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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떠난 보이저 2호, 태양계 떠나 성간우주 돌입 '임박'

이름없는풀뿌리 2018. 11. 20. 06:49

40년 전 떠난 보이저 2호, 태양계 떠나 성간우주 돌입 '임박'

허정원 입력 2018.11.20. 00:05 수정 2018.11.20. 06:34

               
미국의 우주선 보이저 2호가 접근해 찍은 토성의 테. [중앙포토]

“1979년 7월 9일, 나는 드디어 목성에 당도했다. 지름이 지구의 11배에 달하는 이 거대한 행성을 스쳐지나며, 남위 20도쯤에 있는 목성의 붉은색 타원형 반점(대적점)의 정체가 거대한 태풍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2년 후인 1981년 8월엔 토성을 지났다. 보이저 1호의 말대로 토성의 거대한 띠는 사실 1000여개의 가느다란 띠로 이뤄져 있었다. 천왕성과 해왕성을 최초로 방문한 나는 이제 곧 태양계를 떠나 심연과 같은 우주로 날아갈 것이다” 
         
1977년 8월 20일 발사돼 지구에서 두 번째로 멀리 날아간 우주 탐사선 ‘보이저 2호’의 가상 회고록이다. 보이저 2호가 태양계를 영원히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지난 14일(현지시각) 보이저 2호가 태양계를 조만간 벗어나게 된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2년 8월, 인류 역사상 최초로 태양계의 ‘국경’인 태양권계면(Heliopause)을 넘어 날아간 보이저 1호에 이어 두 번째다. 41년간 약 178억㎞를 항해한 보이저 2호는 현재도 시속 6만 2700㎞의 엄청난 속도로 태양계와의 ‘이별’에 다가가고 있다.
1977년 차례로 발사된 보이저 2호와 보이저 1호는 우주 탐사 역사의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초로 토성의 고리를 고화질로 촬영했으며 목성의 위성인 이오에서 활동중인 활화산을 목격했다. [중앙포토]          

저에너지 입자 감소하고 우주방사선 증가하는 ‘이별 징후’
이별의 징후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증거가 있다. 황정아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 우주과학본부 박사는 “가장 명확한 증거는 태양에서 멀어질수록 탐사선에 충돌하는 ‘우주방사선(Cosmic Ray)’ 양이 증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주방사선은 태양계 밖, 즉 성간우주(Interstellar Space)에서 지구 방향으로 쏟아지는 고에너지의 각종 입자 등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먼 우주로 나아갈수록 그 양은 증가하게 된다.

황 박사는 “우주방사선과는 반대로 태양 쪽에서 붙어오는 저에너지 입자(Low-energy particle)의 양은 줄어든다”며 “보이저는 이들을 측정할 수 있는 장비를 탑재하고 있기 때문에 태양권계면에 접근할 경우 그 변화량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NASA는 지난 8월부터 보이저 2호가 보내온 우주방사선의 양이 약 5% 늘어난 점에 착안해 탐사선이 태양권계면에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항공우주국(NASA)의 제트추진연구소(JPL)이 도식화한 태양권계면의 개념도. 태양풍(Solar Wind)에서 발생하는 저에너지입자와 자기장의 영향은 줄어들고 반대로 성간 우주에서 오는 고에너지 입자들의 영향은 늘어나게 된다. [그래픽 JPL]
이 외에도 태양계를 완전히 벗어날 경우, 보이저가 탑재하고 있는 자기장의 값이 일정하게 고정되는 현상도 발생한다. 태양풍에 실려 오는 자기장은 특정한 방향성을 갖고 있는데, 그 영향으로 태양계 내에서는 자기장 값이 주기적으로 요동치게 된다. 그러나 태양풍의 영향을 벗어난 성간우주에서는 자기장 값이 더는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는 게 황 박사의 설명이다.         

인류 구조물 중 가장 멀리 날아간 ‘여행자’...항해 자체로 역사

프랑스어로 ‘여행자’를 의미하는 보이저와 이별이 주목되는 이유는 그 자체로 상징성을 갖기 때문이다. ‘보이저 형제’는 인류가 만든 구조물 중 지구에서 가장 멀리 날아간 물체다. 이 때문에 한 걸음 지구에서 멀어질 때마다 역사가 새로 쓰이게 된다. 지금도 NASA의 제트추진연구소(JPL)는 보이저 1호와 2호의 위치와 이들이 받는 우주방사선의 양을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있는데, 19일 오후 7시 24분 기준(한국시각) 보이저 1호와 2호는 각각 지구로부터 약 216억 4900만㎞와 178억9000만㎞ 떨어져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보이저 1호는 태양권계면을 넘어 최초로 성간 우주로 진입한 탐사선이다. [AP=연합뉴스]

이 외에도 보이저는 우주 탐사 역사의 획을 긋는 중대한 역할을 해왔다. 최기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책임연구원은 “현재 인류가 알고 있는 토성과 목성·해왕성과 천왕성 등 외행성에 대한 지식은 보이저 계획으로 인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보이저 1호는 최초로 토성의 고리를 고화질로 촬영해 그 성분이 수많은 얼음 알갱이라는 것을 밝혀냈으며, 목성의 위성인 ‘이오’에서 활화산을 목격했다. 또 보이저 2호는 현재까지 유일하게 천왕성과 해왕성을 근접 촬영한 탐사선이기도 하다. 인류는 이 보이저 덕택에 망원경으로만 관찰할 수 있었던 외행성들의 선명한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성간 우주로 계속해서 날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중력'

보이저는 어떻게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항해할 수 있을까. 그 원동은 두 가지다. 최기혁 책임연구원은 “보이저호는 자체적으로 3대의 플루토늄 원자력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지만 가장 큰 동력은 바로 중력”이라고 설명했다. 당시로써는 최신 기술인 ‘스윙바이(Swingby)’ 기술을 이용해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력 도움(Gravity Assist)이라고도 부르는 스윙바이는 탐사선이 큰 행성의 궤도를 지나며 중력에 끌려들어 가다가, 바깥으로 튕겨 나가듯 속력을 얻는 것을 말한다. 마치 새총을 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 ‘슬링 숏’이라고도 한다.

보이저는 행성의 중력을 주 동력원으로 해 추진력과 속도를 얻었다. 현재 보이저1ㆍ2호가 약 초속 17km의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는 건 목성의 중력을 도움을 얻은 '스윙바이' 기술 덕분이다. [EPA=연합뉴스]
중력을 이용하는 만큼, 보이저는 적은 에너지를 쓰면서 효율적으로 탐사해나갈 수 있었는데 이 덕분에 현재도 총알보다 약 18배 빠른 초속 17㎞의 속도로 비행 중이다. 또 1977년은 175년 만에 한 번 목성ㆍ토성ㆍ천왕성ㆍ해왕성ㆍ명왕성이 일직선 상에 정렬되는 시기여서 과학자들은 이를 이용해 최단거리로 외행성 탐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외계 생명체 조우 대비 ‘지구의 소리’담은 탐사선...“지구는 창백한 푸른점” 교훈도
보이저 2호는 과학적 측면에서는 쌍둥이 탐사선인 보이저 1호에 ‘최초’라는 타이틀을 수없이 뺏겼다. 그러나 2호에도 고유한 업적은 있다. 해왕성의 궤도를 지날 때, 카메라를 지구로 돌려 그 모습을 담은 것이다. 이 사진은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A Pale Blue Dot)에 불과하며, 인류는 먼지 위를 살아가는 운명 공동체”라는 교훈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멀리서 찍힌 지구의 이미지만큼 인간의 자만이 어리석다는 걸 잘 보여주는 건 없을 것”이라며 “인류의 유일한 보금자리인 창백한 푸른 점을 소중히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밝혔다.
천문학자이며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 보이저 2호가 해왕성 궤도에서 촬영한 지구를 의미하는 말인 '창백한 푸른점'은 책으로도 출간됐다. [중앙포토]

칼 세이건의 제안에 따라 지금도 보이저 1호와 2호는 만에 하나 외계 생명체를 조우할 때를 대비해 ‘지구의 소리’를 담은 금제 음반을 싣고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어를 비롯한 55개국 언어로 된 인사말과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 베토벤 교향곡 5번, 기차 경적 등이 실렸다. “드넓은 우주에서 지구에만 생명이 존재한다면 이는 엄청난 공간의 낭비”라는 세이건의 말처럼 수많은 가능성을 담은 성간우주로 보이저 2호가 진입할 시기가 멀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태양권은 태양의 11년 활동 주기에 따라 줄어들거나 확대될 수 있어 정확한 시기를 점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보이저 1호의 경우 2012년 5월 지금의 보이저 2호처럼 우주방사선 측정량이 늘어나고 3개월 뒤 태양권계면을 넘어 성간우주에 진입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