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그 이름 앞에서
- 2002.10.28 / 김영애 -
발칙한 아름다움이여!
그대의 마음을 재고있는
이 어리석음을 보아다오.
참혹의 시간을 달려
그대 앞에 당도 하였음을.
詩, 그 이름 앞에서.
詩에게 2
- 2002.10.28 / 김영애 -
너무 익어서 농익은 것들
그래서 썩는 것들
뼈와 살을 파고 드는 것들
지식을 불모로 우뚝 솟은 자들이
열매맺은 것들
세상쪽으로 그 몫 돌려 주기
못내 아쉽고 두려워
은폐하는 것들,
썩는구나. 썩어.
지독한 욕심과 위선들이 썩는구나
詩라는 명분을 끌어와
애써 발효라고 이름지으며
하얗게 먼발치에서 웃는
그들의 심장 쪽에서
오랫동안 삭혀온 곰팡내가 풍겨 온다
이왕 썩어 문드러질 모양이면
거름이나 되어
지상의 가장 낮은 자,
마소의 목줄기나 축여줄 요량이지
까치 밥보다 못한 詩 한 줄 걸어놓고
詩를 미끼로 사람의 마음을 밀렵하려 드는
어리석은 자들이여
오호 애재라!
문학 사이트 곳곳에는 친교의 목소리만 높고,
정작 오늘의 비평에 두 눈 부릅뜬 이는
돌을 맞는구나
소란 서러운 깡통 같은 이들을
훌쩍 뛰어 넘어
등 돌리고 마음을 밀봉한 채
침묵하고 앉았으면
나는 더 이상 썩지 않을까?
재생 불가능의 詩는 썩어가고
그들의 목청은 끝 간 데 없이 높구나
詩에게 3
- 2002.10.28 / 김영애 -
- 가장 깊은 1급수 물이 고인 너의 심연에 한 마리 가재로 살고싶다. /
너를 처음 만났을 때, 갈비뼈 하나 툭, 부러진 심정이라 말하였네. 그리하여 나는 아프
기 시작하였지만 상처를 견디는 것은 살아있음을 아는 일이라 등을 낮추게 된 것을 감
사하였네. 언젠가 떠밀려 닿는 곳, 바다가 아니라 할지 어도 너의 부드러운 물살, 소리
가 아닌 느낌으로 오는 다정함을 기뻐하며 구부러지고 휘어진 채로 너를 만나러 가리라.
자, 내 몸에 무늬를 봐, 마디마디 그어 놓은 수많은 금들, 한계가 아닌 절도와 유연성을
지닌 무의식 속, 충동적 배치를 봐! 절단의 아픔을 딛고 선생의 탄력성, 사랑이라는 이름
의 음계로 치솟아 금방이라도 안길 듯한 staccato로 튀는 생동감.
나 너에게로 간다. 사랑아 - 네 심연의 맑은 정화수, 그 속에 한 마리 가재가 되고저, 알
싸한 물맛, 정수리까지 파고들어 뒤통수 갈기는 야생의 기질 속으로
詩란?
- 2002.10.28 / 김영애 -
시는 문학의 가장 예민한 성감대를 이룬다.
문학이 그것을 산출케 한 사회적 정신적 모습을 가장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다면,
시는 그 문학의 가장 예민한 성감대를 이룬다.
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한 사회의 이념과 풍속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개인의 창조물 속에서 이해하는 것을 뜻한다.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갈등을 이해하는 것이 지식인들의 중요한 작업이 되어있는
오늘날 시인들의 창조적 자기표출을 예리하게 감득하지 못하는 한,
그것은 결국 도로에 그칠 가능성을 갖는다.
시인의 직관은 논객의 논리를 뛰어넘는 어떤 것을 그 작품 속에 표출하기 때문이다.
창(窓)
- 2002.10.28 / 김영애 -
내 생은 항상 네 곁에 머물렀다.
마음이 울적한 날.
가만히 너를 응시하면
세상의 흔들림,
그대로 보여주며
얼룩지고 싶지않다고
외치던 투명한 함성
어김없는 방문을
싫다 말하지 않으며
따가운 눈빛을 곱게 걸러내
나와 세상의 틈 사이에 벌어진
수많은 굴곡들을
맑음으로 채워주곤 했지.
한숨으로 얼룩진
네 생에 미안해하며
저 밖의 세상에서
흔들리고 있겠지만
여전히,
푸른 숨결로 출렁이고 있을
바다가 된 네게
어디쯤
조각배로 닿아가고 있을....
하늘 아래 아리따운 모습으로
세상을 현혹한 죄는 너무 클 거라며
한 숨 짓는 단풍의 걱정을 듣는다.
버려진 꽃 다발 바구니
저승 꽃처럼 피어난 곰팡이를 가득 안고,
더 이상 향기를 맡을 수 없게 되었다며
통곡하는 소리 들린다.
그 곡조에 눈 맞춘 나무는,
스산스산 불어오는 바람을 등지고
혼자이고 싶다며 내버려두란다.
가을
- 2002.08 / 김영애 -
하늘이 저리도 높은 이유는
떠나보내기 위함이다.
나무의 촉촉한 머릿결에
더 이상 눈길 주지 않기 위해
서서히 모습을 감춘다.
저 푸른 빛 아득히
우리의 눈을 멀게 한 다음
때깔 고운 구름에
마음을 눕혀 두고는
혹독의 계절을 도모[圖謀]하는,
가을이란,
내게는 형벌과도 같은.
우수수 떨어지는 음모[陰謀]를 쓸어담는 계절이다.
* 작품을 推薦 해 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오바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세상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눈이 어느 날 부터인지 아픈 것 내면의 것들만 찾다보니 그동안의 자신의 안부가 몹시 부끄럽고
허깨비 같다는 생각입니다. 더 멀리 내다본다는 것은 생기지도 않는 걱정을 미리 하는 것인가요? 疑心만 깊어질까
두려움이 생기기도 합니다. 한참을 공황상태였습니다. 이제 막 깨어나 보니 온갖 부족함 투성이 입니다. 혹여 제
가 제대로 된 길을 걷지 못하고 自慢과 二重의 길로 들어선다면 지켜보시고 批判해 주십시요. 자랑거리는 못 되지
만 요즘의 시를 대하는 저의 심정을 표현 할 글이라 감히 추천해 드립니다. 추천 책으로는 "레몽 장"의 "책 읽어
주는 여자"를 正讀하고 있습니다. 현실은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간다. 독서는 그 새어나가는 것들을 담는 그릇인
가? 를 자문한 레몽 장의 깊은 언어와 스피드를 즐기고 있습니다. 텍스트와 독자 사이를 마구 돌아다니는 이 책
읽어주는 여자.. 추천하고 싶습니다. 건필 하세요. 문우님
겨울 숲
- 2002.12.02 / 김영애 -
1.
초록과 붉음 사이를 오가는 야생의 꽃과 풀은
초 겨울, 내려놓은 것이 많을수록 가벼워진 몸으로
새들의 함성과 손을 잡는다.
자유, 그 이름으로 떠있던
잎사귀와 날갯짓과 나이테가
단풍의 절정에서 내려와
대지, 그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되돌아가는 중이다.
아니, 연어처럼 땅을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다.
흙의 단단한 기운을 뚫고 삶과 죽음,
그 어긋난 경계선을 지우며
약속의 땅, 눈부신 생의 산란을 꿈꾸면서
2.
은근한 눈흘김 같은, 첫눈을 안고
가뿐한 생명 되어 내려오던 밤
심장 터질 듯한 진통이
어머니를 덮치고 혈관을 덮치고
뱃골이 당기도록 젖꼭지까지 덮치던
여린 잎사귀같던 딸은
이제, 윤기 없는 연어의 비늘같이 떠오른
어머니의 모습을 닮는다.
야생의 풀과 꽃과 새의 가벼움과 섞이어
푸른 잎사귀 같은 몸에도
흠뻑, 단풍이 들면서
수색[搜索]
- 2002.12.02 / 김영애 -
밤새 저 꽃등은 누가 켠 것일까?
저 잎새들은 어디서 달려온 것일까?
슬그머니 초록 심지를 꺼내는
멋쩍은 몸짓의 나무 가지를
봄 햇살이 어색하게 더듬는다.
야, 나무
너는 언제나 수상해
삼림욕
- 2003.03.25 / 김영애 -
숲 속, 바람 스산한 전나무 위로
혼백처럼 걸려있는 햇살.
살아있는 동안은
간간히 햇살 맞아
아름다운 날들이라는 듯
나무가 몸을 열어 빛을 보내어주면
직시할 수도 없이 눈만 부시어
이처럼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아,
삶이란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두 눈을 부릅뜨는 것이어서,
미궁에 빠져 헤매기도 하는 것이어서, 문득
세상 밖으로 내려서기 싫어진다.
가만히 눈을 감고 나무 아래에 누워
새들이 지절대는 곡 소리 앞세우고
소복 자락 같은 흰 구름이나 동행하며
나 이대로 안락사하고 싶어져,
소리도 없이 전나무 가지 사이를
혼 불처럼 지나고 싶어져
달의 발효
- 2003.04.16 / 김영애 -
어제 밤에는 달빛이 참으로 곱더라
달이 저리도 아름다운 것은 슬픔이 내제된 때문이리라.
지구 곁을 떠돌면서 까치발 선 그의 동경.
푸른 지구가 남자라면 달은 여인 같기도 하다.
보름에 한 번 둥글게 부풀어 올랐다가
끝내 지구 곁에 닿지 못하고
차차 이지러지는 저 달.
지구는 달을 끌어안지 않는다.
눈빛 만으로 먼발치에서 서로를
공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도 아름다워 소유의 의미를 벗어던진..
거대한 항아리들.
달의 그렁그렁한 빛살 사이로
풍경처럼 걸려있는 달의 울음.
명치 끝을 살짝 누른
폭발하지 않는 울음이 달을 부풀게 만들었다가
스스로 소멸하는 저 인내성.
우리의 어머니를 보는 듯도 하다.
가슴 속으로 발효되는 달의 마음이 고운 빛살로
여과되어 세상을 보듬는다.
슬픔 속에서 마음은 더욱 단단해지고 강해지는 법.
마음은 우수를 담고 겉으로는 저리도 유쾌한 달빛의 내력.
닮고 싶구나.
둥...당....둥...당..
파동치는 저 달빛 속에서
모든 생명 난 것들의 마음은 구부러지고 휘어진다.
오월의 빛
- 2003.05.06. / 김영애 -
오월의 빛은 찬란하다 못해 사람의 목을 겨누는
여인의 은장도 같은 날카로움이다.
모가지가 시려서 시려서
푸른 산들이 겹겹의 옷을 껴입는 선뜻함이다.
꽃신 같은 장미 덤불 속에 얼굴 묻는
벙어리 삼룡이 되어 우는 오월은
심장 가렵고 목 시려워
어머니의 품 속에서 노닐다
아이의 눈 속으로 숨는
숨바꼭질의 계절이다.
꽃들 자결하느라 온 산이 붉다.
비 밀
- 2003.05.29. / 김영애 -
바다가 오라 한다.
바다가 가자 한다.
서서히 하강 준비를 하던 구름이
소떼처럼 우우 뛰어들어
바다를 안는 것을 보았다.
뼈와 살이 부딪치며
하얗게 하얗게 신음하다
절정의 포말을 그리는 한 획,
모래 사장 위로 금빛 사연만 두고
죽음을 맞이한
덧붙임)
바다의 직립 보행을 본다.
그 푸른 기백을 본다.
제 몸 제가 부수며 가는 그의 상처를 본다.
바다는 늘 아파 보인다.
수 세기 동안을 침묵 만으로 일관한
바다여.
바다의 생물과 지상의 모든 비밀을 지켜주는 그는
진화하지 않는다.
유월의 빛
- 2003.06 / 김영애 -
유월은,
은빛 양동이 가득
일렁이는 물살에 손 담근
젊은 어미의 모습 같아
창가, 대야 속 같은 마알간 얼굴을
빛살에 헹구노라면
마당 한 켠에서 들리는 수돗물 소리 같은,
잎새 바람에 나부끼며
차르르 몸을 일으키는 소리 들리고
내 유년시절, 어머니의
찌그러진 놋 양푼 반짝이는 모습 보이고
노곤한 그녀의 삶과 악다구니를 일으키는
질경이 같은,
어린 눈알들이 보이고
열 개의 손마디와 목덜미 사이를 지나는
아카시아 향.
하늘거리는 블라우스 틈새로
풍겨오는 젖 내음에 취해
졸리운 모양으로 앉아
하얗게 웃던 치아가
참, 슬프구나 하는 생각도 스미다가
먼산으로
등목이라도 한 듯한 푸른 능선들이
시원하다 시원하다며
서로의 어깨를 견주는 것을 보며
그렇게 세상을 향해 내 달음질치고도 싶은
유월, 은빛 가득한 빛살이
하늘가 수도꼭지에서
양동이째 처얼철 넘쳐 흐르고
내 젊은 어미의 푸른 동맥이 흐르고
흙 떨어낸 질경이 같은,
푸른 이파리 차르르 흐르는
비상(飛翔)
- 2003.06 / 김영애 -
발로 툭 걷어 찬 하늘 일시에 흔들리자,
안개 투망 끊고 저 너머 새 난다
하늘 아래 갇힌 것 어디 구름과 바람 뿐이겠느냐?
머뭇거림 없는 부리와 날개 칼 되어
가벼이 솟구쳐 머언 우주 쏘아올린 무지개 따라
곡예 하듯 공중을 찢는 새여,
푸른 기슭 울창한 나무 관객 되어
쏴아아 일제히
기립, 함성 지르다 손뼉치는 소리 들리고
우리집
- 2003.09.06 / 김영애 -
기와는 기와대로 저 홀로 아름답고 우뚝하여 땅을 모른다 합니다.
목이 긴 코스모스, 기다리는 얼굴이나 길만 내려다 볼 뿐입니다.
빨강 고추잠자리 한 마리,
가을빛을 관통하여 어색한 고요를 흔들어 놓습니다.
현란하나 질서있는 날개를 쫓다보니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참 고마운 손님의 날개는 투명합니다.
도화지를 가져다가 옮기려 합니다.
담의 여백처리를 어찌해야할지,
문패를 달까 생각중입니다.
가을, 그 절망
- 2003.09.09 / 김영애 -
가을빛 내려앉은 거리에 서면,
붉은 심장을 달고 선 단풍잎 서걱거리고
은행나무의 두 갈래,
그 가랑이 속을 걸어나온 열매는
우는 소리도 없이 탯줄을 자른다
그저, 살고저 버팅기던 목숨들아,
이제 그대들은 누구의 배를 불리려
기름진 머리카락 스스로 떨구고
심장은 바스러져 땅으로 스미는가
검푸른 대기, 눈물나는 이 거리는
호흡의 가닥마저 호사스러우나
이내 목구멍으로 울음이 일어
헐거워진 심지에 기름을 채우고
소일거리로 오돌오돌 떨었거니,
깊게깊게 갈앉는 절벽같은 방안,
보낼 수 없는 것들의 호흡소리를
이리 무심히 보내고 있나니
묵향, 잔인하게 피어나는 화선지
칡흙의 벽 마주하고 앉았으나
. 하나 찍을 수 없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