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역사의 뒤안길 150

丙子胡亂 前後 滿洲人이 본 朝鮮人 / 金 敏 鎬

□ 丙子胡亂 前後 滿洲人이 본 朝鮮人 丙子胡亂 前後 滿洲人이 본 朝鮮人* - ≪昭顯瀋陽日記≫ 및 宣若海의 ≪瀋陽使行日記≫를 중심으로 - 1)金 敏 鎬** <목 차> 1. 들어가며 2. 조선 국왕 仁祖 이미지 2.1 유약하고 성의 없는 조선 국왕 仁祖 2.2 신뢰할 수 없고 배은망덕한 조선 국왕 仁祖 3. 소현세자 이미지 3.1 나약하고 무시당하는 소현세자 3.2 신뢰할 수 있고 친밀한 소현세자 4. 조선 신료 이미지 4.1 신뢰할 수 없는 조선 신료들 4.2 기개를 인정받는 조선 신료들 5. 나가며 * 이 논문은 2013년 5월 3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만주학센터에서 개최한 “근세 동아시아와 만주족 문화”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원고를 수정, 보완하여 작성한 것이다. ** 翰林大學校 中國學科 敎授...

병자호란 講和 협상의 추이와 조선의 대응 / 許 泰 玖

□ 병자호란 講和 협상의 추이와 조선의 대응 병자호란 講和 협상의 추이와 조선의 대응 許 泰 玖* [目 次] Ⅰ. 머리말 Ⅱ. 농성 초반기(병자년 12월 14일~병자년 12월 30일) 講和 협상의 추이와 쟁점 Ⅲ. 농성 중반기(정축년 1월 1일~정축년 1월 15일) 講和 협상의 추이와 쟁점 Ⅳ. 농성 종반기(정축년 1월 16일~정축년 1월 30일) 講和 협상의 추이와 쟁점 Ⅴ. 맺음말 【국문요약】 이 논문은 병자호란 당시의 講和 협상 과정을 淸軍 전력의 증강과 연관하여 살펴보고, 협상 당사국인 조선의 대응을 ‘禮의 실천’이란 관점에 주목하여 재검토한 연구이다. 병자호란과 관련된 선행 연구는 남한산성의 농성**을 주로 청의 침략에 대항하는 조선의 항전에만 초점을 맞추어 고찰하였다. 따라서 강화 협상의 중요..

丙子胡亂당시 淸軍의 構成과 規模 / 구범진, 이재경

□ 丙子胡亂당시 淸軍의 構成과 規模* 丙子胡亂당시 淸軍의 構成과 規模* 구 범 진**․이 재 경*** 1. 머리말 2. 병자호란 전야 ‘다이칭 구룬’의 軍勢 1) 팔기만주․팔기몽고 2) 우전 초하와 天佑兵․天助兵 3. 병자호란 당시 청군의 구성과 병력 4. 외번몽고의 병자호란 참전 규모 5. 맺음말 1. 머리말 仁祖14년(淸崇德원년) 丙子年12월 8일(1637년 1월 3일)1) 청군의 선봉부대가 압록강을 건너면서 丙子胡亂이 발발하였다. 전쟁은 이듬해 丁丑年 정월 30일(1637년2월24일) 이른바 ‘三田渡의 恥辱’ 속에 막을 내렸다. 두 달도 채 걸리지 않은 단기전이었지만 전쟁은 조선의 정치․경제․사회․문화․사상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어찌 보면 17세기 중엽 이후의 조선 역사가 곧 ..

병자호란시 조선 勤王軍의 남한산성 집결 시도와 활동 / 장 정 수

□ 병자호란시 조선 勤王軍의 남한산성 집결 시도와 활동 병자호란시 조선 勤王軍의 남한산성 집결 시도와 활동 장 정 수* Ⅰ. 머리말 Ⅱ. 淸軍편제와 진격로의 검토 Ⅲ. 조선의 방어전략과 남한산성 1. 서북 지역 방어전략의 실상 2. 인조의 남한산성 입성 경위 Ⅳ. 勤王軍의 활동과 그 의미 1. 諸道勤王軍의 전투 현황 2. 營將制에 따른 勤王軍편제와 실효성 Ⅴ. 맺음말 Ⅰ. 머리말 丙子胡亂은 1636년 12월 8일 淸軍이 침입한 이후, 이듬해 1월 30일 仁祖가 南漢山城에서 나와 항복하기까지 불과 50여 일 동안 전개된 전쟁이다. 전쟁의 기간은 비교적 짧았지만 그 여파는 작지 않았다. 전쟁은 壬辰倭亂(1592∼1598) 이후 정치 외교 사회 경제 등 제 분야에 걸쳐 드러난 문제점들을 악화시켰다. 무엇보다도..

丙子胡亂 江華島 함락의 원인과 책임자 처벌 / 許 泰 玖

□ 丙子胡亂 江華島 함락의 원인과 책임자 처벌 - 金慶徵 패전책임론의 재검토를 중심으로 - 許 泰 玖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Ⅰ. 머리말 Ⅱ. 金慶徵 관련 丙子錄 서술의 한계 Ⅲ. 江華島 함락의 원인 재검토 Ⅳ. 終戰 이후 江華島 함락 책임자의 처벌 논의 Ⅴ. 金慶徵 賜死의 맥락 Ⅵ. 맺음말 주제어 : 丙子胡亂, 江華島, 金慶徵 張紳, 金瑬, 羅萬甲, 丙子錄, 主和派, 斥和派 이 논문은 강화도 함락의 원인을 기술하는 데 활용된 대표적인 사료인 羅萬甲의 丙子錄을 비판적으로 독해함으로써, 이 저술이 史料로서 갖고 있는 한계점을 부각하였다. 그리고 敗戰의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하여, 강화도의 함락이 지휘관의 역량보다는 朝․淸 양국 간의 현격한 戰力 차이에서 초래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를 통해 종전..

병자호란 강도함몰(江都陷沒)

□ 병자호란 강도함몰(江都陷沒) 병자호란 강도함몰(江都陷沒) 정의 병자호란 당시 세자빈과 원손, 조정관원 등이 피난한 강화도가 청나라 군대에 점령당하고, 봉림대군 등이 청의 장수에게 항복한 사건. 개설 청나라가 중원의 명나라에 대한 공격을 앞두고 조선을 확실하게 제어할 목적으로 1636년(인조 15)에 조선을 전면적으로 침입함으로써 병자호란이 발발했다. 청군의 남하 속도가 워낙 빨라, 조선의 왕과 조정은 예정된 피난처였던 강화도로 미처 피난하지 못한 채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세자빈과 원손(元孫), 대군, 일부 조정원로, 한양 사대부가의 가족들 정도만 강화도로 피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방어태세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강화도는 이렇다 할 항전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청나라 군대에 점령당했..

사료로 본 남한산성 전투일지 시계열표(22/04/13, Richard Clayderman 연주곡 모음)

사료로 본 남한산성 전투일지 시계열표 (1) 남한산성의 항전 47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조선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으며 그에 대한 수많은 사료와 역사를 탄생시키고 영화와 소설등 예술에 영향을 준 이유는 뭘까? 사실 47일의 항전이라지만 1619년 明金의 사르후 전투 참여를 시발로 1627년 정묘호란, 그리고 1636년 병자호란으로 27년간 이어진 일관된 전쟁이었으며, 그러므로 47일의 항전이 아니라 27년간 연속된 전쟁이었다는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이며, 1876년(고종13년) 조선개국(朝鮮開國)이란 연호를 채택하고 1897년(고종34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광무(光武)라는 연호를 채택하기까지 1629년(인조7년)부터 청의 연호 숭정(崇禎)이란 연호 사용을 강요당하여야했으니 250여 년간..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청와대, 그 영욕의 900년史(22/03/21)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청와대, 그 영욕의 900년史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청와대, 그 영욕의 900년史 조선일보 유석재 기자 입력 2022. 03. 20. 23:51 댓글 925개 청와대 본관과 관저의 모습. /연합뉴스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하게 되면, 지금의 청와대 자리는 고려 숙종 9년인 1104년 남경(南京) 궁궐을 그곳에 세운 뒤 918년 만에 ‘최고 권력자’와 무관한 장소로 바뀐다. 청와대는 900년을 넘는 영욕(榮辱)의 세월을 뒤로 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고려 숙종, 청와대 터에 궁궐 지어 고려가 지금의 서울 강북에 남경을 설치한 것은 1068년(문종 22년)의 일로, ‘고려사’에는 ‘남경에 신궁(新宮)을 세웠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이때의 신궁 위치가 어디였는지는 ..

仁祖實錄중 남한산성 出城이후 기록

□ 仁祖實錄중 남한산성 出城이후 기록 ◯ 인조실록 34권, 인조 15년 1월 30일 1637년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를 행하다. 서울 창경궁으로 나아가다 용골대(龍骨大)와 마부대(馬夫大)가 성 밖에 와서 상의 출성(出城)을 재촉하였다. 상이 남염의(藍染衣) 차림으로 백마를 타고 의장(儀仗)은 모두 제거한 채 시종(侍從) 50여 명을 거느리고 서문(西門)을 통해 성을 나갔는데, 왕세자가 따랐다. 백관으로 뒤쳐진 자는 서문 안에 서서 가슴을 치고 뛰면서 통곡하였다. 상이 산에서 내려가 자리를 펴고 앉았는데, 얼마 뒤에 갑옷을 입은 청나라 군사 수백 기(騎)가 달려 왔다. 상이 이르기를, "이들은 뭐하는 자들인가?"하니, 도승지 이경직이 대답하기를, "이는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영접하는 자들인 듯합니다."하였다..

仁祖實錄중 남한산성 入城에서 出城까지의 기록

□ 仁祖實錄중 남한산성 入城에서 出城까지의 기록 ◯ 인조실록 33권, 인조 14년 9월 23일 1636년 수찬 오달제 등이 오랑캐에 사람을 파견하지 말라는 글을 올리다 수찬 오달제·이도(李禂)가 차자를 올리기를, "지금 오랑캐에 사람을 보내는 일은 크게 불가한 바가 있습니다. 아, 이것 역시 그만둘 수 없는 것입니까? 교활한 오랑캐가 창궐하여 더욱 방자하게 공갈을 치고 제멋대로 참호하며 감히 와서 우리를 시험하고 있으니, 혈기가 있는 자라면 누군들 마음 아프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다행히 하늘이 성충(聖衷)을 계도하여 흉서(兇書)를 발송하지 아니하고 오랑캐의 사신을 준엄하게 배척한 다음 팔도에 포고하니 사기가 배가되고 상국에 전주하니 의성이 충분히 들리었으며, 칙사가 광림하고 장유(奬諭)가 돈독하니 온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