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김용호> 주막에서 / 눈오는밤에 / 낙동강

이름없는풀뿌리 2023. 11. 17. 08:12
보물 527호/ 단원풍속도첩 25폭檀園風俗圖帖二十五幅중 『주막』, 국립중앙박물관 주막에서 - 김용호 / <날개>(1956) - 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 그 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 오는 막걸리 맛 여기 대대로 슬픈 노정(路程)이 집산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위의(威儀) 있는 송덕비(頌德碑) 위로 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가고 … 세월이여! 소금보다도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비낀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내 입술이 닿은 그런 사발에 누가 또한 닿으랴. 이런 무렵에 눈 오는 밤에 - 김용호 / 시집 『시원 산책』, 1964) -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 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 파묻은 불씨를 헤쳐 잎담배를 피우며 "고놈, 눈동자가 초롱 같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바깥엔 연방 눈이 내리고 오늘밤처럼 눈이 내리고. 다만 이제 나 홀로 눈을 밟으며 간다. 오우버 자락에 구수한 할머니의 옛 얘기를 싸고, 어린 시절의 그 눈을 밟으며 간다.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 질화로 : 질흙으로 구워 만든 화로 * 조롱같애 : 초롱같다. (눈이나 귀, 정신이) 환하게 밝다. 초롱은 등롱(燈籠)을 달리 이르는 말. * 작품해설 : 이 시는, 어느 눈 내리는 겨울밤, 길을 걷던 시적 화자가 누이와 함께 질화로에 밤을 구워 먹으며 할머니께 옛날이야기를 졸라대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는 내용으로, 향토적 서정성이 듬뿍 담긴 작품이다. 할머니는 이니 세상을 떠나셨고, ‘질화로에 밤알이 토실토실 익어 가 던’ 어린 시절의 정겨움도 모두 사라져 버린 메마른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화자는 홀로 눈길을 걸 으며 고독에 젖다가 ‘구수한 할머니의 옛 얘기’를 떠올리고는 흘러가 버린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시인은 의도적으로 ‘질화로’·‘밤알’·‘콩기름 불’·‘실고추’·‘불씨’· ‘잎담배’·‘초롱’등의 순박하고 인정미 넘치는 시어를 사용하여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정겹게 만드는 한편, 옛것에 대한 아 쉬움을 강조하는 이중 효과를 얻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떠난 것은 모두 정겨운 것이고, 잃어버린 것은 모두 그리운 것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이처럼 이 시는 각박한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 들로 하여금 누구나 지니고 있는 포근한 추억에 젖어들게 한 번쯤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기에 충분 하다. 낙동강 - 김용호 / 『사해공론(四海公論)』, 1938년 9월. - 1 내 사랑의 강! 낙동강아! 칠백 리 굽이굽이 흐르는 네 품속에서 우리들의 살림살이는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너 함께 길이길이 살 약속을 오목조목 산비탈에 깃발처럼 세웠다. 내 사랑의 강 ! 낙동강아 ! 너는 얼마나 아름다운 요람이었더냐. 너는 얼마나 그리운 자장가였더냐. 앞집 영이와 풀싸움하던 그 언덕에는 언제나 우리들의 끔을 재우던 황혼의 보금자리가 비좁게 따뜻하였고 툇마루처럼 올라다니던 동리 어구 - 전설의 할무니 세 아람이나 되는 은행나무엔 우리들의 콧물이 마를 사이도 없었다. 2 그러나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 별은 얼마나 총명한 하늘의 아들이었더냐 우리들은 얼마나 총명한 이땅의 아들이었더냐 [하늘천 따짜지 가매솥에 누른밥]하며 콧물이 점점 소매 끝에서 줄어들고 수박참외를 하루밤 호-올닥 매어 놓았던 그 원두막 [오랑이 딱딱] 할아부지가 어딘줄 모르게 시언 섭섭이 떠나가고 나룻배 사공-한룡이의 멋떠러진 노래가 [저 건너 갈미봉]에서 무언가 응 [이이다사 마다사]로 바꿔져갈 때 우리들은 어린양만 피워서는 안될 어무니의 한숨을 기-ㄴ 겨울밤 호롱불 밑에서보았다. 3 이듬해 봄! 우리들은 삶의 고달픈 행로의 첫 걸음을 지개에 걸머지고 마을 뒷산을 올라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물이 촉초-ㄱ이 올라붙은 포푸라 나무가지로 끊어 만든 우리들의 쌍나팔 — 피리가 순이를 씬나물 맨나물 쑥들을 캐는 산기슭을 헤쳐지나 머 -ㄹ 리 마을을 얼룩송아지 엄매- 하는 소리는 마을의 춘궁을 또한번 알이었다. 그 봄은 그렇게도 우리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슬픈 교훈이었다 팔월 한가위 --- 아부지가 우리들의 노리개 땅총을 사가지고 온 읍내 정월 대보름 -- 줄싸움 구경들 엄마 등에 업혀 갔다는 읍내 인제 우리들은 나무를 등에 업고 읍내를 찾아가는 씩씩한 일군이 되었다 삼십리길 -- 읍내의 못보던 경이는 우리들의 얼마나 동경의 세계였더냐 햇곱한 지게에 찾아드는 어둠과 적료를 안고 돌아오는 논 무덕 위엔 피로와 배고픔이 가시발처럼 얽혀졌는데 ......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 이때부터 너는 하나의 슬픔을 안고 흘러갔다 황혼은 언제 조고만 어린 가슴에 몇장의 연꽃을 피었더냐 그리하여 나무하다 말고 쇠줄 두가닥이 머얼리 합치는 그곳에도 기차는 자빠지지도 않고 용하게 달리는 이유가 몹시도 알고 싶었다. 4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 우리들의 설움이 너 함께 얼어붙고 또다시 너 함께 풀리고 세월을 하나의 밀물이던가 삼십리 밖 읍내의 못보던 경이는 차츰차츰 이곳에도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붉은 기! 흰 기! 돌돌 말렸다 풀렸다 하는 땅을 재는 자 어느새 새끼쇠줄이 논바닥에 들어눕고 흙구루마는 영이와 풀싸움하던 그 언덕을 짓밟고 달아났다. 기어이 귀신이 산다는 은행나무 목이 다라난 그날 아침 마을의 할부지 할무니들은 [이제 동리사람이 모두 죽는다]고 땅을 뚜디리고 통곡하였다 그러나 우리들의 경이의 탐색은 그런것에 눈도 거듭떠 보지 않았다 ....그것은 크고 뻗는 우리들의 푸른 하늘의 의욕이 아니고 무엇이었던가 그러나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 그 경이의 밀물로 끝내 제살부치는 되지 않았다. 조사모사가 우물가에 모이고 가로수 혓바닥에 귓속말이 잦아갈 때 고향은 하루 하루 호방넝쿨 시들듯 시들어갔다. 그리하여 노래속에도 읇지 못한 노래가 세월을 안고 너 함께 흘러갔다. 아! 초조와 희망은 우리들의 숙명이던가 5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 오리온의 별들이 일찍 우리들께 들려 준 이야기는 무엇이며 약속은 무엇이더냐 우리들은 그것을 안다 우리들은 그것을 잊지않았다. 두팔을 벼개 삼아 밤 하늘을 쳐다볼 때마다 그는 우리들의 앞길을 밝히는 하나의 등대였다. 아! 그러나 ...... 그러나 ...... 그것마자 영원한 동경의 세계였다. 우리들은 얼마나 착한 백성이었더냐 우리들은 얼마나 어리석은 무리였더냐 6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 밀물과 밀물의 부닥침 속에도 일찍 우리들은 절망의 노래를 무른 적이 없다. 너 하나만은 최후까지 지켜줄 우리들의 단 하나의 희망이었기 때문에 -- 그러나 그 희망마자 하루밤 사이 아 - 니 순간의 거품처럼 사라질 운염이었던 것을 가슴에 천 만번 뜯고 뜯어도 알길이 없다. 초조와 불안과 공포가 나흘낮 -- 사흘 밤 --- 우리들의 앞가슴을 차고 뜯고 울대처럼 선 온 산맥의 침묵이 깨어질 때 고숨도치처럼 뺏뺏한 대지를 한손에 휘어잡고 매어친 [꽝] 하는 너의 최후의 선언은 우리들의 절말 그것이었다. 언제 너는 노아의 주구가 되었더란 말이냐 언제 너는 폭군 네로를 꾀하였더란 말이냐 7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 우리들은 너에게 고함친다 너의 폭위는 우리들 하나의 크나큰 시련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한마리 참새도 너의 폭위 앞에 그의 생명을 능이 상우지는 않았다 하물며 우리들의 새빨갛게 타는 생명을 짓밟기엔 네 함은 너무나 약하였다. 우리들은 사무치는 원한과 절망의 구덩이 속에서 또다시 털고 일어설 하나의 신념을 찾았다. 구름은 한갓 하늘을 떠도는 [유랑민은 아니었다] 그는 갈망과 추구의 생명의 깃발을 싣고 설계하고 건축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파괴하고 다시 탐구의 이동을 꾀하는 아! 지혜롭고 자유스런 선망할 하나의 생명이 아니었더냐 8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 이제 좀 지나면 돈냉미 상추쌈에 봄잠이 잦을 때다 우리들은 숫가락 몇개 바가지를 찼다 그렇게도 가뜬한 우리들의 살림살이었다. 북쪽 -- 북쪽은 구름이 깃들인 고향 우리들은 구름의 의도를 따라 북쪽으로 간다. 할무니 어무니 [쇠마차 타면 서울 구경 내일 아침 한다지"] 하던 당신들의 평생소원 그렇게도 타고 싶어하던 [쇠마차]가 지금 철교를 구얼고 달려오지 않습니까? 아하! 기쁨의 물결이 일 당신들의 얼굴얼굴이 왜 그렇게도 앙상한 나무 가지처럼 뻣뻣하고 어둡고 차단 말씀이십니까? 9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 삼월에도 삼진날 흥부에게 줄 행복의 씨를 물고 제비가 틀림없이 이 마을을 찾던 그 때는 어느 때며 [용 못된 강철이]가 산다는 그 바위가 우리들께 영원을 이야기한 때는 그 어느 때냐?...... 10 아! 그리운 내 사랑의 강! 낙동의 강아! 너는 왜 말이 없느냐 너의 슬픔은 무어며 너의 기쁨은 무어냐 * 김용호(金容浩.1912∼1973) * 1912년 5월 26일 경남 마산에서 출생 * 1928년 마산상고 졸업 * 1938년 [맥] 동인. 박노춘의 소개로 첫 시집 <향연>을 동경에서 발행 * 1941년 일본메이지대학(明治大學) 전문부 법과 졸업 * 1942년 메이지대학 신문고등연구과 수료 * 1946년 예술신문사 주간 * 1956년 자유문학상 수상 * 1958년 단국대 교수 역임 * 1973년 5월 14일 고혈압으로 사망 시인. 호 학산(鶴山)ㆍ야돈(耶豚)ㆍ추강(秋江). 경남 마산 생. 일본 메이지(明治)대학 법과 졸업. 1935년 [신인문학]에 시 <내 사랑하는 여인아> <첫 여름밤 귀 기울이다>를 발표하면서 등단. 1938년 [맥(貘)] 동인이 되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詩作活動)을 했다. 학생 시절에 시집 <향연>을 냈고, 이 후 여러 시집을 내는 한편, 1946년부터 1950년까지 [예술신문] 주간, 출판사 [남광문화사(南光文化 社)] 주간, 문예지 [자유문학] 주간으로 활동했다. 6ㆍ25 때 부산서 대학 강사, 1958년 단국대 교수, 동 대학 문리대학장 역임(1966∼1973 사망시까지). 4ㆍ19 기념시집 <항쟁의 광장> 편찬 등 문단에 공 로가 많다. 심장병으로 사망. 아시아자유문학상 수상(1956년) 시인. 아명은 만석(萬石). 호 야돈(野豚)ㆍ추강(秋江)ㆍ학산(鶴山). 경남 마산 출생. 마산상고를 졸 업한 후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와 신문고등연구과를 졸업하였다. 예술신문사, 시문학사, 남평문 화사, 자유문학사 주간으로 활동하였다. 광복 후 한때 조선문학가동맹에 관여한 적이 있으나, 전향하 여 한국자유문학가협회에 가담하였고, 1962년 한국펜클럽 부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35년 [신인문학]에 시 <내 사랑하는 여안아> <첫 여름밤 귀 기울이다>를 발표하면서 문단활동을 시 작하였다. 1938년 김대봉(金大鳳) 등과 함께 [맥] 동인으로 참가하였다. 시집 <향연> <해마다 피는꽃> <푸른 별> <날개> <남해찬가> <의상 세례> 등을 간행하였고, 1974년 유고시집 <혼선>이 간행되었 으며, 1983년에는 <김용호시전집>이 간행되었다. 시론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시문학입문>(1952) <시원산책>(1964) 등을 간행하기도 했다. 1956년 아시아자유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김용호는 첫 시집 <향연>에서 절망과 비판에 젖은 감상적인 세계를 <해마다 피는 꽃>에서는 민족주의에 입각한 현실인 식의 세계를 <푸른 별>에서는 자연에 근거한 서정의 세계를, <날개>에서는 서민적이며, 일상적인 생 활의 세계를, <남해찬가>에서는 이충무공을 모델로 하여 민족혼의 세계를, 그리고 <의상세례>와 <혼선>에서는 인생론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다. - 권영민 : <한국현대문학대사전>(서울대출판부.2007) - * 김용호(金容浩) 시(詩) 세계 일별 향수(鄕愁) 바다 저편에/ 산이 있고// 산 위에/ 구름이 외롭다.// 구름 위에/ 내 향수는 조을고// 향수는 나를/ 잔디밭 위에 재운다.// 고향으로 간다 어느 간절한 사람도 없는 곳/ 고향으로 간다// 머나먼 날 저버린/ 고향으로 내가 간다// 낡은 옷 훌 훌이 벗어버리고/ 생미역 냄새 하암북 마시며 고향으로 간다// 잃어버려, 끝내 잃어버려/ 없는 고향 이라 포개둔 그리움이 한결 짙어/ 눈감아도 뛰놀던 예옛 어린 시절/ 좁은 골목 골목들이 서언하게 다 가오구나// 세월이 흘러/ 세월이 흘러/ 맴도는 지점에서 소용돌이가 되는 황혼 무렵// 통곡은 이미 사치스러운 것/ 무딘 신경에/ 새론 출발의 기적을 울리며/ 고향으로 간다// 없는 고향이라 사뭇 그리 워/ 그 그리움을 캐러 고향으로 내가 간다// 푸른 별 고향 뒷산/ 노비산* 언덕 위의 소년은/ 꿈이 많았더란다// 구름에도/ 풀밭에도/ 곧잘 꿈을 심었더란 다// 심구곤/ 자라나는 꿈이 하도 벅차서/ 흐느끼며 우러러본 하늘// 별들이 의좋게 반짝거리는 밤엔 / 구슬픈 곡마단의 트럼펫 소리에 귀가 젖어/ 고스란히 별과 함께/ 그냥 샌 밤이 있었더란다 나의 푸 른 별을 안고// * 노비산 : 마산에 있는 조그만 산 이름 매화 孤高를 자랑하기엔/ 아직도 구두창 밑이 흙투성이다.// 冬眠처럼 누운 것보담/ 거리에 나가 차라리 가쁜 호흡을 퍼붓자// 눈이 내리고/ 발자죽 하나 하나에/ 印쳐지는 索漢이/ 바싹 바싹하는 이런 무렵 에/ 매화는 한결 돋보인다고 한다.// 참/ 고운 여운을 곱디고운 나래다.// 남으로 향한 창가에 온기 가 있어/ 너처럼 나도 외롭지 않을 때가 있다.// 또 한 송이 나의 모란 모란꽃 피는 유월이 오면/ 또 한 송이의 꽃 나의 모란/ 추억은 아름다워 밉도록 아름다워/ 해마다 해 마다 유월을 안고 피는 꽃/ 또 한 송이의 또 한 송이의 나의 모란//모란꽃 피는 유월이 오면/ 또 한 송이의 꽃 나의 모란/ 추억은 아름다워 밉도록 아름다워/ 해마다 해마다 유월을 안고 피는 꽃// 또 한 송이의 또 한 송이의 나의 모란// 5월이 오면 무언가 조용히/ 가슴 속을 흐르는 게 있다./ 가느다란 여울이 되어/ 흐르는 것.// 이윽고 그것은 흐 름을 멈추고 모인다./ 이내 호수가 된다./ 아담하고 정답고 부드러운 호수가 된다./ 푸르름의 그늘이 진다./ 잔 무늬가 물살에 아롱거린다.// 드디어 너, 아리따운/ 모습이 그 속에 비친다./ 오월이 오면 / 호수가 되는 가슴.// 그 속에 언제나 너는/ 한 송이 꽃이 되어 방긋 피어난다.// 5월의 유혹 곡마단 트럼펫 소리에/ 탑은 더 높아만 가고/ 유유히 젖빛 구름이 흐르는/ 산봉우리/ 분수인 양 치오 르는 가슴을랑/ 네게 맡기고 사양에 서면/ 풍겨 오는 것/ 아기자기한 라일락 향기/ 계절이 부푸는 이 교차점에서/ 청춘은 함초롬이 젖어나고/ 넌 이브인가/ 푸른 유혹이 깃들여/ 감미롭게 핀/ 활홀한/ 5 월// 너를 숨쉬고 날이 날마다/ 오가는 길에/너만 있어// 숱한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 너만이 있어// 어항 속/ 한 마리 명의/ 금붕어처럼// 너를 숨쉬고/ 나는 살아간다.// 이중섭(1916~1956)의 그림(가로·세로 15×16㎝) ‘너를 숨쉬고’는 김용호 시인의 詩를 바탕으로 그 렸다. 그림 뒷면에 시 전문이 육필로 씌어 있다. 담배 두 손가락에 끼이어/ 삶과 주검의 허무를 알으켰다/ 두 입술에/ 물려/ 사랑과 미움의 갈등을 배웠다 // 머-ㅇ히/ 들창 밖을 내다보는 버릇이/ 너 함께 이루어진 날// 내 삶은/ 색동저고리를 벗고/ 하이 얀 소복을 입었다.// 날개 1 거리에 서면/ 부후연 먼지와 거센 바람// 파아란 하늘이 그리워/ 발돋움하면/ 넌, 나를/ 절름발이라 하는구나// 어디메로 가는 구름이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바라보던 구름이기에/ 움패인 마음 한구성에 / 철늦은 비를 따루느냐// 먼지도/ 바람도/ 비도/ 모두 멎어라// 천길 땅 속, 뻗은 뿌리에/ 싹은 터 라/ 내/ 날고 싶구나/ 짧은 한쪽 다리를 어루만져/내 날고 싶구나// 날개 돋칠 두 어깨에/ 힘은 솟아 라// 날개 2 사닥다리를 조심스레 하나하나 올라갔습니다./ 年輪이 다 찬 꼭대기에서/ 어머니/ 나는 또 어디로 옮 아가야 합니까?// 저어 까마아득한 하늘 속에 녹아 버리기엔/ 아직도 未練이 감탕처럼 날 휘감고/ 되 내려 가긴 이미 時間이 발판을 떼어버렸습니다.// 속절없는 나의 曲藝에 풋내기 애들의 손뼉이 울리 고/ 누군가/ <피에로>/ <피에로>/ 하며 외치는 소리.// 어머니/ 어찌하여 당신은 나에게 날개를 주시 는 걸/ 잊으셨습니까?// 운명 손바닥을/ 거울인 양 들여다보고/ 쓰디-쓴 인생의/ 소태물을 마신다.// 파리한 내 얼굴에/ 새겨진 네 이름// 東/ 西/ 南/ 北// 오가도/ 닿을 곳 없어// 이제 나는/ 운명의 연못에 사는/ 한 마리 금붕어가 되었다.// 상밥집 밥 한 숟갈에도/ 눈물이 고였다.// 물 한 모금에도/ 설움이 어렸다.// 눈물을 삼키고/ 설움을 마시고 // 문득/ 푸른 산 저 너머/ 고향 하늘이 그리워// 좁은 골목을 나서며/ 나는 휘파람을 불었다.// 연가 길들은 바위 위에 쪼그리고 앉아/ 바다를 정답게 바라봅니다.// 물결이 모래를 어루만지며/ 밀려오고 밀려가고// 산듯한 바람이 즐거움을 싣고/ 속삭이며 불어오는// 그리운 사람아!// 손곱내 나는 그 섬 등에서/ 그대 나를 부르는 듯 부르는 듯// 나는 오늘도/ 산호처럼 빠알간 사랑을/ 그대 가슴에 수놓 는다.// 너 생각뿐 삼삼그리면/ 눈을 부비어보고// 하두 보고프면/ 쩔래 쩔래 머리를 뒤흔들어도 보고// 못 이루는 사랑 일 바엔/ 아예/ 지우고 잊어버리자// 하고, 어제도 오늘도/ 너 생각뿐// 릴르 브린느에게 너는 내 안에 너무 가까이 살고 있어/ 이미 보이지 않는 먼 섬이 되었다.// 바위처럼 굴 껍질 향내 듯 나는// 바위에 홀로 앉아/ 바다를 어루만지면// 물결이 부드런 손을 내밀고/ 내게로 안겨온다.// 아득한 그날을 그려/ 향수에 젖은 바윗돌들// 이제 말문을 닫혀/ 아무 말이 없다.// 나 도 바위처럼 살다/ 이 물결에 안겨 죽을까부이// 끝내 한 잎의 落葉인 것을 흔들리는 바람 속에 종언이 있다. 허공// 자연 속에, 자연은 아슬아슬하게도 지고 이별은 슬픈 깃발 을 올려 나부낀다.// 얻은 것과 잃어버린 것과 매맞은 것과 사무치도록 외롭던 좀먹은 나날과 헤어도 헤어도 모자라던 그 하나와.// 한 점 바람에도 역사는 흔들리어 뚫린 가슴과 무덤 있는 노오란 풍경 과 시지프스의 인내가 끝내 줄을 끊어 유한의 둘레에서 무한으로 뻗힌 길.// 한 잎 낙엽이 지고 연달 아 몇 잎이 지고 우수수 수없는 낙엽이 진다. 간밤, 비가 축축이 젖은 心情 위를 스스로 밟고 가면, 아득히 핀 소년의 꿈이 산마루에 무지개로 걸려 있고, 이제 한 개 돌이 되어 비문에 새겨질 생명이 조용히 진다. 낙엽들의 바싹바싹 하는 여운.// 나도 한 잎 낙엽일 뿐, 끝내 그뿐인 것을.// 터-ㄱ 버티고/ 앉았는 것은/ 여간해 끄떡 않을/ 믿음성 있는 자세다// 윗머리를/ 하늘 높이 뻗친 것 은/ 추구의 행방이/ 어디인가를 알리는/ 솔직한 신호다// 그렇기에 산은/ 속새들의 지껄임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명상은 높아 높아/ 가을 호수처럼 맑다// 江가에서 얼음장 밑으로/ 조용히 강물이 흐른다.// 아직도 봄은/ 갇혀 있나부다.// 찬손 모아 입에 대고/ 호호 불면 따스한 입김.// 이처럼 봄은/ 내 입 안에 서려 있나부다.// 버들강아지 불룩한 강가에서/ 떠나 간 그날의 사람,// 그래서 봄은/ 내게서 아주 떠나 갔나부다.// 그러나 2월은/ 봄을 잃고/ 봄을 기다 리는 마음.// 핑크 비취의/ 봄의 볼을 기다리는 마음.// 千환짜리 시 露天 막걸리집이라/ 술잔을 달이 떠/ 李太白이 부럽잖습니다.// 머언 항구를 떠나 천 리 예까지 왔어 도/ 강파른 생활의 언덕은/ 마찬가지 창백합니다.// 곱창에 불이 옮아/ 등잔 대신 상머리가 밝은데/ 죽어 다시 타는 그 어진 소에/ 내가 화장되고 있는 걸/ 역력히 볼 수 있습니다.// 곱창처럼 사람들 입에/ 꼬옴 꼬옴 되씹힐 수 있는 그런 詩를/ 몇 개나 쓰다 죽어야 합니까// 문득 가을 바람이/ 더운 이마를 스쳐가면// 한번 멋지게 울어봤으면 좋을/ 소낙비 같은 게 기둘려지는 밤입니다.// 거울을 들여다본다 거기/ 나의 實體가 보이질 않는다.// 허망한 세월 속에/ 나는 서서히 용해되어 갔나부다.// 戰慄이 있어 소릴 높이 외쳐본다.// 아무런 反響이 없다./ 그 투명한 유리 입김// 낯선 딴 實體가 나의 공간 을 占據하여/ 나는 거울 속에 있고 나는 그 거울 속에 없다.// 해마다 4월이 오면 -모든 영광은 「젊은 사자들」에게 1/ 화산이 터졌다. 불길이 용솟음쳤다./ 억눌렸던 분노의 지열이 일시에 치솟았다./ 경보는 삼월 십 오일! 내 고향에서 울렸다./ 남쪽 바다의 성난 파도가 그 신호였다.// 2/ 해마다 사월은 왔다./ 사랑하는 내 나라, 그리운 고향에도 --/ 그러나 「사월은 가혹한 달이었 다./ 죽은 흙에서 리라꽃을 키우며/ 기억과 원망을 뒤섞어서/ 둔한 초목의 뿌리를 봄비로 일깨우려 했다.」/ 그렇다. 「죽은 흙에서 리라꽃」을 --./ 사월은 와도 봄은 오지 않았다./ 가혹했다. 봄이 없어 꽃은 가슴속에 피다 말고 졌다./ 아! 쓰레기통에서 꽃은 필 수 없지 않은가./ 부패 속의 구더기 때문, 꽃은 필 수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사랑하는 내 나라는/ 불안한 지역이었고 절망의 지대였 다.// 3/ 사월은 오고 봄은 왔다./ 民主와 自由를 위해 만발한 「젊은 꽃」이여/ 이 아름다운 꽃에/ 누가 「죽음의 흙」을 던졌던가./ 보라! 「봉사와 질서」는 그 가면을 벗어/ 「민중의 지팡이」는 이 나라 꽃송이를 후려갈기고/ 「쏘라고 준 총」은 그렇다 틀림없이/ 이 나라에 아름답게 필 꽃송이들에/ 우 리들의 아들을, 딸을, 동생을, 조카를/ 그 正義의 머리통에, 가슴에 명중시켰다./ 그러나 젊음에겐 정지나 후퇴가 없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된다. 오직 전진뿐이다./ 목마른 낮과 밤을 엮어/ 목숨에 심 지를 달고 불을 켠 젊음이여!/ 「부정과 불의」를, 「횡포와 억압」을/ 「사악과 허위」를 산산이 쪼 각내는/ 저 우렁찬 함성을 절규를 듣는가, 들었는가/ 온 자유세계 인민들이여!/ 피에 젖은 갈망과 희 구와 염원의 저 외침을 --.// 4/ 드디어 젊음은 이겼다. 주권을 되찾았다./ 民主 勝利의 깃발을 하늘 드높이 들었다./ 피를 흘리 고, 피가 뒤끓고 피가 통하는 곳에/ 아! 쓰레기통에서는 장미가 필 수 없다는/ 경멸과 치욕과 굴레를 말짱 벗고/ 희망과 새로운 신념을 우리들은 얻었다./ 길이 길이 기억하라! 銘肝(명간)하라./ 사월 이 십육일!/ 지축을 흔드는 승리의 뒤안길에/ 피다 말고 진 꽃송이들이여!/ 어찌 碑銘(비명)에만 새기 랴! 그대 이름을/ 우리 붓을 가다듬어 靑史에 쓰리라/ 우리들은 「우상」을 원치 않는다./ 오로지 원 하는 건 우리들 가슴에 새겨진/ 씩씩하고도 굳센 그대들의 모습인 것을 --// 5/ 이제, 감격은 해방의 그날처럼/ 분수가 되어 하늘로 치솟아 흐르고/ 무지갠가,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지는/ 황홀한 빛깔!// 아는 이, 모르는 이 굳게 손을 잡으며/ 피의 승리에 눈물짓는 젊음이여!/ 자유의 기수여! 민주의 횃불이여!/ 우리들의 나라! 민주의 나팔수여!// 믿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마 음 든든한 일이냐/ 사랑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벅찬 기쁨이냐, 즐거움이냐.// 6/ 여태까지 우리들을 슬프게 한 것/ 여태까지 우리들을 괴롭게 한 것/ 여태까지 우리들을 분하게 한 것// 그 모오든 것은/ 이제부터 없어져야 한다./ 송두리째 뿌리를 뽑아버려야 한다./ 「四捨五入」도 「사바사바」도 「빽」도 「나이롱국」도// 白書의 테러는 테러가 아니란」걸작도/ 「가죽잠바」도 그렇다 겨레를 좀먹는/ 모오든 어휘들랑 없어져야 한다.// 가난과 싸우며 정성껏 바친 우리들의 세금 이/ 「도금한 애국자」들에게 횡령당함을 거부한다./ 그 어느 정당도 착복함을 완강히 거부한다.// 민족과 조국의 이름으로 기만을 일삼는/ 政商輩(정상배)와 아첨의 무리들은/ 송두리째 뿌리를 뽑아야 한다.// 인민에겐 준법을 강요하며/ 불법을 자행하는 위정자는 없어야 한다./ 있어서는 안 된다. 그 리고/ 모든 「귀하신 몸」은 다시 나타나선 안 된다.// 우리들의 나라! 사랑하는 내 나라는/ 인민으 로 이루어진 인민을 위한/ 인민의 진정한 나라라야 한다.// 7/ 해마다 사월이 오면 꽃이 피리라/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들은 피리라/ 젊음이 가꾼 「민주의 꽃」 이/ 해마다, 해마다 곱게 피리라/ 피고 피어 온 동산에 만발하리라// 그 꽃을 향해 우리들은 나비가 되어/ 모두 날아들리라./ 사월은 따뜻하리라. 꽃은 활짝 피리라./ 그리하여 우리들은 이렇게 노래하 리라./ 「사월은 가장 즐거운 달/ 산 흙에서 민주의 꽃을 키우고/ 기억과 願望(원망)을 뒤섞어서/ 찬 란한 영광의 그날을 모두 회상하리라」고.// * 《조선일보》 1960년 4월 28일자 석간에 발표 조국에게 너의 짓밟힘 속에/ 나도 짓밟혀/ 뭉개진 기형아로 태어나고// 너의 그 가난 속에/ 나도 가난해/ 굶주 려 영양실조가 되고// 숨가삐 가시덤불 헤쳐/ 언덕에 오르면/ 하늘하늘 고운 하늘이 안겨/ 사뭇 정다 운데/ 길은 아직도 멀어// 조국이여!// 짓밟힘 속에 태어났기에/ 나는 너를 아끼노라.// 빼앗긴 가난 속에 자라났기에/ 나는 너를 두둔하노라.// 다하지 못한 어제와 오늘/ 다하는 그날을 위하여/ 나는 너를 사랑하노라.// 진혼(鎭魂)의 노래 내, 죽거들랑 아무도 울지 말라// 다만/ 내, 사랑하던/ 하늘의 별이여!// 잠시 눈을 감아다오// 生命 은 꽃처럼 지고/ 다시 피어/ 나날이 세월이 흐르는데// 바람이여!/ 하늬바람이여!/ 나지막이 꽃잎을 흔들어다오// 내 永遠히 잠잘 때// 조선 배앵 뱅 돌다 돌아오면/ 여위어도 그리운 너// 없는 게 슬픔이 아니었고/ 들볶이는 게 딸 질색이었다 // 하고픈 말이 많아도/ 두 눈만 꺼음벅 마음속으로 주고받고// 또다시 밖에 나서도/ 갈 곳 없어 주 춤거리던 발길// 나는 이제 버리자/ 지팡이를 짚던 버릇을// 오목조목 산기슭에나/ 드문드문 시냇가 에나// 푸그은이 자리잡은 마음속에/ 뭉게뭉게 피어나는 즐거움// 내 사랑의 조국/ 너 이름은 조선이 었다// 저 구름 흘러가는 곳 (김용호 작시 / 김동진 작곡) * 이 곡은 1960년에 김용호(시인, 1912~1973)가 시를 쓰고 김동진이 곡을 붙인 가곡으로 1960년 개봉 영화 ‘길은 멀어도’(감독 홍성기, 주연 최무룡, 김지미)의 주제가 이다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아득한 먼 그곳 그리움도 흘러가라 파아란 싹이 트고 꽃들은 곱게 피어 날 오라 부르네 행복이 깃든 그곳에 그리움도 흘러가라 《후렴 》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이 가슴 붉게 불타는 영원한 나의 사랑 전할 곳 길은 멀어도. 즐거움이 넘치는 나라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저 구름 흘러가는 곳 내 마음도 따라가라 그대를 만날 때까지 내 사랑도 흘러가라」 저 구름 흘러가는 곳 가없는 하늘 위에 별빛도 흘러가라 황홀한 날이 와서 찬란한 보금자리 날 오라 부르네 쌓인 정 이룰 그곳에 별빛도 흘러가라 《후렴 》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이 가슴 붉게 불타는 영원한 나의 사랑 전할 곳 길은 멀어도. 즐거움이 넘치는 나라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저 구름 흘러가는 곳 내 마음도 따라가라 그대를 만날 때까지 내 사랑도 흘러가라」 저 구름 흘러 가는 곳(김용호) / 테너 박세원