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지 문고 끝에 발함 무진 [跋鄭宗之文藁後 戊辰 ]
삼한의 정종지씨는 진사(進士)로 출신하여 그 나라에 벼슬하고, 성균관의 사성이 되어서 문학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그의 친구 이공 자안(李公子安 자안은 이숭인(李崇仁)의 자)이 하정사(賀正使)로 오는 길에 그가 지은 글 약간 편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발문을 부탁하였다. 나는 들으니, 오방(五方)의 백성들이 언어도 통하지 않고, 기욕(嗜欲)도 같지 않으나, 타고난 호덕(好德)의 천성(天性)은 같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옛날부터 성현의 도통(道統)은 몇 천 년을 지금까지 전해오면서 수사(洙泗 공자(孔子)의 학을 뜻함)에 근원을 두고, 염락(濂洛 주돈이(周敦頤)와 정호(程顥)ㆍ정이(程頤)를 가리킴)에서 밝아졌으니, 그 경전의 여러 책들이 남아 있는 것은 중국의 선비들이 대대로 지켜오면서 오륜(五倫)의 도(道)를 가르치고 사람의 기강(紀綱)을 세운 것이다. 그리하여 오방에서 배워 가는 것도 그 경전에 근본을 두지 않은 것이 없고, 학설을 세워서 명가(名家)가 된 사람들도 중국에서 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기상(寄象)과위역(韙譯)의 글을 사용하는 나라로서 진실로 차츰차츰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중국을 사모하고 그 문화를 본받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 그 문학(問學)에 험절이 없고, 문장이 법에 맞기를 바란다면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오직 삼한은 기자(箕子)의 유교(遺敎)가 있어서, 홍범 구주(洪範九疇 《서경(書經)》의 편명(篇名))의 학설이 유경(遺經)에 실려 있는 것을 대대로 전해 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문학과 문장의 흘러내려오는 계통이 중국과 거의 다름이 없어서 자못 다른 나라로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종지의 문고를 보건대 한결같이 이학(理學)에 근본을 두어서 조금도 어긋남이 없으니,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다음에 종지가 중국에 구경 와서 우연한 기회에 서로 만나게 되면 속속들이 많은 토론을 해보고 싶다.
사신이 오는 편에 이 변변치 못한 사람에게 안부를 물어 주시니 감사한 말씀 어찌 다 하겠습니까? 따라서 두 분 대감의 기체 후 안녕하심을 알았사오니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불초(不肖)는 아직 그대로 지내옵고, 다른 일은 별로 말할 것이 없습니다. 부탁하신 종지의 문고 발어(跋語)는 명령대로 지어 보내긴 하나, 아무튼 글 임자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우선 이렇게 받들어 올리오니 그리 알아주소서. 삼가 예를 다하지 못합니다.
9월 15일에 손지(遜志)는 재배(載拜)함.
【안】 손지의 성은 고(高)요 벼슬은 시랑(侍郞)이니, 하남부(河南府)서주(徐州) 사람으로 상장역(上莊驛)에 살았음.
포은(圃隱)ㆍ도은(陶隱) 두 분 상국(相國)선생(先生)각하(閣下). 후소(後素).
【안】 후소는 고손지(高遜志)의 자호(自號)인 듯함.
跋鄭宗之文稿後 戊辰 [高遜志]
三韓鄭宗之氏由進士起家。仕其國爲胄子師。以文學爲職業。其友李公子安之朝正也。携其所著文若干篇。俾予識之。予聞五方之民。言語不通。嗜欲不同。而秉彝好德之懿。則無不同者。然歷古以來。聖賢道統之傳。迄今千數百載。原於洙泗而明於濂洛。遺經載籍之所存。中國之士世守之。所以敍天常植人紀。而五方之所取則者。莫不本諸遺經。而以立言名家者又莫非中國之所產也。然寄象韙譯之俗。苟非漸被聲敎。夙慕華風。而知所取則焉。求其問學之無疵。文辭之合作。蓋亦鮮矣。惟三韓之國。有箕子之遺敎。而洪範九疇之說。載諸遺經者。莫不世傳之。是以問學文辭之源委端緖。與中國殆無以異。殊非他方所可儷也。觀於宗之之論著。一本乎理而無所偏蔽。夫豈易得哉。他日宗之觀光上國。而獲晤言於邂逅之頃。尙相與更僕而深論之。伻來辱遠敎淸貺。感荷何言。從審台候均介時祉。曷勝慰浣。不肖粗守苟安。母足齒及。所需宗之文稿跋語。依命錄去。第恐貽笑作者耳。姑此奉復。惟鑑諒。不謹。九月望日。遜志載拜。按遜志姓高。官侍郞。河南府徐州人。居上莊驛。 圃隱陶隱二國相先生閣下。後素。按後素。疑高遜志自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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