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역사의 뒤안길 152

仁祖實錄중 남한산성 出城이후 기록

□ 仁祖實錄중 남한산성 出城이후 기록 ◯ 인조실록 34권, 인조 15년 1월 30일 1637년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를 행하다. 서울 창경궁으로 나아가다 용골대(龍骨大)와 마부대(馬夫大)가 성 밖에 와서 상의 출성(出城)을 재촉하였다. 상이 남염의(藍染衣) 차림으로 백마를 타고 의장(儀仗)은 모두 제거한 채 시종(侍從) 50여 명을 거느리고 서문(西門)을 통해 성을 나갔는데, 왕세자가 따랐다. 백관으로 뒤쳐진 자는 서문 안에 서서 가슴을 치고 뛰면서 통곡하였다. 상이 산에서 내려가 자리를 펴고 앉았는데, 얼마 뒤에 갑옷을 입은 청나라 군사 수백 기(騎)가 달려 왔다. 상이 이르기를, "이들은 뭐하는 자들인가?"하니, 도승지 이경직이 대답하기를, "이는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영접하는 자들인 듯합니다."하였다..

仁祖實錄중 남한산성 入城에서 出城까지의 기록

□ 仁祖實錄중 남한산성 入城에서 出城까지의 기록 ◯ 인조실록 33권, 인조 14년 9월 23일 1636년 수찬 오달제 등이 오랑캐에 사람을 파견하지 말라는 글을 올리다 수찬 오달제·이도(李禂)가 차자를 올리기를, "지금 오랑캐에 사람을 보내는 일은 크게 불가한 바가 있습니다. 아, 이것 역시 그만둘 수 없는 것입니까? 교활한 오랑캐가 창궐하여 더욱 방자하게 공갈을 치고 제멋대로 참호하며 감히 와서 우리를 시험하고 있으니, 혈기가 있는 자라면 누군들 마음 아프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다행히 하늘이 성충(聖衷)을 계도하여 흉서(兇書)를 발송하지 아니하고 오랑캐의 사신을 준엄하게 배척한 다음 팔도에 포고하니 사기가 배가되고 상국에 전주하니 의성이 충분히 들리었으며, 칙사가 광림하고 장유(奬諭)가 돈독하니 온 동..

삼학사전(三學士傳)/우암 송시열

삼학사전(三學士傳) 소개 樂民(장달수) 추천 0 조회 14 19.02.24 1671년(현종 12) 송시열이 지은 삼학사의 전기 1671년(현종 12)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삼학사의 전기. 1책. 필사본.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척화론(斥和論)을 주장하다가 이듬해 심양(瀋陽)에 잡혀가 죽은 홍익한(洪翼漢)·윤집(尹集)·오달제(吳達濟)의 행적과 언론을 기록한 것이다. 규장각도서에 1책의 필사본으로 전하고 있으나, 그 원문은 ≪송자대전 宋子大全≫ 제113권에 수록되어 있다. 규장각도서 필사본에는 저술 연도를 1674년으로 잘못 기록하였다. 또, 삼학사와 관계없는 임진왜란 때의 명나라 황제 신종(神宗)이 보낸 칙유(勅諭), 윤봉구(尹鳳九)가 지은 송시열의 묘지문, 왕세손(후의 정조)의 상소문과 1..

오달제의 독백 / 현절사 / 실록으로 본 삼학사

요즈음 – 오달제의 독백 – 욱하는 심정으로 斥和를 말한 건 아냐 식량이 바닥나고 추위에 떨지언정 앙 버틸 튼튼한 성곽 두려운 게 뭐였나? 십만의 근왕병과 壬亂의 의병들도 벌떼로 일어나고 疫病도 덮쳐오면 紅夷砲 꽝꽝 쏴대던 오랑캐들 내뺏을걸 나약한 主和論者 나라를 지켰다지만 임금님 受降 치욕 끌려간 60만포로 백성이 떠난 나라가 무슨 의미 있더냐? 오랑캐 달콤한 말 끝끝내 거부하다 瀋陽 땅 저잣거리 효수된 이 한 목숨 朝鮮의 안녕이라면 기쁨으로 바친다만 生死를 알 수 없는 老母는 어찌하고 뱃속의 아기 앞날 뉘있어 보살필까 그 하나 걱정이 되어 이 골짝을 떠돈다 배달9217/개천5918/단기4353/서기2020/11/07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 위 時調는 현절사에 배향된 五學士중 秋潭 吳達濟의 독백 형식..

병자호란과 김상헌, 실록으로 본 김상헌(20/07/25)

현절사(顯節祠) : 숙종14(1688) 유수 이세백 建享, 숙종19賜額, 숙종37 김상헌, 정온 追配 □ 병자호란과 김상헌, 실록으로 본 김상헌 정묘약조(인조5, 1627) 이후 조선은 후금의 요구에 따라 중강과 회령에서 각각 후금에게 세폐를 보내고 약간의 필수품을 공급하였다. 하지만 후금은 당초의 맹약을 깨고 식량을 공급해줄 것을 강요하고 병선 및 군사적인 지원을 요구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후금군은 수시로 압록강을 건너 변경 민가를 약탈하기도 했다. 그러자 조선 내에서는 군사를 일으켜 후금을 치자는 여론이 비등해지기 시작했다. 조선에 대한 후금의 압박과 횡포는 날로 심해져 1636년부터 정묘약조 때 맺은 형제의 맹약을 군신관계로 개약(改約)하자고 하면서 황금과 백금 1만 냥, 전마 3천 필 등 종전보다..

병자호란 그리고 인조와 홍타이지(20/10/03, 22/03/22補正)

병자호란 그리고 인조와 홍타이지 □ 병자호란 일별(一瞥)(1)그동안 산성을 여러 번 가면서인조와 병자호란을 생각해보고 자료를 찾아보았다.산성과 떼려야 땔 수 없는 인물로 인조(仁祖)가 있다.대부분 인조에 대하여 아주 박한 평가를 내리는 편이다.조선의 병란(兵亂)은임진왜란 : 1592년 4월 ~ 1593년 1월 휴전정유재란 : 1597년 1월 ~ 1598년 11월정묘호란 : 1627년 1월 ~ 1627년 3월병자호란 : 1636년 12월 ~ 1637년 1월 으로이중에서 역사상 중요한 전쟁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다. 정유재란은 임진왜란의 연속이고, 정묘호란은 병자호란의 전초전이기 때문.이렇게 볼 때, 1575년경 태어난 사람은 10대에 임진왜란, 20대에 정유재란, 50대에 정묘호란, 60대에 병자호란을 겪..

남한산성(南漢山城) 개관(槪觀)(20/07/18)

남한산성(南漢山城) 개관(槪觀) 0. 개요 남한산성(南漢山城)은 대한민국 경기도 광주시, 성남시, 하남시에 걸쳐 있는 남한산을 중심으로 하는 산성이다. 병자호란 때 조선의 16대 왕 인조가 청나라에 대항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1950년대에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공원화된 후 현재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많은 시민들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이곳에서 40여일간 항전하였으나 결국 성문을 열고 항복한 곳으로 유명하다. 남한산성의 역사는 삼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백제의 수도 하남위례성으로 추정되기도 했던 남한산성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세운 성으로 알려졌으나, 신라 시대에 쌓은 주장성이라는 설도 있다. 조선 시대에 인조와 숙종 때에 각종 시설물을 세우고 성을 증축하여 오늘날의 형..

사람(20/07/05)

요즈음 – 산성길3(사람) – 어쩌다 차지했으면 겸손해야 할 텐데 남들과 자신까지 自害하는 미련탱아! 지금도 늦지 않았다 낮게낮게 산다면 배달9217/개천5918/단기4353/서기2020/07/05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산성길3(사람) (1) 아내와 둘째는 대전행. 홀로 좀 더 긴 산행하기로 함. 그동안 지화문까지 산성길을 돌았는데 2017년 가 본 검단산까지 가 보기로 함. 집 뒤 공원(05:20)-산성길 초입- 경주김씨 墓園(06:20)-불망비-지화문(07:20)-검단산(08:20)- 황송공원400M前(09:20)-망덕공원-자혜공원-귀가(10:00) 총 10km짐작, 4시간 40분 소요. (2) 가면서 지구의 이 많은 사람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동물과 다르다며 고도의 문화와..

한국 지폐에 도안된 그림 이야기(22/02/22, Sunny Mornings / Peder B. Helland)

한국 지폐에 도안된 그림 이야기 1. 오만원권 [신사임당, 묵포도도, 16세기 전반, 비단에 수묵, 31.5*21.7cm, 간송미술관] [어몽룡, 월매도, 비단에 먹, 119.2 × 53cm, 국립중앙박물관] [이정, 묵죽도, 비단에 수묵, 127.5×71.5㎝, 간송미술관] 2. 오천원권 [신사임당 초충도중, 16세기초, 32.8x28.0cm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3. 천원권 [정선, 溪上靜居圖, 1746, 40.1*25.6, 리움미술관] □ 이매창[李梅窓, 1529 ~ ?] (두산백과) 요약조선 중기의 화가로 신사임당의 맏딸이다. 본관은 덕수(德水)이며, 매창(梅窓)은 호이다. 조선 중기의 화가로 유명한 신사임당(申師任堂)의 첫째 딸로 율곡(栗谷) 이이(李珥)에게는 손윗누이가 된다. 아버지는 이..

오죽헌5. 이매창과 아들 조영(趙嶸)은 누구인가?(22/02/18, The Future is Beautiful / Daniel Kobialka)

이매창과 아들 조영(趙嶸)은 누구인가? 1. 조영(趙嶸)을 중심으로 한 주요 인물구성 ○ 외할머니의 어머니 용인이씨(1480-1569) 조영 출생 3년 전 별세 했지만 오죽헌에 오랫동안 살았던 외할머니보다 18년 더 살고 어머니(이매창) 41세에 별세한 용인이씨의 慈愛로운 훈육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을 것임. ○ 외할아버지 이원수(李元秀,1501-1561) ○ 외할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 조영 출생 前 두 분 다 별세했지만 어머니가 4남3녀 중 2째 장녀였으므로 특히 신사임당에 대한 이야기는 들으며 자랐을 것임. ○ 외삼촌1 이선(李璿, 1524-1570) 조영 출생 2년 전 별세 ○ 외삼촌2 이이(李珥, 1536-1584) 조영 13세 때 별세로 이조판서였던 외삼촌 영향 있었을 것임...

오죽헌4. 율곡 선생 남매 분재기(栗谷先生男妹分財記)

율곡 선생 남매 분재기(栗谷先生男妹分財記) 종 목 : 보물 제477호 명 칭 : 율곡선생남매분재기(栗谷先生男妹分財記) 분 류 : 분재기 지정일 : 1968.12.19 소재지 : 서울 광진구 모진동 93 건국대학교박물관 시 대 : 조선 명종21년(1566) 소유자 : 건국대학교 이 문서는 부모가 죽은 뒤 유산을 율곡 이이(李珥)의 형제자매들이 모여 합의하여 나누면서 작성한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각종 제사와 수묘를 위한 토지와 노비를 배정하고, 나머지를 4남3녀와 서모(庶母:아버지의 첩)인 권씨에 배당한 토지와 노비 등을 구체적으로 적은 다음, 끝에 문서작성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과 수결(지금의 서명)을 표시하였다. 이 문서는 이이의 개인사에 관한 사항뿐만 아니라 조선 전기 재산상속에 대해 알 수 있는..

요즈음 – 나훈아 –(21/12/19, 명자야 / 서천의아들 박민수)

요즈음 – 나훈아 – 둘째가 孝 선물한 歌王의 서울 공연 코로나 전염병을 평등, 감사, 겸손으로 해석하며 “음∼”하고 버티다보면 반드시 물러갈 거란 그의 말, 55년간 부른 熱唱보다 좋았다. 배달9218/개천5919/단기4354/서기2021/12/19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나훈아 공연 관람기 (1) 21/12/19(일)14:00 하이얀 폭설에 쌓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KSPO DOME). 둘째가 孝 선물한 티켓으로 가왕 나훈아 공연 관람. (2)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화가요, 과학자요, 철학자였고 정도전이 정치인이자 시인이요, 화가요, 음악가요, 군사전략가였듯이 익히 느끼는 바이지만 나훈아도 독서를 좋아하고 작사와 작곡 그리고 연주를 할 줄 알고 75세에 이르기까지 55년간 트롯가수의 영역에 갇..

“호모싸피엔스”란 동물(18/08/15)

“호모싸피엔스”란 동물 (1) 나 자신, 돌이켜 보면 항상 무언가 불만족한 상태에서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겪어오면서 한 고비를 넘고 다시 어려움이 오면 또 극복하려 노력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조그만 성취에 행복해 할 줄 모르고, 행복을 즐기는 법을 모르는 재미없는 삶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2) 나 자신만이 아니고 “호모싸피엔스”란 동물은 이 지구에서 가장 우위의 지위에 있으면서 그 자신 행복해 할 줄 모르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한 개를 얻으면 열 개를 또 얻으려고 같이 공생하여야 할 지구의 다른 생물들을 괴롭힐 뿐 더러 같은 “호모싸피엔스”라 할 지라도 자신의 욕망 쟁취의 도구로 이용하려 한다. 세계역사, 경제, 문화, 정치를 일별하더라도 동물들의 약육강식과 대동소이하다. ..

저팔계(猪八戒)의 편지(18/07/12)

저팔계(猪八戒)의 편지 (1) 참 잘 가꾸어진 탄천변. 오늘 거기를 걷다 어미 너구리를 만났다. 너구리는 北에서 가져온 뚱뚱한 저팔계의 편지라며 편지 한 장을 나에게 내밀었다. 편지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2)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모든 짐이 어린 나에게 맡겨졌을 때 참 암담하기도 하였지. 하지만 이내 정신 차리고 주변 정리를 시작했지. 어린 나에겐 무엇보다도 권위(최고 존엄)가 필요했지. 우선 적폐의 상징인 고모부를 본보기로 처단하고 어리다고 얕보는 놈들을 밤낮 가리지 않고 가려내어 광장에서 인민재판으로 즉결처분하고, 수용소로 보내고... 그런 와중에도 할아버지 때부터 유훈으로 진행해온 핵개발을 꾸준히 진행하여 성과를 거두었지. 나에게 대드는 놈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을 즈음 경제에 눈을 돌리고 있는 중이..

세기의 담판과 지방선거(18/06/13)

세기의 담판과 지방선거 (1) “The art of the deal"은 트럼프의 저작이 아니었다. “거래의 기술”을 읽은 김정은의 것이었다. 애송이라 생각했던 독재자는 교활했다. 경제의 심장을 쥐고 흔드는 거래의 기술자를 속였다. 6/12일에 그는 모든 것을 가져갔다. (2) 그러므로 6/12일 이후를 생각하면 걱정. 그물 같은 동굴 속에 핵(核)을 숨겨 놓은 채 미군이 돌아가고, 그들이 발톱을 드러내고 그 발톱 아래 지금처럼 다 빼앗기지 않으려면 민심(民心)을 일깨울 진정한 리더가 오셔야 할 텐데... (3) 그리고 이어진 6/13 한국 지방선거. 보수, 진보 누가 이겼는냐엔 큰 관심 없다. 여기 종사하는 정치인들의 소양에 실망한지 오래이므로... 단지 부도덕이 승리하는 이 아이러니를 보면 민주주의의 ..

올림픽공원 장미원에서 H에게(18/05/28)

올림픽공원 장미원에서 H에게 (1) H! 가시가 있는 장미는 너무 화려하고, 뇌살적인 향기까지 동떨어진 인생 같아 별로 친밀하진 않았지만 올림픽공원 장미원에 서 보니 각양각색의 인생과, 역사와, 고뇌가 녹아있는 수많은 색감과, 수많은 종류들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또한 품종 개량자들의 인내와 노고가 보였다. (2) H! 지금 내가 생각한 것에 아랑곳없이 또 다시 악수와 포옹은 이루어졌다. 아무런 고해성사(告解聖事) 없이……. 벽돌을 쌓아 올릴 때 벽돌과 벽돌 사이에 접착 모르타르가 없다면 약간의 바람에도 쉽게 무너져 버리겠지? 어떻게 그렇게 쉬운 길로 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악수와 포옹의 한 분은 3대(代)에 걸쳐 악업(惡業)을 쌓은 사람, 또 다른 한 분은 바로 적폐청산 전문가(專門家). 한 사..

진정한 리더를 향한 간절한 염원(18/05/22)

진정한 리더를 향한 간절한 염원 (1) 지금 세계가 출렁인다. 어린 독재자의 어리광 정치에 경제도 문화도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 커다란 소용돌이를 치는 카오스를 연출하고 있다. 사람들은 할 일을 잊은 채 그 치킨게임을 바라보고 있다. 어제한 약속도 저버리는 아주 저급한 정치에 금세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런 잘못에 대한 고백도 없이, 참회는 커녕 유감도 없이 친구처럼 다시 악수와 포옹하는 모순... 그건 정치가 아니다. 순간의 연극일 뿐. 언제든 실리에 맞지않으면 다시 악담을 퍼붓는 모습에 지금의 환호가 실망으로 추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 지금 이 지구, 75억 인구라지만 하는 행위를 보면 75억의 유인원들 같다. 호모사피엔스가 아니고 겨우 걸음마를 하는 호모 에렉투스 같다. 세계는 인..

청계산과 서울숲과 홍천에서 본 음모(18/05/21)

청계산과 서울숲과 홍천에서 본 음모 (1)청계산에서 4/25-4/28 장가계 여독을 풀 겸 4/30부터 며칠 청계산 금토동 능선을 갔다. 정여창의 얼이 스민 이수봉에 사는 고양이. 그리고 내가 “얀철쭉”이라 한 아이. 그리고 보기드문 “백철쭉”아래 “각시 붓꽃”이 청치마 속에 얼굴을 가리고 있다. 옥상정원에는 분갈이한 “등심붓꽃”이 예쁘게 피었다. 장가계에서 『- 포옹과 악수만이 능사일까? - 이 장면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 혹자는 말한다. 국민의 80%가 지지하지 않느냐고... - 민주주의의 최대 약점은 다수결 원칙의 모순이라고 본다. - 진정한 리더는 미래를 내다보고 다수의 국민이 가는 길을 그대로 가지 말고 돌을 맞더라도 80%를 설득하며 올바른 길로 이끌어 가야 하지 않을까?』 라고 한 내..

100세 시대를 어찌할건가?(18/04/03)

100세 시대를 어찌할건가? (1) 인류가 존경하여 우러르는 세계 3대 聖賢들이 고민했던 대명제도 결국 삶과 죽음이었다. 지금까지 호모사피엔스는 어떻게 하면 장수할건가? 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지만, 이젠 어떻게 보람 있게 살다 죽을건가?에 관심을 기울인다지만 그래도 조금 더 살아보려고 과학과 의학과 체육과 보건에 힘쓰다 못해 宗敎에 애걸복걸 간구하기까지 한다. (2) 기록상으로 나타난 호모사피엔스의 수명을 살펴보자면, 동양의 삼천갑자 동방삭은 18만년을 살았고 방중술의 대가 유해첨은 600년, 달마대사는 280세, 강태공은 136세, 황제헌원은 110세, 노자는 81세, 석가모니는 81세, 성경 속의 아담과 이브는 980년, 노아는 950세, 야곱은 147세, 아브라함은 175세, 모세는 120세, 배달..

격동의 한반도(18/03/31)

격동의 한반도 (1) 오늘 아침 어느 교수님의 “격동의 한반도”란 글을 읽었다. 자고로 역사는 이미 예정된 수순으로 흘러가는데 위정자들은 마치 그들의 미천한 손아귀로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오만은 갖은 추잡함과 음모를 낳고도 그들은 정작 모른다. 추잡함과 음모를 권력에 취한 大義로 포장하여 변명하고 자기위로와 자기 최면에 취하여 있다. 돌이켜 보면 하늘을 찌를 것 같던 로마제국도, 흉노제국도, 몽골제국도, 진시황도, 대영제국도, 히틀러도, 일제도 예정된 수순이었던 듯 하루 아침에 이슬처럼 사라졌다. (2) 天地開闢이래 이 地上에 수많은 생물이 살다 갔지만 이 호모사피엔스만큼 지구를 파괴하고, 학대한 種은 없었다. 이렇게 단일종이 그들의 24개 아종을 멸절시키고 75억이란 숫자로 번성하여 ..

명아주 지팡이 小顧(17/10/20)

명아주 지팡이 小顧 (1) 평소 명아주를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가녀린 풀로 지팡이를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소위 명아주 지팡이에 대하여 말로만 명아주 지팡이이지 다른 나무로 만든 것이겠지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어제 하산길에 밭가에 자라는 아주 큰 명아주 두 그루를 보았다. (2) 텃밭을 가꾸는 할머님 말씀에 의하면 아들이 명아주지팡이(靑藜丈)를 만들어 준다고 정성껏 가꾸었단다. 아~~ 명아주가 저렇게 크게 자랄 수 있구나. 이제야 명아주 지팡이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의외로 명아주 지팡이를 만드는 곳도 있었고 제조과정이 보통 힘든 과정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냥 잘라 건조만하여서는 지팡이로 쓸 수 없고 많은 공정을 거쳐야 지팡이다운 지팡이로 쓸 수 있음을 알았다...

그리운 임금님(17/10/17)

그리운 임금님 (1) 호모싸피엔스는 天性이 집단을 이룬다. 홀로 살아가지 못한다. 그 속에서 序列이 생기고 組織이 만들어지고, 倫理가 생겨나고, 文化가 탄생되었다. 개미들이 여왕을 중심으로 조직을 유지하듯 오랜 기간 호모싸피엔스는 수장을 모셔왔고 그건 최근의 국가들 대부분 명칭만 좀 달리 할 뿐, 개미집단과 별반 다르지 않다. (2) 다르다면 끊임없이 집단을 생각하는, 私益보다 집단의 이익과 번영을 생각하는 수장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제왕학이요, 헌법에 명시된 수장의 권한과 의무이다. 그래서 수장은 자신뿐 아니라 그룹에서 그러한 윤리로 오랜 기간 훈육되고 길러져야 한다. (3) 문제는 덜 성숙된 수장을 갖게 되는 순간 그 집단은 불행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수장은 자신의 그룹뿐만이 아니고 반대..

싸리나무기둥은 과연 실재했을까?(17/05/27)

싸리나무기둥은 과연 실재했을까? (1) 예전에 역사서를 탐독하다보니 궁예가 철원에 태봉국을 세우면서 대궐기둥을 싸리나무로 세웠다는 기록을 본 적이 있다. 또한 대전 살 때 고즈넉하여 자주 찾았던 대둔산 안심사 일주문도 싸리기둥이라 들었던 기억이 있다. (2) 그 뒤 軍에 가서 최전방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가을이면 싸리나무를 잘라 1년 동안 사용할 마당 빗자루를 만드는 일이 연례 행사였다. 그 때마다 그게 사실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전방이라 후방보다 싸리가 훨씬 크기는 하지만 겨우 손가락 굵기 정도인 싸리나무로 과연 대궐기둥을 세울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은 그 뒤에도 계속 나의 숙제일 수 밖에 없었다. 싸리나무를 다발로 묶어서 세우지는 않았을까? 혹은 예전에는 싸리나무가 크게 자라는 종류가 있지는 ..

육관도사와 국립현충원 풍수(17/04/10)

육관도사와 국립현충원 풍수 (1) 벚꽃 아침 뉴스에 서울의 3대 벚꽃 명소로 여의도 윤중제, 석촌호수 둘레길, 국립현충원이라 하여 오늘 나섬. 그러니까 국립현충원은 2013년 6월 친구와 갔었는데 아내는 아직 못 가봐 보여주면 좋아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2) 국립 현충원 야탑에서 9408번 광역버스를 타고 정문을 내리니 온통 하이얀 벚꽃 세상이다. 분향소에 들러 묵념을 올리고 무명용사탑을 지나 사병들의 무덤을 지나 이승만, 김대중, 박정희 대통령 묘소를 차례로 뵙고 아내와 묵념을 올렸다. 아내는 국립현충원이라 하여 유명인들이 분향하는 모습이 TV에도 비치고하여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곳으로 알았는데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을뿐더러 각 대통령님들 묘소에도 아무런 제약없이 찾아 볼 수 있는 곳이어서 놀랍다..

實錄에 나타난 三峯 정도전 記錄(17/12/25)

실록(實錄)에 나타난 삼봉(三峯) 정도전 기록(記錄) 요즘 삼봉(三峯) 정도전을 탐구면서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삼봉을 검색 일별하여 보았다. 앞서 열거한 그의 生前 찬란한 업적은 제1차 왕자의 난 이후에는 패배자로 낙인 찍혀 간신으로 묘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당대에도 그의 동생, 큰 아들, 증손까지도 조정의 중책을 담당하고 천수를 누릴 정도로 성종대까지 삼봉의 조선 창업의 공로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그가 조선 중기 이후 허균, 정여립의 롤모델이 정도전이었고 허균, 정여립과 교류한 최영경, 심우영등과 대척점에 서 있던 송시열을 중심으로한 유학자 그룹을 중심으로 그를 역적으로 배척하는 극심한 분위기에 그의 자손들의 출사가 전무하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 정조의 명으로 그의 사상..

누가 감히 삼봉(三峯)을 하륜과 비교하는가?(17/12/20)

(((三峰이란 호가 한때 도담 삼봉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졌으나 현재는 삼각산이 정설이다))) 누가 감히 삼봉(三峯)을 하륜과 비교하는가?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다. 그러기에 애당초 패배자는 그의 행적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평가받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조선을 실질적으로 디자인한 삼봉 정도전과 디자인된 조선에 인테리어를 가한 하륜, 당시에는 패배자였던 삼봉과 제1차, 제2차 왕자의 난으로 승리자였던 하륜, 그러기에 삼봉은 假墓로만 남아있고, 하륜은 實墓로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역사의 라이벌로 비교하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의 승리자는 삼봉이고 패배자는 하륜 아닐까? 이방원의 일개 책사에 불과했던 하륜을 조선을 기획한 삼봉에 비교한다는 자체가 비둘기를 봉황에 ..

몽골대제국의 실질적 기획자 야율초재(耶律楚材)와 삼봉 정도전(17/12/17)

몽골대제국의 실질적 기획자 야율초재(耶律楚材)와 삼봉 정도전 (1) 역사를 탐구하면서 몽골이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대제국을 7대에 걸쳐 160여년간 유지할 수 있었던 동인(動因)에 대하여 항상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는 조선의 창업자가 이성계이지만 실질적 기획자는 정도전이란 인물이 존재하였듯이 야율초재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음을 알고 그 의문을 풀 수 있었다. (2) 다만 그러한 인물을 알아보고 그를 중용한 징기스칸과 이성계의 식견은 비슷하지만 징기스칸 사후 오고타이대칸도 계속 그를 중용한데 비하여 이방원과 책사 하륜은 주권재민의 위대한 사상가 정도전을 자신들의 정치적 야망을 위하여 주살한 점이 다르다면 다를 것이다. 그러나 삼봉 정도전은 주저하는 이성계를 움직여 망해가는 고려를 버리고 창업 단계부터..

실록 속의 정도전 그리고 야율초재, 하륜과의 비교(18/01/20)

실록 속의 정도전 그리고 야율초재, 하륜과의 비교 1. 실록 속의 정도전 요즘 삼봉(三峯) 정도전을 탐구면서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삼봉을 검색 일별하여 보았다. 앞서 열거한 그의 生前 찬란한 업적은 제1차 왕자의 난 이후에는 패배자로 낙인 찍혀 간신으로 묘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당대에도 그의 동생, 큰 아들, 증손까지도 조정의 중책을 담당하고 천수를 누릴 정도로 성종대까지 삼봉의 조선 창업의 공로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그가 조선 중기 이후 허균, 정여립의 롤모델이 정도전이었고 허균, 정여립과 교류한 최영경, 심우영등과 대척점에 서 있던 송시열을 중심으로한 유학자 그룹을 중심으로 그를 역적으로 배척하는 극심한 분위기에 그의 자손들의 출사가 전무하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 정조..

연표(年表)로 본 三峰 鄭道傳(1342∼1398)

연표(年表)로 본 三峰 鄭道傳(1342∼1398) ○ 1세/1342년 충혜왕 복위3년 부친 정운경(鄭云敬), 모친 영천 우씨 사이에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남 (장남 道傳, 차남 道存, 3남 道復) 조부는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정균(鄭均) ○ 정운경(鄭云敬, 1305-1366) 약력 - 본관은 奉化, 봉화현 호장 정공미(鄭公美)의 증손, 檢校軍器監 정균(鄭均)의 아들 - 1305(충렬31) 출생 - 1326(충숙13) 사마시 합격 - 1330(충숙17) 문과 급제 상주목 사록 출사 전교교감(典校校勘), 주부(注簿), 도평의녹사(都評議錄事), 삼사도사(三司都事), 통례문지후(通禮門祗候), 전의주부(典儀注簿), 홍복도감(弘福都監)의 판관을 거쳐 - 1342 장남 정도전 출생(정운경 38세) - 1343..

오죽헌1. 역사 유래와 관련 인물들(19/03/09, 22/02/11)

오죽헌(烏竹軒)의 유래와 관련 인물들 1) 오죽헌 유래 신사임당과 율곡의 탄생지라는 오죽헌에서 새삼 알게 된 사실들... 오죽헌은 최초 단종 때 병조참판과 대사헌을 지낸 최응현(崔應賢)의 부친 최치운(崔致雲)이 창건하여 최응현에게 상속되었고, 최응현이 둘째 사위인 이사온(李思溫)에게 상속되었다가, 이사온의 딸인 용인 이씨에게 상속, 용인 이씨(신사임당 어머니)는 딸만 다섯 두었는데, 재산을 물려줄 때 둘째 딸(신사임당)의 아들인 외손 율곡에게는 조상의 제사를 받들라는 조건으로 서울 수진방 기와집 한 채와 전답을 주었고, 넷째 딸의 아들 외손 권처균(權處均)에게는 묘소를 보살피라는 조건으로 오죽헌 기와집과 전답을 주어 최종적으로 권씨 소유로 오랬동안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 그리고 외할머니로부터 오죽헌을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