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458)정도전 삼봉집 제13권 조선경국전 상(朝鮮經國典 上) /예전(禮典) /상제(喪制)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28. 05:15

상제(喪制)

 

맹자는 말하기를,

 

“오직 죽은 사람을 장송(葬送)하는 것만이 큰일에 해당한다.”

하였는데, 대저 죽음이란 것은 친(親)의 끝남이요, 인도(人道)의 커다란 변화인 것이다. 그러므로 선왕은 이 일을 신중히 생각하여 상제를 만들어 천하에 알려 천하의 자식된 사람으로 하여금 대대로 이것을 지키게 하였다.

통곡하고 울부짖으며 땅을 치고 발을 구르는 것은 정의 변화인 것이요. 초빈을 하고는 죽을 먹고 우제(虞祭)를 지내고는 소사(蔬食)와 채갱(菜羹)을 먹으며 상제(祥祭)를 지내고는 채과(菜菓)를 먹는 것은 음식의 변화인 것이요, 단괄(袒括 웃옷을 벗어 메고 풀었던 머리를 묶는 일)을 하고 재최(齊衰)를 입는 것은 의복의 변화인 것이요, 흙덩이를 베고 거적자리를 깔고 자며 외실에 거처하고 내실에 들지 않는 것은 거처의 변화인 것이다. 자식으로서 부모를 사랑하는 정은 이렇게 하면 지극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오히려 부족하게 여겨서 우제를 지내고서 곡하고, 기제(朞祭)를 지내고서 슬퍼하고, 상제를 지내고서 근심하며, 기제(忌祭)를 지내고서 추모하여 시일이 오래 지날수록 더욱 잊지 못하니, 이것은 마음속의 정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며, 억지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근세 이래로 상제가 크게 무너져서 으레 불교 의식으로 행하게 되는데, 초상을 당하여 아직 매장도 하기 전에 진수성찬을 낭자하게 차리고, 종과 북소리를 떠들썩하게 울려 대며, 남녀가 뒤섞여서 웅성대는가 하면, 상주되는 이는 오직 손님 접대가 불충분할 것만을 염려하고 있으니, 어느 겨를에 죽음을 슬퍼하겠는가?

이런 까닭에 비록 백일의 복제를 입었다 할지라도 얼굴이 수척하거나 슬퍼하는 기색이 없이 웃으며, 말하는 것이 평일이나 다름이 없다. 지친(至親)이 죽었을 때에도 이러하건대, 하물며 그만 못한 사람이 죽었을 때에야 어떠할 것인가? 견문이 습속화되어서 예사로 생각하고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대개 자식된 자의 정리가 고금이 다를 리 없건마는 습속이 그렇게 만든 것이리라.

이른바 추천(追薦 죽은 사람을 위해 절에서 공양하는 불교 의식)이란 것은 다만 남의 보는 눈을 아름답게 할 뿐인 것인데, 마침내는 집안을 망치고 재산을 탕진하는 자까지 또한 있게 된다. 이것은 죽은 사람에게도 무익한 낭비일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에게도 무궁한 근심을 끼치는 일이니, 그것이 헛된 짓임은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위에 있는 사람이 법을 만들어서 막지 않는다면 그 폐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전하는 즉위하자 기강을 확립하고 무엇이나 다 옛날 성인의 법도를 본받았는데, 특히 예전(禮典)에 더욱 뜻을 기울였다. 유사에게 명하여 강명(講明)ㆍ수정(修定)하게 해서 모두 성법이 마련되어 있다. 신은 인기(人紀 사람의 기강)를 소중히 여기고 대사(大事 송사(送死))를 소중히 여기는 뜻에서 상제편(喪制篇)을 짓는다.

 

 

喪制

孟子曰。惟送死可以當大事。夫死者。親之終而人道之大變也。故先王愼之。作喪制。達之天下。使天下之爲人子者世守之。哭泣擗踊。情之變也。殯而食粥。虞而食蔬食菜羹。祥而食菜菓。飮食之變也。袒括齊衰。服之變也。枕塊寢苫。外而不內。居之變也。人子愛親之情。至此極矣。然猶未也。虞而哭。朞而悲。祥而憂。忌而慕。愈久而愈不忘。蓋亦出於中心之誠。非勉而爲之也。近世以來。喪制大壞。例以浮圖之法治之。初喪未葬。珍羞盛饌之狼藉。鐘鼓之喧轟。男女之混雜。而主喪者惟應對供辦之不給是慮。何暇哀死而恤亡哉。是以。雖居百曰之制。無慼容慘色。而笑語如平日。至親如此。況其下者乎。見聞習俗。恬不爲怪。蓋以人子之情。無古今之異。而習俗使之然也。其所謂追薦者。直爲人觀美耳。而卒至於傾家破產者亦有焉。在死者爲無益之費。而貽生者無窮之患。多見其妄也。不有在上者作法以防之。其弊有不可勝言者矣。殿下卽位。立經陳紀。動法古聖。其於禮典。尤致意焉。命有司講明修定。皆有成法。臣重人紀。愼大事。作喪制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