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 산성길6(벌객샘능선1 ②망월사) –
태조가 자리잡아 승군을 통괄하여
호란을 이겨낸 넋 편안히 잠드신 곳
달뜨는 망월봉 아래 부처님도 계시고...
배달9217/개천5918/단기4353/서기2020/10/10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산성길6 (벌객샘능선1)(1) 동문-망월사-봉암성-벌봉
(+60=60분(07:00-08:00), +1.9=1.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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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이어 나타나는 장경사(0.8km)가는 갈림길(망월사0.3km)
담배풀이 길 가에 도열한 가파른 길을 오르니
일주문이 보이는데 기둥에 그려진 나한상이 노려보고 있다.
이성계가 창건한 망월사는 일제에 의해 대부분 소실되었고
높은 경사지의 축대만이 옛 것이고
인디라 간디 수상 협조로 스리랑카에서 모셨다는 진신사리탑이
대웅보전 옆에 경건함을 자랑한다.
대웅보전 뒤편 가파른 계단 쪽에 산신각 이정표가 보여 따라가니
호랑이를 쓰다듬고 계신 산신께서 인자한 미소로 복을 주신다.
합장하고 산신각 뒤편 희미한 오솔길의 가파름을 무릅쓰고 오르니
예상대로 아침햇살에 빛나는 제3암문(봉암성 암문)이다.
배달9217/개천5918/단기4353/서기2020/10/10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망월사지(望月寺址)
망월사는 남한산성 내에 있는 10개의 사찰 중
가장 역사가 깊은 사찰로 망월암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사찰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한양에 있었던 장의사를 허물고
그곳에 있던 불상과 금자화엄경, 금솥 등을 옮겨 창건하였다고 한다.
옛 망월사는 일제에 의하여 모두 소실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이후에 복원된 것으로,
지금의 법당 자리가 원래 망월사 중심 전각이 있던 곳이다.
곳곳에 남아있는 돌 축대는 옛 망월사 규모와 건물 배치를
짐작할 수 있게 하며, 대형 맷돌이 유물로 보존되어 있다.
대웅보전 우측에 위치한 사리탑은 인도 인디라 간디 수상으로부터
직접 모셔온 진신 사리를 봉안한 13층 석탑이다.
1) 갈림길에서 조금 올라온 이승과 저승의 경계라는 망월사 일주문
2) 들어오는 악귀를 때려 잡겠다는 나한상
3) 담배풀숲 속 안내판
망월사 관람(07:00-07:30) 망월사 갈림(07:10, 장경사0.8km, 망월사0.3km)
4) 아침햇살이 퍼지는 능선아래 급경사지 위의 요사채
5) 극락보전
6) 대웅보전
7) 범종각
8) 진신사리13층탑
9) 특이하게 굴속에서 호랑이를 쓰다듬고 계신 산신
남한산 망월사, 단오에 진신사리봉안 24주년 기념법회 열려
초청법사 지운스님, "부처님 진신사리 봉안의 의미는 부처님의 대자대비행을 실천하는 것"
뉴스에이 남동풍 | 승인 2017.06.01 10:27
[뉴스에이=남동풍 기자] 남한산성 망월사에서는 지난 달 30일
단오절을 맞이하여 지운 스님을 초청, ‘진신사리 봉안 24주년 기념법회’를 개최했다.
이날 300여 신도들과 함께한 자비선사 회주 지운 스님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의 기운은 일반적인 절과는 달리
부처님이 도달한 해탈의 정묘(精妙)한 에너지가 끊임없이 은은히 방출되어
고통의 바다에 윤회하는 중생들의 업장을 흡수, 소멸해준다”며
“이곳 망월사 13층 진신사리탑에서도 불가사의한 이적들을 보여줬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최근에는 ‘방광(放光)’의 소식까지 있었다”고 소개했다.
스님은 또 “부처님 인격의 결정체로서 불사리는
인간 사유의 범주를 초탈한 불가사의한 신비로움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이러한 이적을 보인 망월사의 부처님 진신사리 봉안의 의미는 부처님의
대자대비행을 실천함으로서 자신의 업장을 소멸시키는 것은 물론 부처님을
가까이 모시고자 하는 망월사 불제자들의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고 축원했다.
사리란 팔리어인 사리라(sarira)를 한자어로 표기한 것인데,
석가모니가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 후 다비를 했는데
8곡(斛) 4두(斗)의 오색찬란한 진신사리가 쏟아져 나왔다고 전해지면서
사리신앙이 싹트기 시작했다. 불교신자들이 불사리를 신앙하는 것은
사리가 곧 석가모니 부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지운스님은 이 자리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일생동안 도달했던 각자(覺者:깨달은 사람)의 마음과 영의 파동이 담겨져 있어서
그 기운이 물질화된 형태로 남아있는 불사리는
그 자체의 생명이 있어 증식도 한다”며
“사리는 부처님 육신의 일부이며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의 결정체로서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보살정신이 응결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망월사 대웅보전 우측에 자리잡고 있는 사리탑은
망월사를 복원한 성법 원장스님에 의해 인도 인디라간디 수상으로부터 직접
기증 받아온 진신사리를 봉안한 13층 석탑이다. 이날 사리탑 앞에서는 기념법회를
시작하면서 도량제를 열고 범패와 승무 등의 의식을 진행하였고 호국도량에 맞게
공군사병신도들이 육법공양(六法供養: 불교에서 대표적인 공양물 여섯 가지를 이르는 말.
향·등·꽃·과일·차·쌀 등 여섯 가지 중요한 공양물을 말함)순서를 맡았다.
망월사의 사리탑은 조선시대 병자호란때 전몰한 승병들의 왕생극락을 발원하고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보탑으로서 천상과 지상에서 함께 피워낸
현세의 부처가 나툰다는 적멸보궁이다.
남한산성은 서기 672년에 신라 문무왕이 당나라 군을 막기 위해 처음 축조하였고,
조선시대 선조대왕에서 순조대왕에 이르기까지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소가 되었다.
특히 인조대왕은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의 회오리를 이곳 산성에서 보낸 바 있다.
인조 2년(1624)에 오늘의 남한산성 형태로 대대적인 축성 공사를 시작하여
인조 4년(1626)에 완공하였는데, 이때 왕은 해동선사 제8대 조사인 벽암각성 선사를
팔도도총섭수장으로 임명하여 전국의 승군을 모아 남한산성을 개축조하고
승병을 훈련시키며, 군기, 화약, 군량미를 보관하고 적을 방위하는 역할을 맡겼다.
당시에는 약 10킬로미터에 달하는 성곽의 사방에 성문과
16개의 암문(暗門:성문에 다락 없이 만들어놓은 문)이 있었으며,
성내에는 행궁, 사장대와 9개의 사찰이 있었다.
당시 망월사는 남한산성 내에 있는 9개 사찰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고
산성의 승병을 관할하던 절이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한양의 장의사(壯義寺)를 허물고 그곳의 불상과 금자화엄경(金字華嚴經),
그리고 금정(金鼎/금솥) 1좌(座)를 이곳으로 옮겨 두었다고 남한지는 기록하고 있다.
국가와 산성을 수호하던 9개의 사찰은 일본군에 의하여 화약과 무기가 많다는 이유로
1907년 8월에 장경사 요사채 일부만을 남겨두고 전소되었다.
현재 성내에는 망월사를 비롯하여 개원사, 국청사, 장경사 등 4개의 절만이 복원 되었다.
경기도 기념물 제111호로 지정되어있는 망월사지는 1989년 성법 비구니 스님에 의해
동국대학교 박물관주관으로 발굴되었고 그 후 많은 정각을 세우고 복원 불사를 일으켜
완전히 면모가 일신되었다. 특히 대웅보전과 극락보전은
고려시대 양식으로 복원되었으며 조계종 비구니 수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뉴스에이 남동풍 kim2385@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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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구름 흘러가는 곳 / 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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