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 담쟁이 –
과거를 거느리고 엎드려 박박 기어
미래를 바라보며 절망을 부여잡고
넘사벽 올라서서도 수줍어할 뿐이지.
배달9218/개천5919/단기4354/서기2021/02/18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넘사벽 :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는 뜻으로, 매우 뛰어나서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거나 대적할 만한 상대가 없음을 이르는 말.
덧붙임)
담쟁이(1)
10/23 이성산가는 도중
금암산에서 만난 담쟁이.
미래를 향하여 포기하지않고 천천히 가되
줄지은 따라오는 과거를 버리지 않고
그렇게 미래를 바라기하며 박박 기어 도달한
가을의 절정에서도 부끄럽고 수줍어
빨갛게 물들이고 엎드려 있을 뿐.
어떠한 뽐냄과 으스댐도 없다.
(2)
잘났다고 나대는
자기 PR의 시대.
쉽게 과거를 잊고, 내동댕이치는
무도에 대하여 이해하는 비윤리.
그리고 겸손과 겸양이 바보인 시대.
그저 그늘에서
조그마한 행복 하나 보듬고 조용히 살 뿐.
(3)
시조를 짓고 나서
자료를 찾아보니
도종환씨도 담쟁이를 노래했는데
그는 반항과 투쟁과 쟁취를 말했는데
그동안 오랜 산행에서 보아온
담쟁이는 그러한 성취에 대하여
한없이 엎드린 겸손과 겸양과
수줍음으로만 보였다.
배달9218/개천5919/단기4354/서기2021/02/18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1) 2014/01/05 성수동 서울숲에서
2) 2009/06/07 서초 우면산
3) 2008/04/09 서초 예술의 전당
4) 2006/17 산성 남문아래
5) 2008/06/26 계룡산 숫용추
6) 2017/10/19
7) 2012/10/20 북악산 말바위
8) 2020/10/23 금암산
9) 2008/10/24 청계산 매봉
10) 2007/12/.23 우면산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는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다른 분이 본 담쟁이 일생>>>
담쟁이덩굴(boston-ivy)
돌담장이, 담장넝쿨, 담장이덩쿨, 담장이덩굴
분류 : 식물 > 쌍자엽식물 이판화 > 포도과(Vitaceae)
학명 : Parthenocissus tricuspidata (Siebold et Zucc.) Planch.
벽려(薜荔, Bi-Li), 장춘등(長春藤, Chang-Chun-Teng), 지금(地錦, Di-Jin), 파산호(爬山虎, Pa-Shan-Hu)
낙엽성 관목으로 덩굴식물이며 줄기나 종자로 번식한다.
전국의 돌담이나 바위 겉에서 자란다. 덩굴줄기는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5~10m 정도로 자란다. 덩굴손은 갈라져서 끝에 둥근 흡착근이 생기고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어긋나는 잎은 너비 5~20cm 정도의 넓은 난형으로
끝이 3개로 갈라지고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때로는 긴 잎자루의 끝에서
3개의 소엽이 달리는 복엽이고 가을철에 붉게 단풍이 든다. 6~7월에 개화하며
취산꽃차례에 많이 달리는 꽃은 황록색이다. 열매는 지름 4~8mm 정도로 둥글고
흰 가루가 덮여 있으며 8~10월에 흑색으로 익는다. ‘미국담쟁이덩굴’과 달리 잎이
3개로 갈라지거나 3개의 소엽으로 되고 ‘개머루속’에 비해 덩굴손 끝에 흡반이 있고
화반은 자방과 합생한다. 관상용으로 심는다.
쌍자엽식물(dicotyledon), 이판화(polypetalous flower), 낙엽 관목(deciduous shrub),
약간 덩굴성(vine), 재배되는(cultivated), 야생(wild), 약용(medicinal), 관상용(ornamental plant)
거풍, 경혈, 구건, 구창, 근골동통, 금창, 이완출혈, 제습, 종기,
종창, 종통, 지구역, 지통, 지혈, 치통, 통경, 편두통, 피부염, 허약체질, 활혈에 효험.
담쟁이덩굴은 돌담이나 바위 또는 나무줄기, 심지어 매끄러운 벽돌까지 가리지 않고
다른 물체에 붙어서 자라는 덩굴나무다. 줄기에서 잎과 마주하면서 돋아나는
공기뿌리의 끝이 작은 빨판처럼 생겨서 아무 곳에나 착 달라붙는 편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벽면(壁面)에 붙어 자라는 모양새를 보면 재미있다.
대체로 식물의 뿌리는 중력과 같은 방향인 땅속으로 자라고
줄기는 중력과 반대 방향인 위로 자란다. 그러나 담쟁이덩굴의 줄기는 이런 규칙을
꼭 따르지는 않는다. 공간이 비면 위나 옆은 물론 아래쪽으로 뻗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나무이름은 흔히 담장에 잘 붙어서 자란다고 하여 ‘담장의 덩굴’이라고 부르다가
‘담쟁이덩굴’이 되었다. 한자 이름은 돌담에 이어 자란다는 뜻으로
‘낙석(洛石)’이라고 하여 같은 뜻이다.
옛 양반가를 둘러치는 토담에는 담쟁이덩굴이 올라가 있어야
제대로 된 고풍스런 맛이 난다. 그러나 토담에서 시멘트 담으로 넘어오면서
담쟁이덩굴은 차츰 퇴출당했다. 줄장미와 능소화가 담장의 나무를 대신하였고,
담쟁이덩굴은 숲속의 나무 등걸을 타는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담쟁이덩굴은 담이 아니더라도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을 뒤덮으면
건물의 품위도 올라가고 아울러서 중요한 역할도 할 수 있다. 여름에 햇빛을 차단하여
냉방비를 30퍼센트 정도 줄일 수 있으니 요즘처럼 온 나라가 에너지 문제로 난리일 때는
더욱 그 역할이 돋보인다. 겨울에는 잎이 떨어져 햇빛을 받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미국이 자랑하는 단편작가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가난한 화가 지망생인 존시는 폐렴에 걸려 죽어가고 있으면서,
이웃집 담쟁이덩굴의 잎이 모두 떨어지면 자신의 생명도 다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바람이 휘몰아친 다음날 틀림없이 나목(裸木)으로 있어야 할 담쟁이덩굴에
마지막 잎새 하나가 그대로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다시 삶의 의욕을 갖게 된다.
기운을 차린 존시에게 친구인 수우가 ‘그 마지막 잎새는 불우한 이웃의 늙은 화가가
밤을 새워 담벼락에 그려 넣은 진짜 이 세상의 마지막 잎새’임을 일러주는 내용이다.
담쟁이덩굴 잎은 가을이 되면 단풍나무를 시샘이라도 하듯 붉은 단풍이 아름답게 든다.
이 담쟁이덩굴의 단풍은 단번에 잎을 떨어뜨리게 하는 ‘떨켜’가 잘 생기지 않으므로
바로 떨어지지 않고 겨울에 들어서야 떨어진다.
조선조의 선비들은 담쟁이덩굴이 다른 물체에 붙어서 자라는 것을 두고
비열한 식물로 비하했다. 인조 14년(1636)에 김익희란 이가 올린 상소문에 보면
“빼어나기가 송백(松柏)과 같고 깨끗하기가 빙옥(氷玉)과 같은 자는 반드시 군자이고
빌붙기를 등나무나 담쟁이같이 하고 엉겨 붙기를 뱀이나 지렁이같이 하는 자는 반드시
소인일 것이요”라고 하여 담쟁이덩굴은 등나무와 함께 가장 멸시하던 소인배에 비유했다.
담쟁이덩굴의 오래된 줄기는 회갈색인데, 발목 굵기 정도까지 자라기도 한다.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고 넓은 달걀모양이며, 끝이 세 개로 깊이 갈라지는 것이 보통이나
얕게 갈라지기도 하여 모양이 여러 가지다. 잎의 크기는 아기 손바닥만 하며,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톱니가 있고 잎자루가 매우 길다. 꽃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는데,
초여름에 황록색으로 핀다. 열매는 작은 포도 알처럼 열리고 하얀 가루로 덮여 있으며,
검은빛으로 익어서 포도와 같은 집안임을 금세 알 수 있다. 최근에는 담쟁이덩굴과 꼭 닮은
미국담쟁이덩굴을 많이 심고 있다. 잎이 다섯으로 갈라지는 겹잎이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는 것이 재래종 담쟁이덩굴과의 차이점이다.
《동의보감》에 보면 “작은 부스럼이 잘 낫지 않는 데와 목 안과 혀가 부은 것,
쇠붙이에 상한 것 등에 쓰며 뱀독으로 가슴이 답답한 것을 없애고
입안이 마르고 혀가 타는 것 등을 치료한다”라고 하였으며,
잔뿌리가 내려 바위에 달라붙어 있으며, 잎이 잘고 둥근 것이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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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 윤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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