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설정식> 종 / 해바라기3

이름없는풀뿌리 2023. 11. 15. 05:25
에밀레종의 이동(일제시대) 종(鐘) - 설정식 / <문학> 창간호(1946. 7.) - 만(萬) 생령(生靈) 신음을 어드메 간직하였기 너는 항상 돌아앉아 밤을 지키고 새우느냐. 무거히 드리운 침묵이여 네 존엄을 뉘 깨트리드뇨 어느 권력이 네 등을 두드려 목메인 오열(嗚咽)을 자아내드뇨. 권력이어든 차라리 살을 앗으라 영어(囹圄)에 물러진 살이어든 아 권력이어든 아깝지도 않을 살을 저미라. 자유는 그림자보다는 크드뇨. 그것은 영원히 역사의 유실물(遺失物)이드뇨. 한아름 공허(空虛)여 아 우리는 무엇을 어루만지느뇨. 그러나 무거히 드리운 인종(忍從)이여 동혈(洞穴)보다 깊은 네 의지 속에 민족의 감내(堪耐)를 살게 하라 그리고 모든 요란한 법을 거부하라. 내 간 뒤에도 민족은 있으리니 스스로 울리는 자유를 기다리라. 그러나 내 간 뒤에도 신음은 들리리니 네 파루(破漏)를 소리없이 치라. * 생령 : 살아 있는 넋이라는 뜻으로, ‘생명’을 이르는 말 * 영어 : 감옥(監獄) * 동혈 : 깊고 넓은 굴의 구멍 * 파루 : 조선 시대에 서울에서 통행금지를 해제하기 위하여 종각의 종을 서른 세 번 치던 일 * 작품해설 : 이 시는 「해바라기」 연작의 다음 단계로서 설정식의 시작(詩作) 행위를 잘 보여 주는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서, 시집 『종』의 표제가 된 작품이다. 이 시는 종소리의 의미에 따라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반부의 1~3연은 신음의 종소리를 상징한다. 종은 ‘만 생령 신음을’ 간직하 고 ‘항상 돌아 앉아 / 밤을 지키고 새우’는 존재로서 감히 그 ‘존엄을’ 깨뜨릴 수가 없다. 그러 나 역사에 따라서는 권력의 폭압이 그 ‘등을 두드려 / 목 메인 오열을 자아내’기도 한다. 시적 화 자는 이러한 종의 운명을 거부하여, 차라리 ‘영어에 물러진 살이어든 / 아 권력이어든 아깝지도 않 은 살을 저미라’고 지사적 풍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후반부에서는 자유의 울림으로서의 종소리를 강 조한다. 4연에서는 자유의 공허함에 절망하지만, 5연에서 시적 화자는 종 속에 흡수되어, ‘동혈보다 깊은 네 의지 속에 / 민족의 감내를 살게 하라 / 그리고 모든 요란한 법을 거부하라’고 하며 6연에 서의 ‘스스로 울리는 자유를 기다’린다. 권력에 얻어맞아 우는 신음 소리이든 스스로 우는 자유의 울림이든, 종을 울게 하는 힘은 역사에서 오는 것이고, 그 종은 곧 ‘민족’ 자체임을 화자는 깨닫는 다. 따라서 화자는 ‘내 간 뒤에도 민족은 있으리’라고 하여 민족의 절대성을 믿고 ‘스스로 울리는 자유를 기다’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종(민족)은 영원히 신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어서 ‘내 간 뒤에도 신음은 들’릴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럴 때 시적 화자는 새벽을 깨우는 ‘파루를 소리 없이 치라’는 시인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한다. 이와 같이 「해바라기」 계열의 작품이 천도(天道)로서의 태양과 새 역사 창조의 이념으로서의 또 다른 태양을 직접적으로 노래한 것이라면, 이 시의 세계는 그보다 한 단계 높은 상징성을 획득한 것으로서 「해바라기」의 직접성을 종소리 하나에 합일·심화 시킨다. 즉 자유와 민족은 영원하다는 것, 그 자유 획득을 위한 투쟁에서의 민족의 감내(堪耐)와 인 종(忍從)을 깊이 감춘 것, 그런 의지가 종소리라는 것이 이 시가 담고 있는 상징적 의미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밤과 어둠을 지키는 것과 권력의 폭력에 우는 것, 그리고 민족과 자유와 끝내 함께하는 것과 권력의 폭력에 신음하는 것, 이것이 바로 종의 운명이라고 시인은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 는 ‘종’을 ‘너’라고 호칭하는 직접적인 의인법에다 명령형을 동반하여 시적 대상으러서의 사물의 형상화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시적 화자와 시인 사이의 간격을 철저히 없애 버린다. 그 러므로 시적 화자의 목소리는 그대로 시인의 목소리로서 예언자적 진실성을 획득한다. 이러한 예언자 적 목소리가 크게 울릴 수 있는 현실이 또한 해방기의 특수성일 터인데, 그 구체적 실체가 바로 설정 식 시작(詩作)의 마지막 단계인 「제신(諸神)의 분노(憤怒)」의 세계라 할 수 있다. 해바라기 3 - 설정식 / 시집 『종』, 1947. 4 - 해바라기는 차라리 견디기 위하야 해바라기는 차라리 믿음을 위하야 너희들의 미래(未來)를 건지기 위하야 무심(無心)한 태양(太陽)이 사슴의 목을 말리고 수풀에 불을 지르고 바다 천심(千尋)을 짜게 하여도 해바라기는 호올로 너희들의 타락(墮落)을 거부(拒否)하였다. 모든 꽃이 아름다운 십자가(十字架)에 죽은 날 모든 열매가 여지(餘地)없이 유린을 당한 날 그들이 모다 원죄(原罪)로 돌아간 날 무도(無道)한 태양(太陽)이 인간(人間) 위에 군림(君臨)하고 인간(人間)은 또 인간(人間) 위에 개가(凱歌)를 부르고 이기랴든 멍에냐 어깨마저 꺼져도 해바라기는 호올로 태양(太陽)에 필적(匹敵)하였다. * 천심 : 천 길이라는 뜻으로, 매우 높거나 깊은 것을 이르는 말 * 개가 : 개선가. 이기거나 큰 성과가 있을 때의 환성 * 작품해설 : 해방 직후 소설가 · 시인 · 번역가로 활동한 설정식은 우리 문학사에서 매우 이채롭 고 문제적인 존재이다. 일찍이 광주학생운동에 가담하여 퇴학을 당한 후, 중국 체험을 하고, 다시 연 희전문에 입학하여 미국문학 전공자로서 수석(首席)을 다투던 설정식은 매우 드물게 직접 미국 유학 을 하고 돌아온 신세대 지식인에 해당한다. 해방 직후 미군정청 공보처 여론국장으로 활동하게 된 사 실을 두고, 스스로 “나는 미국인이 나를 쌍수로 들어 받아들인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주 장할 정도로 자부심이 가득하였던 설정식은, 그러나 문학인으로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 있는 의문의 존재이기도 하다. 미군정청에 근무를 하고 있으면서도 남로당 지하 조직에 관여하고 ‘조선문학가동맹’에 적극 가담하 여 외국문학부 위원장의 지위에 오른 그는, 해방 이후에만 3권의 시집을 상재(上梓)하고, 6편의 소설 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친다. 공산당에 대한 탄압이 격심해지자 그는 창작을 중단, 세 익스피어 연구에 몰두하고, 한때 사상 전환 기관인 ‘보도연맹’에 가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6.25 전쟁 중 자진하여 인민군에 입대하여, 소좌의 계급으로 판문점 회담 통역관으로 활동하기도 하 였지만, 결국 1953년 남로당 일파 숙청시에 ‘미제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사형당한다. 이러한 설정 식의 매우 이채로운 삶은 해방기에 처한 지식인의 문제를 가장 여실히 보여 주는 전형적인 경우라 할 만하다. 즉 스스로 선택한 미국 유학의 길과 그로 인한 미군정청 근무, 그리고는 다시 “(미국이) 자 기네 군사 기지를 가진 나라에 대한 관심보다 군가 기지 자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았 다”고 하여 스스로 사직, 반미·친공의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결국 그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 은 해방기의 지식인의 비극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좌)1951년 개성휴전회담장, (우)조중대표단 일원이었던 설정식(각 사진 맨 왼쪽이 설정식) 해방 이후 1946년까지 창작한 그의 시는 제1집 『종』 속에 전부 수록되어 있고, 1947년에 쓴 것은 『포도』에, 그리고 1948년 초기 발표분은 『제신의 분노』에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그의 시작(詩 作)은 대략 세 단계로 설명된다. 그 첫째는 시집 『종』과 『포도』에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태양’의 이미지와 관련된 「해바라기」 연작이고, 둘째는 「해바라기」 연작에서 보이는 새 역사 창조의 이념이 한 단계 높은 상징성을 획득하고 있는 『종』의 세계, 세 번째는 시인의 목소리를 작 중 화자의 목소리로 일치시켜 민족사적 과제를 직접 제시하는 예언자적 목소리의 『제신의 분노』의 세계이다. 「해바라기3」은, 그의 「해바라기」 연작 중에서도 새 역사의 이념으로서이 ‘해바라기’와 천도(天 道)의 표상으로서의 ‘태양’과의 갈들을 첨예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즉 「해바라기1」과 「해바라기2」에서는 해바라기가 곧 태양의 표상으로서 새 역사의 초석을 세울 수 있는 일차적인 대 상을 상징한다고 본다면, 「해바라기3」에서는 ‘호올로 / 태양에 필적’하여 역사적 전망과 의지를 담고 있는 상징적 주체로 자리 잡는다고 볼 수 있다. ‘태양’은 ‘사슴의 목을 말리고 / 수풀에 불을 지르고 / 바다 천심을 자게’ 만드는 ‘무도한’ 존 재로서 ‘인간 위에 군림’한다. 이러한 태양 아래에서 ‘인간은 또 인간 위에 개가를 부르’는 타락 의 삶을 살아간다. 그것을 시적 화자는 ‘모든 꽃이 아름다운 십자가에 속은 날 / 모든 열매가 여지 없이 우ㅜ린을 당한 날 / 그들이 보다 원죄로 돌아간 날’로 규정한다. 이러한 현실 아래에서, 종래 태양을 따라 돌면서 태양을 향하는 바고 그 속성으로 인하여 태양의 표상으로 상징되던 ‘해바라기’ 는 ‘차라리 겨디기 위하야’, ‘차라리 믿음을 위하여’ 그리고 민족의 ‘미래를 건지기 위하야’ ‘호올로 / 태양에 필적 하는 존재로 전환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바라기‘의 이미지의 전환은 어디까지나 관념적이다. 즉 ’태양에 호올로 / 필적 하는‘ ’해바라기‘를 통해서 시인은 새 역사 창조, 새 나라 창조에 대한 의지와 사랑을 강조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그 비유와 언어 감각음 낯설고 거칠다. 그만큼 시작(詩作) 행위는 극히 단순한 이념의 열정적 표출로 귀결된다. 30대의 설정식 * 설정식(薛貞植, 1912-1953) 1912년 함경남도 단천 출생 1929년 농업학교 재학중 광주학생사건에 가담한 이유로 퇴학 1932년 연희전문학교 입학 1936년 미국 오하이오주 마운트 유니온대학에서 영문학 전공. 이후 콜롬비아대학에서 2년 더 연구 1945년 해방 직후 미군정청 근무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외국문학부 위원장 1948년 영자(英字) 신문 『서울 타임즈』 편집자 1953년 월북 후 숙청됨 설정식의 詩 소개 / 한국문학관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