 합(合)이 있어 오행(五行)이 갖추어지는 것이다.
주자(周子 이름은 돈이(敦頤) 호는 염계(濂溪))가 말하기를 ‘오행(五行)은 하나의 음양이요,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다.’라고 하였다.
대개 동하고 정하고 변하고 합하는 사이에, 그 유행하는 것은 통(通)과 색(塞)과 편(偏)과 정(正)의 다름이 있으니, 그 통함과 정을 얻은 것은 사람이 되고, 그 편과 색을 얻은 것은 물(物)이 되며, 또 편과 색 가운데서도 그 조금 통한 것을 얻은 것은 금수(禽獸)가 되고, 전연 통이 없는 것은 초목이 되나니, 이것이 바로 물(物)이 정(情)이 있고 없는 것으로 나누어진 까닭이다.
주자(周子)가 말하기를 ‘동(動)하되 동함이 없고, 정(靜)하되 정함이 없는 것은 신(神)이니 그 기(氣)가 통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신(神)이라 하는 것이요, 동하면 정함이 없고, 정하면 동함이 없는 것은 물(物)이니 형(形)과 기(氣)에 국한되어 서로 통할 수 없으므로 물(物)이라 하는 것이다.’ 하였다.
대개 동하여 정함이 없는 것은 유정물이란 이름이요, 정하여 동함이 없는 것은 무정물이라 이름이니, 이 또한 물의 정(情)이 있고 없음이 다 이 기(氣) 가운데에서 생기는 것이니, 어찌 둘이라고 할 수 있으랴?
또 사람의 한 몸에도 혼백(魂魄)이나 오장(五臟)이나 귀ㆍ눈ㆍ입ㆍ코ㆍ손ㆍ발 등속과 같은 것은 지각(知覺)과 운동이 있고, 모발ㆍ손톱ㆍ가[齒] 등속은 지각도 운동도 없으니, 그러면 한 몸 가운데에도 또한 정(情)이 있는 부모로부터 온 것과, 정이 없는 부모로부터 온 것이 있으니, 부모가 둘이 있단 말인가?”
하였다. 객(客)이 다시 말하기를,
“자네의 말이 옳기는 하지만, 그러나 여러 가지로 변론한 설이 성명(性命) 도덕(道德)의 묘(妙)와 음양(陰陽) 조화(造化)의 미(微)한 데에 출입하여, 진실로 처음 배우는 선비들도 알지 못할 바가 있는데, 하물며 어리석고 용렬한 아래백성들이랴? 자네 말이 비록 정묘(精妙)하나, 한갓 호변(好辯)한다는 비방(誹謗)이나 얻을 뿐, 저쪽이나 이쪽의 학문에 함께 손(損)도 익(益)도 없을까 봐 나는 염려하며 또 불씨(佛氏)의 설이 비록 황당무계(荒唐無稽)하나, 세속의 이목에 익숙하여 빈말로는 타파(打破)할 수 없을까 봐 염려된다. 하물며 그들의 이른바 방광(放光)의 상서(祥瑞)나 사리(舍利)로써 여러 몸으로 화생한다는 이적(異跡)이 이따금 있음에랴? 이것이 세속에서 감탄하고 이상히 여겨 믿고 복종하는 까닭이다. 자네는 아직도 공박(攻駁)할 말이 있느냐?”
하였다. 다시 대답하여,
“이른바 윤회(輪廻) 등의 변론은 내 이미 다 논(論)하였다. 비록 그 폐(蔽)가 깊어서 갑자기 깨닫게 할 수는 없겠지만, 학문을 좋아하는 한두 사람의 선비라도 내 말로 인하여 돌이켜 구한다면 거의 얻음이 있을 것이니, 이에 다시 덧붙여 말하지 않는다.
방광(放光)이나 사리(舍利)의 일에 대해서 어찌 그 말이 없겠는가마는, 그보다도 이 마음이라는 것은 가장 정(精)하고도 가장 영(靈)한 것인데, 저 불씨(佛氏)의 무리들은 생각의 선ㆍ악ㆍ사ㆍ정(善惡邪正)을 논하지 않은 채, 한 겹을 깎아 버리고 또 한 겹을 깎아 버려 한결같이 수렴(收斂)하니, 대개 마음이란 본래 광명하거니와 정일하기로도 또 이같은지라, 가운데에 쌓아 밖으로 발하는 것 역시 이세(理勢)의 당연한 것이다. 부처의 방광(放光)하는 것이 어찌 족히 괴이(怪異)하랴?
또 하늘이 이 마음을 내어 주심에 그 지극히 신령하고 지극히 밝음으로써 한 몸 가운데의 주인이 되어 여러 이치의 묘(妙)로써 만물을 주재(主宰)케 한 것이요, 아무런 쓸 곳 없이 한갓 만물의 영장만으로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마치 하늘이 불을 만든 것은 본시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인데, 이제 어떤 사람이 불을 재 속에 파묻어, 추운 사람은 따뜻함을 얻지 못하고, 배고픈 사람은 밥을 지을 수 없다면, 비록 불의 열기가 있다 하더라도 재 속에서 발한 것이니, 마침내 무슨 이익이 있으랴? 부처의 방광을 내가 취하지 않는 까닭이 이것이다. 또 불이란 물건은 쓸수록 새로운 것이어서 항상 보존해야 꺼지지 않거늘, 만일 재 속에 파묻어 두기만 하고 때때로 꺼내 보지 않는다면, 처음에 비록 잘 피던 불이라도 마침내 재가 되어 꺼지고야 말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이, 항상 애쓰고 조심하고 염려하는 생각을 간직함으로써 마음의 작용이 죽지 않고 의리(義理)가 생길 수 있는 것인데, 만일 한결같이 수렴(收斂)하여 속에만 둔다면 비록 생동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마르고 사라지고야 말 것이다. 그 이른바 광명한 것이 혼매(昏昧)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리니, 이 또한 알아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형상을 나타내는 데에도 역시 방광(放光)이 있다는 것은, 대개 썩은 풀이나 나무에도 야광(夜光)의 비침이 있거늘 하필 이것만을 의심할건가?
대저 사람에게 사리(舍利)가 있다는 것은 이무기[虵虺]나 조개[蜯蛤]에 구슬[珠]이 있는 것과 같은지라, 개중에는 이른바 선지식(善知識)이라는 사람도 사리(舍利)가 없는 이가 있으니, 이것은 바로 이무기나 조개에도 구슬이 없는 것과 같은 유(類)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사람이 조개에 있는 구슬을 뚫지도 않고 찌지도 않고 그대로 오래두었다가 꺼내보면 여러 개가 더 생긴다.’고 하니, 이것은 생의(生意)가 있는 곳에 자연히 불어나는 이치이다. 사리가 여러 몸으로 나눠지는 것도 이와 같을 뿐이다. 만일에 ‘부처에게 지극한 영(靈)이 있어, 사람의 정성에 감동되어 사리가 나누어진다.’고 한다면 석씨의 무리들이 그 스승의 모발(毛髮)이나 이[齒] 뼈[骨] 따위를 간직할 자가 많이 있을 텐데 어찌 정성껏 그런 물건을 나눠 가질 것을 빌어 청하지 않고 하필이면 사리에서만 몸이 나눠짐을 말했는가? 이것이 곧 물성(物性)이 아니고 무엇이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사리라는 것은 매우 견고한 것이어서 비록 쇠방망이로 쳐도 깨뜨릴 수 없으니 그것이 신령하기 때문이다.’고 한다. 그러나 영양각(羚羊角)을 얻어 한 번만 쳐부수면 가루가 될 것이니 어찌 사리가 쇠에는 신령스러우면서 영양각에는 신령스럽지 못해서 그렇겠는가? 이것은 진실로 물성(物性)이 그렇게 된 것이니 괴이할 것이 없는 것이다.
이제 두 개의 나무를 서로 비비거나 쇠와 돌을 쳐서 불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에 불과하다. 화정(火精)의 구슬을 햇빛에 향하고서 애주(艾炷 쑥으로 만든 심지)에 비치면 훈연(熏然)히 연기가 나면서 활활 불이 피어나니, 이것은 참으로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반짝반짝 조금씩 피지만 마침내는 활활 피어올라 곤륜산(崑崙山)을 불사르고 옥석(玉石)도 태울 수 있으니 뭐가 그리 신기로운가? 이것도 그 물성(物性)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신령스러운 물건이 까마득한 속에 붙어 있다가 사람의 정성에 감동되어 그렇게 하는 것이겠는가?
또 불이 사람에게 유익한 것은 크다. 음식을 익히면 굳은 것도 부드러워지고 온돌에 불을 피우면 찬 것이 따뜻해지고, 약물(藥物)을 끓이면 생것이 익으니 배고픈 것을 배부르게 하고 병든 것을 고칠 수 있으며, 쇠를 녹여 쟁기[耒]를 만들고 도끼[斧]를 만들며, 가마솥[釜鼎]을 만들어 백성들이 쓰는 데 이롭게 하고, 칼과 창과 검극(劒戟)을 만들어 군대가 쓰는 데 위엄있게 하니, 불의 생김의 신묘(神妙)하기가 저 같으며, 불의 용도의 유익(有益)함이 이 같은데, 그대는 모두 중하게 여기지 않는구나. 저 사리라는 것은 추워도 옷이 될 수 없고, 배고파도 먹을 수 없으며, 싸우는 사람이 병기로 삼을 수도 없으며, 병든 사람이 탕약(湯藥)으로 삼을 수도 없으니, 부처의 신령(神靈)함이 있어 한 번 빌어 수천 개를 만들게 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유익됨이 없이 인사(人事)만 폐할 뿐이니, 모두 불이나 물에 던져버려 영원히 근본을 끊어버려야 할 것인데 하물며 다시 공경하게 받들어 귀의(歸依)하랴?
아아! 세상 사람들이 떳떳한 것을 싫어하고 괴이한 것을 좋아하며, 실리(實利)는 버리고 헛된 법을 숭상하기가 이 같으니 한탄스럽지 아니한가?”
하니 객(客)이 문득 절을 하면서 말하기를,
“이제 그대의 말을 듣고, 비로소 유자(儒者)의 말이 바르고 불씨(佛氏)의 말이 그릇됨을 알겠으니, 그대의 말씀은 양웅(楊雄)도 못따르겠다.”
하였다.
이에 책 끝에 이 문답까지 적어서 하나의 논설을 갖춰 두는 바이다.
서(序) [권근(權近)]
내 일찍이 불씨(佛氏)의 설이 세상을 매우 미혹(迷惑)시키는 것을 근심하여 말하기를,
“하늘이 하늘노릇을 하고 사람이 사람노릇을 하는 데에 있어서 유교와 불교의 설이 서로 같지 않다. 역상(曆象)이 있은 뒤로부터 한ㆍ서(寒暑)의 왕래와 일월(日月)의 영휴(盈虧)에는 모두 그 일정한 수(數)가 있어 천만 년을 써도 어긋남이 없는 것은, 하늘이 하늘노릇을 하는 데 정하여진 것이니 불씨의 그 수다하고 고상한 말[須彌說]들이 다 거짓이다. 하늘이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만물을 화생(化生)시키는데, 이른바 음양오행이라는 것은 이(理)도 있고 기(氣)도 있으니, 그 온전한 것을 얻은 것은 사람이 되고, 치우친 것을 얻은 것은 물(物)이 된다. 그러므로 오행의 이치가 사람에게 있어서는 오상(五常)의 성(性)이 되고 그 기(氣)는 오장(五臟)이 되니, 이것이 우리 유가의 설이다.
의원(醫員)이 오행으로써 장맥(臟脈)의 허(虛)와 실(實)을 진찰하여 그 병을 알고, 점치는 사람도 오행으로써 그 운기(運氣)의 쇠퇴하고 왕성함을 미루어 그 명(命)을 알고, 또 천만 년을 써도 다 증험할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은 사람이 사람노릇을 하는 데 정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불씨의 사대설(四大說)은 허망(虛妄)한 것이다. 그 시(始)를 따져 원(原 추구(推究))하여 사람의 태어난 까닭을 알지 못한다면 그 종(終)에 가서 사람의 죽는 까닭을 어찌 알리요? 그러므로 윤회설(輪廻說) 또한 족히 믿을 수 없는 것이니, 내 이러한 이론을 가진 지 오래다.”
하였다.
이제 삼봉(三峯) 선생의 《불씨잡변(佛氏雜辨)》 20편을 보니 그 윤회설(輪廻說)과 오행(五行)에 대한 의ㆍ복(醫卜)의 변론이 가장 명백하게 갖추어졌으며, 그 나머지 변론도 극히 자세하며 절실하고 명백하여 다시 남은 것이 없었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글을 읽어 이치를 밝히고, 개연(慨然)히 배운 바를 행하되, 이단을 물리칠 뜻이 있어 강론(講論)할 때마다 순순(諄諄)히 힘껏 변론함으로써 학자(學者)들도 다 흐뭇하게 청종(聽從)하였다.
일찍이 심기리(心氣理) 3편을 저술하여 우리의 도(道)가 바르고 이단(異端)의 도가 치우침을 밝히었으니, 그 명교(名敎 유교(儒敎)를 말함)에 공(功)이 크다. 성조(聖朝)를 만나 더욱 교화(敎化)를 경륜(經綸)하여, 일대(一代)의 다스림을 일으켰으니 배운 바의 도를 비록 다 행하지는 못하였으나, 역시 어느 정도 행했다 하겠는데, 선생의 마음으로는 오히려 모자라는 듯하여 반드시 그 임금을 요순(堯舜)같이, 그 백성을 요순 때의 백성과 같이 하고자 하였으며, 이단에 이르러서는 더욱 모두 물리쳐서 다 없애지 못함을 자기의 근심으로 삼았다.
무인년(1398, 태조7) 여름에 병으로 며칠 동안 휴가를 얻었을 때에 이 글을 저술하여 나에게 보여 주면서 말하기를,
“불씨(佛氏)의 해가 인륜(人倫)을 헐어 버린지라 앞으로는 반드시 금수(禽獸)를 몰아와서 인류를 멸하는 데까지 이를 것이니, 명교(名敎)를 주장하는 사람으로선 그들을 적으로 삼아 힘써 공격하여야 할 것이오. 일찍이 ‘내 뜻을 얻어 행하게 되면 반드시 말끔히 물리쳐 버리겠다.’고 했었는데 이제 성상(聖上)께서 알아주심을 힘입어, 말을 하면 듣고 계획하면 따르시니 뜻을 얻었다고 하겠는데 아직도 저들을 물리치지 못하였으니, 끝내 물리치지 못할 것만 같소. 그러므로 내가 분을 참지 못해 이 글을 지어 무궁한 후인(後人)들에게 사람마다 다 깨달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오. 이 때문에 비유를 취한 것이 비속하고 자질구레한 것이 많으며, 저들을 함부로 덤비지 못하게 하기 위해 글을 쓰는 데 분격함이 많았소. 그러나 이것을 보면 유교와 불교의 분변을 환히 알 수 있을 것이니, 비록 당장에는 행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후세에 전할 수 있으니 내 죽어도 편안하오.”
하였다. 내가 받아서 읽어보니 모두가 적절한 말씀이어서 싫증이 나지 않았다. 이에 탄식하여 말하기를,
“양묵(楊墨)이 길을 막음에 맹자(孟子)가 말로서 물리쳤는데, 불법(佛法)이 중국에 들어오니 그 폐해가 양묵보다 심하였으므로, 선유(先儒)들이 이따금 그 그릇됨을 변박하였으나 책을 지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당나라의 한퇴지(韓退之 퇴지(退之)는 한유(韓愈)의 자(字)) 같은 재주로도 장적(張籍)ㆍ황보식(皇甫湜)의 무리들이 따라다니며 저서하기를 청했으나, 역시 감히 저서하지 못했거늘, 하물며 그 아랫사람들이랴? 이제 선생께서 이미 힘써 변론하여 당세(當世)를 교화하였고, 또 글을 써서 후세에 전하였으니, 도(道)를 근심하는 생각이 이미 깊고도 넓다. 사람들이 불교에 미혹되는 것이 사생설(死生說)보다 더한 것이 없는데, 선생이 스스로 불교를 물리침으로써 죽어도 편안하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사람들의 그 미혹됨을 버리게 하고자 함이니, 사람들에게 보이는 뜻이 또한 깊고도 간절하도다. 맹자(孟子)는 이르기를 ‘삼성(三聖)의 계통을 잇는다.’고 하였는데, 선생은 또한 맹자를 계승한 분이로다.
장자(張子 장재(張載)를 가리킴)의 이른바 ‘독립하여 두려워하지 않고, 정일(精一)하여 스스로 믿어 남보다 훨씬 뛰어난 재주가 있는 자’라고 한 것이 참으로 선생을 두고 이름이다. 내 참으로 공경하고 감복하여 배우고자 한다.”
하였다. 그러므로 일찍이 말한 것을 글로 써서 질정(質正)한다.
홍무(洪武 명(明)태조의 연호) 31년(1398, 태조7) 5월 보름에 양촌(陽村) 권근(權近)은 서(序)한다.
발(跋) [윤기견(尹起畎)]
삼봉(三峯) 선생이 지은 《경국전(經國典)》과 《심기리(心氣理)》 및 시문(詩文) 등은 모두 세상에 행하고 있으나, 다만 이 《불씨잡변(佛氏雜辨)》 한 책은 선생이 선성(先聖)을 본받고 후세사람을 가르친 것으로서 평생의 정력(精力)을 쏟은 것인데, 인몰(湮沒)되어 전하여지지 않으므로 식자(識者)들이 한탄하였다.
무오년(1438, 세종20)에 내가 생원(生員)으로 성균관(成均館)에 있을 때, 동년진사(同年進士) 한혁(韓奕)이 선생의 족손(族孫)이었다. 집에 간직한 정리되지 않은 많은 책 가운데에서 이 글을 얻어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여 주므로, 그것을 보니 그 문사(文辭)가 호일(豪逸)하고 변론이 세미(細微)한 데까지 두루 미쳤으며, 성정(性情)을 발휘(發揮)하고 허탄(虛誕)한 것을 배척하였으니, 참으로 성문(聖門)의 울타리이며 육경(六經)의 날개이다.
내 애독하여 보배로 삼아 간직한 지 오래였더니, 이제 양양(襄陽) 군수가 되어 마침 일이 없으므로 공사(公事)를 마친 여가에 잘못된 글자 30여 자를 교정하고는 공인(工人)을 시켜 간행(刊行)하여 널리 전하노니, 다행히 우리의 도(道)에 뜻이 있는 자는 이 글로 인하여 사특(邪慝)한 것을 물리치고, 이단에 미혹된 자는 이 글로 인하여 그 의심을 푼다면 선생이 이 글을 지어 후세에 전한 뜻이 거의 이루어질 것이며, 우리의 도(道) 또한 힘입는 바 있을 것이다. 이 글이 다행히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어찌 우리 도(道)의 커다란 다행이 아니겠느냐?
경태(景泰 명경종(明景宗)의 연호) 7년(1456, 세조2) 5월 중순(中旬)에 금라(金羅) 윤기견(尹起畎)이 공경하여 발문(跋文)을 짓는다.
【안】 금라(金羅)는 함안군(咸安郡)의 별명(別名)이다.
闢異端之辨
堯舜之誅四凶。以其巧言令色方命圮族也。禹亦曰。何畏乎巧言令色。蓋巧言令色。喪人之心。方命圮族。敗人之事。聖人所以去之而莫之容也。湯武之征桀紂也。一則曰予畏上帝。不敢不正。一則曰。予不順天。厥罪惟均。天命天討。非己之所得而辭也。夫子曰。攻乎異端。斯害也已。害之一字。讀之令人凜然。孟子之好辯。所以距楊墨也。楊墨之道不距。聖人之道不行。故孟子以闢楊墨爲己任。其言曰。能言距楊墨者。亦聖人之徒也。其望助於人者至矣。墨氏兼愛。疑於仁。楊氏爲我。疑於義。其害至於無父無君。此孟子所以闢之之力也。若佛氏則其言高妙。出入性命道德之中。其惑人之甚。又非楊墨之比也。朱氏曰。佛氏之言彌近理而大亂眞者。此之謂也。以予惛庸。不知力之不足。而以闢異端爲己任者。非欲上繼六聖一賢之心也。懼世之人惑於其說。而淪胥以陷。人之道至於滅矣。嗚呼。亂臣賊子。人人得而誅之。不必士師。邪說橫流。壞人心術。人人得而闢之。不必聖賢。此予之所以望於諸公。而因以自勉焉者也。
佛氏雜辨識
道傳暇日。著佛氏雜辨十五篇。前代事實四篇。旣成。客讀之曰。子辨佛氏輪廻之說。乃引物之生生者以明之。其說似矣。然佛氏之言。有曰。凡物之無情者。從法界性來。凡有情者。從如來藏來。按無情者。猶巖石點頭之類。法界。如云無邊也。有情者。如本覺。衆生心與諸佛性。本爲如來也。 故曰。凡有血氣者。同一知覺。凡有知覺者。同一佛性。今子不論物之無情與有情。比而同之。無乃徒費辭氣。而未免穿鑿附會之病歟。曰。噫。此正孟子所謂二本故也。且是氣之在天地間。本一而已矣。有動靜而陰陽分。有變合而五行具。周子曰。五行。一陰陽也。陰陽。一太極也。蓋於動靜變合之間。而其流行者有通塞偏正之殊。得其通而正者爲人。得其偏而塞者爲物。又就偏塞之中而得其稍通者爲禽獸。全無通者爲草木。此乃物之有情無情。所以分也。周子曰。動而無動。靜而無靜。神也。以其氣無所不通。故曰神。動而無靜。靜而無動。物也。以其囿於形氣而不能相通。故曰物。蓋動而無靜者。有情之謂也。靜而無動者。無情之謂也。是亦物之有情無情。皆生於是氣之中。胡可謂之二哉。且人之一身。如魂魄五臟耳目口鼻手足之屬。有知覺運動。毛髮瓜齒之屬。無知覺運動。然則一身之中。亦有從有情底父母來者。從無情底父母來者。有二父母耶。客曰。子之言是也。然諸辨之說。出入性命道德之妙。陰陽造化之微。固有非初學之士所能識者。況下民之愚庸乎。吾恐子之說雖精。徒得好辯之譏。而於彼此之學。俱無損益。且佛氏之說。雖曰無稽。而世俗耳目。習熟。恐不可以空言破之也。況其所謂放光之瑞。舍利分身之異。往往有之。此世俗所以歎異而信服之者。子尙有說以攻之也。曰。所謂輪廻等辨。予已悉論之矣。雖其蔽之深也。不能遽曉。然一二好學之士。因吾說而反求之。庶乎有以得之矣。玆不復贅焉。至於放光舍利之事。豈無其說乎。且心者。氣之最精最靈的。彼佛氏之徒。不論念之善惡邪正。削了一重。又削了一重。一向收斂。蓋心本是光明物事。而專精如此。積於中而發於外。亦理勢之當然也。佛之放光。何足怪哉。且天之生此心者。以其至靈至明。主於一身之中。以妙衆理而宰萬物。非徒爲長物而無所用也。如天之生火。本以利人。而今有人焉。埋火於灰中。寒者不得熱。飢者不得爨。則雖有光焰發於灰上。竟何益哉。佛之放光。吾所不取者。此也。抑火之爲物。用之新新。乃能常存而不滅。若埋之灰中。不時時發視之。始雖熾然。終則必至於灰燼消滅。亦猶人之此心。常存憂勤愓慮之念。乃能不死而義理生焉。若一味收斂在裏。則雖曰惺惺着。必至枯槁寂滅而後已。則其所以光明者。乃所以爲昏昧也。此又不可不知也。至於像設。亦有放光者。蓋腐草朽木。尙有夜光。獨於此。何疑哉。若夫人之有舍利。猶蛇虺蜂蛤之有珠。其間所謂善知識者。亦有無舍利者。是則蛇虺蜂蛤而無珠之類也。世傳人藏蜂蛤之珠不穿不蒸者。久而發之。添得許多枚。是生意所存。自然滋息。理也。舍利之分身。亦猶是耳。若曰有佛至靈。感人之誠。分舍利云耳。則釋氏之徒。藏其師毛髮齒骨者多矣。何不精勤乞請以分其物。而獨於舍利。言分身哉。是非物性而何也。或曰。舍利此甚堅固。雖以鐵塊擊之不能破。是其靈也。然得羚羊角則一擊碎爲微塵。舍利何靈於鐵而不靈於角也。是固物性之使然。無足怪者也。今或以兩木相鑽。或以鐵石相敲而火出。然此尙待人力之所爲也。以火精之珠。向日而炷艾。則薰然而煙生。焰然而火出。固非人力之所爲。其初不過熒熒之微。而其終也赫赫然炎崑崙而焚玉石。何其神矣哉。是亦非其性之使然。而有一靈物寓於冥漠之中。感人之誠而使之至此歟。且火之益於人者。抑大矣。爨飮食則堅者柔。烘坑堗則寒者熱。湯藥物則生者熟。飢可以飽。病可以愈。以至鎔鐵作耒作斧作釜鼎以利民用。作刀槍劍戟以威軍用。火之生也。其神如彼。火之用也。其利如此。子皆莫之重焉。彼舍利者。當寒而不得以爲衣。當飢而不得以爲食。戰者不足以爲兵器。病者不足以爲湯藥。使佛有靈。一祈而分數千枚。尙以爲無益而廢人事。擧以投諸水火。永絶根本。況復敬奉而歸依歟。噫。世之人。厭常而喜怪。棄實利而崇虛法如此。可勝歎哉。客不覺下拜曰。今聞夫子之言。始知儒者之言爲正。而佛氏之說爲非也。子之言。揚雄不如也。於是幷書卷末。以備一說焉。
佛氏雜辨序[權近]
予嘗患佛氏之說惑世之甚。而爲之言曰。天之所以爲天。人之所以爲人。儒與佛之說不同矣。自有曆象之後。寒暑之往來。日月之盈虧。皆有其數。用之千萬世而不差。則天之所以爲天者定。而佛氏須彌之說誣矣。天以陰陽五行。化生萬物。而所謂陰陽五行者。有理有氣。得其全者爲人。得其偏者爲物。故五行之理。在人而爲五常之性。其氣爲五臟。此吾儒之說也。醫者以五行診其臟脈之虛實而知其病。卜者以五行推其運氣之衰旺而知其命。亦用之千萬世而皆驗。則人之所以爲人者定。而佛氏四大之說妄矣。原其始。不知人之所以生。則反其終。安知人之所以死哉。則輪廻之說。亦不足信。予持此論久矣。今觀三峯先生佛氏雜辨二十篇。其言輪廻及五行醫卜之辨。最爲明備。其餘論辨。亦極詳切而著明。無復餘蘊矣。先生自幼讀書明理。慨然有行所學闢異端之志。講論之際。諄諄力辨。學者翕然聽從。嘗著心氣理三篇。以明吾道異端之偏正。其有功於名敎大矣。遭逢聖朝。彌綸王化。以興一代之治。所學之道。雖未盡行。亦庶幾矣。而先生之心猶歉然。必欲堯舜其君民。至於異端。尤以不能盡闢而悉去之爲己憂。戊寅夏。告病數日。又著是書示予曰。佛氏之害。毀棄倫理。必將至於率禽獸而滅人類。主名敎者。所當爲敵而力攻者也。吾嘗謂得志而行。必能闢之廓如也。今蒙聖知。言聽計從。志可謂得矣。而尙不能闢之。則是終不得闢之矣。憤不自己。作爲是書。以望後人於無窮。欲人之皆可曉也。故其取比多鄙瑣。欲彼之不得肆也。故其設詞多憤激。然觀於此則儒佛之辨。瞭然可知。縱不得行於時。猶可以傳於後。吾死且安矣。予受而讀之。亹亹不倦。乃歎曰。楊墨塞路。孟子辭而闢之。佛法入中國。其害甚於楊墨。先儒往往雖辨其非。然未有能成書者也。以唐韓子之才。籍湜輩從而請之。猶不敢著書。況其下乎。今先生旣力辨以化當世。又爲書以垂後世。憂道之念旣深遠矣。人之惑佛。莫甚於死生之說。先生自以闢佛。爲死而安。是欲使人祛其惑也。示人之意亦深切矣。孟子謂承三聖之統。先生亦繼孟子者也。張子所謂獨立不懼。精一自信。有大過人之才者。眞先生之謂矣。予實敬服而欲學焉。故書嘗所言者以質正云。洪武三十一年後五月旣望。陽村權近序。
佛氏雜辨跋[尹起畎]
三峯先生所著經國典心氣理及詩若文。皆行于世。獨此佛氏雜辨一書。先生所以閑先聖詔後人。平生精力所在。而湮沒不傳。識者恨之。歲戊午。予以生員在成均館。吾同年韓奕。先生之族孫也。得此書於家藏亂帙之中。持以示予。觀其文辭豪逸。辨論纖悉。發揮性情。擯斥虛誕。眞聖門之藩籬。而六經之羽翼也。予愛而寶之。藏之久矣。今守襄陽。適時無事。於公暇。校正謬誤三十餘字。命工刊梓。以廣其傳。幸有志於吾道者。因是書而闢其邪。惑於異端者。因是書而釋其疑。則先生爲書傳後之志。庶幾遂。而吾道亦且有所賴矣。是書之幸存而不泯。豈不爲吾道之大幸哉。景泰七年午月仲旬。金羅尹起畎。敬跋。按金羅。咸安郡別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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