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354)정도전 삼봉집 제8권/ 부록(附錄) /제현의 서술[諸賢叙述] /정삼봉 금남잡제 서 병진 [鄭三峯錦南雜題序 丙辰]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26. 06:57

정삼봉 금남잡제 서 병진 [鄭三峯錦南雜題序 丙辰]

 

연성(連城)의 구슬은 곤강(崑岡 곤륜산(崑崙山))이라 해서 항상 나는 것이 아니고, 천리마(千里馬)는 기야(冀野 말이 많이 나는 기주(冀州))라고 항상 나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주는 성품을 타고난 생물(生物)로서는 사람보다 더 귀한 것이 없고, 사람으로 태어나서도 충신(忠信)과 재덕(才德)의 바탕을 얻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바다 한 모퉁이에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의 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삼봉 정선생(鄭先生)은 나의 동년(同年 같은 해에 과거한 것)의 친구다. 지정(至正) 임인년(1362, 공민왕11) 겨울에 우리 홍문정공(洪文正公 문정은 홍언박(洪彦博)의 시호(諡號))이 과장(科場)에 도시관(都試官)이 되어서 선비를 뽑는 데 선생이 선발되었으니 그때에 선생은 나이가 젊고 기운이 왕성하였으며, 문장이 민첩하고 신기하여서 그때 사람들이 모두 특이하게 생각하여 작은 성공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알았었다.

그 뒤에 부모상을 당해서는 3년 동안을 고향에 들어앉아서 경적(經籍)만을 연구 토론하니, 그 문하에 출입하는 제자들도 이단(異端)을 철저히 분석하게 되었다. 멀게는 천지(天地)와 하악(河岳)을 연구하고, 절실한 것으로는 성명(性命)과 의리(義理)를 연구하여, 밝기는 일월 같고, 보이지 않는 데도 통하는 것은 귀신같았다. 그리고 날마다 사용하는 인륜(人倫)의 일과황왕 세도(皇王世道)의 변천하는 길이며, 법령 제도(法令制度)의 손익(損益)과 예악 형정(禮樂刑政)의 득실(得失)에 이르기까지 깊이 연구하고 널리 생각하여 그 이치를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우리 선왕(先王)은 널리 선비를 찾아서 문ㆍ가(文理)를 천명했으며, 또 교ㆍ묘(郊廟) 제사의 예악(禮樂)에 대하여 더욱 힘썼다. 그러나 그 책임을 맡길 사람이 쉽지 않았는데, 선생만은 ‘문학을 널리 아는 것이 윤리(倫理)를 밝히고 인재를 양성할 수 있으며, 기국과 지식의 밝은 것이 넉넉히 예악의 근본을 알아서 신과 사람을 조화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해에 성균과 태상 두 곳의 박사(博士)로 제수하여 사예(司藝)까지 되었으니, 이렇게 전적으로 맡긴 것은 영화스러운 일이었다.

지난해 여름에 선생이 충직한 생각으로 국가의 일을 말하여, 집권자의 비위를 거스르다가 호남(湖南)으로 유배(流配)되었었다. 나는 그때에 여러 차례 그 집에 갔었다. 선생은 셋방 하나를 빌어 좌우에 도서(圖書)를 벌여 놓았으며, 갖옷과 베옷 한 벌로 겨울과 여름을 지내며, 나물 반찬으로 아침저녁 끼니를 이으면서, 성현ㆍ인의ㆍ도덕에 대한 학설을 설명하여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의 판가름을 밝히니, 남방(南方)의 학자들이 많이 와서 배웠다.

강의하는 여가에 스스로 시(詩)와 문(文) 약간 편(若干篇)을 저술하여 엮어 책으로 만들어서 당신의 뜻을 표시하고, 그 제목(題目)을 《금남잡제(錦南雜題)》라 했으니, 그 문장은 옛날 사람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고, 그 단장구(短長句 짧고 긴 글귀를 섞어 지은 시)도 또한 아야(雅野) 일본(一本)에 야(野)가 야(冶)로 되었음. 의 태도에까지 이르렀으니, 여러 사람들의 장점(長點)만을 모아서 일가(一家)의 말을 만든 것이다. 쫓겨난 것을 걱정하고 분하게 여기는 말은 털끝만큼도 없고, 다만 충신(忠信)과 도의(道義)의 생각만이 뚜렷하게 말 사이에 넘치니 참으로 경중(輕重)을 아는 대장부(大丈夫)가 아니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대저 얻으면 좋아하고 잃으면 슬퍼하는 것은 사람의 상정이다. 선생은 그렇지 않았으니 그가 귀양온 것도 충신(忠信)한 까닭이 아님이 없고, 그가 자처(自處)하고 지내는 것도 의리(義理)로 안심(安心)하지 않는 것이 없다. 부귀를 뜬구름같이 생각하고, 공명을 초개같이 생각하여, 산림(山林 빈천하여 산 속에 사는 것)과 조시(朝市 부귀하여 조정과 도시에 사는 것)를 똑같이 보고, 사생(死生)과 궁달(窮達)에 한결같은 절개를 지켜서, 아침에 도(道)를 들어 알게 되면 저녁에 죽어도 좋고, 생명을 포기하고라도 의리는 지키는 것을 위주로 하려 했으니, 도(道)를 믿음이 독실하고 스스로 아는 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전(傳 《역경》 건괘(乾掛)의 전(傳))에 이른바 ‘남에게 옳다는 말을 듣지 못해도 민망해 하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선생을 두고 한 말이다.

아! 우리 나라 땅덩이는 비록 좁으나 산수의 아름다움은 천하에 제일이어서 산악의 기운이 모여, 문무(文武)의 훌륭한 인재가 대대로 끊어지지 않았으니, 아마 모르긴 하나 지금 하늘이 선생을 낸 것은 장차 문장(文章)으로 세상을 울리려는 것이냐? 도학(道學)을 사람에게 전하려는 것이냐? 아니면 장차 높은 풍도(風度)와 높은 절개로 퇴패(頹敗)하는 풍속을 바로잡으려는 것인가? 이 세 가지는 다 숭상할 만한 것이다.

내가 말도 잘 되지 않는 글로 그 책 끝에 붙이는 것은 다만 충신(忠信)ㆍ재덕(才德)을 구비한 사람이 이 나라에서 난 것을 사랑하며, 또 후세의 군자(君子)로서상우(尙友)하려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생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게 하려는 것이다.

동년우(同年友) 기장(機張) 이유중유(李㽥仲有 중유는 자임)는 씀.

 

 

鄭三峯錦南雜題序 丙辰 [李㽥]
連城之璧。不常出於崑岡。千里之足。不恒產於冀野。賦天之性以生者。莫貴乎爲人。而忠信材德之質。爲尤難也。況在荒服之遠乎。三峯鄭先生。予同年友也。越至正壬寅冬。吾洪文正公主棘圍。試選士精。先生005_543d中之。時先生年富氣銳。爲文章敏以奇。故時輩目異之。知其不小成而止也。後居親喪三年于鄕。杜門論討經籍。出入諸子。辨析異端。遠而天地河岳。切而爲性命義理。明焉而日月。幽焉而鬼神。與夫人倫日用之常。皇王世道之變。以至法令制度之損益。禮樂刑政之得失。靡不硏精覃思。洞達其理。時惟我先王旁求儒雅。以闡文理。又於郊廟禋祀禮樂之典。尤致意焉。而難其人。謂先生其文學之博。可以明倫理育人才。其器識之明。又足以知禮樂之本而和神人。故於是授成均,太常二博士。以至於爲司藝。其任用之專。005_544a亦榮矣哉。去年夏。先生以忠直言國家事。見忤於執政者。流於湖之南。予于時屢造其室焉。先生賃一室。左右圖書。備寒暑以一裘葛。朝夕而疏食。談聖賢仁義道德之說。以明天理人欲之辨。南方學者多從之遊。講論之暇。自著詩若文若干篇。編爲成帙。以見其志。而目之曰錦南雜題。其文辭無愧乎古人。而其短長句章。亦臻雅野 一本作冶 之態。集衆家之長而成一家言。無一毫憂憤擯黜之語。而獨其忠信道義之發。沛然溢乎言語間。豈非眞知輕重大丈夫哉。大抵得之則喜。失之則慼。人之常也。先生則不然。其所以見黜005_544b者莫非忠信之故。而其所以自處者無非義理之安。浮雲富貴。土芥功名。等視乎山林朝市。一節乎死生窮達。若將朝聞夕死。捨生取義之爲者。非信道篤而自知明者。其能之乎。傳所謂不見是而無悶。其先生之謂與。吁。吾東方壤地荒遠。而山水之美甲天下。氣鍾岳降。文武英材。代不乏人。抑不知今天之生先生也。將使文章鳴于時耶。道學傳于人耶。抑將以高風峻節。矯頹世勵薄俗也耶。是三者皆可尙已。予以不工語。強綴其篇端者。獨愛夫忠信材德之產吾土也。而俾後君子之尙友者。知先生之爲人焉耳。同年友005_544c機張李㽥仲有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