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거(貢擧)
과거 제도는 그 유래가 이미 오래다. 주(周)나라 때에는 대사도(大司徒)가 육덕(六德)ㆍ육행(六行)ㆍ육예(六藝)로써 만민을 가르쳤는데, 그 중에서 현능한 사람을 빈례(賓禮)로 천거하고서 이를 선사(選士)라 하였고, 태학(太學)에 천거하고서 이를 준사(俊士)라 하였으며, 사마(司馬)에 천거하고서 이를 진사(進士)라 하였다. 그리고 평론이 정한 뒤에 관작을 맡기고, 관작을 맡긴 뒤에 작위를 주며, 작위가 정한 뒤에 녹을 주었다. 인재를 교양함이 매우 철저했고, 인재를 선택함이 매우 정밀하였으며, 인재를 등용함이 매우 신중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주(成周)성주(成周) 시대의 인재의 융성함과 정치의 아름다움은 후세에서 능히 미칠 바가 아니었다.
한(漢)나라 때에는 효(孝)ㆍ제(悌)ㆍ역전(力田)ㆍ현량(賢良)ㆍ무재(茂才) 등이 있었고, 위(魏)ㆍ진(晉) 시대에는 구품중정(九品中正)이 있었으며, 수(隋)ㆍ당(唐) 시대에는 수재(秀才)ㆍ진사과(進士科)가 있어서 그 명목이 다양하였다.
요컨대 그것은 모두 인재 얻기를 주목적으로 삼는 것들이었는데, 비록 성주 시대의 인재가 융성하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하였으나 한 시대의 인재가 모두 이러한 제도에서 배출되었던 것이다.
전조에서는 광종(光宗) 때부터 비로소 쌍기(雙冀)의 말을 받아들여서 과거법을 시행하였다. 선거를 관장한 사람을 지공거(知貢擧) 또는 동지공거(同知貢擧)라 일컬었고, 사부(詞賦)를 가지고 시험을 보였다.
공민왕(恭愍王) 때에 와서는 한결같이 원나라 제도를 따라서 사부와 같은 고루한 시험을 혁파했으나 이른바 좌주(座主 과거 급제자가 시관(試官)을 일컫는 말)니 문생(門生)이니 하는 버릇은 행해진 지 매우 오래여서 능히 갑자기 제거하지 못하매, 식자들은 개탄하였다.
전하는 즉위하자 과거법을 손익한 다음, 성균관에 명하여 사서(四書)ㆍ오경(五經)으로써 시험보이게 하니, 이것은 대개 옛날 명경과(明經科)의 의의인 것이며, 예부에 명하여 부론(賦論)으로써 시험보이게 하니, 이것은 곧 옛날의 박학굉사(博學宏詞)의 의의인 것이다. 이렇게 한 다음에 대책(對策)으로써 시험보이니, 이것은 곧 옛날의 현량 방정(賢良方正)ㆍ직언 극간(直言極諫)의 의의인 것이다. 일거에 수대의 제도가 모두 갖추어진 셈이다. 장차 사문(私門)이 막히고 공도(公道)가 열리며, 부화자(浮華者)가 배척되고 진유(眞儒)가 배출되어, 정치와 융성함이 한ㆍ당을 능가하고 성주를 뒤쫓아 갈 것을 볼 것이니, 아! 거룩한 일이로다.
그 무과(武科)ㆍ의과(醫科)ㆍ이과(吏科)ㆍ통사과(通事科)는 각각 유별로 부기해서 보이겠다.
貢擧
科擧之法。尙矣。在周大司徒。以六德六行六藝。敎萬民而賓興。其賢能曰選士。升之學曰俊士。升之司馬曰進士。論定而後官之。任官而後爵之。位定而後祿之。敎之甚勤。考之甚精。用之甚重。故成周人才之盛。政治之美。非後世所能及也。在漢曰孝弟,力田,賢良,茂才。在魏晉曰九品中正。在隋唐曰秀才,進士。其目多矣。要以得人爲務。雖不及成周之盛。而一時之人才。皆出於此。前朝自光王始用雙冀之言行科擧法。掌選者稱知貢擧,同知貢擧。試以詞賦。至恭愍王一遵原制。革去詞賦之陋。然所謂座主門生之習。行之甚久。不能遽除。識者歎之。殿下卽位。損益科擧之法。命成均館試以四書五經。蓋古明經之意也。命禮部試以賦論。古博學宏詞之意也。然後試以對策。古賢良方正直言極諫之意也。一擧而數代之制皆備。將見私門塞而公道開。浮華斥而眞儒出。致治之隆。軼漢唐而追成周矣。嗚呼盛哉。其武科醫科陰陽科吏科通事科。各以類附見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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