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윤성의> 대숲에 서면 / 백제의 눈빛 / 개꿈 / 탐욕 / 몸무게를 달며

이름없는풀뿌리 2023. 8. 15. 10:26
대숲에 서면 - 2004.01.06 / 윤성의 - 객적은 뱃살이 시덥잖아 보이던가​ 무에 그다지 채울 게 많더냐 고​ 가볍게 되도록 가볍게 비워보라 귀띔하네. ​ ​ 백제의 눈빛 1 - 2003.04.13 / 윤성의 - - 금동용봉봉래산향로 천 몇 백년 그 긴 잠 함묵의 굴속에서 망국 한 곰 삭혀온 금동 용봉봉래산향로 역사를 뛰어 넘어서 어둠 씻고 눈뜬다. ​ 누가 백제를 죽었다 말하는가​ 몸 비록 흩었어도 혼 불은 이었거니 긴 세월 잊혔던 불빛 오늘 다시 비치나니. ​ 왕조는 묻혔건만 그 얼은 되살아서​ 뜸직한 얼굴로 역사 앞에 나앉으며​ 억지에 눈감긴 세월 벗으라 눈짓한다. ​ ​​ 개꿈 - 2003.01.12 / 윤성의 - 나른한 오후 달디단 낮잠에 들다 ​ 한적한 시골 마을, 초가 지붕 위에 박이 지붕 가득 탐스럽게 열렸는데, 저 많은 박 중에는 흥부의 박과 놀부의 박이 한 통씩 섞여 있다며 올라​ 가서 골라 따갖되 딱 한번 한통만 딸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데... 팔자​ 를 고칠 기회를 잡는 것이나 곤욕을 치를 확률은 반반, 복권 당첨률보​ 다 훨씬 가능성이 높은 이 좋은 기회를 어찌 놓칠 수 있으랴. 사다리를​ 타고 조심조심 올라가 고르는데, 두드려 봐도 고것이 고것 같아 감이​ 안잡히고, 귀를 대어봐도 아무소리 들리지 않으니 알 재간이 없고, 아​ 무리 들여다보아도 모르겠으니, 조급하고 답답하나 그렇다고 그만 둘​ 수는 없는 일... 저쪽의 박이 특별해 보여 가보면 다른 쪽의 것이 달라​ 보이고 그쪽에 가서 보면 또 다른 쪽에 있는 놈이 그래 보이고...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다가 박 덩굴에 발이 걸려 지붕 아래로 나뒹굴었다. ​ "아이쿠" 눈을 번쩍 뜨니 햇살이 쨍쨍하다. ​ ​​​ 탐욕 - 2003.01.12 / 윤성의 - 끙끙 짊어지고 땀을 뻘뻘 흘린다 그냥 내려놓으면 벗을 수 있는 짐인데​ 버거워 허든거리면서도 놓지 못하는 허정한 짐. ​ ​​​​ 몸무게를 달며 - 2003.01.12 / 윤성의 - 저울에 올라서서 무게를 달아본다​ 육십㎏ 남짓하니 쌀 한 가마에도 못 미친다​ 그것도 썩으면 없어질 살덩이가 전부라는데. 풀에게나 벌레에게 또는 돌에게라도 따뜻한 눈길을 주고받을 줄 아는​ 그러한 무게를 단다면 얼마쯤이나 될까. ​ 채울수록 허기지는 뱃살을 뺄 일이다 가슴을 키우며 넉넉하게 키우며 때로는 감고도 볼 수 있는 그런 눈을 틔울 일이다 ​ ​ ​​​​ 개 이야기 - 2003.01.12 / 윤성의 - 지난 날 조선 개는 도둑을 짖었는데​ 요즘의 우리네 개는 소태 맛으로 웃는단다 개 같은 세상이라고 개들이 웃는단다. ​ ​​​​​ 이런 생각 - 월간문학 2001년 4월호 / 윤성의 - 가끔은 물처럼 사는 법을 배워볼 일이다​ 바가지 건 항아리 건 그릇 따라 맞춰 가며​ 그 잘난 쇠똥 고집을 다스리며 사는 일. ​ 행여나 사람이 물처럼 살 수 있다면 낮은 곳 따라내려 가닥가닥 추스르는 어느 날 바다 같은 세상 만날는지도 몰라. ​ ​​​​​ 다리 - 현대문예 2002. 봄호 / 윤성의 - 물살이 넘실대는 강물을 가로질러​ 네가 건너오고 내가 건너가고​ 누구나 넘나들 수 있는 다리를 놓을 일이다. ​ 팔 벌려 손내밀면 이웃과 이웃인데​ 가까워도 먼 거리 흘긋흘긋 머쓱한 눈​ 우리들 사이사이로 흙탕물이 넘실댄다. ​ 이쪽과 건너편은 지척의 맞 바래기 단절을 꿈꾸는 강물의 음모 깨고 단절을 단절키 위한 다리를 놓을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