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362)정도전 삼봉집 제8권/ 부록(附錄) /감사 요약 발 을해 (監司要約跋 乙亥)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26. 07:14

감사 요약 발 을해 (監司要約跋 乙亥 )

감사제도를 둔 지도 오래 되었다. 윗사람이 덕(德)을 펴서 아랫사람을 실정에 맞게 하며, 세력이 있고 교활한 사람을 징계하여 빈곤한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해서, 말 한 마디에 사람들이 권장하고, 말 한 마디에 사람들이 경계하게 되니, 그 책임이 무겁지 않은가?

그러나 옛날에는 계급이 낮은 사람이 감사가 되었지만, 지금은 양부(兩府)에서 어질고 재망(才望)이 있는 사람을 골라서 시키게 되었으니 계급과 권세가 모두 무겁게 되었다. 계급이 높으면 사람들이 더욱 공경하고, 권세가 세면 사람들이 더욱 두려워한다. 한 사람의 몸으로 뭇 사람이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자리에 앉게 되면 반드시 그 덕행(德行)과 업적(業績)이 뭇 사람의 마음을 복종시킨 뒤에야 감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니, 감사가 된 사람은 어찌 자중(自重)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 전하는 판중추사(判中樞事) 이공무(李公茂)가 일찍이 전라도의 진무사(鎭撫使)로 나갔을 때에 위혜(威惠)가 있어서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하여 즉시 그 도의 관찰사로 임명하였다. 그리하여 장차 떠날 적에 삼봉 정상국(鄭相國)이 주(周)와 한(漢)에서부터 본조에 이르기까지 감사의 연혁(沿革)과 잘잘못의 자취를 골라 뽑아서 선유(先儒)들의 논설(論說)을 붙이고 또 선(善)ㆍ최(最)로 고과(考課)하는 법을 만들어 그 분수(分數)를 정하여, 감사가 된 사람으로 하여금 참고가 되게 하여 이름을 ‘감사 요약’이라 해서 주었다. 그 내용이 간략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였고, 자세하면서도 간절하여 감사가 된 사람으로서는 마땅히 항상 보고 읽어야 할 것이다. 그 분수를 정해 놓은 데에 먼저 덕(德)을 보고, 다음에 재주를 보게 한 것은 덕이 근본이 되고 재주가 지엽(枝葉)이 되기 때문이다. 덕이 많고 재주가 적은 사람은 그래도 착한 사람은 틀림이 없지만, 재주가 많고 덕이 적은 사람은 가혹(苛酷)한 관리를 면치 못한다. 지금 고과하는 사람은 대개가 재주를 먼저 보고 덕을 뒤에 보기 때문에 모든 관리들이 거의 백성에게 혜택을 주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공적을 나타내는 데만 급급하여, 백성들이 덕은 보지 못하고 도리어 고통만 당하는 것은 감사의 고과가 그 차례를 잃은 때문이다. 그래서 상국은 그 분수를 특별히 표시하여 그 선후의 차례를 밝혔으니, 이것 또한 감사가 된 사람으로서는 마땅히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그 ‘너무 지나치게 관후(寬厚)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모든 주현(州縣)의 관리들을 대하는 데 대한 말이다. 만약 백성들에게 가혹하게 거두어들여서 고혈(膏血)을 짜내고, 쉴 새 없이 노역을 시켜서 인력을 소모시키면 그 피해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관후하게 어루만지려고 애를 써도 오히려 그들에게 고통을 주지나 않을까 염려되거늘, 하물며 감히 엄하고 각박하게 다룰 수가 있겠는가? 이것 또한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말을 덧붙여 둔다.

 

홍무 28년 을해(태조 4 1395) 9월 일에 양촌(陽村)권근(權近)은 발함.

 

 


監司要約跋 乙亥 [權近]

監司之設。尙矣。宣上德而達下情。懲豪猾而惠困窮。一言而人以勸。一言而人以警。其任顧不重歟。然古者秩卑。今則擇兩府之賢而有才望者爲之。位與權俱重矣。位重則人益敬之。權重則人益畏之。以一人之身。而居衆人所敬畏之地。必其德行施設。有以服乎衆人之心而後可也。爲監司者可不自重歟。今我殿下以判中樞事李公茂曾鎭全羅。有威惠民所敬服。卽命觀察于其道。將行。三峯鄭相國抄錄周漢以來至本朝監司沿革得失之跡。附以先儒所論之說。又以善最作考課之法。定其分數。使剌擧者有以依據。名之曰監司要略以贈之。約而盡。詳而切。爲監司者所當服膺者也。其定分數。先其德而後其才者。德爲本而才爲末也。長於德而短於才者。猶不失爲善人。優於才而劣於德。則亦不免爲酷吏。今之課者率先才而後德。故凡爲吏者。多不以惠民爲念。而惟事功是急。民不見德而受其病。由監司者課之失其倫也。故相國特擧而表之。以明其先後之序。此又爲監司者所當先知者也。至其所謂不可過爲寬厚者。以其施於州縣之吏者言之爾。若夫民則徵斂之苛而割其心。差役之煩而弊其力。爲病極矣。務以寬厚撫之。猶患其苦。況敢忍以嚴峻加之哉。是亦不可以不言也。故幷及之。洪武二十八年乙亥九月日。陽村權近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