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적(版籍)
나라의 빈부는 백성이 많고 적은 데 달려 있고, 부역의 균등은 인구의 수효를 세밀하게 파악하는 데 달려 있다. 그러므로 백성을 다스리는 직책을 맡은 사람이 백성을 휴양(休養)시키고 생식(生息)시켜 인구를 번창하게 하고, 백성을 위로해서 모여들게 하고 편안히 살 수 있게 해서 그들의 거주를 보호하면 백성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호구를 등록하여 그 증감을 살피면 백성의 수효를 세밀하게 파악하게 될 것이고, 인구를 조사하고 장정을 계산하여 그 차렴(差斂)을 부과하면 부역이 균등해질 것이다. 대저 이와 같이 하면 위에서는 일이 성취되고 아래서는 시끄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나라는 부유해지고 백성은 편안하게 될 것이다.
전조 말기에는 백성들의 재산을 다스릴 줄 몰랐다. 백성을 휴양시키는 방도를 잃자 인구가 번식하지 못하였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도를 갖지 못하자 더러는 굶주림과 추위에 죽기도 하였다. 호구는 나날이 줄어들고 남은 사람들은 부역의 번거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호부(豪富)의 집에 꺾이어 들어가기도 하고 권세가에 의탁하기도 하였다.
그 밖에 혹은 공업이나 상업을 하기도 하고 혹은 도망하여 중이 되기도 해서 전인구의 10분의 5~6은 호적에서 이미 빠져나갔으며, 공ㆍ사의 노비나 사원(寺院)의 노비가 된 사람은 또한 그 수효에 포함되지도 않았었다. 다행히 호적에 올라 있다고 하는 호가도 또한 가장(家長)이 숨기거나 간사한 관리가 점유하여 한 호의 가족이 모두 호적에 올라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러고서야 백성의 수효를 어떻게 세밀히 파악할 수가 있으며, 부역이 어떻게 균등해질 수가 있겠는가? 만일 징렴(徵斂)할 일이 있을 때에는 기한을 급박하게 정하여 백성을 치고 때리면서 몰아세우므로 일은 일답게 되지 못하면서 백성들은 번거롭고 소요함을 견디지 못하니, 나라는 더욱 가난해지고 백성은 더욱 괴로웠던 것이다.
우리 전하는 처음 즉위하자 유사에게 명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할 방도를 강구하게 하고, 중외에 교서를 내리어 백성의 수효를 등록하게 하여 가호가 얼마, 인구가 얼마인가를 파악하게 하니, 정치하는 근본을 안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유사들의 재능이 동일하지 않으므로 이를 봉행하는 데 더러 불충분한 점이 있으니, 어찌 빠뜨린 호수가 없겠는가? 그러나 이를 수행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호구를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대개 임금은 나라에 의존하고 나라는 백성에 의존하는 것이니, 백성이란 나라의 근본이며 임금의 하늘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례》에서는 인구수를 왕에게 바치면 왕은 절하면서 받았으니, 이것은 그 하늘을 존중하기 때문이었다, 인군이 된 사람이 이러한 뜻을 안다면 백성을 사랑함이 지극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은 판적편(版籍篇)을 지으면서 백성 사랑하는 것을 아울러 논하는 바이다.
版籍
國之貧富。在民之衆寡。賦役之均。在民數之周。故任民牧之職者。休養生息。以蕃其類。勞來安集。以保其居。民可庶也。籍其戶口。稽其登耗。民可數也。驗口計丁。科其差斂。賦役可均也。夫如是。事集於上而下不擾。國富而民安也。前朝之季。不知制民之產。休養失其道。而生齒不息。安集無其方。而或死於飢寒。戶口日就於耗損。其有見存者。不勝賦役之煩。折而入於豪富之家。托於權要之勢。或作工商。或逃浮圖。固已失其十五六。而其爲公私寺院之奴婢者。亦不在其數焉。幸而號爲編民者。又以家長之所容隱。姦吏之所占挾。一戶之口。不盡付籍。民數可得而周乎。賦役奚由而均乎。一有徵斂之事。期限刻迫。捶撻隨之。事未及集。民不勝其煩擾。國益貧而民益苦也。惟我殿下初卽位。命有司講求便民之方。敎于中外。籍其數。得戶幾口幾。可謂知爲政之本矣。然有司之才否不同。奉行或有未至者。其間豈無脫漏之數。而行之歲月之久則可周也。蓋君依於國。國依於民。民者。國之本而君之天。故周禮獻民數於王。王拜而受之。所以重其天也。爲人君者知此義。則其所以愛民者。不可不至矣。故臣著版籍之篇而倂論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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