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428)정도전 삼봉집 제13권 조선경국전 상(朝鮮經國典 上)/부전(賦典) /군자(軍資)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27. 08:12

군자(軍資)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으니, 공자는,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군사를 넉넉하게 해야 할 것이다.”

라고 답하였다. 나라는 군사에 의지해서 보존되고, 군사는 식량에 의해서 생존하는 것이다.

공명(孔明 제갈량(諸葛亮)의 자(字))의 치병술(治兵術)이 관중(管仲)이나 악의(樂毅)보다 뛰어난 것은, 그가 위(魏)나라를 정벌할 적에 위수(渭水) 연안에서 둔전(屯田)을 실시하여 지구전법을 쓴 때문이었다. 항우(項羽)는 백전백승의 자질을 타고난 사람이었으나, 하루 아침에 군량이 떨어져서 전쟁에 지고 자신도 죽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이것을 보더라도 식량이라는 것은 삼군(三軍)의 목숨을 좌우하는 것이니,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옛날에 나라를 다스리던 사람들은 군사만을 다스렸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식량도 다스렸으며, 식량의 수입만을 다스렸을 뿐 아니라 반드시 식량의 생산에 관하여도 배려하였다. 식량의 생산은 토지와 인간에 달려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산악과 바다 사이에 끼여 있어서 구릉(丘陵)과 수택(藪澤) 등 경작할 수 없는 지역이 전국토의 10분의 8~9를 차지하고 있다. 거기다가 농사를 짓지 않고 놀고 있는 사람이 많아서, 그 수효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경성에 살고 있는 사람을 헤아려 보면 수십만 명이 못되지 않을 것이고, 또 도망하여 중이 된 자가 10만 명이 못되지 않을 것이며, 자제로서 놀고 있는 자, 서민으로서 공역을 담당하고 있는 자, 수졸(戍卒)로 변방에 나가 있는 자, 공장(工匠)ㆍ상인(商人)ㆍ무격(巫覡 무는 여자 무당, 격은 남자 무당)ㆍ재인(才人)과 화척(禾尺 버들그릇을 만들거나 도살을 업으로 하는 사람) 따위를 합치면 이 또한 10만 명이 못 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농사를 짓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 의지하여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 가히 생산하는 사람은 적은데 먹는 사람은 많다고 하겠다.

더욱이 농민들이 상장(喪葬)ㆍ흉년ㆍ질병으로 인하여 농사에 전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해마다 계절마다 맞이하는 빈객 접대와 제사 비용 또한 백성들이 마련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니, 가히 일하는 사람은 느린데 쓰는 사람은 급하다고 하겠다. 그러니 군량이 어느 겨를에 풍족해질 수 있겠는가?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황지(閒荒地)를 개간하고 놀고 있는 백성들을 없애어 모두 농사에 돌아가게 하여, 백성들의 농사일을 살펴서 그들의 힘을 너그럽게 해 주고, 빈객 접대와 제사 의식을 통제하여 그 비용을 절약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이렇게 한 뒤에라야 군량이 풍족해질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군자감(軍資監)을 설치하여 군량을 저축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다만 군량의 수입과 지출의 액수만을 다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신은 식량의 자체 생산 문제까지 아울러 논하여 편에 적어서 식량을 풍족하게 하는 근본을 삼으려 한다.

 

 

軍資

子貢問爲政。孔子以足食足兵答之。國資兵以存。兵資食以生。孔明治兵過管,樂。其伐魏也屯田渭上。以爲持久之計。項羽憑百戰百勝之資。而一朝糧餉不繼。戰敗身死爲天下笑。是知食者三軍之司命。不可一日而無者也。故古之爲國者。不惟治其兵。又當治其食。不惟治其食之所入。又當治其食之所生。夫食之所生。在地與人而已。國家介山海之間。其丘陵藪澤不耕之地十居八九。而人之遊手雖不能悉得其數。以居京城者計之。不下數十萬。去而爲浮圖者不下十萬。子弟之閒散。庶民之執公役。戍卒之在邊圉。以至工商巫覡之徒。才人禾尺之類。計亦不下十萬。不惟不耕。又從以食之。可謂生之者寡。而食之者衆矣。又因喪荒疾病。不得盡力於南畝。而歲時賓客祭祀之費。亦民之所不能已者。可謂爲之者舒而用之者疾矣。兵食奚由而足乎。爲今之計。莫若闢閒荒之地。汰遊手之民。盡歸之南畝。省民之耕穫而寬其力。制賓客祭祀之式而節其財。然後兵食可得而足也。國家置軍資監以儲兵食。然但治其所出入之數而已。臣故倂論其食之所自生。著之於篇。以爲足食之本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