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태수(郡太守) |
|
진(秦) 제후(諸侯)를 멸하고 그 지역을 군(郡)으로 만들어, 수(守)ㆍ승(丞)ㆍ위(尉)를 각각 1인씩 두었는데, 수는 백성을 다스리고, 승은 이를 보좌하며, 위는 병(兵)을 맡았다.
한(漢) 경제(景帝)는 군수라는 이름을 고쳐서 태수(太守)라 하고, 치민(治民)ㆍ진현(進賢)ㆍ권공(勸功)ㆍ결송(決訟)ㆍ검간(檢姦)하는 일을 관장하도록 하였다.
○ 선제(宣帝)는, ‘태수란 관리[吏]와 백성의 근본이니, 자주 바뀌면 아랫사람들이 불안하게 여길 것이요, 백성들이 그 군수가 오래 있게 되어 속일 수 없음을 알면, 교화에 복종할 것이다.’ 하여, 매번 수상(守相)을 제수할 때마다 친히 불러 보고 물어서 그 뜻의 비롯된 바를 관찰하고, 물러간 후에는 행적을 고찰하여 그가 말한 바와 비교하였는데, 항상 말하기를,
“나와 함께 다스릴 자는 오로지 선량한 이천석이다.”
하였으니, 이것이 한대(漢代)의 선량한 관리들로써 마침내는 성세(盛世)를 이루게 하고 중흥(中興)을 일컫게 한 것이었다.
후한(後漢) 역시 그 소임을 중하게 여겨서, 혹 상서령(尙書令)ㆍ복야(僕射)를 내보내 군수(郡守)를 삼기도 하고, 혹은 군수에서 들어와 삼공(三公)이 되게도 하였다.
진(晉)ㆍ송(宋) 혹은 수상(守相), 혹은 내사(內史), 혹은 태수(太守)라고 일컬었는데, 연혁은 같지 않으나 모두 백성을 다스리는 관원이었다.
당(唐) 무덕(武德 당고조(唐高祖)의 연호. 618~626) 초년에 군태수를 주자사(州刺史)로 고쳤다가, 후에 주자사를 도로 고쳐 군태수로 하였으니, 이때부터 주군(州郡)의 사(史)ㆍ수(守)가 교대하여 명칭이 되었으나, 그 실상은 한가지였다.
대송(大宋) 대송의 초기에는 천하를 다스림에 친민(親民)의 소임을 중하게 여겨, 독수(督守)의 이름을 병풍에 써놓고 바라보면서, 그 사람의 착한 점과 악한 점을 반드시 그 이름 아래 써놓았으니, 이로써 주ㆍ군이 다 잘 다스려졌다.
고려[前朝] 지주사(知州事)ㆍ지군사(知郡事)를 두었는데, 바로 군태수이다.
본조(本朝) 그대로 따랐다.
秦滅諸侯。以其地爲郡。置守丞尉各一人。守治民。丞佐之。尉典兵。漢景帝更名郡守爲太守。掌治民進賢勸功決訟檢姦。○宣帝以謂太守吏民之本。數變易則下不安。民知其將久。不可欺罔。乃服從其敎化。每拜守相。輒親見問。觀其所由。退而考察。以質其言。常稱曰與我共治者。其惟良二千石乎。是以。漢世良吏於是爲盛。而稱中興焉。後漢亦重其任。或以尙書令僕射出爲郡守。或自郡守入爲三公。晉宋以來。或稱守相。或稱內史。或稱太守。沿革不同。皆爲治民之官。唐武德初。改郡太守爲州剌史。後改州剌史爲郡太守。自是。州郡史守。更相爲名。其實一也。大宋之初治天下也。重親民之任。疏督守之名于屛。俯仰觀焉。其人善惡。必書其下。是以州郡率治。前朝置知州事知郡事。卽古郡太守也。本朝因之
'09 정도전 三峯集' 카테고리의 다른 글
381)정도전 삼봉집 제11권/경제문감 별집 상/[서] (0) | 2018.01.26 |
---|---|
380)정도전 삼봉집 제10권 /경제문감 하(經濟文鑑 下) /현령(縣令) (0) | 2018.01.26 |
378)정도전 삼봉집 제10권 /경제문감 하(經濟文鑑 下) /주목(州牧) (0) | 2018.01.26 |
377)정도전 삼봉집 제10권 /경제문감 하(經濟文鑑 下) /감사(監司) (0) | 2018.01.26 |
376)정도전 삼봉집 제10권 /경제문감 하(經濟文鑑 下) /위병(衛兵) (0) | 2018.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