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성길2(노적산, 22/04/05, 행궁-남성-동문-1암문-한봉-약수산-노적산, Perfect time / Moya Brennan)
이름없는풀뿌리2022. 4. 6. 17:13
요즈음 – 외성길2(노적산) –
오르명내리명 다다른 산마루 끝자락에
지금껏 가봤던 중 잴루 예쁜 봉우리가
볏가리 쌓아놓은 듯 그림처럼 있었다.
배달9219/개천5920/단기4355/서기2022/04/05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외성길2(노적산)(1)
블로그 옛 자료를 보니
노적산에 간 것은 2009년 2월, 8월 두 번이었다.
그때 하남 검단산에서 용마산을 거쳐 북문을 지나
서문을 나와 마천역까지 종주했었다.
그러니까 무려 13년 전이다.
그 때의 기억은 한봉에서 노적산 구간은
높낮이가 고만고만한 肉山으로 능선길이었던 것 같다.
노적산에 올라서니 그 기억 속의 다박솔은 훌쩍 자라고
이정목들은 부패되어 사라지거나 주저앉은 것을 보니
13년의 긴 세월 실감.
(2)
가는 길은 陰山으로 야생화를 기대할 수 없기에
남문에서 출발, 남옹성 할미꽃을 관찰하고
시구문 노루귀, 현호색도 살펴보고
장경사 1암문에서 큰골로 내려서서 16암문으로 올라
한봉을 거쳐 노적산 가는 길 내내
유난히 늦깎이 봄으로 진달래는 아직 봉우리 단계.
역시 기억대로 肉山의 연속인 약간의 높낮이를 즐기며
적당한 햇볕 속, 약간은 쌀쌀한 날씨 속
영원한 벗 문사장 동행.
해공 신익희 불망비로 하산.
(행궁-남문-남옹성-시구문-1암문-16암문-한봉-약수산-약사산-노적산, 약12km, 4시간)
배달9219/개천5920/단기4355/서기2022/04/05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1) 남문(10:20)
2) 비밀의공원의 할미꽃(10:35)
3) 제2남옹성 딱지풀(10:45)
3) 시구문 밖 봄날의 마지막을 보내는 노루귀, 현호색을 배알하고...(11:10)
4) 송암정의 좁은 길을 지나...(11:20)
5) 1암문에서 내려선 돌문화공원(11:40)
6) 16암문 옆 만개한 생강나무꽃(12:05)
7) 한봉성을 지나 노적산으로...(12:10)
8) 검복리 갈림길(12:35)
9) 약수산(12:50, 397m)
10) 오전리 갈림길(13:00)
11) 약사산(13:30, 415.9m)
12) 노적산(13:45, 388.5m)
청량산수어장대(498m), 연주봉(467.6m), 망월봉(502m), 벌봉(512.2m), 한봉(416.1m)
하남검단산(657m), 성남검단산(536.4m), 망덕봉(498m), 용마산(596m), 약사산(415.9m)
13) 노적산 급경사 내림길(14:05)
14) 산자락의 松林
15) 날머리의 해공 신익희 선생 추모비(14:20)
1894년 7월 11일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초월면(草月面) 서하리(西霞里)에서 평산(平山) 신씨
장례원경(掌禮院卿) 단(檀)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해공(海公), 상하이 임시정부의
내무차장·외무차장·국무원비서장·법무총장·외무총장·문교부장 등을 지냈으며, 1948년 제헌국
회의원에 당선되어 부의장이 되었다가 같은 해 8월 의장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자 의장으로
피선되었다. 1950년 제2대 민의원과 국회의장을 지냈다. 1908년 한성외국어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1910년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 입학했다. 1918년말부터 최린·송진우
등과 독립운동의 방향을 논의했으며, 3·1운동 당시에는 해외와의 연락 임무를 맡았다. 1956
년 민주당 공천으로 대통령에 입후보, 유세하러 가던 도중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죽었다.
16) 여정(행궁-남문-남옹성-시구문-1암문-16암문-한봉-약수산-약사산-노적산, 약12km, 4시간)
Perfect time / Moya Brenn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