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사] "2년새 가격 반토막 태양광 사업.. 내 은퇴자금 어쩌라고"
김유나 임주언 기자 입력 2019.09.17. 04:10
“태양광 발전 사업은 신기루이고 환상이었습니다.” 은퇴 자금을 모두 털어넣어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정모(71)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정부가 된다고 하는 사업이었지 않느냐. 태양광 발전을 시작하고 2~3년이면 돈을 벌기 시작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정씨는 2017년 11월 태양광 발전 사업을 시작했다. 정부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 수립에 속도를 높이던 시점이었다. 시장에서도 태양광 발전 사업 투자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다. 정씨는 은퇴 후 남은 5억원을 털어넣고, 은행에서 10억원까지 빌려 사업에 나섰다. 발전사업 허가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8년이면 원리금을 모두 갚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기대가 무너지기까지는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정씨가 한국전력공사에서 전선을 끌어오고, 개발행위 허가를 받는 동안 태양광 발전 사업 전망에는 먹구름이 꼈다. 사업자 수익 요소 중 핵심인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현물 가격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REC는 신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공급했음을 증명하는 인증서다. 재생에너지 사업자는 전력을 생산한 뒤 이 인증서를 발급받아 현물시장에 팔고, 생산된 전력은 전력거래가격(SMP)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돈을 번다. REC 가격이 떨어지면 수익은 줄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동안의 가격 하락이 가팔랐고, 향후에도 추가 하락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16일 한국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REC 평균가는 5만7772원까지 떨어졌다. 2017년 평균 가격(12만8000원)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내려앉은 셈이다.
정씨는 “가격이 10% 안팎에서 오르내리는 정도라면 이해가 가지만 2년 만에 반토막 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이런 위험성이 있는 줄 알았으면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 발전소는 지난 7월 전력계통 연계가 끝났지만 발전소 수익은 아직 내지 못하는 상태다.
태양광 발전 사업은 정씨 같은 소규모 사업자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믿고 태양광 발전 사업에 뛰어든 소규모 사업자들에게선 비슷한 신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2~3년 전 REC 가격이 높았던 시절 대출을 끼고 사업을 추진했던 사업자들은 이자 내기도 벅차다고 아우성을 친다.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수요는 고정된 상태에서 소규모 업자만 늘려놓은 현재 ‘태양광 생태계’에서 REC 가격 하락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지적했다. 정책 속도조절과 현실적인 목표 설정이 필수적이라는 제언이다. “(태양광 발전 사업은) 내가 선택한 일이기도 하고, (다른 투자처인) 주식이나 환율도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이건 정부가 ‘재생에너지 3020’이라고 내놓은 정책인데 이렇게 가격 하락폭이 클 수 있느냐.”
전북 남원에서 100㎾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 2개를 운영 중인 권모(58)씨는 2년 전 노후 대책으로 태양광 사업 투자를 결정했다. 순수익이 월 200만원은 된다는 분양 사업자 말에 8000만원을 들여 땅을 샀고, 1억2000만원을 대출받아 사업을 진행했다. 권씨는 “8월에 12만㎾를 생산했다. 여름이라 일조량이 많아 이 정도이고 겨울은 8000~9000㎾ 되니 월평균 11만㎾ 정도로 봐야 한다”며 “현재 시세로 치면 170만원(SMP+REC) 정도 된다”고 했다. 권씨가 내는 고정비를 생각하면 이마저도 순익으로 보기 힘들다.
권씨는 현재 대출이자 37만원, 태양광 패널 등 관리·모니터링 비용 10만원씩 연 444만원을 지출하고 있다. 여기에 1년에 두 번 하는 벌초 비용 60만원, 화재보험 30만원을 계산하면 1년 순익은 1386만원 정도다. 내년부터는 대출 원금까지 갚아야 해 연 순익은 630만원 수준으로 급감한다. 월 50만원 정도다. 설치 10년 후 수명을 다하는 모듈 비용(1000만원 예상), 운영상 과정에서 발생하는 잔고장 등은 계산에서 빠져 있다. REC 가격이 추가 하락하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 단순 추산한 금액이다.
권씨는 “처음 시작할 때는 6년 남짓 되면 원금은 회수하겠다는 계산이 있었다. 지금은 원금 회수만 10년이 넘게 걸린다”며 “친한 지인이 500㎾ 규모로 태양광 발전 사업을 한다고 하기에 말렸다. 지금 시점에서는 절대 답이 안 나온다”고 했다.
소규모 사업자들은 REC 가격 급락에 울상이지만 전문가들은 예견된 일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태양광 사업 확대를 본격 추진하면서 소규모 투자자들은 급증했고, 그로 인한 REC 공급량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REC를 사들이는 수요자는 대규모 발전사업자로 한정돼 있고, 이들이 의무 구매해야 하는 REC 규모는 정해져 있다. 수요·공급 논리가 그대로 반영돼 가격 폭락은 불가피한 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정부는 2012년부터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제도를 통해 대규모 발전사업자들이 일정 비율의 신재생에너지를 공급하도록 하고 있다. 공급 의무가 있는 발전사업자(의무 발전사)들은 직접 재생에너지 전력을 생산하거나 소규모 발전사업자들로부터 REC를 구매해 이 의무공급 비율을 충당해 왔다.
2012년 2%에서 올해 6%로 증가한 의무공급 비율은 매년 조금씩 늘어나 2023년에는 10%가 된다. 이렇게 보면 REC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는 것 같지만 이미 소규모 발전사업자들의 REC 공급은 이를 뛰어넘었다. 다른 시장과 달리 REC에 대한 수요는 정부가 정한 의무공급 비율에 의해 이미 고정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 지식기반에너지대학원 교수는 “초기에는 재생에너지 공급이 (의무공급 비율을) 따라가지 못해 REC 가격이 크게 올랐지만 초기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의 고수익과 문재인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맞물리면서 REC 공급이 크게 늘었다”며 “기술 발달 등으로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이 계속 하락하는 것도 가격을 끌어내리는 요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과도한 ‘태양광 열풍’이 문제를 심화시켰다는 분석도 나온다. REC 가격은 하락이 불가피한 구조여서 태양광 사업자들은 개인투자자들이 조기 사업을 시작하도록 부추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태양광 사업이 급속히 늘어난 데는 사업자들의 조급증도 한몫했다고 본다”며 “하루라도 빨리 사업을 시작해야 높은 REC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너도나도 사업에 뛰어들면서 과한 열풍이 불었다”고 진단했다. 강원도 인제에서 태양광 발전소를 운영했던 A씨는 “태양광 발전 사업에 투자할 때 가지고 있는 자본에 비해 대출을 과하게 받은 경우 수익 악화는 훨씬 크다”고 했다. 김유나 임주언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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