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 산국 –
다 읽은 『자유의벗』 접어 만든 빠치로
온 동네 다 따먹고 즐거웠던 그 시절이
山菊花 송이구름으로 뭉게뭉게 피어나
배달9218/개천5919/단기4354/서기2021/02/05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 빠치치기 : 아이들 사이에 두꺼운 종이를 오리거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접어 서로 다양한 방법으로 따먹기를 하는데 이를 딱지치기라 한다. 주로
남자 아이들이 많이 가지고 놀았고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놀이이다. 지
방에 따라서 땅지치기, 또는 때기치기, 빠치치기, 표치기라고 하기도 한다.
덧붙임)
산국(1)
봄, 여름 꼭꼭 숨어있다가
온 세상을 노오랗게 물들이며
진한 香을 뿌리며
온 성벽길을 점령한 산국.
그 香을 따라가자니 잊고 있던
유년의 모습 출현.
(2)
60-70년대 어렵던 시절
동화책 하나 없던 때
아버지가 가져오시는 『우리들』,
그리고 『자유의 벗』등 어른들 잡지일지라도
그 컬러 그림, 만화등으로
민감한 감수성을 그나마 충족.
(3)
특히 『자유의 벗』은
유엔에서 만든 잡지인지라
지질이 좋아 그걸로 빠치를 만들면 최상급.
그러면 온동네의 아이들 빠치는 내거였다.
또한 컬러라서 아름답기까지 하였던
그 뿌듯했던 記憶.
배달9218/개천5919/단기4354/서기2021/02/05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1) 09/06/13 양재천
2) 06/10/03 삼각산 백운대
3) 20/10/09 남옹성
4) 20/10/10 봉암성
5) 20/10/10 벌봉
6) 07/10/13 우면산
7) 17/10/15 탄천
8) 12/10/20 북악산 말바위
9) 18/10/23
10) 12/11/23 북악산 계곡마루
산국(山菊, Northern dendranthema)
개국화, 들국화, 산국화, 岩香菊, 香葉菊, 람분야국, 나는개국화, 기린국화, 초매국
현화식물문 > 목련강 > 국화목 > 국화과 > 산국속
서식지 산지의 숲 가장자리, 길가
학명 Dendranthema boreale (Makino) Ling ex Kitam.
전국의 산과 들에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세계적으로는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지역에 분포한다. 줄기는 곧추서며,
위쪽에서 가지가 갈라지고, 높이 100-150cm다.
잎은 어긋나며, 줄기 아래쪽 잎은 넓은 난형, 5갈래로 깊게 갈라진다.
갈래는 난형 또는 피침형, 끝이 둔하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잎 양면은 짧은 털이 난다. 꽃은 9-11월에 줄기와 가지 끝에서 머리모양꽃이 모여서
산형꽃차례처럼 달리며, 노란색, 향기가 좋다. 열매는 수과이다.
줄기는 곧추서며, 위쪽에서 가지가 갈라지고, 높이 100-150cm다.
잎은 어긋나며, 잎자루가 짧다. 줄기 아래쪽 잎은 넓은 난형,
길이 4-8cm, 폭 2-6cm, 5갈래로 깊게 갈라진다. 갈래는 난형 또는 피침형,
끝이 둔하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잎 양면은 짧은 털이 난다.
꽃은 줄기와 가지 끝에서 머리모양꽃이 모여서 산형꽃차례처럼 달리며,
노란색, 향기가 좋다. 머리모양꽃은 지름 1.5cm쯤이다.
모인꽃싸개는 반구형, 길이 4mm쯤, 조각이 3-4줄로 붙는다.
바깥쪽 조각은 선형, 작다. 열매는 수과이며, 길이 1mm쯤이다.
전국의 산과 들에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감국(D. indicum (L.) Des Moul. )에 비해서 줄기는 항상 곧추서며, 머리모양꽃은
지름 1.5cm쯤으로서 조금 작고, 모인꽃싸개잎은 길이가 조금 작으므로 구분된다.
본 분류군은 구절초속(Chrysanthemum)에 처음 발표되었는데,
열매에 날개가 없다는 점을 들어 산국속을 구절초속속과 다른 독립된 속으로 구분 지으며,
1978년 기타무라(Kitamura)에 의해 산국속으로 이전되었다.
한편, 본 분류군의 원기재자인 일본의 분류학자 마키노(Makino)는
1902년 본 분류군이 일본 중부지방에 드문드문 분포하는 감국의 한 변종으로 여기고
“var. boreale”라는 이름을 언급하였으나 이는 기재나 식별법,
또는 그림을 동반하지 않아 비합법명이다(Makino, 1902).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들국화의 한 종류로서 색이 노랗다고 "황국화(黃菊花)", 야산에서 핀다고 "야국화",
들에서 피어난다고 "들국화"이라고 하며, 그외에도 산국화(山菊花), 황국화(黃菊花),
천층국(千層菊), 봉래화(逢萊花), 개국화, 가을국화, 구월국, 들국화, 산황국,
야황국 라고도 불리운다. 한국, 중국 북부, 시베리아, 일본등 동아시아지역에 분포 한다.
영명은 Wild Chrysanthemum 학명은 Chrysanthemum boreale이다.
산지에서 자란다. 식물 전체에 흰 털이 있으며, 키는 40~80㎝ 정도 자란다.
뿌리줄기는 길게 뻗으며 줄기는 모여나고 곧추서고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뿌리에 달린 잎은 꽃이 필 때 마른다. 줄기에 달린 잎은 어긋나고
긴 타원형의 달걀모양이며 길이 5∼ 7cm, 나비 4∼7cm이다.
깃꼴로 깊게 갈라지고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길이 1∼2cm이다.
꽃은 9∼11월에 노란색으로 피는데, 두화(頭花)는 지름 1.5cm 정도로서
가지와 줄기 끝에 산형(傘形) 비슷하게 달린다. 총포는 길이 약 4mm이고,
포조각은 3∼4줄로 늘어서며 바깥조각은 줄 모양이거나 좁은 긴 타원 모양이다.
화관은 통 모양이며 끝이 5갈래로 갈라진다. 열매는 수과(瘦果)로서 10∼11월에 익으며
길이 1mm 정도이다. 노란색 꽃이 아름답고 향기가 좋아 뜰에 심기에 적당하다.
산국은 대표적인 화훼식물인 국화 종류와 잎 모양이 흡사하다.
가장 한국적인 야생 국화(菊花)이고, 토종 허브 식물자원이다. 늦은 가을에 꽃이 피며,
더러는 첫서리가 내리는 시기에도 핀다. 잘 말린 산국 꽃은 환절기 감기를 극복하는
대용 차로 즐기며, 유럽인들이 감기약을 대신해서 마시는 카밀레 차(茶) 같은 것이다.
산국의 꽃차례는 전체적으로는 우산모양(傘形花序,散形花序)을 닮은 가산형(假傘型)이다.
산국과 흡사한 감국은 온전한 고른꽃차례(繖房花序)다. 특히 감국은 뚜렷한
땅속줄기로 퍼져나가고, 두화 (頭花)의 직경이 2.5mm 정도로 산국의 1.5배 크기이며,
염색체수도 산국의 두 배인 2n=36인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유사한 종일 경우에
염색체수가 클수록 꽃의 크기가 크다. 산국은 황금색 같은 노란 꽃만 피지만,
감국은 백색 꽃도 핀다. 감국은 산국보다 온난한 지역에 널리 분포하며,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주로 산다. 산국은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특히 사람들 눈에 쉽게 띄는 산기슭의 산비탈과 경작지나 개울 언저리의 경계가 되는
늘 습윤한 곳에서 무리를 이루고 산다. 산국은 도시화 되고 산업화 된 환경 속에서는
살지 않는다. 신선한 공기와 오염되지 않은 누기(漏氣)가 있는 땅에서만 산다.
산국은 여전히 사람이 살만한 쾌적한 땅이란 것을 알려주는 바로미터가 되는 종이다.
들국화중 유난히 구분이 힘든 산국과 감국의 차이점은
1. 꽃 : 산국은 가지끝에 총총히 달리고 꽃잎이 꽃판보다 짧으며,
감국은 잔가지 끝에 한 두개씩달리고 꽃잎이 꽃판보다 길다.
2.줄기: 산국은 줄기가 녹색이지만 감국은 줄기가 붉은 빛이 돈다.
3. 가지치기 : 산국은 중간부터 많은 가지를 내지만감국은 아래쪽에서 가지를 친다.
4. 잎 : 산국은 전체가 둥근 편이지만 감국은 긴 편이다.
잎의 색깔도 산국은 연녹 내지 녹색이지만 감국은 짙은 녹색이다.
5. 버릇 : 산국은 곧추서지만 감국은 대부분 비스듬히 누운 자세이다.
감국은 잎겨드랑이에서 가지를 내고 꽃을 피운다.
그리고 산국은 양지를 좋아하지만 감국은 반그늘에서 많이 보인다.
6. 술을 담거나 차를 끓이는 것은 감국이고 산국은 독이 있다.
들국화는 국화과를 통틀어서 들국화라 하지만 좁게는 산국과 감국이 들국화라 한다.
7. 꽃닢의 크기가 산국은 50원짜리, 감국은 500원짜리 정도로 차이가 있다.
•산국(봉래화)의 효능은
눈을 밝게하며 근육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불로장수 두통 뇌질환에 좋은 산국화이다.
꽃으로 술을 담그기도 하고 어린잎을 삶아 나물로 먹기도 한다.
꽃은 두통, 현기증, 안질, 진정, 해독, 소종 등의 효능이 있다.
우리나라 동해안은 세계에서 가을 날씨가 가장 좋은 곳이다.
그래서 동해안의 가을 경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 이 동해안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가을 꽃은 산국화다. 10월이면 온 산과 들에 황금을 뿌려 놓은 듯
산국화가 만발하여 11월에는 씨앗이 익는다. 이 땅의 가을 정기를 듬뿍 받고 자란 산국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 산국화야말로
인류를 난치병에서 구할 수 있는 선약(仙藥)이고 만병통치약이다.
한글명 산국은 1921년 『조선식물명휘(朝鮮植物名彙)』에서 처음으로 기재된 바 있다.
그런데 감국, 강셩화등을 함께 기록하며 학명 Chrysanthemum indicum에 대응시켰으며,
그로부터 10여 년 후 『토명대조선만식물자휘(土名對照鮮滿植物字彙)』에서는
Chrysanthemum boreale에 대해 감국(甘菊)과 강성화란 한글명을 대응시켜
무척 혼란스럽다. 오늘날 식물도감들은 감국을 Chrysanthemum indicum에 대응시키고 있다.
그런데 감국(甘菊)은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 강셩항이란 한글로 기록된 바가 있기 때문에
산국과는 전혀 다른 종이다. 산국은 19세기 『물명고(物名考)』에서 야생하는 국화,
즉 들국화라는 의미로 야국(野菊)이란 한자명에 산구화란 한글명을 표기해 두고 있다.
따라서 한글명 산국은 산구화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15세기초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에 국화(菊花)란 약재명이 한자로 기록되었으며,
한글표기는 보이지 않는다. 15세기말 『구급간이방 (救急簡易方)』에서
한자 국화(菊花)에 대한 언해 (諺解)라면서 ‘구화’를 기록했다.
16세기에 들어서 한자 국(菊)자에 대해 구화 또는 국화 ‘구’라 표기했다.
결국 구화는 국화란 한자명이 소개되기 전부터 있었던 국화의 옛말인 것이다.
여기에서 구는 숫자 구(九)에 잇닿아 있다. 따라서 “구화라는 한글 표기는
국화가 잘못 전화(轉訛)된 것”이라고 지적한 기록은 오류다.
산국은 한반도가 분포중심지이며, 만주지역까지 분포한다.
그래서인지 대륙의 북녘 땅에 산다는 의미의 라틴어 보레알레(boreale)라는
종소명이 붙어 있다. 한자명(北野菊, 북야국)은 이것을 번역한 명칭으로 보인다.
일본에 분포하는 산국의 선조종(先祖種)은 이끼(壱岐) 섬과 쓰시마(對馬島)에서 유래하며,
이것은 산국의 식물지리학적 원산이 한반도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일본내에서도 아주 제한적으로 분포하며, 동해에 위치하는 이끼(壱岐) 섬과
쓰시마(對馬島), 그리고 교토(京都)지역 일부에서 아주 드물게 분포하는 것이 보고된다.
황금색 꽃이 거품처럼 모여 나는 형상으로부터 만들어진 이름,
아와고카내기꾸(泡黄金菊)라고 부른다.
속명 크리산테뭄(Chrysanthemum)은 황금빛 (chrys-)과 꽃(anthos)의 합성에서 유래하고,
금잔화(marigold)의 황금빛 노란 꽃을 의미한다. 이 속명을 대신해서 1970년대 이후로
덴드란테마 (Dendranthema)란 속명이 정명(正名)으로 채택되었다.
산국의 줄기 아랫부분이 목질화되는 것으로부터 희랍어로
나무를 의미하는 Dendro-와 꽃(anthos)이 합성된 명칭이다.
산국화를 옛 선인들은 봉래화(逢萊花)라고 불렀다.
봉래산은 신선들이 사는 산이고 봉래화는 신선들이 먹는 음식이다.
신선들은 봉래산에서 살면서 오직 봉래초와 봉래화의 향기를 맡고 그 씨앗을 먹으며
산다고 했다. 봉래초는 서해안 다시 말해 강화도와 백령도에 자라는
싸주아리쑥을 가리키고 봉래화는 동해안의 산국화를 가리킨다. 우리나라 서해안은
봄 날씨가 세계에서 가장 좋은 곳이어서 그 봄의 정기를 받고 자란
싸주아리쑥도 신비의 영약이 된다.
중국의 전설적인 의약의 신인 염제 신농(神農) 씨는 국화가 몸을 가볍게 하고
오래 살게 하는 최고의 영약이라고 했다. 그 뒤로 많은 사람들이 국화를 신비의 영약으로
여겼다. 옛날 중국의 감곡이라는 강의 상류에 신비로운 국화가 자라고 있었는데,
그 강물에 국화 향이 섞인 이슬이 떨어져 강하류에 사는 사람들이 그 물을 마시고
모두 건강하고 오래 살았다고 한다. 또 팽조라는 선인은 국화를 심은 연못가에서
늘 국화 잎에 맺힌 이슬을 받아 먹고 수백 년을 살았다고 한다.
<정전>이라는 책에는 촉나라에 장수원이라는 수원지가 있었는데 사철 내내 국화가 피어서
늘 향기가 가득하였고 주민들이 그 물을 마시고 모두 200~300살을 살았으며,
도연명이 국화를 좋아한 것도 이처럼 무병장수하기 위한 것이라고 적혀 있다.
산국의 전설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무렵,
주목이란 사람이 서역(지금의 인도)으로 가서
장수비결을 익히고,이를 자동이란 사람에게 전했다. 이 비결의 신통력이
기가 막혔는지 자동은 수 백년이 지나도 늙지 않고 항상 청년같은 안색을 유지했다고 한다.
800살까지 장수한 자동은 그 후 이름을 팽조로 바꾸고 위나라 문제왕에게도 이 비법을
전수했다. 자동의 불로장생비결은 다름 아닌 ‘국화’를 약용으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또한 중국에는 중양절에 국화주를 마시는 풍습이 있다.
후한의 여남 땅에 사는 하경이라는 사람한테 비장방이라는 선인이 나타나
'9월 9일 너희 집에 액운이 닥쳐 올 터이니 그것을 피하려면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도록 하여라' 라고 말했다. 하경은 선인이 시키는 대로 가족들을 데리고
9월 9일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셨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보니
집에 있던 가축들이 모두 떼죽음을 당해 있었다. 그 뒤로 음력 9월 9일은
국화주를 마시고 온갖 액운을 물리치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명절이 되었다.
국화는 <동의보감>을 비롯하여 <향약집성방> <본초강목>등 옛 의학책에서
상약(上藥)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약초다. 수백 가지 국화중에서
봉래화가 약성이 가장 강하다고 한다. 봉래화는 잎, 줄기, 꽃, 뿌리, 씨앗을
모두 약으로 쓸 수 있지만 씨앗이 약성이 제일 강하다. 봉래화 씨앗은 두통, 고혈압,
어지럼증, 중풍, 위염, 치질, 갖가지 염증, 불면증, 기억력 감퇴, 뇌종양, 만성 간염,
부인병, 생리통, 냉증 등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 봉래화는 씨앗은 까맣고 고운
모래알처럼 잘다. 이것을 10월이나 11월에 채취하여 그늘에 말려두었다가
매일 0.1~0.3 그램쯤을 물 1.8리터에 넣고 대추 열 개쯤을 넣은 다음
물이 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약한 불로 달여 차마시듯 수시로 마신다.
봉래화 씨앗은 맛이 몹시 쓰므로 대추나 감초를 넣어야 한다.
봉래화는 고혈압, 동맥경화, 협심증, 심장 질환 등에도 효험이 크다.
봉래화 잎 10~15그램을 물 1.8리터에 넣고 물이 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약한 불로 은근하게 달여서 수시로 차 마시듯 마시거나,
봉래화 씨앗 1~2그램과 대추 열개에 물 1.8리터를 붓고 물이 반으로 줄어들 때까지
약한 불로 달여서 수시로 마신다. 봉래화에 백작약,하고초, 뽕나무 속껍질,
익모초 등을 6~10그램 더하면 고혈압 치료에 더욱 효과적이다.
5~6일쯤 지나면서 혈압이 내리기 시작하여 한 달쯤 지나면 혈압이 안정된다.
봉래화 잎을 종기나 상처에 붙이고 즙은 마신 다음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흠뻑 내면 좋다. 협심증은 가슴이 뛰고 답답하며 때로는 심장 부위가
쥐어짜는 듯이 아프고 어지럽거나, 머리가 아프고 팔다리가 마비되는 무서운 병이다.
협심증에는 봉래화 400그램을 따뜻한 물에 하룻밤 담가 두었다가
한 번에 30분씩 두 번 끓여서 식혔다가 찌꺼기를 버리고 걸러서 하루 두 번
한 번에 25밀리리터씩 마시면 된다. 봉래화 대신 흰꽃이 피는 들국화를 써도 좋다.
2~3개월 복용하면 심장병 환자 80~90퍼센트가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봉래화는 염증을 없애고 여러 균을 죽이는 작용을 해서
위염이나 위궤양, 장염, 치질, 중이염, 축녹증 에도 사용할 수 있다.
잎을 달여서 먹는 것도 좋지만 잎과 줄기를 오래 달여서 엿을 만들어 먹으면
먹기도 좋고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여름이나 가을철에
봉래화 잎과 줄기를 채취하여 물엿을 만들어 두고 한 번에 30그램씩 하루 세 번
밥 먹기전에 먹는다. 말린 봉래화 잎과 줄기 20킬로 그램에 물 20리터를 붓고
48시간 쯤 달이면 2킬로 그램쯤의 봉래화 엿을 만들 수 있다.
이 엿을 꾸준히 복용하면 만성 위염, 위궤양, 장염, 장궤양 등이 나을 뿐만 아니라
밥맛이 좋아지고 뱃속이 따뜻해지며 기운이 나고 몸이 가벼워진다.
봉래화는 뇌신경을 튼튼하게 하여 머리를 맑게 하고 기억력을 좋게 하며
눈을 밝게 하는 작용을 한다. 평소에도 꾸준히 봉래화를 먹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불면증, 신경 쇠약 등의 증상이 없어진다. 석창포와 함께 뇌신경을 튼튼하게 하고
모든 뇌 질환을 치료하는 데에 으뜸가는 약으로 꼽을 만하다.
봉래화 씨앗은 항암 작용이 높아서 여러 암에도 쓸 수 있다.
특히 뇌종양이나 식도암, 설암, 인후암, 갑상선암, 임파선암 등에 효험이 크다.
종기에는 봉래화의 잎, 줄기, 꽃 등을 한데 짓찧은 데에 술과 물을 약간 섞어 달여서
찌꺼기는 짜서 종기나 상처에 붙이고 즙은 마신 다음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흠뻑 내면
좋다. 음부가 가렵거나 부을 때는 봉래화의 줄기, 꽃, 잎 등을 달인 물로 몇 번 씻는다.
대개 3~5번 씻으면 낫는다. 봉래화는 치질에도 효험이 있다.
늦가을에 꼬이나 씨앗을 채취하여 그것을 달여서 그 증기를 항문에 쏘이면
치질이 대개 낫는다. 10~20일쯤 아침 저녁으로 두 번씩 한 번에 30분씩
환부에 김을 쏘이도록 한다. 치료가 가장 어려운 병 중의 하나로 꼽히는 만성 전립선염도
봉래화 씨앗을 달여서 3~6개월 동안 꾸준히 복용하면 대부분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상식하나 올려드리면...들국화는 들에 피는 국화류 종류를 총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이 들국화의 종류를 나누자면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쑥부쟁이류, 구절초류, 개미취류가 있는데 이 중에 구절초가 가장 많다.
그 구분법으로는...
*쑥부쟁이류
특징 - 잎의 모양이 선형 또는 피침형이거나 길쭉한 타원형이다.
잎의 가장자리에 톱니가 조금 있거나 밋밋하면서 갈라지지 않고
옆으로 퍼지면서 전체가 둥근 모습으로 자란다.
종류 - 쑥부쟁이, 가는쑥부쟁이, 가새쑥부쟁이, 개쑥부쟁이, 흰개쑥부쟁이, 눈개쑥부쟁이,
섬쑥부쟁이, 까실쑥부쟁이, 흰까실쑥부쟁이, 버드쟁이나물, 미국쑥부쟁이, 빗자루국화,
갯쑥부쟁이, 민쑥부쟁이, 옹굿나물, 쑥방망이 등
*구절초류
특징 - 잎이 난형이거나 둥근 타원형이면서 아주 깊게 갈라진다.
대개 우상으로 갈라진 열편조차도 선형 또는 피침형일 정도로 끝이 아주
뾰족뾰족한 편이다. 꽃도 대개는 구절초의 경우가 크면서 꽃잎도 넓고 두툼한 편이다.
잎의 두께나 식물의 몸체도 구절초의 경우가 훨씬 튼튼하다.
옆으로 퍼지면서 전체가 둥근 모습으로 자란다.
종류 - 구절초, 산구절초, 바위구절초, 포천구절초, 낙동구절초, 한라구절초,
서흥구절초, 남구절초, 울릉국화, 키큰산국, 산국, 감국 등
*개미취류
특징 - 옆으로 퍼지지않고 위로 곧게 자라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 있다.
벌개미취나 좀개미취의 경우는 키가 작으며 몸체가 꽤 안정감있게 생겼다.
개미취의 경우는 큰 것은 키가 2m 이상이나 되는 것도 있어서,
꽃이 피면 무거워서 제 몸무게를 못 이겨 쓰러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개미취류의 잎 모습은 쑥부쟁이류와 대개 비슷하나 좀 더 크다.
종류 - 개미취, 좀개미취, 갯개미취, 벌개미취 등
산국 / 감국 구별하기1
산국을 맛이 쓰고 맵다 하여 '고의(苦薏)'라고도 한다. 이에 비해 감국은
꽃잎을 씹으면 그윽한 향과 단맛이 난다 하여 감국(甘菊) 또는 단국화라 한다
가을이 덧없이 깊어간다. 풀이며 나무들이 하나 둘 잎을 떨어뜨리는 이맘 때
때론 하얀색으로, 때론 노란색으로 들과 낮은 산을 물들이며 깊어가는 가을을 빛내는
꽃무리가 있다. 통칭하여 들국화라 부르는 것들이다.
연하늘색의 쑥부쟁이가 대부분이지만 이따금 고고한 흰색의 구절초가 있고,
샛노란 꽃을 흐드러지게 매어단 산국과 감국이 있다. 바닷가에는 해국이 있다.
산국1
그중에서도 산국은 전국 어느 곳에서든 샛노란 꽃이 떼를 이뤄
가을 햇살과 바람에 춤추는 모습을 볼 수가 있으니
산국이야말로 진정 들국화를 대표하는 꽃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산국은 키 1m 내외로 잎은 쑥잎과 비슷한 깃꼴 모양이다.
9월부터 10월에 걸쳐 가지 끝에 1.5cm 내외의 노랑꽃을 우산살 모양으로 펼쳐 핀다.
산국이 흐드러져 피어있는 곳엔 가까이만 가도 그 향기가 진동하니
막바지 꿀 모으기에 한창인 벌과 나비들이 늘 분주하게 움직인다.
호기심에 자잘한 꽃송이를 따서 입속에 넣고 살짝 맛이라도 볼라치면
그 향기가 진하다 못해 써서 이내 뱉어내야 할 정도이다.
때문에 산국을 맛이 쓰고 맵다 하여 '고의(苦薏)'라고도 한다.
이에 비해 감국은 꽃잎을 씹으면 그윽한 향과 단맛이 난다 하여
감국(甘菊) 또는 단국화라 한다.
산국2
그러한 이유로 감국이 사람들의 손에 훼손되어서인지 산국은 많아도
감국을 보기는 정말 쉽지 않다. 지난 2주 동안 감국을 찾아 악양 깊은 골을 다 뒤졌으나
허사였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 지난 아침 뒷산에 물을 뜨러 갔다 내려오는 길에 숲 아래
그늘에 두어 송이의 꽃을 매단 감국을 발견했다. 꽃잎이 활짝 펴지지 않았어도
산국에 비해 꽃이 클 뿐더러 꽃잎이 꽃판에 비해 길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뒤에 다른 곳에서 그 보다 많은 개체수를 발견하는 행운을 가졌다.
꽃잎이 흰색인 흰감국도 있다 하나 아직 만나보지는 못했다.
감국이 워낙 귀하다보니 산국과 감국을 두고 혼동이 많은 것 같다.
감국과 산국을 구별하는 포인트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산국은 꽃의 크기가 1.5cm 내외인데 비해 감국은 2.5cm정도로 크다.
2. 산국은 가지 끝에 많은 꽃송이가 우산살모양으로 달리고 감국은 가지 끝에 2~3송이가 핀다.
3. 산국은 꽃잎이 꽃판에 비해 같거나 약간 작은 반면 감국은 꽃잎이 꽆판보다 크다.
4. 산국은 키가 1m 내외로 감국에 비해 크다. 산국은 중간에 가지를 많이 친다.
감국1
산국, 감국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지만 우리 조상들은 이를 다양한 용도로 이용하였다.
봄에 새싹은 나물로 데쳐 먹고, 가을에는 꽃잎을 따서 술과 차와 떡으로 만들어 먹었다.
꽃을 말려 베게나 이불 속에 넣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어지러움이나 두통이 없어지면서 머리가 맑아져 단잠을 잘 수가 있다고 한다.
특히 국화차는 눈을 밝게 하고 머리를 좋게 하며, 신경통 ·두통 ·기침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오래 음용하면 불로장수한다고 선조들은 믿었다.
국화차를 만드는 방법은, 감국은 말린 꽃과 꿀(끓인 꿀)을 고루 버무려
오지그릇에 넣어 3∼4주일 밀봉해두었다가 꿀에 버무린 꽃잎을
뜨거운 물에 타서 건더기는 걸러내고 마신다.
산국의 경우는 향이 너무 진해 쓰기 때문에 소금을 넣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낸다.
소쿠리에 건져 물기를 짜고 그늘에 말려 보관했다가 서너 송이를 찻잔에 넣고
뜨거운 물에 우려내어 마신다. 네다섯 번 정도 우려먹을 수 있다.
감국2
술을 담가서도 먹는다.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음력 9월 9일에
국화주를 담가 먹는 풍습이 있었다는 걸 고려가요 <동동動動>의 노래가사에서 알 수 있다.
전통 국화주를 빚는 과정은 어려워 차치하더라도 싱싱한 산국이나 감국을
물에 살짝 헹구어 물기를 뺀 다음 30도가 넘는 소주를 세배 분량으로 하여 밀봉한 후
서늘한 곳에 3개월 이상 보관하였다가 찌꺼기는 걸러 내고 마셔도 향과 맛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다. 감국에 대해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성질은 평(平)하고 맛이 달며[甘] 독이 없다. 장과 위를 편안하게 하고
5맥을 좋게 하며 팔다리를 잘 놀리게 한다. 풍으로 어지러운 것과 두통에 쓴다.
또 눈의 정혈을 돕고 눈물이 나는 것을 멈추게 하며 머리와 눈을 시원하게 하고
풍습비(風濕痺)를 치료한다. 잎과 줄기가 감국과 같고 오직 꽃만 흰 것을 흰감국(白菊花)이라
하는데, 역시 풍으로 어지러운 곳에 주로 쓴다. 그리고 머리가 희지 않게 한다.
산국(苦意)은 맛은 쓴데[苦] 어혈을 풀어헤친다. 부인의 뱃속에 있는 어혈을 치료한다
감국3
산국이나 감국의 번식은 실생과 분주, 삽목에 의한다.
실생번식은 가을에 꽃이 지고 종자가 완숙하였을 적에 채종하여 그늘에서 건조시킨 후
저장하였다가 이듬해 봄에 파종한다. 2년이 지나야 꽃을 볼 수 있다.
삽목방법은 초여름에 금년에 자란 새순을 5-10cm정도의 길이로 잘라 아래쪽 잎을
2-3매 제거한 후 삽수를 모래삽상에다 삽목한다. 삽목 번식묘는 당년에 꽃을 피운다.
산국 / 감국 구별하기2
조선일보 [김민철의 꽃이야기] 산국의 향기, 감국의 단맛 입력 2020.10.13 07:00
◇산국의 달콤한 향기
산국의 계절이 왔습니다. 요즘 산기슭이나 언덕, 바위틈 등 양지바른 곳에서 핀
노란 들국화가 산국입니다. 산국 하면 뭐니뭐니해도 진한 향기가 특징입니다.
꿀향기와 같은 달콤한 냄새입니다.
산국은 꽃송이들이 우산 모양으로 둥글고 빡빡하게 뭉쳐 핀다.
산국(山菊)은 말 그대로 산에 피는 국화라는 뜻입니다.
늦가을까지 피는데 일부는 서리 내릴 때까지 피어 있습니다.
예로부터 ‘야생 국화’라 해서 꽃을 따서 술을 담그기도 하고 차로 만들어 마시기도 했죠.
산국은 꽃과 잎이 원예종 노란 국화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다만 꽃송이가 국화보다 좀 작고 향기는 더 진합니다.
양지바른 곳을 좋아하고 건조에 강해 도로변 경사지나 절개지에도
많이 심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늦가을 청계천을 노랗게 물들이는 것은
대부분 산국이고, 남한산성 성벽의 산국 세력도 대단합니다.
산국 무리
◇감국 꽃잎의 단맛
산국과 비슷하게 생긴 꽃으로 같은 노란 들국화인 감국이 있습니다.
산국보다 좀 늦게 피어서 요즘 한두 송이씩 피기 시작합니다.
꽃잎에 단맛이 있어서 감국(甘菊)이라 부릅니다. 야생화 공부를 시작할 때, 아니
상당히 지나서도 고심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이 산국과 감국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꽃송이 크기를 보는 것입니다.
작으면 산국, 좀 크면 감국인데 기준점은 지름 2㎝입니다. ^^
산국(약 1.5㎝)은 요즘 50원짜리, 감국(약 2.5㎝)은 500원짜리 동전 크기입니다.
감국이 산국보다 1.5배 정도 큽니다. 그래서 100원짜리를 대보아 이보다 작으면 산국,
크면 감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산국은 노란 혀꽃의 길이가
가운데 부분(통상화)의 지름보다 짧거나 비슷하고, 감국은 길거나 같습니다.
감국은 꽃송이가 100원짜리 동전보다 큰 편이다.
좀 익숙해지면 꽃차례, 그러니까 꽃이 피는 모양새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산국은 꽃송이들이 우산 모양으로 둥글게 피고, 감국은 꽃송이들이 평평하게 핍니다.
산국은 꽃잎이 제 자리에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빡빡하게 피는 편이고, 감
국은 꽃송이가 더 크지만 꽃잎들이 다 제 모습을 찾을 정도로 엉성하게 달리는 편입니다.
잎으로도 구분 가능한데, 산국 잎은 얇고 톱니가 날카롭게 보이고,
감국 잎은 좀 두껍고 둥글게 보이는 편입니다.
위가 산국이고 아래가 감국이다. 꽃 크기와 꽃차례 모양을 비교할 수 있다.
산국은 전국적으로 분포하지만 주로 중부지방에서 피고,
감국은 남쪽 지방이나 바닷가에 피기 때문에 서울 근교에서 국화 잎처럼 생긴
노란 꽃이 있다면 산국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산국은 양지, 감국은 반그늘을 좋아하는 것도 참고할만합니다.
그러나 자라는 환경에 따라 꽃 크기 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산과 들에서 만나는 노란 꽃이 산국인지 감국인지 구분하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야생화 사이트나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보면
산국인지 감국인지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또 저 노란 들국화가 산국인지 감국인지는 그리 중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노란 들국화를 감상하고 가을이 깊었음을 알면 그만이겠지요.
『자유의 벗』에 대한 회상
2009. 4. 27. 9:45 https://blog.naver.com/sunglys/120067507014 / 이영성
6.25를 과거 역사의 기록으로만 인식하는 세태 안타까워 현재 5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 6.25동란 직후 미군 극동사령부에서
한국국민계도용으로 발간했던 <자유의 벗>이라는 잡지를 기억할 것이다.
그 잡지는 당시 우리나라 학생들의 교양 필독서였다. <자유의 벗>은 당초
한국 국민에게 자유우방으로서의 미국을 널리 홍보할 목적으로 간행한 월간지였다.
그래서 학교 교실이나 마을회관 벽에는 항시 <자유의 벗> 몇 권이 못에 걸려
자리하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사회는 휴전으로 인하여 몹시 불안정한 시기였다.
그런데 <자유의 벗>은 1955년 6월호를 창간호로 하여 1972년 6월호로 종간할 때까지
전쟁으로 인하여 어수선했던 사회 분위기를 안정시키고
남북분단으로 불안했던 민심을 수습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자유의 벗>은 가로 19.5cm x 세로 25.5cm 크기로 30쪽 정도의 얄팍한 책이었다.
그런데 표지가 컬러인쇄인 데다가 종이의 질도 최고급이었다. 내용으로는
국내 동향과 국제 동향, 전쟁 후의 재건 모습, 우리나라의 발전 소식 등을 다루었으며
그 밖에 수필과 시사만평, 사진을 곁들인 종합교양잡지였던 셈이다.
당시는 일부 지식인들을 제외하고는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산촌에서는 라디오조차 귀했기에 주민들 대다수가
<자유의 벗>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곤 했다. 특히 북한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은 <자유의 벗>을 통해 북한의 실정을 귀동냥하곤 했던 것이다.
<자유의 벗>은 초등학교 어린이부터 일반인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한국국민을 독자로 삼았기에 내용 또한 읽기 쉽게 풀어 쓴 편이었다.
그러나 <자유의 벗>이 비록 종합교양잡지라고는 하나 당시 나와 같은 어린아이들에게는
읽을거리가 별로 없었다. 잡지에 실린 글의 대부분이 시사성이 강한 것들이었기에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따금 실리는 전래 동화나
책 말미에 들어 있는 ‘웃음거리’란은 어린아이들이 즐겨 읽는 부분이었다.
특히 ‘코주부’로 유명했던 김용환 화백이 그린 만화나 삽화,
그리고 시사만평이 초등학생들에게 꽤나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살던 산촌마을은 수복지구인데다가 휴전선이 그리 머지않았기에 북한에서
날려 보내는 불온전단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불온전단을 주워 모아
경찰서나 헌병대에 가져가면 그 대가로 <자유의 벗>을 나눠주곤 했다.
그런데 <자유의 벗>은 나름대로 활용가치가 많았다. 당시는 가난했기에 학교 교과서도
형제끼리 대물림해서 쓸 때였다. 그래서 표지가 낡지 않도록 두툼한 종이로 표지를 싸서
쓰곤 했다. 그런데 교과서의 표지를 싸는데 <자유의 벗> 만큼 좋은 종이가 없었다.
잡지를 철한 가운데 철심을 빼고 종이를 벌려 교과서 표지를 싼 다음
표면에 양초를 문지르면 한 학기는 거뜬히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학생들은 학교에서 환경정리를 할 때면 <자유의 벗>에 실려 있는
그럴싸한 사진이나 그림들을 오려 게시판에 붙이곤 했다. 특히 우리나라 산업발전을
소개한 사진과 기사는 어김없이 학급 게시판을 화려하게 장식하곤 했다.
그리고 1960년대 말 베트남전 참전 이후에는 파월장병들의 소식이,
1970년대 초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새마을운동 소식이 <자유의 벗>에
단골로 실리면서 관련 사진과 기사가 게시판을 오르내렸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각종 잡지가 출간되고 신문 구독이 일반화되면서 <자유의 벗>은
사람들에게서 서서히 영향력을 잃어갔다. 그리고 반공 계몽지로서의
생명을 다한 <자유의 벗>은 결국 종간을 맞게 된다.
지나간 일들은 모두가 그립게 마련이다. 나에게 있어 <자유의 벗>을 생각하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어릴 때 딱지치기하던 기억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마땅한 놀이가 없었다. 그래서 밖에서 놀 때 계집아이들은 고무줄놀이를 즐겨 했고
사내아이들은 흔히 딱지치기를 했었다. 그런데 딱지를 쳐 뒤집기도 그렇거니와
멀리 날리기에도 마분지를 접어 만든 딱지는 <자유의 벗>을 접어 만든 딱지에 비하면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자유의 벗>으로 접어 만든 딱지 두세 개를 갖고 나가면
동리 아이들의 딱지를 몽땅 따서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빳빳한 종이의 느낌이 손마디 끝에 파르르 전해오는 듯하다.
요즘 고서 경매시장에 이따금 <자유의 벗>이 나온다는 얘길 들었다.
불과 몇 해 전의 일인 것 같은데 종간된 지 어느새 40여 년이 가까워 오니
고서 축에 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쇄물이 귀했던 시절, <자유의 벗>은
그 성격이야 어쨌든 삭막했던 전후 상황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정서적으로
위안을 주고 희망을 불어넣었던 든든한 벗이었다. 또한 전후 우리나라 부흥에 끼친 공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겨진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6.25동란은
단지 우리역사의 한 페이지에 불과할 뿐인지도 모른다. <자유의 벗>이 고서로 취급되듯
6.25동란을 단지 과거에 있었던 역사의 기록으로 인식하는 세태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최근 국내의 한 수집가가 미국에서 <자유의 벗>에 게재했던 김용환 화백의 삽화
150여 점을 발견하여 원화 그대로 우리나라에 들여왔다고 한다. 김용환 화백의
대표적 캐릭터였던 ‘코주부’와 함께 <자유의 벗>에 대한 기억이 더욱 새롭다.
o
o
o
Secret of the Wood / Vince Madison
o
o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