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心)이 기(氣)를 비난함[心難氣] 난(難)은 상성(上聲)
이 편(篇)은 주로 석씨(釋氏 석가모니의 불가(佛家)를 가리켜 이르는 말)의 마음 닦는 취지를 말하여 노씨(老氏 노자(老子)의 도가(道家)를 가리켜 이르는 말)를 비난한 것이다. 그러므로 편(篇) 가운데 석씨(釋氏)의 말을 많이 썼다. 심(心)은 이(理)와 기(氣)를 합하여 신명(神明)의 집이 된 것이니, 주자(朱子)의 이른바,
“허령(虛靈)하여 어둡지 않아 모든 이치가 갖추어져 만 가지 일에 응한다.”
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오직 허(虛)함으로 모든 이치가 갖추어져 있으며, 오직 영(靈)하기 때문에 만 가지 일에 응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이치가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그 허(虛)한 것은 막연하게 비어 있을 따름이며, 그 영(靈)한 것은 분잡(紛雜)하게 유주(流注)할 뿐이요, 비록 만 가지 일에 응(應)한다 하더라도 옳고 그른 것이 착란(錯亂)될 것이니 어찌 족히 신명의 집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심(心)을 말하면서 이(理)를 말하지 않으면, 이는 그 집만 알고 그 주인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온갖 색상(色相)들은 그 종류가 매우 많으나, 오직 내[我]가 가장 영(靈)하여 그 가운데에 홀로 서 있도다.
온갖 색상[凡所有相]이라는 말은 《금강경(金剛經)》을 인용한 것이다. 분총(紛總)이란 많은 모양이요, 나[我]란 마음이 스스로 자기를 가리킨 것이요, 영(靈)이란 즉 이른바 허령(虛靈)이라는 것이다. 이 두 구절(句節)은 곧 혜능(慧能 중국 선종(禪宗)의 제6조(祖))의 이른바, ‘한 물건이 있으니 길이 신령스러워 한 장령(長靈 영장(靈長)과 같음)의 물건이 위로는 하늘을 버티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었다.’는 것이니, 구담(瞿曇 성도(成道)하기 전의 석가를 이르는 말)의 이른바, ‘천상천하에 오직 내[我 심(心)]가 홀로 높다.’는 뜻이다.
이는 심(心)이 스스로 말하기를,
“무릇 모든 소리와 빛과 형상이 천지 사이에 가득 찬 것이 그 종류가 매우 많으나, 오직 내가 가장 신령하여 온갖 유가 많은 가운데에 독특하게 서 있다.”
한 것이다.
나[我]의 체(體)가 고요하여 거울이 빈 것과 같으니, 인연을 따르면서도 변하지 않고, 변화에 응하여 다함이 없도다.
심(心)의 본체가 적연(寂然)하여 조짐[朕]이 없어 그 신령한 지혜가 어둡지 않다. 비유컨대 거울의 성품이 본래 비어 있으나 그 밝음은 비추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
대개 인연을 따른다는 것은 심(心)에는 신령[靈]이요, 거울에는 밝음이고,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심(心)에는 고요함이요, 거울에는 빈[空]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변(萬變)이 감응하여도 다함이 없는 것이니, 곧 《금강경》의 이른바, ‘감응함이 머무르는 바가 없으되 마음은 그대로 있다.’는 뜻이다.
대개 밖으로는 비록 변화에 응하는 자취가 있으나 안으로는 막연히 한 가지 생각의 움직임도 없는 것이니 이는 석씨(釋氏) 학문의 제일가는 의리이다.
너[爾]의 사대(四大)가 서로 합하여 형체를 이룸으로 말미암아 눈이 있어 빛을 보고자 하며 귀가 있어 소리를 듣고자 하는지라, 선악(善惡)의 환멸(幻滅)이 그림자를 인연(因緣)하여 생겨서, 나[我 심(心)을 말함. ]를 공격하고 나를 해롭게 하니 내가 편안함을 얻지 못하도다.
너[爾]는 기(氣)를 가리켜 말한 것이요, 사대(四大)는 또한 석씨(釋氏)의 말을 쓴 것이니, 이른바 흙ㆍ물ㆍ불ㆍ바람이다. 《원각경(圓覺經)》에 이르기를,
“나의 지금 이 몸은 사대(四大)가 화합한 것이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육진(六塵)이 그림자를 인연하여 스스로 심성(心性)이 되었다.”
고 하였다.
이는 앞의 장(章)을 이어 말한 것이니, 마음의 본체(本體)가 원래 적연(寂然)할 뿐인데, 다만 너[爾 기(氣)를 말함. ]의 사대(四大)의 기(氣)가 가탁(假托)하여 엉기어 합하여 형상이 있는 형체를 이룸으로 말미암아 이에 눈이 있어 아름다운 빛을 보고자 하고 귀가 있어 좋은 소리를 듣고자 하며, 코와 혀[舌]와 몸과 뜻이 또한 각각 욕심이 있어, 순하면 착한 것이 되고 거스르면 악한 것이 되니, 이것이 모두 환(幻)에서 나온 것으로 진실한 것이 아니요, 곧 외부의 그림자를 인연하여 서로 이어 생긴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나[我]의 고요한 본체를 해쳐서 분요(紛擾)하고 착란(錯亂)하여 나로 하여금 편치 못하게 하는 것이다.
상(相)을 끊고 체(體)에서 떠나, 생각도 없고 정(情)도 잊어버려, 밝으면서 항상 고요하고 고요하면서 항상 깨달으면, 네[爾]가 비록 동(動)하려 하나 어찌 나의 밝은 것을 가리울 수 있으랴!
《금강경》에 이르기를,
“온갖 색상(色相)은 모두 허망(虛妄)한 것이다.”
하였고, 혜능은 말하기를,
“일체의 선악을 모두 생각지 말고 그 후에 무념(無念)과 망정(忘情)과 식망(息妄)과 임성(任性)의 4종(宗)으로 나눌 것이다.”
하였으니, 이것은 마음 닦는 공부를 말한 것이다.
상(相)은 그 형상(形相)을 말한 것이요, 체(體)는 그 이체(理體)를 말한 것이다.
모든 형상(形相)은 형상이 아니니 마땅히 끊어 버릴 것이요, 이 체(體)도 체가 아니니 마땅히 떠나 버려야 될 것이다. 내[我]가 만일 항상 스스로 고요하여 한 가지 생각도 동함이 없고, 항시 그 일어나고 사라지는 정(情)을 잊어버리게 되면, 망령된 인연이 이미 끊어지고 진공(眞空)이 자연 나타나 비록 감동되어 비추어도 본체는 항상 고요할 것이요, 비록 고요하여도 안으로 항상 깨달을 것이다.
대개 비추면서 항상 고요하다는 것은 어지러운 생각이 아니며, 고요하면서 항상 깨달으면 혼미(昏迷)한 것이 아니니, 능히 이와 같이 되면 사대(四大)의 기(氣)와 육진(六塵)의 욕심이 비록 틈을 타서 나[我]를 요동하려 한들 어찌 내[我] 본체의 밝은 것을 가리어 덮을 수 있으랴.
이 장(章)은 마음 닦는 요점을 말한 것이니 간략하고도 곡진하다.
心難氣 難上聲
此篇。主言釋氏修心之旨。以非老氏。故篇中多用釋氏之語。心者。合理與氣。以爲一身神明之舍。朱子所謂虛靈不昧。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愚以爲惟虛。故具衆理。惟靈。故應萬事。非具衆理則其虛也漠然空無而已矣。其靈也紛然流注而已矣。雖曰應萬事。而是非錯亂。豈足爲神明之舍哉。故言心而不言理。是知有其舍。而不知有其主也。
凡所有相。厥類紛總。惟我最靈。獨立其中。
凡所有相。用金剛經語。紛總。衆多之貌。我者。心自我也。靈卽所謂虛靈也。此兩句。卽惠能所謂有一物長靈。上拄天下拄地。瞿曇所謂天上天下。惟我獨尊之意。○此爲心之自言。曰凡有聲色貌相盈於天地之間者。其類甚多。惟我最爲至靈。特然獨立於庶類紛總之中也。
我體寂然。如鑑之空。隨緣不變。應化無窮。
心之本體。寂然無眹。而其靈知不昧。譬則鏡性本空。而明無不照。蓋隨緣者。心之靈而鏡之明也。不變者。心之寂而鏡之空也。是以。應感萬變而無有窮盡。卽金剛經所謂應無所住。而生其心之意。蓋外邊雖有應變之跡。而內則漠然無有一念之動。此釋氏之學第一義也。
由爾四大。假合成形。有目欲色。有耳欲聲。善惡亦幻。緣影以生。戕我賊我。我不得寧。
爾。指氣而言。四大。亦用釋氏語。所謂地水火風也。圓覺云。我今此身。四大和合。又曰。六塵緣影。爲自心性。○此承上章而言心體本自寂然而已。但由爾四大之氣假托凝合。以成有相之形。於是有目而欲見美色。有耳而欲聞善聲。鼻舌身意。亦各有欲。順則以之爲善。逆則以之爲惡。是皆幻出。非有眞實。乃攀緣外境之影。相續而生。凡此皆以戕賊我寂然之體。紛擾錯亂。使我不得而寧靜也。
絶相離體。無念忘情。照而寂寂。默而惺惺。爾雖欲動。豈翳吾明。
金剛經曰。凡所有相。皆是虛妄。惠能曰。一切善惡。都莫思量。其後分爲無念忘情息妄任性四宗。此言修心功夫。相言其形相。體言其理體。諸相非相。所當絶而去之。是體非體。所當離而棄之。我若常自寂然。無有一念之動。而常忘其起滅之情。則妄緣旣斷。眞空自現。雖感照而體常寂寂。雖靜默而內自惺惺。蓋照而寂寂則非亂想也。默而惺惺則非昏住也。能如是則四大之氣六塵之欲。雖欲投間抵隙。搖動於我。豈能掩翳以累我本體之明哉。此章言修心之要。約而盡之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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