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李賀)의 시
- 이병주(李炳注, 1921~1992)作 『바람과 구름과 비』에서... -
危邦不居위방불거라 했지만 이미 몸은 危邦위방에 있다.
亂邦不入란방불입이라 했지만 이미 몸은 亂邦란방에 들어왔다.
성현의 지혜도 땅과 때에 어긋나면
철벽 앞의 筍矢순시와 다를 바가 없으니
차라리 魂혼이나마 銀河은하를 날게 해서
언젠가 流星유성과 더불어 몰락했으면 한다.
神絃曲(신현곡)
- 이하(李賀, 당나라 790년~816년) -
西山日沒東山昏 (서산일몰동산혼) 서산에 해 지고 동산에 어둠 깔리자
旋風吹馬馬踏雲 (선풍취마마답운) 회오리바람 말에 불어 말이 구름밝고 날아온다.
畵絃素管聲淺繁 (화현소관성천번) 그림 속 비파와 퉁소소리 얕은 듯 깔리다가 뒤섞이고
花裙綷綵步秋塵 (화군최채보추진) 꽃 치마 오색 비단 걸음 가을먼지 일으키네
桂葉刷風桂墜子 (계엽쇄풍계추자) 계수나무 잎 바람에 쓸리고 나무 열매는 떨어지는데
靑狸哭血寒狐死 (청리곡혈한호사) 푸른 털 살쾡이 울어 피 토하고 추운 여우 얼어죽네
古壁彩虯金貼尾 (고벽채규금첩미) 낡은 벽에 그려진 용은 꼬리에 금박을 두르고
雨工騎入秋潭水 (우공기입추담수) 비 만드는 신령 말을 타고 가을 못에 들어가는데
百年老鴞成木魅 (백년노효성목매) 백년 늙은 부엉이 나무 도깨비 되니
笑聲碧火巢中起 (소성벽화소중기) 웃음소리 푸른 불 둥지에서 일어나네
* 이하(李賀, 당나라 790년~816년) : 2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이하는 말을 타고 가면서 시구를 1줄씩 종이에
끄적거려 수놓은 자루에 넣었다가, 밤에 이것들을 모아 불멸의 명시를 지은 귀재로 전해지고 있다. 7세의 어린 나
이에 시를 짓기 시작했던 그는 과거시험에 쉽게 합격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사소한 문제 때문에 응시자격을 박탈
당했다. 이로 인해 실의에 빠져 병을 얻게 되었으며, 몇 년 뒤에 죽었다. 이하의 시는 생생한 표현, 이상한 어투,
두드러진 병렬, 짙은 염세주의 등이 특징이다. 이하는 자(字)가 장길(長吉)로 ‘이장길’이라고도 불린다. 이하는
27세로 숨을 거두면서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아 백옥루에 상량문을 지으러 간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
다. 그 만큼 죽음에 대한 많은 思惟와 洞察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바,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삶과 죽음을 노래했다.
* 危邦不入(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 「공자(孔子)가 말했다. “굳게 믿어 배우기를 좋아하고 죽음
으로 도를 지켜라.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서는 살지 마라. 천하에 도가 있으면 몸을
나타내고 도가 없으면 숨어서 지내라. 나라에 도가 있는데 가난하고 미천하면 부끄러운 일이요, 나라에 도가 없는
데 부유하고 귀하면 이것 역시 부끄러운 노릇이다.”(子曰, 篤信好學, 守死善道. 危邦不入, 亂邦不居. 天下有道則
見, 無道則隱. 邦有道, 貧且賤焉, 耻也. 邦無道, 富且貴焉, 耻也.)」(《논어(論語) 〈태백(泰伯)〉》)
* 논어(論語) 태백제8(泰伯第八) 제13장
子ㅣ 曰篤信好學하며 守死善道ㅣ니라(공자 가라사대 돈독히 믿고 배움을 좋아하며 죽음을 지키고 도를 선히 할지
니라.) 篤은 厚而力也ㅣ니 不篤信則不能好學이라 然이나 篤信而不好學이면 則所信이 或非其正이오 不守死면 則不
能以善其道라 然이나 守死而不足以善其道면 則亦徒死而已라 蓋守死者는 篤信之效요 善道者는 好學之功이라(독은
후하고 힘을 씀이니, 독신하지 아니하면 능히 배움을 좋아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돈독히 믿기는 하되 배움을 좋
아하지 아니하면 믿는 바가 혹 그 바르지 못하고, 죽음을 지키지 못하면 능히 써 그 도를 선으로써 못하니라. 그
러나 죽음을 지키면서 족히 써 그 도를 선하게 못하면 또한 한갓 죽을 뿐이라. 대개 죽음을 지키는 것은 돈독히
믿음의 효력이오, 도를 선히 하는 것은 배움을 좋아하는 공이라)
危邦不入하고 亂邦不居하며 天下ㅣ 有道則見하고 無道則隱이니라(위태로운 나라는 들어가지 아니하고, 어지러운
나라는 거하지 아니하고, 천하가 도가 있으면 나타나고, 도가 없으면 은둔하니라.)
君子는 見危授命이니 則仕危邦者는 無可去之義어니와 在外則不入이 可也ㅣ라 亂邦은 未危나 而刑政紀綱이 紊矣라
故로 潔其身而去之라 天下는 擧一世而言이니라 無道則隱其身而不見也ㅣ라 此惟篤信好學하고 守死善道者라야 能之
니라(군자는 위태로움을 보거든 명을 주니[나라의 위태로움을 보면 깨끗이 목숨 바칠 각오를 하고 일에 임하니],
그렇다면 위태로운 나라에서 벼슬을 하는 자는 가히 떠나갈 의리가 없거니와, 밖에 있다면 들어가지 않음이 가하
니라. 어지러운 나라는 위태롭지는 아니하나 형벌과 정치와 기강이 어지러움이라. 그러므로 그 몸을 깨끗이 하고
떠나니라. 천하는 온 세상을 들어서 말함이니라. 도가 없으면 그 몸을 숨겨서 나타내지 아니하니라. 이는 오직 독
신 호학하고 수사 선도하는 자라야 능하니라.
邦有道에 貧且賤焉이 恥也ㅣ며 邦無道에 富且貴焉이 恥也ㅣ니라(나라에 도가 있음에 가난하고 또 천함이 부끄러움
이며, 나라에 도가 없음에 부하고 또한 귀함이 부끄러움이니라.)
世治而無可行之道하며 世亂而無能守之節이면 碌碌庸人이라 不足以爲士矣니 可恥之甚也ㅣ라 ○鼂氏 曰有學有守而去
就之義ㅣ 潔하고 出處之分ㅣ 明然後에 爲君子之全德也ㅣ니라(세상이 다스려짐에 가히 행할 만한 도가 없으며 세상
이 어지러움에 능히 지킬 수 있는 절개가 없으면 녹록하고(변통수 없는) 용렬한 사람이라. 족히 써 선비가 되지
못하니 가히 부끄러움이 심함이라. ○조씨 가로대 배움이 있고 지킴이 있으면서 거취의 의리가 깨끗하고, 출처(벼
슬길에 나아가거나 집에 있음)의 나눔(분별)이 밝은 연후에 군자의 온전한 덕을 갖추느니라
* 백옥루(白玉樓) : 백옥 누각. 문인이 죽어서 간다는 하늘에 있는 누각. 문인이나 묵객의 죽음을 비유하는 말이
다. 당(唐)나라 때의 시인 이하(李賀, 장길(長吉))는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났으나 재주를 펼쳐 보지도 못하고
27세에 요절하고 말았다. 「이하가 임종하기 전, 대낮에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붉은 규룡(虬龍)을 타고 홀연히
나타났는데, 태고전(太古篆) 글씨인지 벽력석문(霹靂石文) 글씨인지로 ‘장길을 불러들여라.’라는 글자가 새겨진
판을 들고 있었다. ······ 이하가 가지 않으려고 하자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천제께서
백옥루를 지어 놓고 즉시 그대를 불러 글을 쓰도록 하시려고 합니다. 하늘에는 즐거움만 있을 뿐 괴로움이 없습니
다.” 이하는 홀로 눈물을 흘렸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이를 지켜보았다. 잠시 후에 이하는 숨이 끊어졌다.(長吉將
死時, 忽晝見一緋衣人, 駕赤虬, 持一板書若太古篆或霹靂石文者云, 當召長吉. ······ 賀不願去. 緋衣人笑曰,
帝成白玉樓, 立召君爲記. 天上差樂不苦也. 長吉獨泣. 邊人盡見之. 少之, 長吉氣絶.)」이 이야기는 당나라 이상은
(李商隱)의 《이하소전(李賀小傳)》에 나온다. ‘백옥루’는 원래 이하의 임종 시에 천제의 사자가 한 말에 나왔
는데, 후에 문인의 죽음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태고전이란 상고 시대의 전체자(篆体字)를 말하고, 벽력석
문이란 석고문(石鼓文)을 말한다. 석고문은 중국 최초의 석각 문자로, 이 글이 새겨진 돌로 된 돈대(墩臺)가 북처
럼 생겼기 때문에 ‘석고문’이라 칭한 것이다. 이 땅에서 가난하게 살았지만 마음만은 부자였던 시인은 많은 문
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백옥루’로 갔다.
* 금낭가구(錦囊佳句) : 비단 주머니 안에 있는 아름다운 시구. 아름답고 빼어난 시구를 비유하는 말이다. 「항상
계집종을 따라 나귀를 타고 등에 떨어진 비단 주머니를 매고 다니며 (영감을) 얻으면 써서 주머니에 넣었다. 저녁
에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가 계집종에게서 주머니를 받아 (속에 든 것을) 꺼냈는데, 글이 많은 것을 보고 “이 아
이는 마음을 다 토해 내놓아야 그친다니까.”라고 말하고 불을 켜고 밥을 주었다. 장길은 계집종에게 글을 달라
하여 먹을 갈고 종이를 접어 완성한 다음 다른 주머니에 집어넣었다.(恒從小奚奴, 騎距驢, 背一古破錦囊, 遇有所
得, 卽書投囊中. 及暮歸, 太夫人使婢受囊出之, 見所書多, 輒曰, 是兒要當嘔出心乃已爾. 上燈與食. 長吉從婢取書,
硏墨疊紙足成之, 投他囊中.)」이 이야기는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이장길소전(李長吉小傳)》에 나온다. 중당
(中唐) 때의 천재 시인 이하(李賀, 장길)는 일곱 살 때부터 문장을 지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다. 그는 비
단 주머니를 매고 다니다가, 우연히 영감을 얻으면 시구를 지어 주머니 속에 넣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유래한
‘금낭가구’는 아름답고 빼어난 시구나 글귀를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 그리고 이하의 어머니가 한 말인 ‘구심
(嘔心)’은 고심하거나 심혈을 기울여 창작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구심역혈(嘔心瀝血)’이라고도 한다. 시인들
의 염원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시를 쓰는 것이다. 하여 시인들은 ‘금낭가구’의 시구를 만들어 내
기 위해 ‘구심역혈’한다.
세한도(歲寒圖) 紙本 墨書 23.3 * 108.3센티,국보 제180호
[김홍도, 老子出關圖, 간송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